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더 게임 어워드는 각종 시상은 물론, 제작 중인 기대작 소식도 함께 공개하는 게임 행사다. 다양한 신작 정보가 공개된 와중, 올해는 유독 한 게임이 뭇 RPG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바이오웨어의 드래곤 에이지 신작이다.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는 2009년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으로 시작해 2014년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행보를 이어오며 특유의 어둡고 암울한 내러티브와 플롯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벌써 연식이 꽤 쌓인데다 스토리도 장대한 만큼, 어지간한 팬이 아니라면 역대 시리즈 내용을 다 기억하기 힘들다. 드래곤 에이지 신작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지금, 전작들의 설정과 줄거리를 알아보도록 하자.
의외로 좀비물? 생물을 오염시키는 좀비같은 괴물 ‘다크스폰’
드래곤 에이지는 테다스라는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삼는다. 테다스는 인간과 엘프, 드워프 등 익숙한 판타지 종족이 함께 살아가는 13~16세기 중세 서양 판타지 분위기다. 그리고 이 세계를 식상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존재가 있으니, 바로 뒤틀린 존재 ‘다크스폰’이다. 이 세계에는 지속적으로 다크스폰이라는 이들이 지하로부터 올라와 지상 종족을 잡아먹거나 납치해 간다. 그렇기에 테다스는 다크스폰의 위협을 늘 경계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다크스폰은 처음부터 테다스에 존재하던 종족은 아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인간에 의해 태어났다. 테다스에는 테빈터라고 하는 유서 깊은 제국이 있는데, 이 나라는 뛰어난 마법사들이 다스린다. 이들이 쌓아 올린 힘은 어찌나 대단했던지, 선주종족으로서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었던 엘프 왕국을 파괴하고 해당 종족 전체를 노예로 삼을 정도였다. 이들은 테다스 곳곳을 잇는 대로를 건설하고 도시를 짓는 등 대륙 전체를 다스리기도 했다.
그렇게 제국의 위세가 정점에 달하자, 지도층인 최고위 마법사들은 불경한 야심을 품었다. 감히 영혼의 세계인 페이드(Fade) 깊숙한 곳에 있는 창조주의 영역 ‘황금 도시’에 침입한 것이다. 순수한 영적 도시에 피와 육신을 지닌 인간이 범접한 행위는 큰 재앙을 낳았다. 마법사들이 신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순간 도시 전체가 검게 물들더니, 마법사들에게 저주를 내려 뒤틀린 존재로 만들고 물질세계로 튕겨낸 것이다.
이렇게 변이된 테빈터 최고위 마법사 일곱이 바로 테다스에 나타난 최초의 다크스폰이다. 제국에 돌아온 이들은 오염을 전파시켜 다른 인간, 엘프, 드워프를 다크스폰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이들 최초의 다크스폰들은 당시 테빈터에서 신으로 숭배되던 고대 드래곤들마저 타락시켰는데, 그 결과 만들어진 존재가 아크데몬이다. 고대 드래곤이 오염돼 아크데몬이 되면, 이들은 오직 다크스폰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불러 거대한 무리를 만든다.
이렇게 모인 거대한 다크스폰 무리는 ‘블라이트’라 불린다. 보통 다크스폰은 지하에 숨는 습성이 있지만, 일단 블라이트가 형성되면 아크데몬 의지에 따라 보다 사납고 강해져 일제히 지상으로 올라와 보이는 모든 생물을 공격한다. 이들을 막는 방법은 오직 아크데몬을 죽이는 것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아크데몬은 물리적으로 살해될 시 그 영혼이 근처의 다른 다크스폰에게 옮겨가 그 육신에서 부활하기 때문이다.
