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그 시절을 함께했던 게임메카는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 게임챔프 1998년 12월호에 실린 ‘창세기전외전2: 템페스트’ 광고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 당시 일본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Tony가 그린 삽화도 전면에 배치됐다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오늘 소개할 게임광고는 제우미디어 ‘PC챔프’ 1998년 12월호에 실린 ‘창세기전외전2: 템페스트’ 광고입니다. 잡지가 나온 12월 10일 출시 예정이었기에 잡지 맨 앞 3면에 걸쳐 대대적인 게임 광고를 실었습니다. 2018년으로 따지면 포털 사이트 메인 광고+지하철/버스/공중파TV 등을 합친 수준이라고 봐도 되겠군요.
당시 소프트맥스는 국내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업체였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3N급 위치였죠. 그런 회사의 차기작인 ‘템페스트’ 역시 개발 초기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일본 최고 게임 원화가로 명성을 떨치던 Tony가 메인 일러스트를 맡았고, 후반 엔딩 부분은 당시 무명이었던 일러스트레이터 김형태가 외주로 작업했습니다. 게임 광고에는 CG로 작업된 ‘세라프’, 김형태가 그린 ‘루시퍼’, Tony가 그린 ‘엘리자베스’까지 세 종류의 그림이 섞여 있네요.
▲ 제작 소프트맥스, 판매원은… 둘리?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광고 아래쪽을 보면 재미있는 것이 보입니다. 바로 ‘둘리’라는 유통사입니다. 당시 둘리는 ‘템페스트’ 판권을 11억 원에 확보해서 화제를 모았는데요, 아마 유통사로서 이름을 들어 보신 분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이런 무명 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이유는, 전작 ‘서풍의 광시곡’까지 파트너사였던 유통업체 하이콤이 1차 부도를 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소프트맥스는 패키지 판매 수익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하고 회사가 휘청거렸죠.
결국 발매 6개월 전. 그러니까 광고 싣기 5개월 전쯤 소프트맥스는 재정적 이유로 당시 시험적으로 제작하던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하나를 ‘창세기전’ 시리즈에 편입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창세기전’ IP를 붙여서 게임을 좀 더 팔아보자는 계획이었죠. 발매 시기도 그해 12월로 부랴부랴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유통사를 급히 찾자니 접근해온 업체가 둘리였던 것.
그러나, 이 회사는 ‘아기공룡 둘리’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업체 이름마저 ‘둘리(DOOLY)’였지만, 정작 원작 만화나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였습니다. 심지어 캐릭터 사용 라이선스도 획득하지 않고 ‘둘리’라는 캐릭터를 무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시작부터 불안불안했던 이 회사는 결국 소리소문없이 증발했습니다. 혼탁했던 국내 게임유통업계 상황이 드러나는 사례죠.
▲ 통신판매 문의 공지사항. 소프트맥스의 Mamber가 될 수 있다는데, Mamber가 뭘까요? 맘바?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광고 위쪽을 보면 추억의 통신판매 문구가 보입니다. 이 때는 인터넷을 통한 다운로드 구매는 물론, 변변한 쇼핑몰 시스템조차 없던 시절이라 통신판매가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전화나 PC통신, e메일로 소프트맥스 직원과 접촉해 이름과 주소를 불러주고, 은행에 패키지 금액을 입금하면 수동으로 확인 후 부쳐주는 시스템이었죠.
당시 기자도 ‘일반 소매점의 패키지에는 없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문구에 낚여서 통신판매를 신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화가 계속 통화중이라 이틀 만에 예약에 성공했고, 다음 날 은행을 찾아가서 무통장입금 종이를 기입한 후 창구에서 돈을 입금했죠. 그러고도 1주일쯤 후에 게임을 받아볼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만 해도 신용카드 하나만 등록하면 클릭 몇 번으로 곧바로 신작 게임을 다운받아 플레이하는 날이 올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 4만 원짜리 패키지를 사면 랜덤으로 주는 캐릭터 카드를 모아봅시다!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참고로 ‘템페스트’ 패키지에는 캐릭터 일러스트 캐릭터 카드가 들어 있었습니다. 12장 중 3개가 랜덤으로 들어 있었는데요, 당시 패키지 가격은 4만 원.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지금에 비해 패키지게임 가격이 월등히 비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 수집을 위해 패키지를 여러 장 사고 PC통신을 통해 중복되는 카드를 교환해 가며 12장 컴플리트를 노리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대한민국 오덕 문화의 선봉장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평가되는 부분입니다.
