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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을 장려하고 악은 징계함)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그만큼 창작물에서 자주 차용되는 주제의식이다. 누가 정의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고 적을 처단하는데 망설일 이유도 없다. 그저 최후에는 선이 승리하리란 희망적인 메시지와 단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면 그뿐이다.
1981년 첫 선을 보인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나치를 다룬 창작물이 으레 그렇듯 전형적인 권선징악 이야기다. 근육질 미군 대위가 양 손에 기관총을 들고 나치를 싹 쓸어버리는데 더 어떤 대의명분이 필요할까? 그러나 시대가 흐르고 입체적인 서사를 강조한 게임이 속속 등장하며 ‘울펜슈타인’은 점차 구시대적인 IP로 전락해갔다.
▲ 나치 쏘는데 이유가 필요해? 지나치게 단순했던 고전 '울펜슈타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러한 평가를 반전시킨 것은 머신게임즈가 만들고 베데스다가 유통한 2014년작 ‘울펜슈타인: 뉴 오더(이하 뉴 오더)’였다. 앞서 ‘리딕 연대기’와 ‘다크니스’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던 머신게임즈는 ‘울펜슈타인’과는 연이 없어 보였던 깊이 있는 서사를 보여줬다. 그렇다고 무슨 ‘나치도 사실 좋은 녀석들이었어’같은 헛소리는 아니고, 절대 악에 저항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
지난 10월 말 출시된 ‘울펜슈타인 2: 뉴 콜로서스(이하 뉴 콜로서스)’는 ‘뉴 오더’에서 곧장 이어지는 직계 속편이다. 이미 전작으로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부활한 ‘울펜슈타인’이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는 중요한 대목. 과연 머신게임즈는 다시금 성공했을까?
▲ 무대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울펜슈타인 2: 뉴 콜로서스' (영상출처: 게임 공식 유튜브)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 더욱 악랄해진 나치
‘뉴 콜로서스’는 전작 ‘뉴 오더’ 엔딩에서부터 시작된다. ‘데스헤드’ 장군과 일전에서 승리한 주인공 ‘블라즈코윅즈’는 죽은 것처럼 보였으나 동료들의 지극한 간호로 가까스로 회생한다. 하지만 과거 턱을 날려버렸던 나치 여장교 ‘프라우 엥겔’이 공중전함을 이끌고 추격해오는 위기일발. 한차례 승리를 거뒀지만 여전히 정말적인 상황에서 한 때 나치의 최대 적수였던 미국으로 건너가 흩어진 저항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이번 작의 주된 내용이다.
‘울펜슈타인’을 얼마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느냐는 다분히 나치를 죽일 때 느끼는 통쾌함에 달렸다. 사실 한국인은 나치를 미워할 이유가 딱히 없는데 ‘뉴 콜로서스’는 플레이어가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도록 나치의 악랄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군부 2인자쯤 되는 ‘데스헤드’를 처단했음에도 나치는 여전히 세계의 패자이자 독보적인 군벌로서 잔학한 짓을 일삼는다.
▲ 초반부터 아주 그냥 나치가 쏘고 싶어서 참을 수 없게 만들어준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여기에는 뛰어난 연출과 악역 연기,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그래픽이 주효했다. 전작에서도 나치 치하 유럽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디자인과 그래픽이 호평이었는데, 이제는 id 테크 6 엔진으로 갈아타면서 그야말로 시각적인 충격을 선사한다. 핵미사일 직격으로 초토화된 뉴욕과 온통 나치 상징으로 도배된 뉴 멕시코의 풍경은 그 어떤 장문의 설정보다 효과적으로 ‘울펜슈타인’ 세계를 플레이어에게 주입한다.
이것은 ‘인간’ 블라즈코윅즈에 대한 이야기다
‘뉴 오더’는 표면적으로 고전 FPS에 착안한 직관적이고 호쾌한 액션이 주목 받았지만 그 내면에는 이전 시리즈에서 볼 수 없던 강렬한 휴먼 드라마가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해외 게임 커뮤니티 네오가프에서 ‘하프라이프 이후 최고의 싱글플레이 캠페인’이란 극찬을 받으며 그 해 유저가 꼽은 FPS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의외로 슈팅 이상으로 스토리텔링이 호평을 받았던 '뉴 오더' (사진출처: 영상 갈무리)
고전 ‘울펜슈타인’ 속 ‘블라즈코윅즈’가 어떤 적 앞에서도 눈 하나 꿈쩍 안하고 총구를 겨누는 강철 같은 사내였다면, 현재 방향성은 그의 인간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 여전히 초인적인 근력과 인내심, 소명의식을 지닌 베테랑이지만 동시에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하고 동료의 죽음에 애달파하는 한 명의 인간 ‘블라즈코윅즈’를 보여준다.
‘뉴 오더’가 물꼬를 텄다면 ‘뉴 콜로서스’는 그 폭과 깊이를 한층 확장시킨다. ‘블라즈코윅스’는 연인 ‘아냐’가 임신한 가운데 과거 아버지에게 당한 학대를 떠올리며 부모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동시에 어릴 적 함께 놀았던 흑인 소녀를 추억하고 왜 나치와 싸워나가야 하는지 되묻기도 한다. 가정폭력에서 출발한 상념은 인종차별, 테러리즘 등 다소 민감한 주제로 이어진다.