처음 블라이트가 발생했을 때, 지하에 세워진 수많은 드워프 왕국들은 속수무책으로 함락됐다. 드워프들이 쓰러지자 다음은 지상이었다. 두 세기 동안 이어진 첫 번째 블라이트 동안 수많은 사람이 다크스폰과 접촉해 오염돼 새로운 다크스폰이 됐고, 블라이트의 규모도 계속 확장됐다. 그 사이 몇몇 용사에 의해 최초의 아크데몬 ‘듀맛’이 쓰러지기도 했지만, 몇 번을 죽여도 부활해 돌아와 모든 이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에 제국 정예 부대 출신으로 다크스폰 상대에 매진하기로 서약한 집단 ‘그레이 워든’은 듀맛을 탐구해 아크데몬이 부활하는 비밀을 알아냈다. 동시에 그레이 워든은 아크데몬을 영구히 물리치는 방법도 터득했다. 바로 자신들이 아크데몬과 다크스폰의 피를 섞어 희석한 영약을 마시고 반 다크스폰이 된 후 아크데몬을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크데몬의 영혼은 다크스폰의 피가 흐르는 워든에게 깃드는데, 그 때 해당 워든이 자결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레이 워든은 영웅적인 전투 끝에 간신히 아크데몬 듀맛을 진짜로 물리치고 첫 블라이트를 끝냈다. 하지만 다크스폰에 맞서기 위해 그 피를 마신 대가는 컸다. 아무리 강인한 워든이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다크스폰 피에 침식돼 변이가 일어나고, 정신적으로도 퇴락해 괴물이 되어갔기 때문이다. 빠르든 늦든 모든 워든은 그들 자신도 다크스폰이 될 운명인 셈이다. 그렇기에 이들은 오염을 견디기 힘들어지면 홀로 지하로 가 다크스폰과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한다.
시리즈 첫 게임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시점에서는 이미 네 번의 블라이트가 종료됐고, 막 다섯 번째 블라이트가 시작된 참이다. 이 게임에서는 테다스 변방 왕국인 퍼렐든이 블라이트를 막기 위해 왕이 직접 출병했다가 장군의 배신에 의해 전장에서 죽음을 맞고, 퍼렐든 지부 그레이 워든 또한 거의 전멸한다. 이에 살아남은 신참 워든인 주인공이 동분서주하며 혼란에 빠진 왕국의 각 집단을 설득하고 함께 블라이트에 맞선다는 것이 메인 줄거리다.
이렇듯 블라이트는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의 전부라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비중 있는 설정이다. 다만 게임 말미에 주인공의 활약으로 아크데몬이 쓰러지고 다섯 번째 블라이트도 끝난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시리즈에서는 다크스폰과 블라이트가 중요하게 다뤄지긴 하지만, 비중은 상당히 줄어든다. 대신 이후 나온 시리즈는 다크스폰 기원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니, 여전히 중요한 설정임은 틀림없다.
드래곤은 시리즈 첫 게임에서 이미 죽었는데… 드래곤 에이지 2는?
앞서 언급했듯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의 핵심 설정은 다크스폰과 블라이트다. 게임 이름인 드래곤 에이지도 블라이트를 유발하는 아크데몬의 도래에서 따왔을 정도다. 그런데 그 블라이트가 전작에서 이미 종결됐으니, 대체 2편 이후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다뤄졌을 지 정식 후속작 스토리를 중심으로 확인해 보자. 내용이 길어지니 외전 게임이나 소설, 만화, 영상물은 깊게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다.
우선 전작에서 주인공 그레이 워든은 퍼렐덴 왕국의 정치적 혼란을 종식시키고 다섯 번째 블라이트를 막는 과정에서 세상이 곪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왕과 귀족은 서로를 견제하고, 인간과 엘프가 서로를 멸시하며, 드워프 사회도 계급간 정쟁이 한창이었다. 또한 테빈터 제국 이후 위험한 존재로 간주돼 교단의 통제를 받고 있는 마법사들과, 이들을 감시하다 유사시 제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교단 소속 기사단 템플라들 사이의 갈등도 깊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에서는 블라이트라는 대규모 재앙을 앞둔 상황이라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깊게 다루지는 못했다. 다 죽게 생겼는데 우리들끼리 싸우고 있을 거냐는 절박한 호소가 어느 정도 통했고, 실제로도 각 집단을 설득하면 블라이트 퇴치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싸워준다. 반면 드래곤 에이지 2는 생존을 위해 사악한 괴물들에 맞서 함께 싸운다는 대의보다는, 격동기 집단 간 불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드래곤 에이지 2는 전작에서 발생한 다섯 번째 블라이트 이후 약 7년 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편 주인공 호크는 블라이트를 피해 일가가 피신하던 중 동생을 잃고, 가까스로 인근 도시 ‘커크웰’에 정착했다. 돈 없는 난민 신세였던 그는 청부업자가 돼 여러 일을 하며 명성을 쌓는다.
