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등장한 ‘스타크래프트’는 국내 게이머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PC방이라는 문화의 신호탄을 쏜 장본인이며, 현재는 전세계적인 강국으로 인정 받는 국내 e스포츠의 초석을 다진 작품이다. 그만큼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RTS 장르는 국내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스타크래프트 출시 후 약 30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RTS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 등 AOS의 유행으로 많은 유저가 이탈했으며, 게이머 성향이 긴 플레이타임보다 짧게 끝낼 수 있는 게임을 선호하는 쪽으로 바뀐 것이 이유였다. 그 동안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많은 RTS 작품들이 도전했으나, 대부분 흥행에 실패하며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런 상황 속에서 ‘스톰게이트’가 지난 7월 31일 스팀에서 앞서 해보기로 출시됐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2, 워크래프트 3 등 RTS 전성기를 이끈 작품들의 주요 개발자들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모았다. 다만 동시에 기존 RTS 팬들을 사로잡아야할 뿐 아니라, 신규 유저도 유입시켜야 하는 무거운 짐을 맡은 작품이기도 하다.
익숙함을 무기로 기존 RTS 팬을 겨냥하다
스톰게이트는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먼 미래를 배경으로, 인류가 다른 차원과 연결되는 포탈을 열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악마 종족 ‘인퍼널’이 등장해 침공하기 시작하고, 지구는 순식간에 황폐화되기에 이른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뱅가드’라는 조직을 설립해 인퍼널과 맞서고, 그 과정에서 우주적 대재앙에 맞서는 외계 수호자 ‘셀레스철’ 종족이 합세하여 삼파전을 벌인다는 것이 주요 설정이다.
스톰게이트의 첫 인상은 상당히 익숙한 맛이었다. 종족이 3가지로 나뉠 뿐 아니라, 각 종족 디자인 콘셉트도 스타크래프트를 연상케한다. 가장 먼저 만나는 종족 ‘뱅가드’는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라는 것과 기계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테란’을, 인퍼널과 셀레스철은 괴생명체와 외계인이라는 점에서 ‘저그’, ‘프로토스’와 유사하다.
게임 시스템 측면에서도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의 큰 틀을 답습했다. 자원이 2가지(루미나이트, 디어리엄)로 나뉘어질 뿐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경장갑과 중장갑으로 구분되는 유닛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여기에 유닛이 적을 물리치면 경험치를 획득하고, 이를 통해 레벨업을 하면 능력치가 올라가는 시스템은 워크래프트 3를 떠올린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스타크래프트 2, 워크래프트 3와 유사한 점이 많기에, 기존 RTS 유저들은 낯선 느낌 없이 빠르게 게임에 적응할 수 있다. 물론 이전과 똑같기만 하다면 게임만의 매력이 부족할 수 있는데, 스톰게이트는 이를 위해 종족마다 특성을 부여하여 색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예를 들어 뱅가드는 메디 스테이션이나 플랙 캐논 등 다른 종족에 비해 방어형 기물이 많아 수비적인 플레이에 용이하다. 인퍼널은 일정 주기로 나오는 기본 유닛을 희생시키면 유닛 생산 속도가 0.5초로 굉장히 짧기 때문에, 지속적인 소모전에 유리하다. 셀레스철은 본진 건물을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기에,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빠르게 자원을 모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
기자의 경우에는 아군과 적을 최대한 동귀어진 시킨 뒤, 인퍼널의 빠른 유닛 생산 속도를 활용해 병력을 보충하여 적 본진을 기습했다. 반대로 상대방은 셀레스철의 건물 기동성을 이용하여 맵 곳곳을 점령하고, 여러 방향에서 일제 공격을 가해오기도 했다.
