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위 정하는 남자]는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릇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을 재촉한다고 밥이 되진 않는다’고 하죠. 윤오영 작가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혹시 몰라 짧게 적자면, 한 노인에게 방망이를 좀 깎아달랬더니 세월아 네월아 뜸을 들이다 결국에는 걸출한 명품을 내놓더라는 겁니다. 스스로 만족하기 전까지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이른바 장인정신이죠.
지난 27일, 네오위즈게임즈의 야심작 ‘블레스’가 드디어 공개 서비스에 돌입했습니다. 무려 7년간 700억을 쏟아 부었다는데, 장인이 공들여 깎아낸 명품인지 아니면 그저 장고 끝에 악수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겠죠. 부디 개발자들의 기나긴 산고가 값진 성과로 되돌아오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비단 ‘블레스’뿐만이 아닙니다. 그간 게임계에는 여러 ‘방망이 깎던 노인’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무수히 많은 개발자가 저마다 방망이를 붙잡고 씨름 중이죠.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은 덮어놓고 오래 붙들고 있는다고 다 명품이 되진 않는다는 겁니다. 이에 오늘은 앞으로 나올 게임들의 반면교사로 삼고자 개발기간이 긴 국산 온라인게임 TOP5를 꼽아봤습니다.
5위 ‘트리 오브 세이비어’(2010~2015), 개발만 하지 말고 QA도 좀 했으면
▲ '라그나로크'의 재림으로 기대를 모은 '트리 오브 세이비어'
5위는 IMC 게임즈가 개발하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트리 오브 세이비어’입니다. 첫 공개 당시엔 ‘프로젝트 R1’이라 불렸는데, 고전적인 쿼터뷰 시점과 마치 2D처럼 보이는 독특한 3D 그래픽, 파스텔풍의 회화적인 디자인 등 독특한 요소가 많았죠. 무엇보다 IMC 게임즈 김학규 대표가 그 유명한 ‘라그나로크 온라인’의 아버지이기에 기대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라그니로크 온라인’이라 하면 귀여운 그래픽과 알찬 콘텐츠, 다양한 커뮤니티 요소로 2000년대 초 국내 게임계를 주름잡은 명작이죠. 그러나 몇 년 후 ‘세계의 문’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2편은 참담한 완성도로 전작의 명성에 흠집만 남겼습니다. 심지어 2009년에는 ‘레전드 오브 세컨드’라며 2편을 갈아엎어 다시 내놓았지만 이전보다 더한 혹평을 받아야 했죠. 이 와중에 ‘프로젝트 R1’이 발표됐으니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가시죠?
그렇게 당장이라도 나올 것 같던 게임은 2014년이 다 끝나갈 때쯤에서야 첫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그사이 퍼블리셔가 NHN엔터(구 한게임)에서 넥슨으로 바뀌는 등 여러 사정이 있었거든요. 그 후 1년간 두 차례 더 테스트가 이어진 끝에, 비로소 2015년 12월 17일 공개서비스에 돌입했죠. 문제는 긴 개발 기간이 무색하게 기상천외한 버그가 도처에서 튀어나왔단 겁니다. 결국 수직적 콘텐츠 개발에 몰두한 나머지 수평적 QA를 등한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됐죠.
4위 리니지 이터널(2011~?), ‘영원’이 들어가는 제목은 괜스레 불안해
▲ 언제쯤 실제로 해볼 수 있을까? '리니지 이터널' 게임플레이 (영상제공: 엔씨소프트)
4위는 엔씨소프트에서 개발 중인 ‘리니지 이터널’입니다. 좋든 나쁘든 국내 게임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자랑하는 ‘리니지’의 두 번째 후속작이죠. 액션성을 극도로 강조한 쿼터뷰 RPG인데, 공교롭게도(?) 발표 당시 비슷한 컨셉의 ‘디아블로 3’가 출시를 앞둔 시점이라 묘한 라이벌 구도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물론 ‘디아블로 3’가 훨씬 빨리 나오면서 어떻게든 둘을 엮어보려는 호사가들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습니다만.
어쨌든 ‘리니지 이터널’은 제목에 담긴 힘만으로도 엄청난 관심을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시연 영상에 깔린 잔잔한 ‘리니지’ 테마곡만으로도 뭇 게이머의 추억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비록 ‘디아블로 3’가 유사성이 지적되긴 했지만, 마우스 드래그로 스킬을 시전하고, 범위를 조정하는 등 참신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래서 게임이 언제 나올 것이냐, 하는 거죠.
시연 영상이 나오고도 벌써 5년이 흘렀는데, 아직까지 유저 대상으로 이렇다 할 테스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때 호적수로 꼽히던 ‘디아블로 3’는 2012년 출시되어 2년 후에는 확장팩까지 나왔고, 2014년 들어 ‘로스트아크’라는 새로운 경쟁자까지 등장했는데 말이죠. 일단 올해 상반기 중에는 반드시 테스트를 진행한다고 했으니 거기에 기대를 걸어야겠습니다.
