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27일부터 3차 테스트를 실시한 '던전스트라이커'
아이덴티티게임즈가 개발하고 NHN 한게임이 서비스하는 던전 액션 RPG ‘던전스트라이커(이하 던스)’ 의 3차 테스트가 지난 3월 27일(수)부터 31일(일)까지 총 5일간 진행되었다.
작년 초 공개된 ‘던스’ 는 앞서 두 차례에 걸친 테스트와 ‘지스타 2012’ 등 게임쇼 부스를 통해 기본적인 게임성을 선보인 바 있다. 그 때마다 들려온 소리가 바로 ‘디아블로’ 와의 유사성이다. 실제로 ‘던스’ 의 게임방식은 ‘디아블로’ 와 상당히 흡사하다. 오죽하면 첫 공개 당시에도 기사 제목에 ‘디아블로 냄새 물씬 나는’ 이라는 문장이 붙어있었겠는가. 그러나 계속된 개발과 수정 작업으로 인해 현재는 자신만의 개성도 많이 확립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2013년 현재의 ‘던스’ 는 ‘디아블로’ 를 뛰어넘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직접 확인해 보았다.
▲ '던전스트라이커' 프로모션 영상
과격한 액션 + 귀여운 캐릭터 → 3D 메이플?
일단 게임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캐릭터다. ‘던스’ 의 캐릭터는 3D로 표현된 ‘메이플스토리’ 라고 해도 믿을 만큼 귀엽다. 머리와 몸의 비율이 1대 1인 2등신 캐릭터가 뽈뽈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최근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힐링’ 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다만, 이 귀여운 캐릭터들을 데리고 게임을 하다 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형처럼 생긴 아이가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몸 풀 때 내는 목소리를 낸다든지, 천진난만한 얼굴로 몬스터를 그야말로 오체분시(수십 조각으로 쪼개지니까 그보다 더 한)내는 기술을 꺼리낌 없이 사용한다든지 하는 모습 말이다. 이러한 장면은 아무리 봐도 적응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러한 부조화는 아기자기한 게임 컨셉과 15세 이용가라는 게임 등급 사이의 마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저층이 중학생 이상이니까 액션은 조금 과격하게 했으면 좋겠고, 8등신 일러스트와 어두운 던전 분위기에 맞춰서 기합도 조금 멋있게 넣고 싶고… 이러한 욕구(?)들과 귀여운 캐릭터가 만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한 결과를 낳았다. ‘디아블로’ 식 게임방식은 좋아하지만 북미풍의 사실적 캐릭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 유저를 주 타깃으로 잡은 듯 한데, 어찌되었건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갖출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귀여우려면 끝까지 귀엽던가, 아니면 귀여움을 포기하던가.
▲ 이렇게 동글동글한 2등신 캐릭터인데, 목소리는 할아버지
타깃층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게임업계의 최대 고객인 2~30대 남성들에게는 ‘던스’ 의 그래픽이 다른 의미에서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사람들의 눈이 오가는 PC방에서 그렇다. 향후 ‘던스’ 가 대 흥행에 성공해서 너도나도 PC방에서 ‘던스’ 를 하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 할 경우에는 솔직히 성인 남성이 혼자 플레이하기 쉽지 않은 비주얼이다. 특히 옆자리에서 ‘디아블로 3’ 라도 하고 있다면 더욱. 아마 어지간히 대범하거나 구석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당당히 ‘나 던스 합니다’ 라고 표현하기가 다소 민망하다. 물론 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 옆자리에서는 야만전사가 뛰어다니는데, 내 게임에서는 귀요미가 뒹굴뒹굴
컨트롤 실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던스’ 의 전투를 언급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디아블로’ 와의 유사성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할 듯 하다. 일단 ‘던스’ 와 ‘디아블로’ 는 단순히 같은 핵앤슬래쉬 액션RPG 장르를 채택했다고 보기엔 구석구석 닮아도 너무 닮았다. 어둑어둑한 던전과 구획별로 나눠진 필드를 주무대로 삼는다는 것도 그렇고, 떼거지로 몰려 있는 몬스터를 다 처치하고 나면 다음 방이나 복도로 넘어가서 싸우는 진행 방식, 휙 뿌려지는 아이템 획득 방식, 던전 입구로 이동시켜주는 텔레포트 존, 심지어 마을로 갈 때 포탈을 열고 복귀하는 기능까지. 분명 낯선 게임인데 익숙한 향기가 난다.
