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 외계 몬스터, 짧고 통통한 드워프. 언뜻 들으면 "암호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결점이 없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나 게임 좀 해봤다'하는 사람이라면 위 세 가지 단어를 듣고 머릿속에 '팟' 하고 떠오르는 게임이 하나 있다. 2020년 출시된 딥 락 갤럭틱(deep rock galactic, 이하 DRG)이다.
DRG는 상당히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미지의 외계 행성에서 광물을 캐며 몰려오는 몬스터를 터트리는 쾌감, 시도때도 없이 ‘락앤스톤!’을 외치는 유쾌한 드워프가 만나 발생한 시너지는 순식간에 게임에 빠져들게 했다. 거기에 4인 협동 플레이를 지원하기에 지인들과 함께 밤새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지난 14일, DRG와 일명 '뱀서라이크'라 불리는 탄막 슈팅을 결합한 딥 락 갤럭틱: 서바이버(이하 DRG 서바이버)가 앞서 해보기로 출시됐다. DRG를 재밌게 플레이했던 입장에서 DRG 서바이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게임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외계 행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에 몸을 실어보았다.
아는 맛이라 더 맛있다, 충실히 구현된 원작 요소
DRG 서바이버는 전체적으로 원작 요소 대부분을 충실히 구현했다. 크리스탈라인 동굴, 공허한 가지 등 원작 맵과 특색을 그대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글리피드, 막테라 등 외계 몬스터도 여전하고 모르카이트, 나이트라와 같은 특유의 광물도 등장한다. 신작 측면에서는 새로 추가된 요소가 적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일 수 있으나, 원작 팬 입장에서는 반가움이 앞섰다.
아울러 4가지 클래스(스카우트, 거너, 드릴러, 엔지니어)와 특성, 무기도 유지했다. 다만 특성은 클래스마다 3개씩으로 한정됐으며, 무기에 부여하는 특수 효과인 오버 클럭은 진행 중 무기를 6레벨 올릴 때마다 활성화되도록 변경됐다. 스카우터의 조명탄 발사기나 엔지니어의 플랫폼 건처럼 사라진 요소도 있지만, 전체적인 스타일은 DRG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채광을 하며 몬스터를 무찌르고, 목표를 달성하면 우주선을 타고 탈출한다는 흐름도 이어졌다. 일정 시간마다 오는 몬스터 웨이브인 '군단'도 그대로다.
그렇다면 원작과 다른 점은 어떤 부분일까? 우선 화면 상단에 군단, 보스, 보급 포드 출현 시간이 표시되어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탄약을 채워주던 보급 포드는 피격 시 경험치 획득, 레벨 업 시 얻는 체력 회복량 증가 등 특수한 옵션을 가진 아티팩트를 받을 수 있도록 변경됐다.
특히 몬스터 웨이브가 몰려오는 군단 시스템은 원작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수많은 몬스터가 몰려오는 긴장감은 유지하되, 장르 특성상 몬스터 물량이 원작보다 더 늘어나며 압박감이 한층 더해졌다. 몰려오는 군단을 보고 있으면 '이걸 돌파하라고 만든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외에도 1인칭에서 3인칭 탑뷰로 변화한 시점, 조명탄을 던지지 않아도 밝은 맵, 장르에 맞게 자동으로 바뀐 공격 방식 등이 변경점이다. 임무 측면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원작은 광물 수집, 호위 임무 등 몬스터 처치보다 기타 임무에 핵심을 뒀고, 몬스터 사냥 수와 관계 없이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전까지는 탈출이 불가능했다. 반면 DRG 서바이버는 보스 처치가 메인 임무로 고정됐다. 수집 목표가 함께 주어지긴 하지만, 완료해도 추가 재화를 줄 뿐 보스를 처치하기 전까지는 탈출할 수 없다. 반대로 보스 몬스터를 처치하면 수집 임무를 완수하지 않아도 탈출 포드가 활성화된다.
DRG 서바이버만의 특색, 광물 채집과 전략 플레이
뱀파이어 서바이버가 성공한 후, 소위 '뱀서라이크'가 신규 장르처럼 떠오를 정도로 비슷한 게임성을 지닌 수많은 게임이 등장했다. 즉, 경쟁작이 많은 만큼 독특한 매력이 없다면 잊혀지기 쉽다. 이에 대해 DRG 서바이버는 장르적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원작을 토대로 특색을 살려 개성을 부각시켰다.
DRG 서바이버에서 전투는 꽤 하드코어한 편이다. 뱀서라이크 게임은 어느 정도 캐릭터 세팅이 완성되면 가만히 있어도 학살이 가능한 게 보통이다. 반면 DRG 서바이버는 무기를 최고 레벨까지 찍어도 몬스터가 쉽게 죽지 않는다. ‘이제 강해졌으니 가만히 놔둬도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다가는 순식간에 싸늘히 누워있는 캐릭터를 보게 된다.
때문에 DRG 서바이버는 캐릭터 성장과 동시에 전략적인 플레이가 요구된다. 이에 기본이 되는 것이 원작 특성을 살린 지형지물 활용이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DRG 서바이버는 지형을 원하는 대로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이용해 좁은 길목을 만들어 전투에 유리한 지형을 만든다던가, 길을 뚫어 몬스터 사이를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등 맵을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전략적 플레이는 반복 플레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기자의 경우 뱀서라이크 게임을 할 때 가만히 놔둬도 될 정도로 캐릭터가 성장하면 지루함이 급격하게 몰려온다. 그러나 DRG 서바이버에서는 그러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조금만 방심하면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잘못하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으나, 너무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절묘한 난이도 조절을 통해 도전 욕구를 자극하도록 잘 설계됐다.
광물 채집은 여타 뱀서라이크와 차별화되는 DRG 서바이버만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레벨업을 통해 캐릭터가 성장한다는 뱀서라이크의 특징은 DRG 서바이버에서도 동일하지만, 모은 광물로 캐릭터를 키우는 기능을 더했다. 얼핏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레벨과 아이템 구매를 보는 듯하다. 든든하게 모아온 광물로 한 번에 몇 단계씩 성장시킬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체적인 플레이 경향을 보자면, 몬스터는 잘 안 죽고, 광물은 모으기 쉽다 보니 몬스터 처치보다 광물 채집 효율이 더 좋은 편이다.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는 뒷전이고 광물만 찾아 돌아다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주객이 전도된 기분이지만, 광물 채굴이 DRG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면 납득할 만한 부분이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아직 앞서 해보기니까
아쉬운 점도 있다. 스테이지를 개방하려면 특정 클래스 플레이가 강요되며, 맵 종류가 적고 협동 플레이가 없다. 다만 아직 앞서 해보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될 여지가 충분하다.
DRG 서바이버는 앞서 이야기한 단점만을 보고 외면하기엔 매력적인 요소들이 더 많다. 기존 뱀서라이크에는 없던 지형지물을 이용한 플레이, 레벨 업에 한정되지 않는 성장 시스템, 충실한 원작 재현은 DRG의 저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여기에 100여 개에 달하는 도전과제는 계속해서 게임을 붙잡게 한다.
종합적으로 초석은 잘 다진 느낌이다. 이제 그 위에 어떤 건물을 세워가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아직 얕은 콘텐츠 볼륨, 버그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제작진의 이전 행적을 보았을 때 그리 걱정이 되진 않는다. 원작이 유저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며 꾸준한 업데이트로 높은 완성도를 이뤄낸 만큼, DRG 서바이버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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