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 쏘고, 던지고. 최근에 출시된 대부분의 FPS 게임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을 발견하면 벽 등의 엄폐물에 몸을 숨기고, 살짝 나와서 총을 쏘고, 간혹 폭발형 무기를 발사하거나 던지고… 총에 맞은 적은 쓰러지고 다음 적이 나오고, 다시 몸을 숨긴 후 살짝 나와서……. 시대나 배경, 총기, 게임성 등의 차이는 있지만 플레이 방식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와중 에픽게임즈가 지난 22일 출시한 성인용 FPS ‘블렛스톰’ 은 이러한 일률적인 FPS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적을 신속히 죽이는 것만을 추구하던 기존 통념에서 벗어나 ‘어떻게 죽일 것인가’ 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물론 취향 차이가 있긴 하지만 잔혹한 쾌감을 향한 게이머들의 욕구는 예전부터 계속되어 왔다. ‘모탈 컴뱃’ 의 잔혹한 피니쉬 기술인 ‘페이탈리티’ 가 인기를 끈 것, 단순한 살상에서 모자라 신체파손 효과를 채택하는 액션 게임이 늘어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다. ‘블렛스톰’ 의 잔혹성 또한 이 같은 게이머들의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블렛스톰’ 이 잔혹함에만 초점을 맞춘 반짝 게임이라는 말은 아니다. 터프한 주인공이 펼치는 호쾌한 액션, 발 밑이 요동치는 엄청난 스케일, 매력적이면서도 간단한 무기들과 세심하면서도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전투 등의 요소는 ‘블렛스톰’ 이 단순한 일회성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인기 IP로 지속될 수 있다는 호의적 인상을 남겨주기에 충분했다.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된 쾌감을 선사하는 신작 FPS ‘블렛스톰’ 을 플레이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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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프가이(+걸)들의 통쾌하고 잔혹한 FPS '블렛스톰'
블렛스톰의 필수 요소, 전기채찍과 발차기!
‘블렛스톰’ 을 대표하는 두 가지를 뽑으라면 바로 ‘리쉬(전기 채찍)’ 와 파워풀 발차기를 들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타이틀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중요 요소이기도 하거니와, 만약 이들이 없어진다면 ‘블렛스톰’ 특유의 색깔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필수적인 기술들이다.
그 첫 번째 요소인 ‘리쉬’ 는 게임 초반부에 불행한 엑스트라로부터 얻게 되는 전기 채찍이다. 주인공 ‘그레이슨 헌트’ 의 왼팔에 장착된 장치로, ‘L2’ 버튼을 누르면 뱀처럼 길다란 전기 채찍이 전방으로 뻗어나간다. 살짝 닿기만 해도 감전될 것 같은 ‘리쉬’ 의 주 기능은 M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는 것이 아니라 중거리의 적이나 물건을 낚아챈 후 끌어당기는 ‘이리와!’ 액션이다. ‘리쉬’ 는 똑똑해서 대충 방향만 맞으면 적이나 물체를 자동으로 쫓아가 휘감는데, 이 때 누르고 있던 ‘L2’ 버튼을 떼면 마치 낚시를 하듯 채찍을 휙 하고 낚아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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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좋은 채찍이다
위 설명을 듣다 보면 ‘총도 있는데 그냥 쏴 죽이면 되지 왜 피곤하게 적을 낚아채고 난리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아무튼 ‘리쉬’ 는 전투에서 엄청나게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유는 세 가지다. ‘블렛스톰’ 의 적들은 일반적인 FPS에 나오는 병사들보다 훨씬 맷집이 강해서 총 몇 방으로는 잘 죽지 않는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끌려온 적을 강제로 슬로우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 두 번째, 저 멀리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적도 슥삭슥삭 잘 찾아서 낚아챈다는 것이 세 번째 이유다. 예를 들어 보자.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어중간한 거리에서 적 세 마리가 총을 발사하고 있다. 돌격소총으로 조준 사격을 하면 그럭저럭 대응할 수 있을 법 한데, 인공지능이 좋은 건지 무너진 벽 위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공격하다가 다시 쏙 들어가는 식의 지능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 때 ‘리쉬’ 가 등장한다. 벽이건 뭐건 일단 ‘리쉬’ 를 쭉 하고 발사하면 적 한 마리를 자동으로 잡아서 끌고 온다. 코앞까지 끌려온 적은 강제로 슬로우 상태에 빠진다. 가까이에서 둥실둥실 떠 다니는 적은 말 그대로 ‘밥’ 이니 마음대로 요리하자. 이렇게 ‘리쉬’ 를 세 번만 뻗어 주면 상황은 종료된다.