그러던 중 그는 용병 친구 배릭의 주선으로 다크스폰에게 함락된 고대 드워프 왕국들의 대로 ‘딥 로드’ 원정에 참가하게 된다. 딥 로드는 예전 드워프 왕국들 간 이동을 위해서 지하에 뚫은 거대한 도로인데, 첫 번째 블라이트로 드워프 왕국들이 대부분 멸망한 이래 다크스폰이 들끓는 유적이 돼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지하에 남겨진 드워프들의 옛 보물을 찾기 위해 이따금 방문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원정에서 호크는 원정대가 분열되고 괴물에 쫓기던 중 우연히 여태껏 발견된 적 없던 유적을 찾았다. 그곳에서 호크는 특이한 보물을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붉은 리륨’ 조각상이었다. 본래 리륨은 푸른빛을 띄는 희귀한 마법 광물이다. 정제하기 전에는 매우 불안정해 쉽게 폭발하며,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어지럼증을 겪거나 환각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정제된 리륨은 흡입하는 이를 영적으로 각성하게 하고 마법적인 힘을 증폭시켜 준다.
여태껏 붉은 빛을 띄는 리륨은 확인된 적이 없었기에, 호크가 찾은 조각상은 매우 비싼 값에 판매됐다. 덕분에 호크는 오랜 빈민 생활을 청산하고 커크웰의 중산층 진입에 성공한다. 이후로 그는 도난 당한 경전을 찾기 위해 온 이교도 종족 쿠나리와 교단 사이 갈등에 휘말게 되고, 결국은 커크웰 공세에 나선 쿠나리의 전사계급 지휘관을 물리친 공을 세워 영웅으로 추대된다. 이렇듯 드래곤 에이지 2의 초~중반은 호크가 부와 위업을 쌓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게임 후반에는 붉은 리륨이 다시 중요하게 등장한다. 사실 리륨은 광물의 속성을 띄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생물처럼 다크스폰에게 오염돼 타락하는 특성도 함께 갖고 있었다. 이렇게 변이된 리륨은 붉은 빛을 띄며, 근처 생물을 호전적인 미치광이로 만들어 악마적 힘을 부여한다. 그런데 하필 호크가 판 붉은 리륨을 구매한 것이 교단이었고, 교단 측은 이 붉은 리륨을 정제해 대검을 만들어 커크웰 템플라 수장 ‘메레디스 스타나드’에게 하사했다.
안 그래도 메레디스는 마법의 재능이 있던 동생이 악마에게 몸을 빼앗겨 괴물이 된 탓에 가족과 고향을 잃은 과거가 있었다. 그로 인해 메레디스는 늘 마법사를 위험하고 역겨운 존재들로 간주해 왔다. 그러던 그가 붉은 리륨의 영향에 노출되며 증오와 광기가 증폭됐다. 그는 남몰래 금지된 마법을 연구한 커크웰 마법사 단체를 말살하겠다 나서고, 결국 교단의 관리 하에 있던 마법사들과 싸움이 붙었다.
