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기억하시나요? ‘꿈’이라는 소재로 치밀한 시나리오와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전세계적으로 찬사를 받았던 명작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를 보고 온 관객 사이에서는 결말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기도 했는데요. 나중에는 이를 다른 작품에서도 오마주하거나, 수많은 패러디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작품 역시 영화 ‘인셉션’을 모티브로 시나리오가 작성된 미소녀게임 ‘하피메아’입니다.
▲ '인셉션'을 모티브로 한 미소녀게임 '하피메아'
베테랑 성우진으로 완전 무장한 개발사, 퍼플
‘하피메아’의 제작사 퍼플소프트웨어(이하 퍼플)는 1998년에 설립된 역사가 있는 미소녀게임 개발사로, 본래 자스트(JAST)의 자회사로 시작했습니다. 모회사가 도산해 사라진 이후에도 퍼플은 꾸준히 미소녀게임을 개발했고, 현재는 소위 잘 나가는 개발사 중 하나가 되었죠. 대표작으로는 퍼플의 유명세를 이끈 ‘미래 노스텔지어’와 뛰어난 연출로 호평을 이끌어낸 ‘내일의 그대와 만나기 위해’ 그리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하피메아’가 있습니다.
퍼플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하면, 탄탄한 성우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주요 작품을 살펴보더라도,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급 캐릭터까지도 미소녀게임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명 성우를 배치하고 있죠. 대표 성우로는 ‘아오야마 유카리’와 ‘카자네’, ‘카와시마리노’, ‘잇시키 히카루’, ‘아오바 링고’ 등이 있는데, 모두 미소녀게임 업계에서 13년 이상 수많은 작품에서 활약해온 베테랑 성우입니다. 이 외에도, 준수한 그래픽과 훌륭한 배경음악, 다채로운 연출 등으로 단점이라고 얘기할 부분이 딱히 보이지 않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내놓는 회사입니다.
▲ 퍼플의 대표작 '미래 노스텔지어'과 '내일의 그대를 만나기 위해'
(사진출처: 공식 웹사이트)
꿈과 현실의 세계, 과연 진짜 행복은 어디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하피메아’를 살펴보겠습니다. 2013년 발매된 ‘하피메아’의 공식 장르는 ‘달콤하고 행복한 꿈 학원 어드벤처’입니다. 게임명을 자세히 보신 분은 눈치채셨겠지만, 사실 제목 ‘하피메아’는 행복한 악몽이라는 뜻의 ‘해피 나이트메어’를 줄인 말이기도 합니다. 제목처럼, 스토리도 이러한 꿈과 현실을 두고 갈등하는 주인공을 조명합니다.
이번 작품에서 플레이어는 평소에 잠만 자면 ‘자각몽’을 꾸는 주인공 ‘나이토 토오루’의 시점으로 게임을 진행합니다. 듣기에는 특별한 능력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꿈을 꾸더라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단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만 자각할 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은 잠을 자면 항상 똑같은 장소로 가는 기묘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거기서 주인공은 악몽의 형태로 나타난 여동생 ‘마이아’와 그런 주인공을 돕는 소녀 ‘아리스’와 만나게 됩니다.
▲ 잃어버린 동생의 얼굴로 나타난 악몽 '마이아'
▲ 주인공을 도와주는 꿈 속의 소녀 '아리스'
이후, 이러한 주인공의 ‘자각몽’은 평소 친했던 ‘사키’와 ‘야요이’ 그리고 ‘케이코’와 같은 주위 인물에게도 영향을 미치면서, 나중에는 함께 같은 꿈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공유된 꿈 속에서 주인공 일행은 ‘마이아’를 피해, 온전히 꿈에서 깨어나기 위한 노력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점차 현실 세계에서도 꿈 속 인물을 보는 등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점차 꿈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위의 친구들도 꿈을 공유하게 된다
▲ 주인공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꿈을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주는 미소녀들
‘하피메아’에 등장하는 작중 인물들은 크게 꿈과 현실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꿈에서는 여동생 ‘마이아’와 수수께끼의 소녀 ‘아리스’가 대표적인 인물이고, 현실에서는 학급 친구인 ‘사키’와 ‘케이코’ 등이 존재하죠. 특히 대부분의 인물 모두 서양 동화에서 그 모티브를 따고 있으며, 현실 파트에서는 평상복, 꿈 파트에서는 귀여운 동화풍 복장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중 인물인 ‘아리스’, ‘마이아’, ‘야요이 B 루트윗지’ 등은 각각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 체셔 고양이, 하트 퀸에서, ‘히라사카 케이코’는 ‘피터팬’에 나오는 팅커벨에서 모티브를 따온 걸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나이토 토오루: 이번 작품의 주인공. 평소 ‘자각몽’을 꾸기 때문에, 항상 수면부족과 피로에 시달린다. 맨날 얼굴을 찡그리고 있기 때문에, 친구도 적은 편이다. 과거 동생을 잃어버린 일에 대한 극심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어쩌다가 여동생이 실종됐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 하스노 사키: 주인공의 소꿉친구로 여동생 ‘마이아’와는 동갑이다. ‘마이아’가 실종된 후로 정신적으로 무너진 주인공을 지지해주려고 스스로 여동생을 자처하며 열심히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뭐든 불사할 자세.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공이 사는 맨션도 사키가 구해준 것이다.
