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상장한 크래프톤은 4월 21일 기준 시가총액 12조 원 이상을 기록 중인 국내 대표 게임사로 자리잡았다. 크래프톤을 이 위치에 올려놓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임은 2017년에 등장한 배틀그라운드다. 그러나 크래프톤이 장고 끝에 배틀그라운드를 빚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회사 첫 작품이자, MMORPG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는 테라에서 비롯됐다.
테라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2009년이다. 테라 국내 퍼블리셔였던 NHN(한게임)이 당시 개최한 한게임 인비테이셔널 2009 현장에서 영상과 함께 발표됐다. 국내 게임시장 주력 플랫폼이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기 전 PC온라인 기대작을 묶어 부르는 소위 BIG 3가 있었는데, 테라는 블레이드앤소울, 아케에이지와 함깨 당대를 대표하는 신성으로 손꼽혔다.
테라는 2011년 1월 11일에 공개서비스에 돌입했고, 그로부터 2주 뒤인 25일에 정식서비스를 시작했다. 게임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전투다. 출시 당시 테라가 앞세운 강점은 국내 MMORPG 시장에서 보기 드물었던 논타겟팅 전투였다. 대상을 정하고 공격하는 타겟팅 전투가 보편적인 상황에서 논타겟팅을 기반으로 한 호쾌한 공격을 전면에 앞세우며 기술력이 남다르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논타겟팅 전투는 테스트에서도 소위 ‘때리는 맛’이 있다는 평을 들었고, 출시 후에도 각기 다른 전투 스타일을 지닌 직업을 선보이며 액션성이 강화됐다. 아울러 테라를 통해 본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선보여진 논타겟팅 전투는 이후 공개된 여러 게임에도 반영될 정도로 업계에 큰 영향을 미쳤고, 시장에도 현재는 낯설지 않은 보편적인 전투로 자리잡았다.
출시 후 테라는 흥행 면에서 괄목할 결과를 냈다. 우선 공개서비스 하루 만에 동시접속자 16만 5,400명을 기록했고, 출시 한 달 뒤에도 13만 명 이상을 유지하며 당시 국내 MMORPG 1위였던 아이온을 위협했다. 매출 면에서도 테라 상용화 직후 진행된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NHN이 ‘연 매출 1,000억 원 달성을 기대한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준수했다. 이후 테라는 2011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대상을 포함한 4관왕에 오르며, 그 해를 대표하는 게임으로 기록됐다.
이러한 국내 성과를 바탕으로 테라는 스팀과 콘솔을 통해 외연을 확장했다. 2011년 8월에는 일본에 진출했고, PC온라인보다 콘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지에서 첫 달 평균 일 동시접속자 수 3만 명을 기록했다. 이후 북미, 유럽, 중국, 대만, 러시아, 태국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장하며 전세계 누적 이용자 2,500만 명을 기록했다. 아울러 2015년에는 스팀에 출시하여 당시 스팀을 통해 서비스 중이던 MMORPG 중 일 평균 동시접속자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어서 국내 MMORPG 중 처음으로 콘솔로 이식되어 북미, 일본, 유럽에 진출했다. 북미∙유럽에서는 출시 3주 만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일본에서는 6주간 플레이스테이션 무료 게임 다운로드 1위를 차지했다. 오는 6월 30일부로 스팀을 포함한 테라 PC 버전은 서비스를 종료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은 이후에도 서비스를 이어간다.
배그의 어머니 ‘엘린’
앞서 소개한 부분이 다소 딱딱한 내용이었다면 이번에는 재미난 일화를 살펴보자.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테라의 마스코트이자 테라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엘린’이다. 원래 엘린은 수인족 콘셉트를 앞세운 포포리의 여성 캐릭터로 출발했으나, 이후 포포리와 분리되어 별개 종족으로 자리잡았다. 공개 당시 통통한 면모를 앞세운 포포리와 달리 귀여운 여자아이와 같은 외모에 동물 귀가 달린 외형으로 눈길을 끌어 모았고,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는 호전적인 종족이라는 점이 일종의 ‘갭 모에’를 일으켰다.
