※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오버워치’ 흥행과 함께 배우 류승룡이 게이머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오버워치’ TV CM이라도 출연했는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고, 실은 게임 속 캐릭터 ‘겐지’의 궁극기 ‘용검’ 때문이랍니다. 본래 ‘용검’ 발동 시 “류진노 켄오 쿠라에(竜神の剣を喰らえ, 용신의 검을 받아라)!”라 외치는데, 이게 마치 “류승룡 기모찌!”처럼 들린다는 거죠. 여기서 ‘기모찌’는 일본어 ‘기모치이이(きもちいい)’가 와전된 것으로 ‘기분이 좋다’는 뜻입니다. 즉 “류승룡이 기분 좋다!”
자신도 모르게 이름이 떠돌아다니는 류승룡이 정말로 기분이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대사가 ‘오버워치’ 입소문에 보탬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언어를 자신이 아는 말로 착각하는 현상을 ‘몬데그린’이라 하는데요. 외국 노래가사 중에 ‘레이드 힘 온 더 그린(laid him on the green, 그를 잔디에 뉘었네)’가 ‘레이디 몬데그린(Lady Mondegreen, 몬데그린 아가씨)’로 들린 데서 유래했답니다.
게임 속 ‘몬데그린’이 인기를 끈 것은 ‘오버워치’가 처음이 아닙니다. 게임이야말로 어린 나이에 비교적 정제되지 않은 외국어를 접할 수 있는 매체이고, 특히 옛날 게임들은 전문 성우를 기용하지 않아 ‘몬데그린’이 탄생하기에 알맞죠. 독자 여러분도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들리는 소리를 아무렇게나 따라 한 추억이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당무계한 게임 속 몬데그린, 함께 보시죠.
5위 개x끼 합격!(태고의 달인), 어딘지 심기가 불편한 합격
▲ 게임에게 욕을 먹고 격하게 흥분한 '슈주' 희철 (유튜브 rujase waryiv)
5위는 체감형 리듬게임 ‘태고의 달인’에 나오는 ‘개X끼 합격!’입니다. 보다시피… 아주 노골적인 욕이죠. 게임이 한 판 끝날 때마다 마스코트인 ‘태고’ 캐릭터가 카랑카랑하게 외치기 때문에 굉장히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굳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더라도 ‘태고의 달인’이 설치된 아케이드장을 오가다 보면 불현듯 귓가에 날아와 꽂히는 ‘개X끼~’ 소리에 흠칫하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 게임은 대체 왜 애먼 유저에게 욕을 하는 걸까요. ‘개X끼 합격!’의 정체는 바로 ‘세이세키 핫표(せいせきはっぴょう, 성적발표)’랍니다. 그래서 마침 결과 화면에서 하는 말이다 보니 ‘개X끼 합격!’이 더욱 그럴싸하게 들리는 거죠. 왠지 게임이 자신의 도전을 이겨낸 플레이어에게 마지못해 합격을 주는 듯한, 어딘지 심기가 불편해지는 ‘몬데그린’입니다.
4위 벼에서 쌀을!(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천군수 자락서스의 탄생
▲ 누가 합성했는지 참 그럴싸한 '이천군수 자락서스', 참고로 본래 이천'시'
4위는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나오는 ‘벼에서 쌀을!’입니다. 십자군의 시험장에 등장하는 불타는 군단의 군주 ‘자락서스’가 하는 대사죠. 벼에서 쌀이 나오는 거야 당연한 이치지만, 워낙 박력 넘치게 외치다 보니 무언가 투철한 직업의식인가 싶습니다. 다른 대사 중에 ‘지옥풀을 받아라!’라는 것도 있는데, 이렇듯 농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붙은 별명이 ‘이천군수 자락서스’라죠. 흠, 엄밀히 따지자면 이천은 군이 아니라 시입니다만.
물론 ‘자락서스’가 정말로 농사꾼일리가 없죠. 예상했겠지만 ‘벼에서 쌀을!’은 ‘뼈에서 살을!’이며 ‘지옥풀을 받아라!’는 ‘지옥불을 받아라!’입니다. 그러고 보면 블리자드 게임은 뛰어난 현지화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몬데그린’이 많은 편이죠. 뼛속까지 문과 ‘데커드 케인’이 외치는 ’저리 꺼져라, 수학하는 놈들!(사악한 놈들)’이나 불타는 군단 2인자 ‘킬제덴’의 ‘혼돈! 파괴! 망가!(망각)’이 대표적입니다. 아무래도 더빙 분량 자체가 엄청나게 많으니 실수가 간간히 나오는 거겠죠.