어떤가? 일반적인 FPS였으면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을 법한 상황이 아주 부드럽게 해결되었다. 이외에도 멀리 떨어져 있는 각종 오브젝트를 끌어당기거나 길을 만들고, 거대 식물이나 헬리콥터 등을 향해 발사하여 대미지를 줄 수도 있다. 게다가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면 막대한 에너지로 지면을 강타해 일정 범위 내의 적을 한 번에 공중으로 띄워 슬로우 상태로 만든 후 처치하는 ‘썸퍼’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 정말 여러 모로 유용한 채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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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채찍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리쉬’ 외에 ‘블렛스톰’ 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파워풀한 발차기다. ‘○’ 버튼으로 간단히 발동할 수 있는 발차기는 발동이 빠르고 리치와 범위가 상당하기 때문에 적이 근접했다 싶으면 일단 발차기부터 날리면 된다. ‘블렛스톰’ 의 적들은 상당히 빠르고 맷집이 세기 때문에 서너 마리가 동시에 달려오면 특수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쉽게 저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발차기는 필수다. 힘들여 달려온 적을 냅다 걷어차버리는 통쾌함은 직접 겪어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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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뭐? 단순히 근접 공격 아니냐고? 그게 또 그렇지 않다. 발차기 또한 ‘리쉬’ 와 마찬가지로 적을 강제로 슬로우 상태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발차기에 맞은 적은 힘들게 달려왔다가 걷어차이는 것도 서러운데 공중에 붕 떠서 총알받이 신세까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맵 상에 존재하는 폭발물을 적 한가운데로 걷어차 폭발시키거나, 문이나 장애물 등을 부수고, 너무 빨라서 ‘리쉬’ 로 잡을 수 없는 적을 향해 나무열매 등을 걷어차 느리게 만드는 등의 행위도 발차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또, ‘리쉬’ 로 끌어당긴 적이 너무 가까이 왔다 싶으면 발차기로 걷어차고, 다시 끌어당기고 걷어차고 끌어당기고 걷어차고 하는 재미있는 전통 꼭두각시 놀이도 즐길 수 있다. 뭐, 갖고 놀다 질리면 총알 세례를 퍼부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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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로 날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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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으로 다시 가져오고... 이것이 전통놀이 꼭두각시!
그냥 죽이면 재미 없지, 나는 아티스트!
‘리쉬’ 와 발차기는 단순히 적을 효율적으로 처치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것들의 진정한 용도는 바로 게임 속 돌연변이 괴물들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죽음’ 을 연출하는 것이다. 표현이 왠지 싸이코패스 느낌이지만 ‘블렛스톰’ 의 킬링 시스템은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죽음’ 이란 대체 뭘 뜻하는 걸까? 쉽게 말하자면 단순히 총이나 특수 무기로 사살하는 것 외에 모든 종류의 죽음을 뜻한다. 예를 들면 거대 선인장 가시에 적을 처박아 꼬치로 만들거나, 격류 속으로 떠밀어 표류시키고, 격렬하게 회전하고 있는 대형 환풍기에 집어넣어 다진 고기로 만드는 등이다. ‘블렛스톰’ 에는 이러한 죽음의 종류가 수십, 수백 가지나 존재한다. 때문에 플레이어는 단순히 눈 앞의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철근이 보이면 ‘여기다 저 놈들을 꽃아 볼까?’, 전선이 보이면 ‘여기 닿으면 감전되겠지? 어디 적 없나?’, 낭떠러지가 보이면 ‘떨어뜨려 볼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당부하는데, ‘블렛스톰’ 은 성인용 게임이다. 미성년자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유저는 플레이를 자제(아무리 게임의 폭력성 실험을 위해서라도)하도록 하자. 현실에서 따라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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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덜(?) 잔인한 감전사시키기 장면