이러한 ‘디아블로’ 벤치마킹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다. 일단 게임을 처음 플레이하는 유저는 손에 익숙한 ‘디아블로’ 의 느낌에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디아블로 3’ 에서 일말의 불만을 느꼈던 유저들도 ‘혹시 이 게임은…?’ 이라는 기대감에 게임을 한 번쯤 플레이하게 된다. ‘디아블로 3’ 는 플레이하지 않았지만 뭔가 비슷한 게임을 마음 속에 담아뒀던 유저들 역시 몰려오게 되어 있다.
▲ 솔직히 어떤 게임 생각나시나요?
그러나 이렇게 게임을 시작한 플레이어들은 ‘던스’ 의 콘텐츠 하나하나를 ‘디아블로’ 와 직접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활 쏘는 느낌, 아이템 구성, 맵 디자인, 몬스터 AI, 보스전, 스킬 효과와 이펙트… 이 모든 것의 평가 기준은 ‘디아블로와 비교했을 때 더 나은가 혹은 부족한가’ 다. 실제로 게임 내 전체 채팅창을 보면 ‘디아블로보다 던스가 나은 듯’, ‘그냥 디아블로 해야겠다’ 같은 비교글이 계속해서 보였다. 전체적인 여론을 보면, ‘디아블로 3’ 의 벽은 결코 낮지 않아 보인다.
물론 짧은 테스트 기간 동안 공개된 콘텐츠만으로 ‘던스’ 라는 게임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다소 이르다. 이러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엔드콘텐츠와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디아블로’ 와의 확실한 차별점을 두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다면 ‘던스’ 가 ‘디아’ 와 차별화되는 부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일단 가장 큰 매력은 확실한 타격감과 쉬운 액션이다. 물론 ‘디아블로’ 역시 마찬가지이긴 한데, ‘던스’ 의 매력 포인트는 살짝 궤를 달리 한다. 타격감의 경우 캐릭터와 몬스터의 크기가 작다 보니 조그마한 이펙트에도 뭔가를 때려 맞췄다는 느낌이 확실히 난다. 몬스터의 경우 연속 공격에 맞아 차츰차츰 밀려나거나 치명타를 맞고 훨훨 날아가고 산산조각나는 등 ‘때리는 쾌감’ 을 확실히 선사해준다. 이에 비해 내가 공격을 맞았을 때의 ‘피격감’ 은 그 정도가 타격에 비해 약하긴 하지만, 체력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을 때나 큰 공격을 맞았을 때의 효과는 확실히 전해져 온다.
스킬의 경우 화려한 이펙트와 스킬 효과로 유명한 ‘디아블로’ 와 비교하면 그 수나 위력이 조금 부족한 느낌도 들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꽤나 화려한 수준이다. 뭐, ‘디아블로’ 역시 결국 몇 개의 스킬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모범적인 비교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종종 이펙트(혹은 투사체)와 타격 범위가 제대로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가 목격되었는데, 이는 게임성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해 아쉬움을 자아낸다.
▲ 타격감과 스킬은 나름대로 수준급
마지막으로 속도감의 경우 전체적으로 상당히 빠르다. 칼을 휘두르거나 마법을 발사하고, 활을 쏘는 모든 액션은 ‘디아블로’ 에 비해 속도감이 있고, 딜레이가 적다. 이는 필연적으로 컨트롤의 중요성을 한껏 끌어올린다. 다시 말해 전략보다는 순간적인 판단과 조작이 게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워리어 클래스의 경우 1초에 3~5번씩 칼질을 한다. 일반 공격은 버튼(C) 하나만 누르고 있으면 자동으로 이루어지며, 떼면 즉시 멈춘다. 즉, 적의 공격 모션에 맞춰 언제 공격 버튼을 떼야 하는지를 0.2초 단위로 판단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면, 0.2초 차이의 컨트롤로 생사가 결정날 수도 있다. 여기에 회피 스킬이나 강력한 한 방 스킬(딜레이가 조금 길기 때문에 신경써줘야 함), 재빠른 이동 등을 잘 조합하면 보스 몬스터를 한 대도 안 맞고 클리어하는 ‘신기’ 도 가능해진다.
게임 플레이에 컨트롤이 관여하는 비율이 크다는 말은, 성공적인 PvP 콘텐츠가 뒷받침 될 경우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테스트에서는 PvP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향후 AOS나 RvR 방식의 PvP를 도입하는 등의 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둔다면 ‘디아블로’ 의 그림자를 벗어던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PvP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게임성이다.
