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라이크는 마니아만 즐기는 장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스팀을 살펴보면 로그라이크(또는 로그라이트) 태그가 붙은 게임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으며, 인기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중에서 국산 게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로그라이크가 생소한 장르임과 동시에, 게임사들이 패키지 게임을 잘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크래프톤이 지난 10일에 출시한 '미스트오버'는 독특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미스트오버는 국산 패키지게임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국내 게이머에게 한 잔의 시원한 물과 같은 작품이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로그라이크 RPG에 독특한 설정의 귀여운 캐릭터를 더한 점이 특징으로, 이 두 요소의 만남은 게임에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집에서는 물론 이동하면서 플레이 가능한 닌텐도 스위치 버전으로 구매한 것이 다행으로 여겨질 만큼 손에서 게임을 놓지 못했다.
귀여운 캐릭터 때문에 전략에 대한 고민은 2배
로그라이크 RPG 특징 중 하나는 저장 및 불러오기 기능을 제공하지 않으며, 캐릭터가 죽으면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미스트오버 역시 마찬가지여서 죽은 캐릭터를 다시 살리지 못한다.
던전을 돌아다니며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러 육성한 캐릭터가 사망하는 것만큼 허탈한 것은 없다.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한 순간에 수포가 되고, 캐릭터가 사망함으로써 손실된 파티 전투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또 다시 고난 가득한 전투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임을 진행하면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미스트오버에서 플레이어가 조작 가능한 8종 캐릭터는 귀여운 외모에 독특한 설정을 지니고 있다. 게임 배경인 다크판타지 세계관과 대조적이어서 위화감이 느껴질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반전 매력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몰입하게 만들어 애정을 쏟게 한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팔라딘, 섀도 블레이드, 시스터, 그림 리퍼, 로닌, 음양사, 위치, 웨어울프 등 총 8종 클래스가 있다. 섀도 블레이드는 잔혹한 암살자지만, 귀여운 것을 좋아한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는데, 실제 던전을 탐험하다 보면 곰 인형을 꺼내 얼굴을 비빈다. 팔라딘은 원래 건장한 여기사인데 저주를 받아 몸이 작아졌으며, 거대한 사신의 낫을 들고 있는 그림 리퍼는 언제나 울상으로, 공격을 받을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반전 매력이다.
이러한 설정을 보면서 캐릭터를 키우다 보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물론 캐릭터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직접 플레이 하면서 버튼을 잘못 누르는 실수로 캐릭터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데, 사망 기록에서 ‘죽음’을 확인할 때마다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다. 그렇게 쓴 맛을 맛본 이후로는 던전 입장 전 준비과정부터 내부 탐험과 전투까지 이전보다 더 신중하게 접근하게 됐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전략적 사고를 심화시킨 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캐릭터 육성, 던전 탐험, 전투 등 게임 전반에 걸쳐 ‘무작위’가 강조된다. 8종 클래스가 있지만 같은 클래스 캐릭터라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다르고, 기술 별로 진형 위치에 따른 공격 가능 범위도 다르다. 배치한 진형에 따라 2명의 캐릭터가 협동해 사용하는 협력스킬 사용도 고려해야 하기에 캐릭터 진형 배치부터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 머리를 싸매야 한다.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거나 던전을 탐험한 뒤 탈출할 시, 징크스를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무작위로 부여된다. 이렇게 부여된 징크스는 훈련장에서 교정 재료와 돈을 내고 다른 징크스로 바꿀 수 있지만, 부정적인 징크스라고 해서 꼭 교정할 필요는 없다. 징크스 설명을 잘 읽어보고, 현재 챕터를 플레이하는데 있어 큰 영향이 없을 것 같은 징크스는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 꽤나 많은 돈이 들기도 하고, 항상 긍정적인 징크스로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투 시 스킬을 사용해 적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100% 적중률을 보장하지 않는다. 체감상 공격 성공률이 매우 낮다. 쉬움 난이도에서도 4~5번 연속으로 ‘미스(Miss)’와 ‘가드(Guard) 판정이 나는 것은 다반사다. 공격을 막거나 피하면, 턴이 빨리 돌아오기에 이러한 경우까지 계산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한다면, 다 이겼다고 생각한 전투가 한 순간에 전세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던전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입장한 뒤 돌아다니면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먼저 만복도와 광휘도는 던전 내에서 캐릭터들의 생존과 직결되는 수치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조금씩 줄어드는데, 만복도가 1이상일 경우 체력과 마나 수치가 조금씩 회복되지만, 0이 된 이후부턴 체력이 줄어든다. 이동 시 체력이 0이 되면 살릴 기회도 없이 사망에 이르기에 주의해야 한다. 광휘도 탐험 시 시야범위와 연관되는데, 광휘도가 줄어들수록 답답하다.