이러한 죽음의 순간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된 ‘리쉬’ 와 발차기가 필수적이다. 적과 플레이어 사이에 굵은 철사로 얽힌 담벼락 뼈대나 노출된 전선, 혹은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식물 등이 있다면 ‘리쉬’ 로 끌려오던 적은 그 장애물(?)에 걸려 처참하게 죽게 된다. 만약 내 왼편에 선인장 가시나 절벽이 있고 전방 중거리에 적이 있다면 일단 ‘리쉬’ 로 적을 끌어당긴 후 발차기를 이용해 가시나 절벽에 처박으면 된다. 엘리베이터가 있다면 통로에 적을 몰아 넣은 후 버튼을 작동시켜 적을 납작 호떡으로 만들 수도 있다. 정 아무 것도 없으면 ‘리쉬’ 나 발차기로 적을 슬로우 상태로 만든 뒤 머리 혹은 남자의 중요한 급소(;;)를 총으로 갈기자. 그것 또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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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이 저기 숨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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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게도 단백질이 필요하죠
아, 점수 얘기가 나왔는데, ‘블렛스톰’ 에서는 적을 죽이거나 특정 행동을 할 때마다 일정량의 점수를 획득할 수 있다. 이 때 ‘창의적이고 예술적’ 인 죽음을 연출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단순히 총으로 사살하면 10점, 헤드샷이나 급소샷은 50점, 선인장 꼬치는 200점, 대폭발 몰살은 500점 등이다. 이 점수는 게임을 진행하다 만날 수 있는 ‘드롭키트’ 에서 탄환이나 무기 업그레이드, 특수 공격 차지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일종의 화폐로 사용되기 때문에 단순한 스코어 기록용이 아닌 꼭 모아야 하는 필수 요소다. 더 강한 무기와 넉넉한 탄창을 원한다면 취향이건 아니건 간에 적을 특이하게 죽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마치 ‘페이탈리티’ 의 잔혹함과 당구의 쾌감, 어려운 퍼즐을 풀 때의 희열, RPG의 재산 습득 재미를 동시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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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도 좋다
스피디한 액션과 초거대 스케일, FPS 자체만으로도 합격점
‘블렛스톰’ 의 매력은 위에 언급한 잔혹한 요소들만이 아니다. 속도감이 느껴지면서도 결코 혼란스럽지 않은 액션감, SF와 현대, 모험의 요소가 적당히 융합된 세계관과 특대 스케일 등은 ‘블렛스’ 을 질리지 않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FPS 대열에 합류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다.
먼저 스피디한 액션의 경우 ‘크라이시스’ 처럼 나노 슈트를 입은 것도 아닌데 빠르고 초인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주인공의 신체 능력이 한 몫을 한다. 기본적인 움직임이나 ‘X’ 버튼을 누른 채 전력으로 달리는 대쉬 자체도 상당히 빠르지만, ‘X’ 버튼을 두 번 연달아 누르면 발동되는 슬라이딩이 그 중 백미다. 슬라이딩을 사용하면 장애물이나 턱에 부딪히거나 스스로 멈춰서지 않는 한 마치 발에 부스터라도 장착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미끄러진다. 상쾌한 속도감은 물론, 방향 전환도 가능하기 때문에 마치 FPS 필드에서 봅슬레이라도 하는 느낌이다. 슬라이딩은 거대 보스와의 전투에서 적의 공격을 빠르게 피하는 데는 물론, 몸을 숨긴 적에게 순식간에 다가가거나 위급 상황에서 재빨리 대피하는 등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점프 기능이 없고 이동 불가능한 지역(난간이나 낮은 절벽 근처의 보이지 않는 벽 등)이 많아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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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할 땐 슬라이딩!
SF와 현대전의 특징을 적절히 조합해 놓은 듯 한 특수무기들도 ‘블렛스톰’ 의 매력을 더한다. ‘블렛스톰’ 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무기는 업그레이드를 통해 강력한 충전 샷을 사용할 수 있다. 충전 샷은 무지막지한 대미지는 물론, 다수의 적을 불태우거나 증발시켜 버리기도 하고 적을 잘라버리는 레이저를 발사하기도 한다. 거기에 저격 소총에는 수동/자동 유도기능까지 있어 독특한 재미를 더한다. 마치 현대전 총기처럼 보이는 ‘블렛스톰’ 의 무기들은 SF의 상상력은 가져오면서 생소함은 줄인, 한마디로 중도(中道)를 지키고 있다.
박력 넘치는 거대한 스케일도 ‘블렛스톰’ 의 특징 중 하나다. 우주전과 불시착, 건물 전체를 뒤덮는 거대 식인 식물에서부터 산과 절벽을 부수며 덮쳐오는 거대 바퀴(벌레 아님!), 1초를 다투는 다이나믹한 탈출 미션까지… 미션 하나하나가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고, 해결했을 때의 쾌감 또한 매우 크다. 게다가 최근 출시된 FPS 치고는 간편한 조작법, 각종 수집 요소, 곳곳에 숨어 있는 코믹한 장면(남자의 급소를 총으로 맞출 때 적들의 표정이란!)까지. 재미와 완성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것이 쉽지 않은데 ‘블렛스톰’ 은 거기에 잔혹성을 더한 충격적 임팩트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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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퀴가 굴러오는 것 만으로도 아찔하다
‘콜 오브 듀티’ 나 ‘배틀필드’ 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FPS ‘블렛스톰’,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트레스 푸는 데 이만한 게임이 또 있을까? 벌써부터 ‘블렛스톰 2’ 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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