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산권 공무원 시뮬레이터 '비홀더 2' (사진: 게임메카 촬영)
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 ‘파밍 시뮬레이터’, ‘서전 시뮬레이터’, ‘쿠킹 시뮬레이터’, ‘트럭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시뮬레이터 게임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시뮬레이터 장르는 지루하고 재미없는 본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직업을 간접 체험하고, 높은 성과를 올리는 인생 대체제로서의 매력을 갖고 있다. 게임에서 제 2의 직업 적성을 찾았다는 사람들도 간혹 보일 정도다.
그러한 가운데, 어딘가 눈에 띄는 게임이 등장했다. 바로 ‘비홀더 2’다. 전작 ‘비홀더’는 이른바 '공무원 시뮬레이터'로 유명세를 떨쳤다. 특히, 그냥 공무원도 아니고 공산주의 국가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개인방송 등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졌다. 그 뒤를 이어 지난 12월 ‘비홀더 2’가 출시됐다. 이번 작품 역시 말단 관료직에서 출발해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비홀더 2’가 지난 12월 17일 한국어화 패치를 진행했다. 이에, 게임메카는 과연 ‘비홀더 2’는 전작의 명성을 이어갈 명작인지 직접 체험해봤다.
▲ '비홀더 2' 공식 트레일러 영상 (영상출처: 배급사 공식 유튜브)
전체주의국가 말단 관료가 되어, 정부의 음모를 밝혀라
주인공은 공산주의국가 말단 관료 자리에서 출발해서, 실적을 쌓아 높은 관직에 진출해 정부의 기밀에 다가가야 한다. 그의 아버지는 정부에서 인정을 받는 유능한 고위 공무원이었으나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중앙 정부 관료직 말단으로 발령받은 주인공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동료에게서 그 비밀의 실마리를 접하게 된다.
▲ 말단 관료에서 출발해 정부의 음모를 밝혀야 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는 직장에 흩어져 있는 ‘생체인식 금고’들을 찾아내 그 안에 들어있는 아버지의 유산을 모아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또한 직장 동료, 상사, 일반 시민과 여러 형태의 관계를 맺고 이용하며, 그와 관련된 다양한 정황을 수집해 나가며 흑막에 다가가게 된다.
아쉬운 점은 전작과 같은 스토리 자유도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물론 ‘비홀더 2’에도 플레이어 선택에 따른 멀티 엔딩이 존재하긴 한다. 그러나 전작 ‘비홀더’에서는 정부에 봉사할지 반란군에 가담할지에 따라 이야기가 크게 갈렸지만, 신작은 주인공이 관료조직에 속한 채 이야기가 진행되며 정부 이외 위협세력이 없다. 이처럼 선형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 동료들의 신임을 얻은 후 모조리 제거할 수도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게임의 목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높은 공직자리에 올라 정부의 비밀에 다가가는 것이다. 승진을 위해서는 업무실적을 올리거나 반동분자 고발을 통해 돈과 평판을 모아야 한다. 그러한 자원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일종의 스파이물 분위기가 난다. 동료의 사무실이나 서류철을 뒤지기도 하고, 얻은 정보로 약점을 잡아 누군가를 협박할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정보를 팔아 넘기는 등 모든 것을 발판으로 이용하거나, 방해요소를 제거해 나가며 상부로 진출하는 매정함을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적어도 게임 내에선 신뢰관계 형성과 배신은 한 세트다.
출퇴근과 업무의 반복, 지루함 폭발
‘비홀더 2’ 주인공은 민원안내 창구에서 민원인을 각 부처로 정확히 안내하는 일을 한다. 바로 이 민원내용 처리와 안내 과정이 게임 플레이로 구현돼, 실제 공무원이라도 된 듯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하지만 어디 직장생활이 쉬운 게 있냐는 듯, 이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 텍스트를 잘 읽고 그에 맞는 유형을 선택 (사진: 게임메카 촬영)
민원 처리는 민원인의 대사를 읽고 그에 따라 ‘요청’, ‘불만 접수’, ‘고발’, ‘정보 제공’ 4개 유형으로 분류한 후, 사안 성격에 따라 ‘질서부’, ‘애국부’, ‘사회복지부’, ‘노동부’, ‘문화스포츠부’, ‘과학기술부’ 6가지 해당 부처를 지정한다. 그 후 달력을 확인해 당일 운영 중인 사무실 번호까지 민원인에게 전달하면 된다.
