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이나 캐릭터, 사건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바쁜 세상일수록, 스토리 게임을 즐기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는 2시간 내외, 드라마도 1시즌만 보면 십수 시간 정도면 엔딩을 볼 수 있지만, 게임은 적어도 수십 시간의 플레이타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멀티 엔딩이나 숨겨진 요소까지 합하면 100시간을 훌쩍 넘겨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스팀 라이브러리엔 손도 못 댄 게임이 수십 개씩 쌓여가고, 대작 게임이 나올 때마다 '이번건 얼마나 플레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세상이 됐다.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했다. 짧게는 몇 분, 길어도 십수 분 이내에 볼 수 있는 초특급 단시간 히든 엔딩들이다. 단순 게임오버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베드 엔딩, 혹은 버그성 플레이를 이용한 편법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제작사가 정식 엔딩으로서 마련해 놓은 장면들인데다, 일부는 아예 '진엔딩'인 경우까지 있다. 엔딩을 소개하는 기사 특성 상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으므로 읽을 때 주의하도록 하자.
TOP 5. 메탈 맥스 2, 이릿트와 결혼하는 해피 엔딩
메탈 맥스 시리즈는 호리이 유지와 함께 드래곤 퀘스트 1~3편을 제작했던 미야오카 히로시의 독립 후 첫 작품이기도 하다. 이 게임의 특징은 전차와 높은 자유도인데, 당시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영향을 받아 외길형 스토리가 대세였던 JRPG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높은 자유도는 특별한 엔딩으로도 접할 수 있는데, 바로 마도마을의 소녀 이릿트와의 이야기다.
이릿트는 그래플러의 인간사냥에 쫒겨 빈사상태였던 주인공을 간호해준 착한 마음씨의 소녀로, 언제나 공짜로 주인공을 재워주는데다 그녀의 동생인 칼도 주인공을 잘 따른다. 레벨 5를 달성한 후 칼에게 가면 "진짜 형이 되어줘"라는 요청을 받는데, 이를 수락하면 곧바로 이릿트와 결혼하는 엔딩이 나온다. 악의 군단이건 그래플러의 궤멸이건, 마리아의 원수를 갚건 말건, 이릿트와 행복하고 소소하게 잘 사는 것으로 나름 해피엔딩인 듯 싶다. 조금 따분한 일생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인생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TOP 4. 영웅서기 제로, 그걸... 왜... 이겨??
진승호 디렉터의 초기 참여작이자 피처폰 시절 국산 모바일 RPG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영웅서기 시리즈. 그 중 세 번째 타이틀인 영웅서기 제로는 그 시절 모바일 RPG로서는 이례적이게도 멀티 엔딩 시스템을 구현했다. 굿 엔딩과 배드 엔딩, 그리고 히든 엔딩이다. 물론 여기서 소개할 것은 바로 히든 엔딩이다. 플레이 극초반, 주인공이 레갈리스에 납치된 엘피스를 구하러 갈 때 최종 보스인 아퀼라를 만나 압도적으로 패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아퀼라를 이겨버리면 발생하는 일이다.
사실 해당 전투는 이기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일부 스킬과 노가다를 잘 활용하면 어찌저찌 아퀼라를 이길 수 있다. 그 경우 히로인인 카르멘조차 "이겨버리면 어떻게 하니?"라고 딴지를 걸고, 아퀼라는 "내도 겁나 당황스럽구로"라며 캐릭터 붕괴가 시작된다. 뒤이어 나온 안톤까지 해치운 후에는 '소드마스터 야마토'의 명장면이 패러디되고, 좌우지간 세계는 구해졌다는 엔딩이 나온다. 뭐, 지도자를 잃은 레갈리스는 하루아침에 와해됐고, 주인공은 평화로운 삶을 살았다... 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TOP 3. 초형귀: 궁극무적은하최강남, 최강남이지만 고자라니!
슈팅게임 초형귀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초형귀: 궁극무적은하최강남'은 무려 실사를 바탕으로 한 그래픽을 차용해 충격을 줬다. 원래부터 근육남들이 대거 등장하는 엽기 콘셉트의 시리즈였는데, 실사로 바뀌면서 B급 냄새가 더욱 짙어진 점이 특징이다. 얼핏 봐서는 괴팍한 그래픽과 캐릭터들로 인해 작정하고 만든 똥겜 같아 보이지만, 게임성은 A급이라는 점이 더 놀라울 따름.