이렇듯 드래곤 에이지 2는 혼란의 시기 호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커크웰 사람들의 분열과 불화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전작이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한 영웅이 분연히 일어나 왕국을 단합하고 맞서는 전형적 영웅서사를 택한 데 비해, 후속작은 미시적 사회상을 보여주고자 한 셈이다. 다만 드래곤 에이지 2는 11개월이라는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 내 개발된 탓에, 의도와는 별개로 스토리텔링 완성도가 부족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진짜 엔딩은 DLC로 판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드래곤 에이지 2의 시나리오가 많은 비판을 받았기 때문일까? 세 번째 게임인 드래곤 에이지:인퀴지션은 다시금 거대한 악에 맞서 세상을 구하는 장대한 모험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이 게임도 시나리오 측면에서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는데, 문제 중 하나는 후반 결말이 다소 미진했다는 점이다. 그 탓에 발매 당시에도 진짜 결말은 DLC로 팔지 않겠냐는 말이 돌았는데, 정말로 몇 개월 후 본판에서 얼버무리며 미완으로 넘어갔던 플롯을 완성한 DLC가 출시됐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은 드래곤 에이지 2 DLC에서 호크의 행적과 이어진다. 당시 호크는 의도치 않게 봉인돼 있던 ‘코리피우스’라는 고대의 존재를 해방시키고 말았다. 코리피우스는 오랜 옛날 황금 도시에 침입해 최초의 다크스폰이 된 일곱 테빈터 마법사 중 하나였다. 해방된 그는 다시 황금 도시에 들어가 신이 될 야심을 품었지만, 이전에도 실패했던 시도가 이번이라고 성공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에 정체불명의 한 엘프가 나타나 도움을 준다.
솔라스라는 이름의 이 대머리 엘프는 코리피우스에게 강대한 힘이 담긴 마법 보주를 제공했다. 덕분에 코리피우스는 물질계와 영혼의 세계 페이드 사이의 경계를 찢고 황금의 도시로 들어가 신이 될 희망을 얻었다.이후 그는 자신을 따르는 마법사들과 이단 그레이 워든들의 도움을 받아 종교회합이 열리는 성역에 침범, 교황을 제물로 의식을 치러 차원적 균열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교황의 기지로 보주를 떨어뜨린 바람에 균열을 통제할 힘을 잃고 만다.
캐릭터 생성 시 주어지는 나름의 사정으로 종교회합에 참석했다가 얼떨결에 떨어진 보주를 잡은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터 주인공은 이로 인해서 차원의 균열을 닫을 수 있는 권능을 얻게 된다. 게임은 주인공이 곳곳에 열린 차원의 균열을 닫고, 여러 왕국에 접촉해 비밀 동맹을 맺기 시작한 코리피우스를 견제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코리피우스도 뛰어난 마법사답게 황금 도시에 들어갈 계획을 네 개나 준비했지만, 결국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주인공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이처럼 코리피우스가 쓰러지고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이 끝난 후에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이야기가 많다. 솔라스는 왜 코리피우스에게 보주를 준 것이며, 그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솔라스는 게임 초반에 정체를 감추고 주인공에게 접근해 동료가 되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솔라스에 대한 떡밥은 그 외에도 여럿 있었다. 게임 도중에도 솔라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누구보다 고대 엘프왕국에 대한 역사와 지식에 해박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이야기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게임이 끝날 때까지 완전히 드러나지 않다가, 크레딧 이후 나오는 비밀 영상과 DLC 끝에서야 공개된다. 사실 솔라스는 보통 엘프가 아니라, 오래 전에 추방됐다고 전해지는 엘프의 신 ‘펜하렐’이었던 것이다.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 스토리에 따르면, 전해지는 전설과 달리 엘프들은 사실 테빈터 제국에게 패배해 오늘날의 상태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이미 훨씬 옛날에 엘프들은 암투로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신으로 추앙받은 대마법사들이 패권을 놓고 정치전을 벌였고, 암투 끝에 훗날 ‘어머니 신’으로 불리는 ‘미샬’이 살해되자 펜하렐은 다른 신들을 격리해야 민중이 구원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품게 됐다.
