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라이벌, 왠지 심장이 두근거리는 단어입니다. 같은 목표를 좇아 가끔은 적으로, 또 가끔은 친구로 부대끼는 뜨거운 관계 말이죠. 어릴 적 본 소년만화에서 주인공의 대척점으로, 묘한 기류를 형성하던 라이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형적인 악역도 존재감 없는 동료도 식상할 뿐이지만, 라이벌만큼은 언제나 등장과 함께 가슴 뛰는 전개가 펼쳐졌습니다.
이처럼 쌍벽을 이루는 두 존재의 승부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입니다. 본 코너에서도 이미 한차례 게임 속 라이벌 캐릭터를 조명한 바 있죠. ‘록맨’ 엑스와 제로,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쿄와 이오리 등 여러 조합을 살펴봤는데, 지나고 보니 ‘게임 속 라이벌’보다 더 재미난 대결 구도가 있더라고요. 바로 장르 왕좌를 두고 격돌한 ‘게임 그 자체’ 말입니다.
5위 포켓몬 vs 디지몬, 진정한 어른이의 친구는 누구?
▲ 게임에서 출발해 미디어믹스로 대성한 '포켓몬'(좌)와 '디지몬'(우)
5위는 어른이의 영원한 친구 ‘포켓몬’ 대 ‘디지몬’입니다. 두 작품은 모두 몬스터를 수집하고 성장시키는 게임에서 출발하여, 미디어믹스를 통해 큰 인기를 얻었다는 공통점이 있죠. 물론 콘셉이 비슷할 뿐 방향성은 전혀 달랐는데, ‘포켓몬’이 야생 몬스터와 사귀며 함께 여행하는 RPG라면 ‘디지몬’은 난폭한 디지털 몬스터를 감금해놓고 키우는 다마고치였습니다. 게임 형태만 보면 ‘디지몬’쪽이 조금 더 예스럽지만 의외로 ‘포켓몬’이 1년 먼저 나왔답니다.
96년 발매된 1세대 ‘포켓몬’은 백여 종의 귀여운 몬스터과 뛰어난 게임성 덕분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상성과 세 마리 스타팅, 체육관과 포켓몬 리그, 악의 조직 등 ‘포켓몬’을 대표하는 요소가 이때부터 이미 갖춰져 있었죠. 97년부터 방영된 애니메이션이 시너지를 일으켜 돌풍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이즈음 출시된 ‘디지몬’은 자연스레 ‘포켓몬’의 흥행 공식을 보고 배웠죠.
‘디지몬’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미디어믹스였습니다. 디지털 세계에 표류한 소년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는 어린 세대의 모험심을 저격해 ‘포켓몬’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했죠. 그러나 정작 뿌리가 되는 다마고치는 유행이 오래가지 못했고, 나중에는 애니메이션조차 시청률이 하락했습니다. 단일 세계관에 ‘한지우’ 원톱을 고수한 ‘포켓몬’과 달리 ‘디지몬’은 갈수록 설정이 꼬여 아이들이 어려워했거든요. 한때 동심의 대상이었던 ‘디지몬’은 어느새 마니아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4위 피파 vs 위닝 일레븐, 스포츠게임 마니아의 영원한 떡밥
▲ 축구를 좋아한다면 한번쯤 고민했을 '피파'(좌)'와 '위닝 일레븐'(우)
4위는 스포츠게임 마니아의 영원한 떡밥 ‘피파’ 대 ‘위닝 일레븐(해외명 PES)’입니다. EA는 93년 국제축구연맹 피파와 정식 라이선싱을 통해 ‘피파 인터내셔널 사커’을 내놓았는데, 당시에는 이러한 시도 자체가 매우 혁신적이었죠. 다만 90년대 게임업계를 주름잡던 일본 또한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경쟁작이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아니나다를까 명작 아케이드게임을 다수 배출한 코나미가 축구게임 개발에 뛰어들었죠.