참고로 ‘템페스트’는 한국 게임으로서는 드물게 유명 성우들을 섭외해 음성 녹음을 진행해 ‘성덕’들의 환호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주환 씨는 당시 녹음에 참여했던 성우와 사랑에 골인. 결혼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분이 맡은 차기작 중 하나가 소프트맥스의 모바일 연애/육성 시뮬레이션 '아이엔젤'로, 현재는 시프트업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데스티니 차일드' 개발에도 참여했습니다.
사양 역시 인상깊군요. 메모리는 16MB 이상, HDD는 150MB 저장 공간을 요구합니다. 2018년 현재 최신 게임들은 메모리 16GB, 저장 공간은 150GB 이상까지 요구하는 걸 보면 말 그대로 20년의 세월 동안 단위가 하나 바뀌었네요. 앞으로 20년 후에는 메모리 16TB, HDD 150TB쯤 요구하려나요? 아, 참고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4배속 이상 CD-ROM’ 같은 사양도 인상적입니다.
뭐, 어쨌든 당시 ‘템페스트’는 10만 장 이상 판매고를 올리며 위기에 처한 회사의 구원투수가 되어 줬고, 소프트맥스는 이를 토대로 ‘창세기전 3’ 제작의 밑거름을 쌓았습니다. 현재 '창세기전' 시리즈는 '창세기전 4'를 끝으로 소프트맥스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며 맥이 끊겼지만, IP를 취득한 넥스트플로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조이시티 등을 통한 외전격 타이틀 출시는 물론, 구작 리마스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죠. 비록 '템페스트'의 경우 리마스터 대상 타이틀 목록에서 빠져 있지만, 의외로 모바일 시대와 걸맞는 게임성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덤으로 보는 당시 B급 광고
▲ 저작권은 저 멀리 팔아먹은 추억의 700 전화게임 광고 (자료출처: 게임메카 DB)
당시 광고를 살펴보던 중, 재미있는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20대 이하 게이머는 잘 모를법한 이 광고는 90년대 중후반 유행하던 전화 게임서비스 광고입니다. 700~ 혹은 800~으로 시작되는 이 번호로 전화를 걸면, 간단한 안내 후 음성 게임이 시작됩니다. 주로 음성에 따라 번호로 선택지를 입력하거나 커맨드를 입력하면 다양한 음성이 들려오는 식이었죠.
문제는 높은 이용료. 당시만 해도 30초에 100~200원의 정보이용료가 부과됐는데, 10분만 이용해도 요금이 2,000~4,000원씩 나오곤 했습니다. 덕분에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게임을 하다가 폭탄 전화요금 고지서를 받아 종아리를 맞는 사례가 종종 보고됐죠. 물론 광고에 나온 MUD 요소는 있을 리가 만무했고, ‘드래곤 퀘스트’나 ‘철권’, ‘킹 오브 파이터즈’,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 같은 IP는 그야말로 무단 도용해 사용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하군요.
아, 참고로 오른쪽에 있는 ‘센티멘탈 그래피티’ CG를 배경으로 한 ‘십대의 고민일기’ 같은 건 정확히 무엇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릅니다. 모르는 척 하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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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외전 2: 템페스트
1998. 12. 01
- 플랫폼
- PC
- 장르
- SRPG
- 제작사
- 소프트맥스
- 게임소개
- '창세기전 외전 2: 템페스트'는 '창세기전'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이자 두 번째 외전이다. SRPG에 육성 및 연애 시뮬레이션 등을 조합한 복합 장르를 채택했다. 성왕 라시드 팬드래건의 사후 이야기를 그린 '창세... 자세히
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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