사실 제작진은 엘린이 게임을 대표할 정도로 인기를 끌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성인을 겨냥한 MMORPG에서는 하이엘프처럼 세련된 매력을 앞세운 여성 캐릭터가 대세였고, 제작진이 글로벌 진출까지 염두에 두며 가장 공들여 준비한 캐릭터는 케스타닉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엘린은 국내외에서 명실상부한 인기 캐릭터로 자리잡았고, 제작진에서도 엘린을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실제로 엘린은 테라 여러 캐릭터 중 가장 많은 코스튬을 보유하고 있다.
그 일례로 살펴볼 수 있는 부분이 주요 플레이 기록을 모은 인포그래픽이다. 2015년 기록을 살펴보면 전체 캐릭터 중 무려 80%가 여성 캐릭터이며, 유저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종족은 엘린이다. 다만 캐릭터가 아닌 유저 기준으로 보면 남성이 75%, 여성이 25%다. 플레이 화면에는 작고 귀여운 엘린이 있지만, 그 뒤에는 남성 유저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스토리 상 진주인공인 케스타닉은 ‘많이 플레이 한 종족’ 순위권에 들지 못했고, “몹인지아랐내ㅡㅡ”라는 비화를 남긴 바라카는 최하위를 기록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앞서 테라가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남겼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크게 기여한 주인공 역시 엘린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현지 서비스가 수익 감소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현지 지사에서 마지막 카드로 제시한 ‘엘린 학생용 수영복 코스튬’이 예상치 못한 대박을 터트렸다. 제작진은 당시 엘린 수영복 코스튬으로 벌어들인 매출을 기반으로 테라를 정액제에서 부분유료화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서양에서도 엘린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북미 지역의 경우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적표현을 민감하게 여기기에 제작진은 엘린을 제외하고 서비스하는 것도 고려한 적이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제작진 스스로도 ‘엘린이 없으면 테라가 아니라’는 기조였기에, 포포리와 분리된 별개 종족에, 나무에서 태어난다는 설정을 더하며 엘린은 현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이러한 걱정이 기우라 느껴질 정도로 엘린은 북미, 유럽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북미 플레이어 30여 명이 엘린 캐릭터를 수직으로 쌓아서 만든 일명 ‘엘린 탑’이 화제로 떠오를 정도다. 아울러 그 인기는 테라 외부에도 뻗쳐나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이다. 스카이림 모드 중 가장 보편적인 부분이 다른 게임 캐릭터 외형을 입히는 커스텀 종족 모드이며, 그 대표 중 하나가 ‘엘린 모드’다.
국내 MMORPG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캐릭터 하나로 이렇게 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 테라의 엘린은 그 몇 안 되는 사례로 손꼽히며, 캐릭터가 지닌 화제성이 게임 흥행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스스로 보여줬다. 테라가 10년 넘게 서비스를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엘린에서 비롯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울러 크래프톤이 테라 바통을 이어줄 배틀그라운드를 내기까지 회사가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저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는 ‘배그의 어머니, 엘린’은 완전한 우스갯소리는 아니다.
테라는 이제 은퇴하지만 개발철학은 크래프톤에 이어지길
2011년에 등장한 테라는 여러 방면에서 굵직한 기록을 남겼다. 국내 시장에 논타겟팅 전투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아이온과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굳어졌던 MMORPG 시장 대결구도를 뒤흔들며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아울러 한게임에서 넥슨으로 서비스를 이관한 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을 얻으며 퍼블리셔를 옮긴 후에도 역주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증명해내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크래프톤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블루홀스튜디오 대표작이자 배틀그라운드라는 대작이 나오기까지 회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던 테라가 서비스 종료를 고했다. 10년 넘게 많은 기록과 추억을 남겨온 테라는 오는 6월 현역에서 은퇴한다. 다만 테라를 통해 정립한 크래프톤의 개발철학은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현재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뒤를 이을 신작 개발에 매진하고 있으며, 올해 서브노티카 개발진의 신작 프로젝트M과 데드스페이스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칼리스토 프로토콜 등을 선보인다. 업계 트렌드인 NFT와 메타버스 사업도 시도하지만 이에 대해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는 초기에 몰리는 자본에 기대는 것보다는 ‘재미’에 본질을 두어 지속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크래프톤이 테라,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또 다른 흥행작을 만들어낼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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