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펜슈타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역시 주인공 B.J.가 양손에 중화기를 들고 나치를 쓸어버리는 박력 넘치는 모습일 것이다. 그만큼 '울펜슈타인'은 예전부터 오버테크놀러지를 이용하는 전체주의 독재국가 나치와 그걸 무차별하게 때려잡는 B.J.가 보여주는 시원시원한 액션으로 고전 FPS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는 시리즈였다.
하지만 지난 26일 출시된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우리가 아는 '울펜슈타인'이라고 하기엔 다소 아쉬운 모습이었다. 코옵 플레이를 만드는 것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게임의 핵심적인 시스템들의 완성도가 낮아진 것이다. 더불어 코옵을 내세운 것 치고는 그마저도 완벽하다고 말하기 미흡한 수준이다. 게임 곳곳에는 아케인 스튜디오 특유의 재미가 묻어 나왔지만 종합적으로 봤을 땐 '울펜슈타인'이란 이름을 붙이기엔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은 작품이었다.
시리즈의 세대 교체를 시도한 '울펜슈타인'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전작 '울펜슈타인 더 뉴 콜로서스'에서 20년이 흐른 1980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본래 '울펜슈타인' 시리즈를 대표하는 인물인 B.J.블라즈코윅즈는 극중 나이 69세로 머리가 하얗게 센 채 등장한다. 시대가 흐른 만큼 주인공도 B.J의 두 딸 제시카와 소피아로 교체됐으며, 배경도 미국에서 프랑스 파리로 옮겨갔다. 전작에서 얻은 아이들이 어느새 의젓하게 성장해 '나치 킬러 2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감개가 무량할 지경이다.
주인공을 두 명으로 늘린 만큼 이번 작품의 테마는 철저하게 협동 플레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네트워크로 다른 플레이어와 연결해 게임을 풀어나가거나 친구를 초대해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도 있다. 물론 AI 동료를 활용해 솔로플레이도 가능하지만, 제대로 된 협동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진 못해서 가능하다면 다른 유저와 함께 즐기는 것이 좀 더 확실하게 본 작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이번 작품에선 전작 들에서 사용되던 장비 업그레이드와 능력 개방 시스템을 좀 더 보완해 레벨 체계를 필두로 한 RPG 요소가 도입됐다. 레벨이 오르고 스킬 포인트가 쌓이면 그에 맞춰서 각종 능력을 해금하거나 장비를 더욱 다채롭게 강화할 수 있는 식이다. 특히 어떤 스킬을 채용하느냐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이를테면 은신 지속시간과 이동 속도를 증가하고 근접무기 공격력과 기습 효율을 늘리면 잠입과 근접 공격을 이용해 대다수의 적을 쉽게 처리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로 HP 증가와 중화기 사용 등에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면 고전 FPS다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그 밖에도 이번 작품은 단순히 선형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 아닌 허브 시스템을 통한 세미 오픈월드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된다. 본진에 있는 인물들에게서 임무를 부여 받고 특정 허브에 도착해 특정 지역까지 이동, 그 후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각 허브에는 나치들이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수시로 교전이 발생하며, 그만큼 임무 지역까지 이동한 경로나 방법, 더 나아가서 임무 수행 방법 등도 상당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원한다면 모든 적들을 쓸어버리고 가도 되고, 실력이 된다면 조용히 은신으로 주요 요인만 암살하면서 전진할 수 있다.
나사가 빠진 듯 삐걱거리는 핵심 요소들
첫 인상은 나름대로 준수한 FPS라는 느낌을 주지만 게임 시스템을 천천히 뜯어보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코옵'을 통한 새로운 전투 경험을 제시했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그 밖의 핵심 요소들에서 많은 단점이 보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무기의 밸런스 문제다.
본작에 등장하는 적들의 속성은 경장갑과 중장갑으로 나뉜다. 이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위해선 그에 맞는 무기를 사용해야만 한다. 그런데, 대체로 처치가 쉽지 않은 적들은 죄다 중장갑 속성이며, 모든 보스들도 전부 몸에 중장갑을 두르고 있다. 중장갑에 효과적인 무기는 권총과 슈투름게버, 레이저크라프트베르크 정도인데, 권총은 너무 약해서 사용할 수 없고, 레이저크라프트는 사용조건도 까다롭고 탄수급도 매우 어려운 편이다. 결국 중장갑을 상대할 수 있는 무기는 슈투름게버 밖에 없으며, 덕분에 탄 관리도 어렵고, 본의 아니게 버려지는 무기가 다수 생겨서 다양한 무기로 적을 처치한다는 재미가 떨어진다.