▲ 여러 사안이 혼재한 민원도 존재한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민원 처리 시뮬레이팅은 초반엔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시민들의 다양한 사연을 분류하는 것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텍스트 해석과 분류, 스크롤과 날짜 확인을 반복하다 보니 찾아오는 지루함을 피하기 어려웠다. 또 여러 사안이 섞여 있어 해당 부처로 넘기기에 확실치 않은 민원들이 종종 등장했으나, 그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곁들여 지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 전재산 200원과 공과금 폭탄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에 더불어 올바른 민원처리에 대한 보상이 꽤나 박한 편이라, 플레이를 지속할 의욕을 내기도 어려웠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9시간의 행동시간이 주어지며, 업무 5건을 처리하는데 약 2시간이 소요된다. 민원 처리는 한 건 성공할 때마다 50원의 보상을 주며, 정보 수집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버는 돈은 평균 500-700원 내외다. 그 돈으로는 공과금을 내고 나면 거의 남는 것도 없다. 직업 시뮬레이팅 게임의 핵심은 어떤 활동의 간접 체험과 적절한 보상인데, 이 게임은 보상 부분에서 진을 확 빠지게 만든다. 뼈 빠지게 일하고 단서를 모아 퇴근했는데 잔액의 상당수가 사라지다니!
▲ 다행히 지각 시스템은 없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실제 직장생활이 그렇듯 ‘비홀더 2’에서도 퇴근 후엔 어김없이 출근이 돌아온다. 그런데 이 출근길은 스킵이 불가능해, 매일 같은 길을 뛰어가야 한다. 처음 몇 번은 출근길 풍경이라도 보며 견딜 지 몰라도, 나중에는 스트레스이기만 하다. 출퇴근 길이 재밌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반복하며 승진을 해도 문제다. 승진 후 담당 부처로 이동하면 ‘민원 결과 결정’, ‘민원인 처분 결정’, ‘양식 처리 방식’ 3단계의 더욱 난이도 있는 업무를 맡아야 하고, 그마저도 한 건 성공시킬 때 보상금이 적다. 거기서 한 번 더 승진하면 텍스트 해석도 아닌 단순히 스크롤을 내리며 알맞은 수치 값을 설정해야 하는 단순 노동을 반복해야 한다.
▲ 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러한 과정은 마치 ‘워킹 푸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워킹 푸어’는 풀타임으로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취약층을 일컫는 말로, ‘비홀더 2’는 플레이어에게 적절한 체험을 제공하기보단 그저 지난하기 만한 고행을 선사한다는 느낌에 가깝다. 공산주의 사회의 실상을 전달하려는 의도라면 그럭저럭 성공이었겠지만, 이를 위해 게임적 재미를 상당수 희생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게임의 볼륨이 그리 크지 않아 성실히 플레이 하면 결국 게임은 앞으로 나가게 돼 있다. 하지만 ‘비홀더 2’의 게임진행은 너무 느리고 반복적이다. 일반 시뮬레이터 게임들은 어떤 활동의 재미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힘들고 지루한 부분은 축소하는데, 이 게임은 힘들고 지루한 부분만 크게 뻥튀기 해 놓은 느낌이다. 적절한 플레이 요소와 보상을 통해 성취감과 함께 자연스럽게 게임을 진행하게 하는 레벨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 동료의 사무실에 방문하거나 침입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업무 뿐 아니라, 인물 관계 형성과 선택지, 상호작용의 디테일도 아쉽다. 중요 선택지가 적은 편이고, 동료 NPC가 지켜보는 상태에서 다른 사무실에 침입해도 아무 반응이 없다. 전작 ‘비홀더’에서는 공산권 아파트 관리자가 돼 세입자들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설정으로, 방 주인들의 동선을 피해 정보를 캐내는 것이 핵심 플레이 요소였다. 하지만 이번 작에서는 그러한 은밀행동과 연관된 효과가 없어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 달콤한 제안일까, 살 떨리는 협박일까 (사진: 게임메카 촬영)
설정과 연출은 독특하지만, 반복되는 직장생활의 지루함을 덮기엔 무리
‘비홀더 2’는 무채색 배경과 흑백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완전한 감시와 통제, 반동분자 색출, 공개처형 등 강렬한 소재와 함께 전체주의 디스토피아 분위기를 잘 살렸다. 또 종종 등장하는 시네마틱 영상들도 충실히 긴장감을 더해줬다. 그러나 게임 설정과 연출에 비해 플레이 시스템의 지루함이 상당해 아쉬움이 크다.
▲ 흔한 출근길 풍경, 이유는 모르겠지만 태양만세 하고보자 (사진: 게임메카 촬영)
‘비홀더 2’의 민원처리 시스템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게임으로 재현해놓은 것이다. 이는 시뮬레이터 게임의 매력으로, 실제 해보기 어려운 체험과 성취감을 게임으로 간편하게 체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성취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목표달성을 위한 수단으로서 지루한 잡무를 반복하는 것에 가깝다. 암울한 세계 속에 단순 업무를 지속하니 흑막에 대한 흥미는 계속해서 떨어져갔다. 시간과 돈의 제한으로 인한 활동 제약이 큰 점도 답답함을 증폭시켰다.
▲ 공무원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비홀더 2'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결론적으로 ‘비홀더 2’는 공산&전체주의 사회와 그 안에 속한 공무원이라는 독특한 설정에 비해 핵심이 되는 플레이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다. 눈에 띄는 콘셉트로 일회성 게임방송 소재가 될 순 있겠지만, 혼자 묵묵히 게임을 클리어 하는 플레이어에게는 꽤나 지루한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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