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게임스컴의 최고 화제작은 미국 게임도, 일본 게임도 아니다. 중국 게임사 게임 사이언스가 출품한 소울라이크 액션 RPG ‘검은 신화: 오공’이 말 그대로 행사를 압도했다. 업계 및 미디어 관계자만 입장할 수 있었던 23일(현지 기준)에도 많은 사람이 몰리며 오픈 직후에 1시간이 넘는 대기열이 형성됐고, 일반 참관객이 더해진 24일부터는 조기에 부스 입장이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게임은 그간 중국 하면 떠올렸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소재는 그 어떤 게임보다 중국 느낌이 강한 서유기지만, 게임성에서는 기존 중국 게임과 전혀 다른 면모로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길이가 자유자재로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여의봉과 각종 술법을 결합한 전투는 기존 소울라이크 게임과 전혀 다른 유연한 액션으로 색다른 재미를 빚어냈다.
게임스컴에서 검은 신화: 오공은 글로벌 입지를 굳혔고, 중국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첨병과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아울러 중국 게임업계 개발력이 PC온라인게임과 모바일을 넘어 패키지 게임에서도 단시간에 상당한 수준에 올라왔다는 점을 입증한 부분은 국내 게임업계에 경각심을 심어준다.
호요버스는 다른 측면에서 글로벌 진출 의지를 드러냈다. 이들이 무기로 앞세운 것은 ‘테크 오타쿠가 세계를 구한다(Tech Otakus save the world)’라는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팬심을 저격하는 게임이다. 글로벌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원신을 발판으로 삼아 자사 신작인 젠레스 존 제로와 올해 출시한 붕괴: 스타레일을 출품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입지를 굳히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호요버스 부스에서 눈에 띈 점은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 기다리는 대기열이 게임 시연대와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길었다는 것이다. 호요버스는 게임스컴 부스에 게임 시연과 함께 원신 등 자사 게임 굿즈를 판매하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많은 방문자가 전시된 상품을 구경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리거나, 예약 주문한 상품을 찾아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에 게임스컴은 게임쇼답게 게임 캐릭터로 분한 코스어를 쉽게 만나볼 수 있다. 그런데 작년에 열린 지스타와 마찬가지로 게임스컴에서도 원신 캐릭터로 분장한 코스어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소위 ‘서브컬처’ 시장이 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호요버스의 IP는 다른 일본계 IP와 마찬가지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호요버스는 미호요가 작년부터 글로벌 시장에서 사용하는 브랜드명이며, 자국에서는 여전히 미호요라는 이름을 쓴다. 당시 호요버스는 브랜드명 변경에 대해 메타버스에 초점을 맞춰 자사 게임을 여러 가상세계에 전하기 위함이라 밝힌 바 있지만, 중국 외 시장에서 브랜드를 새롭게 하겠다는 의도도 어느 정도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텐센트 역시 레벨 인피니트라는 퍼블리싱 브랜드로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며 해외 진출에 총력을 싣고 있다. 올해 게임스컴에서 레벨 인피니트는 게임스컴 오프닝 나이트 라이브와 별개로 준비 중인 신작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자체 쇼케이스를 진행하며, 글로벌에서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브랜드 알리기에 열을 올렸다.
아울러 출품한 게임 역시 유럽 최대 게임쇼로 손꼽히는 게임스컴 특성에 맞춰 서양 시장에 어필할 만한 게임으로 구성했다. 특히 어쌔신 크리드 IP를 기반으로 한 어쌔신 크리드 제이드는 올해 게임스컴에서 긴 대기열이 형성된 게임 중 하나이며, GTFO, 싱크드, 웨이파인더, 나이팅게일 등 서양을 겨냥한 출품작 다수로 해외 유저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텐센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투자와 인수 릴레이다. 실제로 앞서 이야기한 신작 다수 역시 글로벌 게임사를 인수하거나 투자를 단행하며 확보해왔다. 이전에는 투자 개념으로 접근했다면, 이제부터는 레벨 인피니트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입혀 해외 사업을 전면적으로 확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선언적으로 보여준 첫 무대가 올해 게임스컴이라 볼 수 있다.
작은 차이나조이가 게임스컴에 열렸다
결론적으로 올해 게임스컴은 중국과 아시아를 벗어나 북미와 유럽에 본격적으로 세를 넓히려는 중국 게임사들의 굴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장소다. 앞서 이야기한 게임사는 행사가 열린 쾰른메세 6홀에 몰려있어 마치 작은 차이나조이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중국 게임사가 해외 진출에 집중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매섭게 성장하던 중국 게임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중국 정부의 거센 규제 등으로 내수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아울러 중국 내에서 큰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도 장기적으로 내수 침체를 일으킬 요인이 될 수 있다. 지금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에 나가지 않으면 향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이들을 게임스컴에 불러모았다고도 볼 수 있다. 고작 한 달 전 열린 중국 최대 게임쇼 차이나조이는 볼 게임이 없다는 비판까지 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들의 글로벌 움직임은 더욱 진심이 느껴진다.
이러한 움직임은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북미·유럽 진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에도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한국 역시 모바일을 벗어나 P의 거짓, 붉은사막, 쓰론앤리버티와 같은 PC·콘솔 타이틀을 앞세워 서양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내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즉,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게임이 정면으로 충돌할 경우 국내 게임사가 중국과는 또 다른 강점을 어필할 수 있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른다.
한편으로는 일본 외에는 서양에서 조명되지 못했던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게임이 게임스컴의 중심을 이뤘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펄어비스가 선보인 붉은사막 플레이 영상은 올해 게임스컴 대표 이슈 중 하나로 손꼽히며, 출시를 앞둔 P의 거짓 역시 B2B로 출전했으나 해외 매체와 30여 건이 넘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울러 게임은 아니지만, 넷플릭스 부스에 큰 규모로 오징어 게임 이벤트 공간이 조성됐다는 점은 아시아 콘텐츠에 대한 글로벌 관심도가 한층 높아졌음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한·중·일 3국이 머나먼 독일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 역시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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