▲ 히라사카 케이코: 부잣집 외동딸이지만, 자신을 속박하는 집이 싫어 몰래 길거리 라이브를 하는 것이 취미. 라이브 중 비를 맞고 있는 걸 우연히 본 주인공이 집으로 데려가면서 친분이 생겼다. 직설적인 표현을 스스럼없이 내뱉지만, 사실 따듯한 성격을 지녔다.
▲ 야요이 B 루트윗지: 영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의 혼혈로, 주인공을 놀려먹는 것을 취미로 삼는 히로인. 마이페이스에 항상 당당한 성격이지만, 사실은 혼혈이라는 점 때문에 어렸을 때 큰 상처를 받고 소심했던 과거가 있다.
▲ 토리우미 아리스: 꿈 속에서 등장한 2명의 히로인 중 한 명이다. 굉장히 사교적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밝은 모습을 유지한다. 이는 평소 생각이 없다는 점과도 연결되며, 상황에 몰리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으로도 표출된다. 외모가 주인공의 이상형이다.
▲ 나이토 마이아: 주인공과 어렸을 때 숲에 놀러 갔다가 실종된 여동생. 주인공의 자각몽 안에서만 존재하며, 언제나 여유롭게 상대를 괴롭히거나, 놀려먹는 걸 좋아한다. 악역 포지션을 자처하고 있지만, 주인공을 끔찍하게 아끼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가려는 이중성을 보인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잃은 주인공
위에서 ‘하피메아’의 시나리오 모티브는 인셉션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의 모티브이지, 작품의 배경과 캐릭터 설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피터팬’과 같은 서양 동화에서 차용하고 있습니다. 초반부에는 이런 동화풍 설정이 주인공의 ‘자각몽’ 안에서만 그려지면서, 주인공과 플레이어로 하여금 꿈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됩니다.
동화풍 복장이 현실과 꿈을 구분할 수 역할을 하지만, 역으로는 이것이 혼재가 됐을 때 혼동을 초래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동화풍 복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플레이어까지 현실도 꿈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와 반대로, 평상복을 입은 캐릭터를 보면 꿈도 현실로 생각하게 되죠. 이처럼 ‘하피메아’는 이런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현실과 꿈의 혼동을 그려내며, 결국 현실과 꿈은 같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플레이어에게 던집니다.
▲ 초반부에는 복장으로 현실과 꿈을 명확히 구분하지만...
▲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에서도 '동화풍 복장'을 보게 된다
주인공의 여동생이자, 꿈의 주민인 ‘마이아’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마이아’가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바로 꿈 속 캐릭터 중 유일하게 처음부터 주인공이 현실을 버리고 꿈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초반부에는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는 ‘마이아’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치로써 작용하지만, 점점 현실인줄만 알았던 공간에서 등장하는 ‘마이아’의 모습을 통해 주인공은 점점 현실과 꿈의 경계를 잃고 혼란에 빠지게 만들죠.
▲ 꿈 속의 인물 '마이아'는 이러한 플레이어의 혼동에 큰 역할을 한다
이러한 스토리 연출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하피메아’는 텍스트보다는 시각적인 그래픽에 보다 힘을 실었습니다. 그래픽 부분에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CG는 작품 전반에 걸쳐 크게 3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히로인의 매력을 보여주는 일상 CG와 시나리오 전반을 표현하는 스토리 CG,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켜주는 꿈 파트의 CG입니다.
강한 광원 효과가 동반되는 꿈 파트의 CG는 ‘하피메아’의 분위기를 고조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일상 CG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도 포인트로, 이를 통해 몽환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를 유저에게 쉽게 각인시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CG에는 대부분 꿈 속의 주민 ‘마이아’가 대부분 등장합니다. 이처럼 ‘하피메아’는 스토리 연출과 CG를 통해, 결국 현실과 꿈은 같은 것이 아닌가라는 메시지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합니다.
▲ 몽환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CG는 스토리에 힘을 실어준다
▲ 꿈과 현실을 두고, 주인공 일행은 크게 고민하게 된다
결말 이후에도 계속 의문을 던지는 ‘하피메아’의 매력
‘하피메아’는 본편 이후, 팬디스크인 ‘하피메아 프래그먼트 드림’을 발매하여 간단한 후일담과 함께 본편에서 마무리하지 못했던 부분을 완결 짓고 끝났습니다. 특히 완결 이후에도, 퍼플 역대 최고의 흥행작답게 발매를 앞둔 차기작 ‘아마츠츠미’에도 영향을 주는 등 퍼플의 대표 작품으로 자리잡혔죠.
필자는 ‘하피메아’의 매력은 게임이 끝난 후, 유저들끼리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좋은 주제가 잡혀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인셉션’을 보고 나서 ‘현실이냐 꿈이냐’로 갑론을박을 주고 받은 것처럼, ‘하피메아’ 역시 ‘현실이 좋은가 꿈이 좋은가’로 서로의 생각을 나눌 여지를 두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부분이 좀 더 게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꿈과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여지를 주는 ‘하피메아 프래그먼트 드림’의 소개 문구로 리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깨지 않는 꿈은 없어, 하지만 결코 꿈을 꾸지 않게 되는 일도 없어”
▲ 현실과 꿈... 그 선택을 두고 플레이어를 고민하게 만든다
▲ 과연 올바른 선택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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