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법적 규제를 둘러싸고 게임업계와 정부(+여론)는 꽤 오랜 신경전을 벌여 왔다. 비유하자면 정부와 여론은 강제 규제를 도입하라는 공격 진영, 업계는 최대한 이를 막아보려는 방어 진영이었다. 이전부터 물밑에서 여러 공방이 오갔지만, 표면화 된 것은 2015년 한국게임산업협회(이하 협회)가 자율규제라는 방패를 들며 시작됐다.
협회가 처음 꺼내든 방패는 지푸라기로 얼기설기 엮은 ‘무늬만 방패’였다.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비웃음만 샀다. 지키는 사람도 없었다. 업계를 대표하는 게임산업협회도 이걸론 도저히 안 된다 싶었는지 2017년 새로 엮은 방패를 가져왔다. 막는 시늉밖에 하지 않았던 전 방패보다는 약간 나아 보였지만, 여전히 틈 사이로 화살이 휙휙 통과하는 부실방패 2탄이었다. 협회가 방패로 막아낸 화살 수가 늘어남을 자랑하고 있을 때, 틈 사이로 들어온 법적 규제 여론은 점점 누적 대미지로 쌓여갔다.
그리고 마침내, 협회가 세 번째 방패를 꺼내들었다. 두 번째 방패에 철판을 덧댄 강화판이다. 상세히 보면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정보공개에 대한 니즈가 어느 정도 잘 반영돼 있다. 확률공개 범위를 아이템 뿐 아니라 강화나 합성 등으로 넓히고, 단계 별 확률과 변동 확률, 유/무료 혼합 확률 등도 모두 공개하자는 것이다. 트렌드를 반영해 상당히 잘 만든 방패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기가 너무 늦었다. 이 방패를 들이밀 타이밍은 최소한 몇 년 전이었어야 했다. 이제는 방패만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공세가 거세졌다. 이제는 화살비가 아니라 거센 파도다. 자율규제로 확률을 낱낱이 공개한다 한들 못 믿겠다는 의견에서부터, 아예 확률형 아이템 자체를 금지하거나, 턱없이 낮은 확률을 설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이 중 몇 개는 대세를 타고 법안 발의까지 이루어졌다. 아무리 방패가 좋더라도 파도는 막을 수 없듯, 현재의 자율규제 강화안으로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란 무리다.
만약 2015년 처음 자율규제 도입 당시. 아니면 최소한 2017년 개정 당시부터 지금 발표된 상세 확률공개를 시행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자율규제만으로 지금의 모든 문제가 예방됐으리라 낙관하진 않지만, 어쨌든 업계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어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조금씩 강화된 확률공개안을 꺼내드는 모습은, 시간을 끌며 간을 보고 조금씩 센 카드를 내미는 계산적 의도가 너무 명확해 보인다.
수 년간 쌓인 게이머 불만이 쓰나미 급 파도가 되어 밀려오는데 아직도 방패로 막아보겠다는 협회의 도전이 과연 효과를 발휘할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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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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