3위 창세기전 4(2010~2016), 왕의 귀환은 이루어질 것인가
▲ 왕의 귀환 '창세기전 4', 부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3위는 소프트맥스가 개발 및 서비스하는 ‘창세기전 4’입니다. ‘창세기전’은 국산 게임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기념비적 작품이죠. ‘안타리아’와 ‘아르케’라는 두 개의 세계를 둘러싼 장중한 이야기와 매력적인 인간군상, 짜임새 있는 시스템으로 동시대 최고의 대작으로 평가 받습니다. 2000년작 ‘창세기전 3: 파트 2’로 시리즈를 끝맺은 후 오랫동안 전설처럼 회자되곤 했죠.
10년이 넘도록 잠들어 있던 전설이 눈을 뜬 것은 지난 2010년입니다. 당시 ‘마그나카르타 2’를 출시하고 ‘SD건담 캡슐파이터 온라인’ 유지보수에 힘쓰던 소프트맥스가 돌연 ‘창세기전 4’ 티저페이지를 열었죠. 게임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고 단지 붓으로 휘갈겨 쓴 로고뿐이었지만, 유저들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그 누구도 진짜로 살아서 ‘창세기전 4’를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못했으니까요.
흔히 ‘창세기전 4’나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처럼 결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게임을 얘기할 때 ‘개발사 망할 때쯤 만든다’는 우스개가 있죠. 회사 사정이 어려우면 비장의 카드를 꺼내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런데 엄밀히 따지자면, 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된 개발사가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킬만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현재 소프트맥스를 향한 유저들의 불안감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서 두 차례 테스트는 모두 평이 그리 좋지 못했죠. 오는 2월 공개서비스서 만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2위 킹덤 언더 파이어 2(2008~?), 타 기종 이식만 기다리는 시연대 독점작
▲ 어서 시연대 기간 독점이 끝나야 할텐데, '킹덤 언더 파이어 2' (사진제공: 블루사이드)
2위는 블루사이드에서 개발 중인 ‘킹덤 언더 파이어 2’입니다. 이 시리즈 또한 소위 ‘짬밥’이 ‘창세기전’ 못지 않는데, 1편이 나온 지도 벌써 16년이 흘렀죠.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몰고 온 RTS 열풍 속에서 탄생한 ‘킹덤 언더 파이어 1’은 RPG적인 요소를 접목하여 준수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워크래프트 3’의 형님이라 할 수 있을지도… 죄송합니다.
‘킹덤 언더 파이어’가 본격적으로 명품 IP로 거듭난 것은 XBOX 독점작 ‘더 크루세이더’부터입니다. 국내 개발사가 콘솔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더 크루세이더’가 보여준 완성도는 그야말로 놀라웠죠. 당시로선 흠잡을 데 없는 그래픽과 ‘삼국무쌍’을 즐기듯 적들을 베어나가며, 동시에 휘하 부대를 지휘해 전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복합적인 재미가 살아있었습니다.
‘킹덤 언더 파이어 2’는 바로 이 ‘더 크루세이더’의 계보를 잇는 작품입니다. 다만 PC용 온라인게임으로 선회하며 많은 부분을 뜯어고치게 되고, 개발은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죠. 첫 테스트는 비교적 빠른 2011년에 진행했는데, 그 후로 여태 공개서비스는 감감무소식입니다. 다만 지스타와 같은 거대 게임쇼에는 시연 버전이 곧잘 나오는지라, 혹자는 시연대 독점작이라 하더군요.
1위 이카루스(2004~2014), 아바타가 뭐길래 강산이 변하도록
▲ 토루크 막토! 몬스터를 잡아 타고 날 수 있는 '이카루스' (사진제공: 위메이드엔터)
1위는 10년 개발의 전설,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이카루스’입니다. 말 그대로 강산이 변하도록 개발에 몰두한 작품이죠. 당초 2004년 ‘네드 온라인’이란 이름으로 개발에 착수했는데, 완성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2012년에 지금과 같이 개명하고도 다시 2년을 더 끌었습니다.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게임 하나 개발하는데 수년씩 투자하던 시절이 아니니 더욱 황당하죠.
‘이카루스’란 제목은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창공을 가로질렀다는 신화 속 소년에게서 따왔습니다. 몬스터를 길들여 하늘을 날고, 지상과 공중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전투를 펼치는 것이 게임의 최대 특징이었거든요. 여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2009년 개봉한 영화 ‘아바타’를 보고 온 한 높으신 분이 지지부진하던 ‘네드 온라인’ 개발진을 찾아가 영감을 불어넣었답니다. 영화에서처럼 날아다니는 몬스터를 잡아 타고 공중전을 벌일 수 있게 만들라고 말이죠.
믿거나 말거나인 얘기지만, 실제로 ‘이카루스’의 여러 콘텐츠가 ‘아바타’와 많이 닮아있긴 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답도 없이 허송세월 하던 ‘네드 온라인’에서 확실한 방향성을 지닌 ‘이카루스’로 바뀌면서,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공개서비스에 돌입한지 2년이 지난 현재는 나름 자신만의 영역을 지니고 탄탄한 유저층도 확보했으니, 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의 하늘을 향한 도전은 성공이라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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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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