새로 도입한 RPG 요소도 다소 투박한 편이다. 레벨에 맞춰서 장비 강화와 능력을 해금한다는 설정까지는 좋았으나, 내가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게임 내에서 느낄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내 레벨이 오르면 적들의 레벨도 같이 오르다보니 어려운 미션을 깨기 위해 열심히 레벨을 올리고 다시 도전해도 난이도가 크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필드에 놓여진 적들도 플레이어 레벨과 비슷하게 설정되기 때문에 미션을 수행하러 가는 도중에 탄약과 체력을 소비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과적으로는 '레벨'이란 요소 없이 그냥 자원 수급을 통해 스킬과 장비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더불어 맵의 기본적인 구조도 FPS와 잘 어울린다고 보기 힘들다. 본작의 맵구조는 상당히 복잡해서 길찾기에 익숙치 않다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50m 앞인데, 이걸 찾아가기 위해선 각종 쪽길로 기어 다니거나 2단 점프를 활용한 파쿠르로 건물 2층 3층을 왔다갔다 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에 미니맵 UI도 매우 부실하고, 그 와중에 전체 맵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전무하기 때문에 FPS를 하는 와중에 어지간한 어드벤처 게임보다 귀찮은 길찾기를 해야한다. 시원시원한 진행과 다양한 방식의 교전을 원해서 이 게임을 구매한 유저에겐 단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울펜슈타인 답지 않은 가벼운 분위기
전반적으로 울펜슈타인 답지 않은 분위기도 아쉽게 다가온다. 본 작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은 B.J의 자식들 답게 분명 용맹하고 강력하지만, 아직은 10대라 그런지 전쟁과 살인에 대한 고뇌가 전무한 편이다. B.J.가 처음엔 자신의 안위와 복수를 위해서 총을 들고,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 나치를 상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 소녀들은 재미로 나치를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물론 '나치'가 왜 나쁜지, 어째서 '나치'를 무너뜨려야 하는지에 대한 주제 의식은 게임 내에서 계속 드러나지만, 언제 적이 튀어 나올지 모르는 전장에서 서로 장난을 걸고 있는 자매를 보고있으면, 몰입감이 저절로 사라져 버린다.
눈에 띄게 줄어든 스토리 플레이 타임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확히는 게임 내에서 메인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도 줄었고, 더불어서 스토리의 깊이나 컷신도 많이 줄었다. 심지어 최종보스조차 별다른 컷신 없이 대뜸 보스전에 돌입할 정도. 보스전으로서 당연히 조성돼야 할 긴장감도 없고, 이 보스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에 대한 설명조차도 부족하다. 물론 가격도 절반이고 캐릭터를 조작하는 시간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으나 메인스토리가 부실하다 보니 게임 전반적으로 몰입이 잘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코옵에 집중하다 보니 기존에 울펜슈타인이 자랑하던 시원시원한 액션이라는 매력도 반감된다. 기본적으로 적 한 명을 처치하는 시간이 전작에 비해 길어진데다가 적을 상대하는 방법도 복잡해졌다. 한 명이 적의 주의를 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적의 약점 부위를 차근차근 공격해야 하는 것이 게임의 기본 공략법인데, 이 같은 방식은 '울펜슈타인' 같은 고전 FPS를 지향하는 게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솔로 플레이를 하는 유저나, 초심자는 적절한 공략법을 찾지 못해 똑같은 적을 상대로 수없이 헤매는 경우도 생긴다.
이 밖에도, 코옵을 너무 위시한 나머지 솔로 플레이를 하는 중에도 게임 일시정지를 못한다거나, 팀 원 중 단 한 명만 사망해도 미션의 가장 처음 부분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던가 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 사망 시 현재 상태의 탄약만 가지고 초반부로 돌아가는 부분은 게임 플레이 시간을 쓸데없이 늘려주고, 유저의 경험을 방해한다는 측면에서 빨리 수정돼야 할 부분이다.
새로운 매력보다는 기존의 매력이 좋다
'울펜슈타인 영블러드'는 27년 째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울펜슈타인'에게 있어서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이다. 주인공도 교체됐고, RPG나 허브 시스템 등 그 동안 없었던 새로운 요소도 많이 추가 됐다. 코옵에 집중한 것도 새로운 세대를 맞이 하기 위한 '울펜슈타인' 나름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실험적인 선택이 좋은 결과를 대동하지 못했다.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들에서 하나 같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던 데다가 '울펜슈타인' 특유의 매력도 잘 살리지 못했다.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는 것 만큼 기존의 매력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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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에서 모바일게임과 e스포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동생에게 잔소리하던 제가 정신 차려보니 게임기자가 돼 있습니다. 한없이 유쾌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담백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남기고 싶습니다.bigpie1919@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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