반면, 이번 테스트의 주된 콘텐츠였던 싱글플레이는 다소 아쉽다. 이번 3차 테스트의 난이도는 대체적으로 쉽게 설정되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후반부에서도 물약만 잘 먹고 체력 회복기술만 제때 써 주면 거의 죽지 않고 게임을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나름 긴박감 넘치는 보스전 역시 단순한 패턴 탓에 한두 번의 빈사상태만으로도 비교적 쉬운 클리어가 가능했다. 기자가 이런 류의 게임을 잘 못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마 상급자들은 거의 체력소모 없이 게임을 진행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 번 클리어 한 던전을 재공략하는 퀘스트도 마련되어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싱글플레이에서 목적의식을 불태우진 못했다.
▲ 컨트롤 실력만 뒷받침되어 준다면, 보스도 손쉽게 잡는다
터무니없는 사양과 더 터무니없는 서버
‘던스’ 가 ‘디아블로’ 와의 차별성을 가장 많이 둔 부분은 전투 외 콘텐츠다. 복층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마을 전경, 강화 가루로 이루어지는 무기 강화 시스템, 친절한 콘텐츠 동선과 맵 네이게이션 등, 전반적으로 한국형 MMORPG에서 찾아볼 수 있는 친근한 편의 시스템을 어김없이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디아블로’ 의 북미식 쿨한 디자인과는 또 다른 접근이다.
▲ 확실히 '디아블로' 보다 훨씬 화사하고 섬세한 마을
다만, 세부적인 부분은 약간 어색하고 아쉬운 면이 적지 않았다. 강화의 경우 효과나 리스크가 크게 느껴지지 않으며, 몇몇 퀘스트를 성급히 진행하다간 헛걸음을 치게끔 배치되어 있다거나 하는 부분이다. 빈약한 스토리텔링은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전형적인 단점을 여과없이 가져왔으며, 던전 클리어 보상 시에는 강제 던전파괴 등 지나친 오지랖 시스템으로 인해 게임의 자유도를 약간 훼손하기도 했다. 향후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한 부분이라고는 하나, 게임성의 플러스 요소라기 보다는 구색 갖추기로 가져다 놓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품질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아무리 정식서비스가 아닌 베타테스트라고는 하지만, 이번 ‘던스’ 3차 CBT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열악한 서버 상태를 보여줬다. 테스트 첫 날에는 패킷 처리장애로 인해 기나긴 점검을 실시, 고작 2~3시간밖에 서버가 열리지 않았다. 이후 24시간 연속 서버오픈을 발표했으나, 심하면 하루 5차례 이상의 임시점검과 서버 다운이 일어나 플레이를 방해했다. 중간중간에 1분씩 생기는 랙으로 인해 게임의 싱크가 어긋나는 현상은 그보다 더 자주 일어났으며, 그때마다 일일히 게임을 재시작해야 했다. 서버 문제가 가장 극심했던 30일(토)에는 2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임시점검을 실시해 유저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향후 한게임 측은 문화상품권 보상 등으로 민심수습에 나섰지만, 부실한 서버 상태를 질타하는 유저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권장사양 역시 이유 없이 높다. ‘던스’ 의 권장사양은 램 2GB, CPU i3 530, 그래픽카드 Geforce 9800GT 급이다. 최소사양 역시 그래픽카드가 Geforce 9500GT로 낮아지는 정도다. 극강의 비주얼을 보여주는 '블레이드앤소울' 이 권장사양 Geforce 8800GT, 최소사양 Geforce 8600GT를 지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비주얼이 크게 좋은 게임도 아닌데 사양이 지나치게 높아 보인다. 게다가 최소사양급의 AMD CPU나 라데온 그래픽카드 보유자는 게임을 제대로 즐길 수도 없다. 아무리 봐도 최적화가 거의 안 이루어진 느낌이다. 정식서비스 때도 이러한 사양을 요구할 계획이라면, 생각을 다시 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 '던전스트라이커' 의 지나치게 높은 권장사양, 향후 변동될 여지가 있다는 말만 믿어본다
▲ 3대 명검 중 하나를 너무 남발했다
‘디아블로’ 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던스’ 는 공개 당시부터 ‘디아블로’ 와 비슷한 게임으로 주목을 끌었다. 지금 ‘던스’ 의 과제는 ‘디아블로’ 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실제로 그런 노력의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기본적인 게임 시스템의 틀이 ‘디아블로’ 에 기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말끔히 벗어던지고 고유의 길을 찾아가기란 쉬운 것이 아니다. 향후 ‘디아블로 열풍에 묻어가려다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된 게임’ 이라는 악평을 듣고 싶지 않다면, 자신만의 색깔을 더욱 뚜렷하게 굳혀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열쇠다. 다음번에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던스’ 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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