3위 얼마나 쓸쓸해요 힘내요 괜찮아요(KOF), 인정 넘치는 훈남 야시로
▲ 이제 위로가 필요할 때는 '야시로'를 찾아주시길 (영상출처: 네이버 벌꿀소년)
3위는 대전격투게임 ‘더 킹 오브 파이터즈’에 나오는 ‘얼마나 쓸쓸해요. 힘내요, 괜찮아요’입니다. 2030 게이머라면 과거에 한번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속 ‘몬데그린’을 들어보았을 텐데요. 당시 SNK가 워낙 더빙을 날림으로 해놓은 터라 발음이 전부 엉망진창이었던 탓입니다. ‘남아프리카 황토흙(갤럭티카 팬텀)’, ‘전북 익산(이치게키 힛사츠)’, ‘과소비가 원인이다(아소비와 오와리다)’ 등 주옥 같은 대사가 많지만, 역시 최고를 꼽으라면 ‘얼마나 쓸쓸해요. 힘내요, 괜찮아요’입니다.
이 대사는 오로치 사천왕 ‘메마른 대지의 야시로’가 필살기 ‘거친 대지’를 사용할 때 나옵니다. 적의 위로 뛰어올라 머리를 붙잡은 뒤 여러 차례 바닥에 매치는 무지막지한 기술이죠. 발동 시 ‘오토나시쿠시테로요, 스구오와루카라요(大人しくしてろよ、すぐ終わるからよ, 얌전히 있으라고, 금방 끝날 테니까)’라는데, 이게 ‘야시로’의 힘 빠지는 목소리와 합쳐지자 힘내라는 인정 넘치는 대사로 변모한 거죠.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날에는 훈남 ‘야시로’를 찾아주세요.
2위 두부소닉(디제이맥스), 본격 노르웨이 두부 홍보곡
▲ 듣다보면 자연스레 바른 먹거리 두부가 땡긴다 (유튜브 biscotte a la crevette)
2위는 국산 리듬게임 ‘디제이맥스’에 나오는 ‘두부소닉’입니다. ‘데크니카 2’ 수록곡이자 ‘S4리그’ 한정판 OST로도 쓰였던 ‘슈퍼소닉 ~미스터 펑키 리믹스~’ 가사 일부, 혹은 전체가 두부에 대한 내용으로 왜곡되는 해괴한 ‘몬데그린’이죠. 대충 가사를 적어보면 ‘노르웨, 노르웨이, 두부소닉! 빻아~ 두부소닉! 두부~ 쏘오닉!’ 정도로 들립니다. 요즘 두부가 바른 먹거리로 각광받고 있는데 6년 전에 이미 훌륭한 곡이 있었군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부소닉’에 실제 가사는 ‘슈퍼소닉’입니다만, 아무리 집중해서 들어보아도 여전히 ‘두부’로만 들립니다. 사실 원곡에서는 제대로 ‘슈퍼’라고 나오지만, 미스터 펑키가 디스코 스타일로 리믹스하는 과정에서 속도를 낮춰 발음이 뭉개진 탓이랍니다. 미스터 펑키도 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계속 듣다 보니 두부는 두부 나름의 센스가 있어서 수정하지 않았답니다.
1위 오! 야동 봐야 쓰것다!(갓 오브 워),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크레토스
▲ '크레토스'가 야동을 보겠다는데 누가 감히 말리겠는가 (유튜브 bigodinho02)
마지막 1위는 그리스신화 원작 액션게임 ‘갓 오브 워’에 나오는 ‘오! 야동 봐야 쓰것다!’입니다. 정확하게는 2편 메인 테마인 ‘더 엔드 비긴’에 가사 일부분이죠. 이 곡은 ‘갓 오브 워’ 특유의 비장하고 잔혹한 정서를 정통 그리스어로 노래해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적어도 해외에서는 말이죠. 국내 유저 입장에서는 신화적인 비극의 주인공 ‘크레토스’가 갑자기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야동애호가로 보이는 대참사였습니다만…
논란을 부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투 텔로스 아리지! 투 텔로스 아리지! 투 텔로스 아리지 토라!(To Telos Arhizi! To Telos Arhizi! To Telos Arhizi Tora!, 종말이 시작됐다! 종말이 시작됐다! 종말이 지금 시작됐노라!)’. 이것이 ‘오! 야동 봐야지! 오! 야동 봐야지! 오! 야동 봐야 쓰것다!’라는 성욕 인증(?)으로 변질된 것이죠. 가사 전달보다는 분위기 형성에 주력한 곡이라 소리가 심하게 울리는 탓으로 보입니다. 한번 ‘법! 대로 하라지!’나 ‘동! 대문 가야지!’로 생각하고 들어보세요. 애초에 소리가 부정확하다 보니 듣고 싶은 데로 들립니다. 그야말로 궁극의 ‘몬데그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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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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