코나미가 95년 내놓은 ‘위닝 일레븐’은 J리그에 다소 편중된 작품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아예 제목부터 국제축구연맹인 ‘피파’와 라이선스 경쟁을 하기는 버거웠던 거죠. 대신 이때부터 일본축구협회 라이선스만큼은 ‘위닝 일레븐’이 독점했습니다. 1편부터 꾸준히 PC를 지원한 ‘피파’와 달리 ‘위닝 일레븐’은 콘솔친화적이었으며, 코나미 성향에 따라 조금 더 아케이드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등 서로 노선이 달랐습니다.
두 시리즈는 매해 연도를 넘버링 삼아 계속해서 후속작을 내놓았습니다.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국제적인 라이선스를 쥔 ‘피파’가 우위를 점했지만, 2000년대 넘어서는 ‘위닝 일레븐’의 게임성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죠. 위기감을 느낀 ‘피파’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위닝 일레븐’의 장점을 적극 벤치마킹 했습니다. 반면 ‘위닝 일레븐’은 지속적인 라이선스 열세에 이어 2011부터 갈아엎은 시스템까지 혹평을 받았죠. EA와 코나미의 자본력 격차도 점차 벌어져, 결국 언제부턴가 따라잡기에 너무 먼 ‘피파’가 되어버렸습니다.
3위 스타크래프트 vs 커맨드 앤 컨커, RTS 역사를 지탱한 두 거목
▲ RTS 역사를 지탱한 양대 타이틀 '스타크래프트'(좌)와 'C&C'(우)
3위는 RTS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두 거목 ‘스타크래프트’ 대 ‘커맨드 앤 컨커(이하 C&C)’입니다. 이들의 경쟁은 92년 출시된 최초의 RTS ‘듄 2’까지 거슬러 오르죠. 당시 큰 감명을 받은 블리자드가 사실상 ‘판타지 듄 2’라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를 내놓으며 처음으로 대결 구도를 이뤘습니다. 이에 웨스트우드는 독자적인 SF 세계관을 바탕으로 ‘C&C’ 시리즈를 발족하여 다시금 한 발짝 앞서나갔죠.
그렇게 두 회사는 95년 ‘C&C 1: 타이베리안 던’과 ‘워크래프트 2’로 칼을 맞댑니다. ‘타이베리안 던’은 굉장했지만 ‘워크래프트 2’ 또한 더는 아류작 수준이 아니었죠. 둘 다 확고한 개성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내 게이머들은 더욱 굉장한 후속작을 원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치고 나온 것은 블리자드였어요. 98년작 '스타크래프트'는 ‘워크래프트’와 달리 본격 SF세계관을 차용해 'C&C’와 한층 더 비교됐죠.
곧 웨스트우드도 ‘C&C 2: 타이베리안 선'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과한 요구사양과 널뛰는 밸런스, 낡은 게임성 등 여러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비록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이 작품을 기점으로 웨스트우드는 점차 블리자드에 판세를 빼앗기게 되죠. 마지막 대결은 2010년 '스타크래프트 2: 자유의 날개'와 'C&C 4: 타이베리안 트와일라잇'였는데, 전자는 차세대 RTS라는 극찬을 받은 반면 후자는 존재조차 지워질 만큼 참패하고 말았답니다. 드디어 왕좌의 주인이 정해진 거죠.