참고로 이 게임에도 시작점부터 볼 수 있는 히든 엔딩이 있다. 본격 게임이 시작되기 전인 프롤로그 단계에서 보스격 캐릭터인 '궁극무적은하최강남'을 다룰 기회가 주어진다.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레이저빔으로 도시를 파괴하고 어느 정도 불사 판정을 갖고 있지만, 하필이면 급소 부분이 아킬레스건이라 그 곳을 자꾸 맞다 보면 결국엔 사망하게 된다. 평소라면 그냥 게임오버겠지만, 스토리적으로 보면 전 은하를 공포에 떨게 만든 궁극무적은하최강남이 쓰러진 것이라 곧바로 엔딩으로 직행한다. 그 과정의 독특함으로 인해, 훗날 국내 마니아들은 이를 두고 '고자라니 엔딩'이라 불렀다고...
TOP 2. 투 월드, 시작 지점에 있던 NPC를 몰매 때리면...
2007년, PC와 Xbox360으로 출시된 오픈월드 RPG '투 월드(Two Worlds)'는 당시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과 비교될 정도로 자유도가 높은 오픈월드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다양한 파벌에 들고, 용병 기술을 습득하고, 평판을 관리하며 퀘스트를 수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음모를 꾸미는 세력을 저지하고 납치된 여동생을 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서사시는 덤이다.
그런데, 시작과 거의 동시에 엔딩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게임을 시작하면 바로 방문할 수 있는 마을에는 퀘스트를 주는 한 NPC가 있는데, 얼핏 봐도 검은 로브를 두르고 얼굴도 보이지 않는 등 수상하게 생겼다. 보통은 꺼림칙하지만 퀘스트를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지만, 그 대신 그 NPC를 공격하면 마법을 난사하며 주인공을 쫒아온다. 그 마법을 이리저리 피하며 마을의 다른 NPC에게 맞추면 그걸 지켜보던 다른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 NPC를 몰매 때리기 시작한다. 결국 해당 NPC는 쪽수를 이기지 못하고 사망하는데, 그러면 갑자기 엔딩 스크롤이 뜬다. 사실 그 NPC가 숨겨진 흑막이자 최종 보스였기 때문이라고... 설마 저렇게 죽을 줄은 모르고 나왔겠지?
TOP 1. 파 크라이 4, 페이건 민을 기다리면...
파 크라이 4의 악당이자 최종 보스인 페이건 민. 카라트의 독재자이자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성격에 잔혹함까지 갖춘 인물이다. 등장하자마자 부하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만년필로 수 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해 충격을 주고, 이후에도 동행자를 고문하는 등 무서운 행보를 이어간다. 그 와중에도 주인공에게는 식사를 권유하고 친근하게 구는 등 유독 따뜻한 것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놈의 변덕처럼 보인다. 결국 주인공은 프롤로그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페이건 민이 잠시 자리를 뜬 틈을 타 탈출하고, 이후 민병대와 함께 세력을 키워 페이건을 치는 것이 게임의 주된 줄거리다. 어쩔 수 없다. 그대로 기다리다간 저 미친 독재자가 언제 또 변덕을 부려 날 죽일 지 모르니까.
그러나 이 프롤로그에서 페이건 민의 말대로 도망치지 않고 15분 정도(현실 시간 기준) 기다리면, 곧바로 히든 엔딩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저 수상쩍고 미친 것 같은 독재자 악당의 말을 들을 필요가 전혀 없지만, 그 말을 믿을 경우 페이건 민이 주인공의 새아버지였고 주인공을 끔찍하게 아끼고 있었다는 숨겨진 스토리가 나오는 식. 보통은 이렇게 짧은 루트의 히든 엔딩은 허무한 경우가 많은데, 이 엔딩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해결되는 진엔딩에 가깝다. 실제로 추후 시리즈들에서도 이 히든 엔딩이 정사 취급을 받으니, 오히려 게임을 100% 즐겼을 때보다 더 진실에 다가가게 되는 것. 그러므로 이 게임의 최종 메시지는 '어른 말은 잘 듣자'로 해석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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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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