▲ 천하무적 나치 사냥꾼 '블라즈코윅즈'도 한 때는 여린 소년이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울펜슈타인’이 35년 넘게 이어오는 동안 ‘블라즈코윅즈’를 이렇게까지 조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인에게도 관심을 아끼지 않는데, 매 스테이지 사이마다 근거지를 돌아다니며 동료들의 재미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체스를 두다가 한쪽이 소리를 지르며 판을 뒤엎고 누군가는 수세식 변기를 보고 감격해 눈물 흘린다. 정말이지 FPS를 하면서 이렇게 많은 NPC가 기억에 남고 정감 가기는 처음이다.
물론 가장 끝내주는 순간은 나치를 쏘는 것
당연한 얘기지만 FPS의 가장 큰 미덕은 총을 쏘는 손맛이다. 매력적인 서사는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것이고, 일단 나치를 쏘는 게 재미있어야 ‘울펜슈타인’ 아니겠나. 이번 작은 기본 총기가 대폭 추가됐을 뿐 아니라 한정적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중화기도 네 종류나 돼 마음껏 화력을 뽐낼 수 있다. 발포 시 물리효과와 음향도 굉장히 훌륭해서 총알 한 발 한 발이 알알이 적의 사지를 분쇄하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단 비위가 약하다면 조금 힘겨울지도.
▲ 하도 사지가 터져 나가서 기사에 쓸 사진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모든 총기는 기본적인 성능 외에 스테이지 곳곳에서 획득한 업그레이드킷으로 강화가 가능하다. 가령 샷건 ‘쇼크해머’는 ‘도탄’ 업그레이드를 하면 탄환의 파편이 퍼져 사각지대에 숨은 적들까지 처리할 수 있다. 근접무기도 단검에서 손도끼로 바뀌며 비중이 대폭 늘었는데, 작중 ‘블라즈코윅즈’가 도끼질이 무엇인지 아주 제대로 보여준다. 이야기보다는 전투에 초점을 맞춰 게임을 고르는 플레이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액션 품질이다.
다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총기 무쌍을 펼치려 한다면 살아있는 순간보다 로딩화면을 마주하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다. ‘울펜슈타인’ 시리즈는 잠입액션 장르의 시초로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기조를 이어받아 ‘뉴 오더’와 ‘뉴 콜로서스’도 적당히 은신을 병행해야 진행이 수월해진다. 특히 이번 작은 중반까지 ‘블라즈코윅즈’의 체력이 50밖에 안되기 때문에 더욱 몸을 사려야 한다. 여기에 스테이지가 넓고 여러 루트를 마련해두어 다양한 방식을 공략할 수 있다.
▲ 전작보다 초반에 좀 어렵다. 무작정 돌격하기보다 몰래 다가가 푹찍! (사진출처: 게임메카)
전작은 별 생각 없이 즐겨도 어느새 엔딩이었는데 ‘뉴 콜로서스’는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아 호불호가 갈릴 법하다. 기대를 모았던 세 종류의 강화장치가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것도 문제. 또한 고전 FPS의 부활을 표방하면서도 당시에 꼭 들어가던 보스전이 빠진 점은 대단히 아쉽다. ‘뉴 오더’에서 막판 ‘데스헤드’와 박진감 넘치는 보스전을 보여줬음에도, 속편은 밍밍한 교전 몇 번으로 끝을 맺는다. 부디 DLC를 통해서라도 보완해주길 바란다.
훌륭한 싱글플레이 캠페인이여 영원하리
최근 출시된 여러 대작이 멀티플레이에 편중된 콘텐츠, 정가 외에 추가 지출을 유도하는 랜덤박스(확률형 아이템) 도입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심지어 ‘모던워페어’로 FPS 서사에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 받은 ‘콜 오브 듀티’조차 갈수록 캠페인이 부실하다고 비판 받는 지경이다. 개발비가 천장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개발사가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고 중고거래에 취약한 싱글플레이 콘텐츠를 등한시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 요즘은 보기 드문 탄탄한 싱글플레이 캠페인,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사진출처: 게임메카)
이러한 가운데 등장한 ‘울펜슈타인 2: 뉴 콜로서스’는 ‘하프라이프’와 같은 옛 명작 FPS를 떠올리게 만든다. 뛰어난 슈팅 감각과 몇몇 독특한 무기 메커니즘을 갖췄고 인상적인 연출로 가득하다. 비록 리플레이에 대한 의미가 거의 없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게임의 가치를 절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메인 캠페인과 서브 퀘스트를 합쳐 20시간 정도는 매우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다. 수집 요소를 전부 모으겠다면 더 오래 걸릴 것이고.
이로서 나치의 두 장군이 쓰러졌지만 아직 저항군이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아직도 나치즘이 전세계에 퍼져있으며 그 정점에 선 총통 히틀러가 저 먼 금성 기지에 틀어박혀 있다. ‘뉴 콜로서스’ 엔딩도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라는 듯한 뉘앙스니 신작 계획은 이미 잡혀있을 듯 하다. 나치와의 기나긴 싸움이 끝나는 그날까지 ‘블라즈코윅즈’도, 머신게임즈도, 베데스다도 지치지 않고 더 훌륭한 싱글플레이 캠페인을 보여주길 바라 마지않는다.
▲ 드디어 반격의 봉화가 올랐다. 얼른 속편에서 총통 히틀러 잡으러 가자 (사진출처: 게임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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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이 가득한 게임을 사랑하는 꿈 많은 아저씨입니다. 좋은 작품과 여러분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고 싶습니다. 아, 이것은 뱃살이 아니라 경험치 주머니입니다.orks@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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