과거에 물질계는 페이드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세계는 하나였고, 물질적 존재와 영적 존재가 함께 살았다. 엘프들이 수명 제한 없이 장생한 이유는 이들이 특별한 영적인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펜하렐은 동조자들과 함께 물질계와 페이드를 나누는 마법 의식을 거행했고, 그 결과 세계는 둘로 나뉘게 되었다. 그리고 신과 같은 힘으로 폭정을 일삼던 대마법사들은 영적 세계 페이드 너머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엘프들의 영생은 마법적 힘에 근원을 두고 있었는데, 세계가 나뉘며 차츰 모든 엘프가 단명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종족 전체가 말라 죽어가며 퇴화하기 시작한 데다 지도자까지 부재했기에 엘프들은 신흥제국 테빈터에게 멸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종족 전체가 퇴락해 노예가 되고 만 것이다. 이후 살아남은 엘프들은 페이드 너머에 갇힌 대마법사 폭군들을 신으로 숭배하고, 펜하렐을 배신자 신으로 간주했다.
펜하렐 본인은 그 사이 깊은 잠에 들어있었다. 일어나 보니 종족은 모두 노예가 됐고, 엘프 문명은 송두리째 말살돼 있었다. 오죽하면 탈주노예 엘프들이 선조들의 전통을 지킨다고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데, 실은 그 문신이 노예 낙인일 정도로 자신들의 문화적 뿌리에 무지한 상태였다. 그 상황에 좌절한 펜하렐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동족을 옛 영광으로 되돌릴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예정보다 너무 오래 잠들어 있던 탓에 그의 힘은 몹시 약해진 상태였다.
심지어 펜하렐은 자신이 잠들기 전 많은 힘을 저장해둔 마법 보주조차 스스로 열지 못했다. 이에 그는 보주를 대신 열어줄 상대로 코리피우스를 찾았다. 코리피우스가 보주의 힘을 개방하다 반발작용으로 사망하면 이를 챙길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펜하렐은 코리피우스는 사실 죽어도 다른 다크스폰 육신을 매개로 부활할 수 있는 불사신이었고, 보주를 잃어버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이에 그는 솔라스라는 이름으로 주인공을 도와 코리피우스를 무찌르고 보주를 찾고자 한 것이다.
결국 게임 끝에 솔라스, 즉 펜하렐은 플레메스라는 인간에게 깃들어 있던 미샬의 힘을 흡수하고, 보주 또한 회수해 본래의 힘을 되찾는다. DLC에서 뒤늦게 진실을 깨달은 주인공과 동료들은 펜하렐을 쫓지만, 이미 그는 너무 강해진 상태였다. 결국 펜하렐은 자신의 계획, 즉 과거 자신이 수행한 의식을 되돌리고 물질계와 페이드를 하나로 합쳐 고대에 추방된 동족을 불러올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의 왕국이 모두 무너지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보면 드래곤 에이지: 인퀴지션은 표면상으론 최초의 다크스폰이 나타나 신이 되고자 하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대 엘프 신 펜하렐이 진정한 흑막이자 악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게임 내에서도 엘프가 받는 가혹한 대우나 고대 문명, 엘프 신화가 전승과 다른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애초에 코리피우스는 페이크 보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예상대로, 드래곤 에이지 차기작은 제작 발표부터 펜하렐을 전면에 내세웠다.
넥스트 드래곤 에이지, 악당은 전작 동료 솔라스?
2018년 12월, 더 게임 어워드 현장에서 바이오웨어는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차기작의 존재를 발표했다. 발표 영상 전면에 나온 캐릭터는 전작 동료 솔라스, 즉 펜하렐이었다. 고대 엘프 신으로서 완전한 힘을 되찾은 그가 동족을 부흥시키기 위해 재앙을 획책한다는 것이다.
2020년 더 게임 어워드에서도 드래곤 에이지 신작에 대한 티저 영상이 또 한 번 공개됐는데, 이번에도 역시 최종 악역은 펜하렐임이 확실시됐다. 함께 싸운다면 ‘드레드 울프’와도 대적할 수 있다는 언급과 함께 펜하렐이 나타나는데, 드레드 울프는 펜하렐의 이명이다.
아직 드래곤 에이지 신작과 관련한 구체적인 시놉시스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전작 DLC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펜하렐이 물질계와 페이드를 하나로 합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그 과정에서 테다스에 큰 재앙이 닥치는 내용일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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