만복도는 광휘도를 회복하기 위해선 각각 소모품인 식량과 씨앗을 사용해야 한다. 광휘도는 던전 내에 퍼져 있는 ‘라이트 플라워’를 이용해 회복할 수 있어 모자란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만복도는 항상 모자라다. 던전 입장 전, 잡화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식량은 5개가 한계인데다가, 던전 내에서는 운이 좋을 경우에나 잡동사니를 통해 얻을 수 있기에, 크기가 큰 대형 던전일 경우 캐릭터가 단체로 아사하는 끔찍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던전 입구로 들어가 출구로 나오기까지 이러한 수 많은 난관을 해쳐야 한다. 튜토리얼에선 ‘생존’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사실 ‘어떻게’ 생존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던전 내부에 있는 상자, 잡동사니, 몬스터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탈출한다면, 종말의 시계가 줄어드는 페널티를 얻게 된다. 미스트오버는 이처럼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도록 플레이어를 조여오는 맛이 일품이다.
더 많은 패키지게임이 나왔으면 좋겠다
미스트오버를 하면서 느낀 아쉬운 점은 두 가지다. 먼저 불합리한 난이도를 지적할 수 있다. ‘다키스트 던전’으로 대표되는 로그라이크 RPG의 난이도는 유저들을 괴롭게 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난이도가 높은 스테이지를 만나 후퇴하게 되더라도, 반복적인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를 강화시키고 전략을 다듬어 재도전하면 충분히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 이렇듯 어려움을 하나하나 돌파해 나가는 재미가 있는 것이 로그라이크 RPG인 것이다.
하지만 미스트오버는 초반에 등장하는 적의 능력치가 기본적으로 주어지게 되는 캐릭터가 상대하기에 비교적 높은 편이고, 스테이지 또는 챕터 간 난이도 차이도 크다. 캐릭터성에 이끌려 이 게임을 접한 로그라이크 RPG 입문자는 게임 초반부에 흥미를 붙이기 상당히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중급 난이도로 처음 도전했을 때, 게임 시작 4시간 만에 첫 챕터를 넘기지 못하고 초급으로 다시 시작했다.
아울러 전투 템포가 전체적으로 느린 편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특히 초반에 두드러지는데, 아군 캐릭터 능력치 대비 몬스터 체력이 높은 편이어서, 전투가 의미 없이 길어지기 일쑤다. 스킬 연출을 넘길 수 있는 기능만 있더라도 조금 더 빠른 템포의 전투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사 크래프톤은 테스트 단계부터 출시 이후 지금까지 유저들의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로 게임 내에 적용 중이다. 콘솔 버전의 경우 패치 심사로 다소 시일이 걸리고 있지만, 스팀 버전에선 이미 앞서 지적한 단점들을 상쇄할 수 있는 업데이트가 진행된 상태다.
‘배틀그라운드’로 만루홈런을 쏘아 올린 크래프톤이 이어진 미스트오버 타석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충분히 매력적인 게임에 철저한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면서 게임을 찾는 이들은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미스트오버와 같은, 콘솔 패키지 시장을 정조준 한 게임이 많아져 더 많은 즐길거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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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애정과 흥미를 기사에 담아내고 싶습니다.laridae@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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