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최근 극장가에 사후세계 열풍이 불고 있다. 저승에서 벌어지는 일곱 번의 재판을 그린 ‘신과 함께’가 천만 관객을 모으며 대박을 터트렸고, 망자의 땅에 흘러 든 멕시코 소년 이야기 ‘코코’ 또한 높은 예매율을 보이며 벌써부터 흥행 시동을 걸었다. 둘 다 우리가 흔히 아는 천국, 지옥으로 이분화된 기독교적 사후세계가 아니라 더욱 재미있다.
이러한 사후세계는 게임에서도 종종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죽음을 향한 근원적인 공포와 그 이후에 대한 호기심이 혼재된 사후세계는 그 자체로 매우 흥미로운 무대다. 때론 망자만이 떠도는 쓸쓸한 폐허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악마들과 격전을 벌이는 불타는 전장이기도 하다. ‘신과 함께’보다 독특하고 신묘한, 게임 속 사후세계를 만나보자.
5위. 소울스트림 (마비노기)
▲ 어디를 봐도 온통 새하얀 '마비노기'의 '소울스트림'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아일랜드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마비노기’는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독특한 묘사를 보여준다. 캐릭터를 처음 생성하면 새하얀 공간에 무미건조한 석조 기둥과 부엉이만이 가득하다. PC 성능이 딸려서 텍스처 로딩이 느린 게 아니다. 이른바 ‘소울스트림(Soulstream, 영혼의 강)’라는 곳이다. 이 세계에 영혼들은 이곳에서 안식하거나 새로운 육신을 얻어 환생하게 된다.
보통 사후세계라면 뿔 달린 악마라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여긴 ‘나오’라는 미소녀만이 자리를 지킬 뿐이다. ‘마비노기’는 환생을 통해 캐릭터의 외모는 물론 나이와 성별까지 모조리 바꿔버리는데, 터럭 하나 없이 새하얗게 표백된 ‘소울스트림’이야말로 과거가 지워진 캐릭터와 퍽 어울린다. 아, 물론 이것도 약간의 넥슨캐시가 있어야 예쁘게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거.
4위. 소븐가르드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
▲ 영예롭고 강인한 전사의 혼이 기거하는 '소븐가르드' (사진출처: 게임 웹사이트)
‘토르’의 섹시한 대흉근으로 더 잘 알려진 북유럽 신화에는 사후세계 ‘발할라’가 존재한다. 생전에 뛰어난 무공을 쌓은 전사는 이곳으로 불려와 최후의 전쟁 ‘라그나로크’가 있기까지 매일같이 배틀로얄을 벌여야 한다. 쉽게 말해서 신들의 군대에 강제 징집해놓고 말뚝 박으라는 식인데, 의외로 이 동네에선 이걸 천국 취급한다. 역시 근육남들의 사고방식은 이해하기 힘들다.
북유럽 신화의 주요 설정을 다수 차용한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에도 발할라 비슷한 장소를 찾아볼 수 있다. 북방 민족과 대화하다 보면 자주 들을 수 있는 ‘소븐가르드’라는 곳으로, 처음에는 그냥 구전 설화인가 싶지만 메인퀘스트 막판에 직접 가볼 수 있다. 아름다운 수목과 웅장한 전당이 일품인데, 헐벗은 근육남이 즐비한 탓에 북유럽 신화 콘셉트 헬스장처럼 보이기도.
3위. 네더렐름 (모탈 컴뱃)
▲ 고대신 '신녹'과 사후세계 '네더렐름', 근데 영 약하다 (사진출처: 게임 웹사이트)
‘모탈 컴뱃’은 캐릭터들이 허구한날 서로 척추를 뽑고 허리까지 접어버리는 게임답게 사후세계 설정이 탄탄하다. 지옥에 해당하는 ‘네더델름’은 단순히 망자의 거처일 뿐 아니라 직접 군대를 꾸려 지구를 침공하는 사악한 세력으로 그려진다. 통치자는 타락한 고대신 ‘신녹’과 휘하 흑마법사들이며, 간혹 죽은 지구측 전사를 좀비마냥 수족으로 부리기도 한다.
‘네더델름’의 풍경은 흔히 상상하는 지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괴하게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용암이 흐르고 온갖 괴물이 뛰어다닌다. 그런데 이 게임에선 지구인도 이소룡 뺨치는 격투가 투성이라 이런 놈들을 상대로 그만 전쟁에서 이겨버렸다. 심지어 쓰러진 ‘신녹’의 빈자리를 차지한 것도 좀비가 된 지구측 전사 ‘리우 캉’이니 참 지옥의 위신도 땅에 떨어졌다.
2위. 지옥 (둠)
▲ 하이테크놀로지 무기를 쓰는 '둠' 지옥의 악마들 (사진출처: 게임 웹사이트)
일반적으로 사후세계는 현대 문명에 비해 낙후됐다는 편견이 있다. 가령 천사들은 중세 시대마냥 갑옷을 걸쳤고 악마는 하반신에 거적때기나 두르고 다닌다. 동양을 보더라도 때가 어느 때인데 두루마기에 갓 쓴 저승사자와 포청천 닮은 판관이 나오지 않나. 그러나 말뚝이 아닌 샷건으로 악마를 퇴치하는 ‘둠’에서는 사후세계도 최신 기술과 화기로 무장했다.
지옥을 활보하는 사이 수백 마리씩 처치하는 졸개들은 짐승이나 다름없지만, 상급 악마부터는 몸에 이런저런 기계 장비를 하고 나온다. 대부분 어깨에 기관총을 달거나 팔 대신 로켓포를 박아놓은 등 무기에 한정된 엄청난 기술을 보여준다. 이건 작중 인간들도 아직 범접하지 못한 경지인데 어느 화력 덕후가 개조해줬는지 모르겠다. 개발자가 그냥 멋져 보여서 붙였으려나.
1위. 망자의 땅 (그림 판당고)
▲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하구나 싶은 '그림 판당고' (사진출처: 게임 웹사이트)
앞선 여러 사후세계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 모습인 반면 ‘그림 판당고’의 저승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싶은 친근함을 과시한다. 아즈텍 신화에 기인한 멕시코 사후세계는 누구든 일단 죽으면 망자의 땅에 가기 위한 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일찍이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특급열차로 한방에 통과할 수도 있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터벅터벅 걸어가야 하기도 한다.
게임 속 주인공 ‘마누엘’은 죽은 이의 인생을 평가하고 적절한 교통편을 제공하는 사신이다. 말이 사신이지 완전 영업사원이나 마찬가지라 어떻게든 실적을 올리려 전전긍긍하기 일쑤. 이렇게 다들 사후세계에서도 생전과 다름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 누그러뜨리는 힘이 있다. 마침 개봉을 앞둔 ‘코코’와 통하는 면이 있으니 한 번쯤 즐겨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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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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