2위 슈퍼 마리오 vs 소닉 더 헤지혹,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들
▲ 일본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마리오'(좌)와 '소닉'(우)
2위는 일본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슈퍼 마리오’ 대 ‘소닉 더 헤지혹’입니다. 85년 첫 선을 보인 ‘마리오’는 오늘날 닌텐도를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전세계 게임 시장을 통틀어 다시 없을 빅히트 캐릭터죠. 이제껏 출시된 ‘마리오’ 시리즈만 수백 개는 되는데다 당연히 총 판매량도 부동의 1위입니다. ‘마리오’는 엄청난 흥행력으로 닌텐도 콘솔 ‘패미컴’을 견인했고, 이에 ‘메가드라이브’로 경쟁 중이던 세가는 큰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마리오’는 특유의 친근한 인상과 뛰어난 게임성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습니다. 세가는 어설픈 게임으로는 도저히 ‘마리오’와 경쟁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세계 시장에 먹힐만한 캐릭터 디자인에 매달렸죠. 이때 천재 개발자 나카 유지가 탄생시킨 것이 바로 ‘소닉 더 헤지혹’입니다. 칠리 핫도그를 좋아하며 누구보다도 빠른 파란 고슴도치라니, 독창성과 매력 모두 더할 나위 없었죠.
‘마리오’가 등장한지 6년이 지나 드디어 ‘소닉’이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이미 ‘마리오’가 시장을 장악했다지만, ‘소닉’은 ‘스피드’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죠. 게이머들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감에 점차 매료됐습니다. 여기에 세가의 혼이 실린 마케팅이 더해지며 전성기 시절 ‘소닉’은 ‘마리오’를 찍어 누를 정도였죠. 다만 90년대 말 세가가 콘솔 경쟁에서 좌초되며 화력이 떨어지자, 어쩔 수 없이 ‘소닉’도 기세가 꺾이고 맙니다. 신작이 나와도 완성도와 화제성 모두 예전만 못한 실정입니다.
1위 콜 오브 듀티 vs 배틀필드, 게임업계 제일가는 두 전쟁영웅
▲ 오는 연말, 3차전에 돌입하는 '콜 오브 듀티'(좌)와 '배틀필드'(우)
1위는 오늘날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한 밀리터리 FPS의 양대 산맥 ‘콜 오브 듀티’ 대 ‘배틀필드’입니다. 사실 이들이 처음부터 라이벌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본래 ‘콜 오브 듀티’의 맞수로 거론된 작품은 2차 세계대전 FPS를 유행시킨 ‘메달 오브 아너’였죠. 애초에 ‘콜 오브 듀티’는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 개발진이 퇴사해 만든 작품이라 대결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둘의 장단점이 비슷한 터라 엎치락뒤치락할 뿐 쉽사리 결착이 나질 않았죠.
먼저 균형의 추를 무너뜨린 쪽은 ‘콜 오브 듀티’였습니다. 2007년 출시된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는 현대전을 실감나게 구현하여 경쟁작 ‘메달 오브 아너: 에어본’을 완파했죠. 심각한 타격을 입은 ‘메달 오브 아너’는 리부트까지 감행하지만 끝내 회생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배틀필드’였어요. 같은 EA 게임이거니와, 마침 2년 전 출시된 ‘배틀필드 2’가 현대전이었던 데다 시리즈 최고의 명작이었거든요. EA 입장에서는 썩 괜찮은 대타였습니다.
2011년 연말 시즌, 만반의 준비를 갖춘 ‘배틀필드 3’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를 정면에서 들이받았습니다. 당시 ‘모던 워페어 3’는 핵심 개발자가 이탈하는 등 위태로운 상황이었고, 시장의 분위기만 보아서는 ‘배틀필드’ 낙승이 점쳐졌죠. 그러나 ‘콜 오브 듀티’의 벽은 역시 높았던 걸까요? 예상외로 판매량에서는 되려 ‘모던 워페어 3’가 ‘배틀필드 3’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2013년에도 이어져, 시리즈 최악의 평가를 받은 ‘콜 오브 듀티: 고스트’조차 호평이었던 ‘배틀필드 4’보다 많이 팔렸습니다. 그리고 오는 연말, 1차 세계대전으로 승부수를 띄운 ‘배틀필드 1’과 우주로 나아간 ‘콜 오브 듀티: 인피니트 워페어’가 대망의 3차전을 준비 중이죠. 흔히 ‘승부는 삼세판’이라는데, 과연 마지막에 웃는 자는 누구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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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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