이처럼 종족마다 확고한 전략 콘셉트는, RTS 초보자 입장에서는 ‘이런 전략을 구사하면 좋다’라는 가이드를 제시한다. 동시에 기존 RTS 유저들에게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움을 전달한다. 종족 특성으로 이전에는 없던 전략을 구사할 수 있으며, 여기에 벌처와 골리앗을 합친 듯한 ‘헤지호그’나, 적 마나를 흡수하는 ‘애니맨서’ 등 다양한 신규 유닛으로 흥미를 끌어올림과 동시에 전략의 폭을 넓힌다.
버디 봇과 매끄러운 콘텐츠 구성
익숙한 구조와 새로운 전략 폭으로 기존 RTS 유저를 겨냥했다면, 반대로 RTS 초보자를 위한 요소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매끄러운 콘텐츠 흐름이 눈에 띄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캠페인 모드에서 스토리와 함께 기본적인 게임 구조를 파악하고, 다른 유저와 협력해 AI를 상대하는 협동전에서 이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적응을 마쳤다면, 본격적으로 온라인 대전을 진행하는 흐름이다. 각 콘텐츠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초보자도 이를 하나하나 따라가면 쉽게 게임에 적응할 수 있었다.
여기에 ‘버디 봇’이라는 스톰게이트만의 시스템은 빠른 적응을 돕는 촉진제 역할을 한다. 버디 봇은 협동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초보자 지원 시스템으로, 건설이나 유닛 생산 등 플레이 일부를 자동으로 수행한다. 다만 직접적으로 빌드를 알려주거나 효과적인 전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RTS 장르의 매력이 유닛을 조금씩 알아가고, 이를 기반으로 직접 다양한 전략을 짜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한계가 명확해 보인다는 점은 아쉽다.
직관적인 UI나 단축키는 진입 장벽을 낯추는 데 힘을 싣는다. 스타크래프트나 워크래프트에서는 UI에 표기된 단축키 가독성이 떨어졌고 유닛과 건물 종류도 많다보니, 기껏 찾아낸 단축키를 잊어버리는 경우도 다수였다. 반면 스톰게이트는 UI에 단축키가 직접적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기본 건물과 고급 건물 두 가지로 나뉘어져 있던 카테고리를 한 가지로 축소시키며 복잡함을 덜었다.
그 외에 RTS 초보자인 기자에게 특히 인상 깊었던 요소는 편리해진 유닛 생산이었다. 기자는 멀티태스킹을 잘 못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전투와 생산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RTS에 매번 벽을 느꼈다. 그런 면에서 스톰게이트에서는 직접 관련 건물을 선택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유닛 생산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전투와 생산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는 만큼 이전보다 장르적 거부감이 덜했다.
아쉬운 밸런스와 번역은 보완이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캠페인 모드에서는 번역기를 돌린 듯한 어색한 대사가 많으며, 중간마다 등장하는 컷씬에서도 인물들의 표정 변화가 거의 없어 스토리에 몰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여기에 다른 종족에 비해 셀레스철 성능이 월등히 좋은 성능 밸런스 역시 보완이 필요해보였다. 그래픽의 경우 호불호의 영역이지만, 스타크래프트 2와 느낌이 비슷하면서 세세한 부분에서는 묘사가 떨어지기에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스톰게이트는 발전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게임이다. 종족마다 독특한콘셉트로 다른 작품에서는 없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수 있으며, 버디 봇을 통해 RTS 초보자를 배려한 요소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캠페인부터 협동전, 대전으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콘텐츠 구성은 초보자도 쉽게 게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신경썼음이 느껴졌다.
RTS 장르는 분명 하향세다. 그런 와중 등장한 신작은 기대보다는 우려를 더 받을 수밖에 없다. 스톰게이트가 저물어가는 장르를 끌어올릴 정도의 게임이 되리라 보는 예측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수 남아있는 RTS 팬들을 잡으며 나름 성공적인 신작으로 자리잡으려면 현지화 개선과 밸런스 패치가 과제로 떠오른다. 특히 스톰게이트 e스포츠가 올해 개최를 앞둔 만큼, 유저 피드백을 반영한 밸런스 패치와 콘텐츠 보완으로 국내 RTS 게이머들을 사로잡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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