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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열전] e스포츠 본좌라인의 1인, 괴물테란 최연성


▲ e스포츠 본좌라인 ‘임이최마’의 한 축을 이루는 최연성

화면을 덮는 물량, e스포츠 팬들이 ‘괴물테란’ 최연성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 물량에는 단기간에 안정적으로 병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 최적화된 빌드와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여우와 같은 심리전이 있었다. 즉, 정교한 빌드로 밑바탕을 탄탄히 하고 그 위에 적의 뒤통수를 치는 노림수를 넣어 완성된 것이 압도적인 물량인 셈이다. 이러한 최연성이 사실은 ‘스타크래프트’를 그만두고 싶어 프로게이머를 시작했다면 믿어지는가? 임요환, 이윤열과 함께 e스포츠 본좌로 손꼽히는 ‘괴물테란’ 최연성의 탄생사연에 대해 들어보자.

* 본 연재는 NHN과 제휴로 네이버캐스트 '게임대백과'에 함께 게재 됩니다. [바로가기]

-게임을 그만두고 싶어 프로게이머를 시작하다

최연성은 1983년 11월에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소위 ‘게임감각’이 있었다. 동네 오락실에서 알아주던 ‘던전앤드래곤’ 원탑이었으며,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한 ‘스타크래프트’ 역시 먼저 시작한 친구들보다 두각을 나타냈다. 당시 최연성은 게임은 고사하고 채팅도 힘겨워할 정도로 PC에 익숙하지 않았다. 최연성은 “게임과 채팅을 동시에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타자를 연습하는 한메타자에서 1000타 이상이 나올 정도로 타이핑을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이러했던 그가 본인이 살고 있는 익산을 넘어 전국구 게이머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승부욕이었다. 당시 아마추어였던 최연성의 플레이를 본 프로 선수들이 ‘맵핵(전체 맵 시야를 켤 수 있는 치트프로그램)’, ‘치터테란’이라 폄하하는 반응을 보며 ‘내가 그 정도로 잘하는구나’라는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최연성은 본인의 실력을 크게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질수록 학업성적은 반비례로 떨어져만 갔다. 본인 스스로가 중독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최연성은 ‘스타크래프트’에 몰두한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로 한 번은 최고점을 찍어보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에 프로게이머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보다 더 강한 벽을 느끼면 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현재 SKT T1 스타2 팀 감독으로 활동 중인 최연성은 지금도 새로운 연습생이 오면 한 번씩 왜 게임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자기와 같은 이유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최연성과 같은 답변을 한 선수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프로게이머의 길로 들어서다, 스승 임요환과의 만남

최연성에게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을 인도해준 인물은 바로 임요환이다. 임요환과의 첫 만남에 대해 최연성은 아련하고 설렌 기억이라 회상했다. 영화 ‘타이타닉’ 마지막에 보면 배를 안내하는 선원이 활짝 웃으며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있다. 최연성이 임요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야기한 이미지가 바로 이러하다. 최연성은 “연습실에 처음 방문한 나에게 웃으며 직접 문을 열어주던 요환이 형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라고 말했다.


▲ 최연성과 임요환은 단순한 사제지간을 넘은 막역한 사이였다

연습실에 와서 치른 첫 테스트에서 최연성은 임요환에게 6번 연속 졌다. 당시 전략적인 2인용 맵으로 유명했던 ‘비프로스트’에서 임요환은 다양한 전략으로 최연성을 압도했다. 배틀넷에서 임요환을 한 번 이겼던 경험이 있어 나름 자신감이 붙었던 최연성에게는 단 한 게임도 따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최연성은 연습에 매진했다. 1년 동안 외출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는 개인전을 못하면 팀플레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두 손을 쉬는 법이 없었다. 다른 선수들이 없는 동안 최연성은 연습도 하고, 숙소도 자진해서 청소하는 성실한 면모를 보였다. 팀 내에서 막내도 아니었는데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실력과 끈기, 모든 면에서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 최연성은 즐겁게, 한편으로 성실하게 선수 생활에 임했다

임요환에 대해 최연성은 본인이 만든 전략에 맞대응 방법까지 만들어놓을 정도로 치밀했던 사람이라 평가했다. 최연성이 말하는 임요환은 전략을 하나 만들면 파훼법도 함께 알아놓는 스타일이었다. 즉, 단순히 한두 수만 보고 게임을 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따라서 본인이 생각한 대로 콤보가 맞아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기가 많았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최연성의 명경기 중 하나로 손꼽히는 TG삼보 MSL 결승전 3세트에 대한 조언을 준 사람도 임요환이다. 홍진호를 상대로 결승전을 준비 중이던 최연성은 저그가 유리한 ‘유보트’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외출을 준비하던 임요환이 툭 내뱉듯 말한 것이 바로 ‘투스타 레이스’다. 컨트롤 여하에 따라 이길 수도 있다는 말과 함께 직접 게임을 시연하며 전략을 보여준 것이다. 최연성은 이 때 경험을 토대로 결승전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연성은 에버 스타리그 2004에서 스승 임요환을 3:2로 꺾고 첫 스타리그 우승을 기록했다. 최연성 입장에서 보면 청출어람인 셈이다. 당시 임요환과 최연성은 서로 승패를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마지막 5세트까지 도달했다. 우연치 않게 5세트에서 사용된 맵은 임요환이 최연성에게 첫 테스트 때 사용된 ‘비프로스트’였다. 즉, 최연성에게 6번이나 패배를 안긴 맵에서 임요환을 꺾고 첫 스타리그 우승을 이뤄낸 것이다.

당시 결승전은 우승한 최연성도, 준우승한 임요환도 무대에서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일부 팬들은 제자 최연성의 첫 우승을 축하해주지 않고, 눈물을 보인 임요환의 태도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연성은 당시 임요환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우는 스승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 에버 스타리그 2004에서 우승한 최연성

최연성의 설명에 따르면 5세트에서 임요환이 진 이유는 실수로 탱크 하나를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은 실수 때문에 우승을 놓쳤다는 사실이 얼마나 뼈아프게 다가올 지 프로인 최연성도 직감했던 것이다. 최연성은 “내 우승을 축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마지막 결승전일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모든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부분이 아쉬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유종의 미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괴물테란의 핵심은 빌드와 심리전

2003년에 데뷔한 최연성은 그 해에 열린 TG삼보 MSL 우승을 시작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총 6번 우승을 차지했다. MSL에서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것에 이어 그간 인연이 없던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2번 우승을 차지하며, 소위 양대리그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WCG에서 금메달까지 목에 걸며 국제대회에도 본인의 이름을 올렸다.

주목할 점은 그는 개인전은 물론 단체전에서도 동일한 시기에 두각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데뷔 첫 해에 프로리그에서 5승 1패를 기록해, 첫 신인왕에 오른 최연성은 SKT T1의 오버 트리플크라운(2005년 프로리그 3연속 우승, 2006년 프로리그 전기리그 우승, 총 4연속 우승)을 견인한 주역으로 활동했다. 즉, 그는 개인리그는 물론 단체전에서도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던 인물이었다.

즉, 최연성은 선수 시절 전성기로 분류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개인리그와 팀 단위 리그를 섭렵했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최연성은 임요환, 이윤열과 함께 e스포츠 본좌라인인 ‘임이최마’에 본인의 이름을 올렸다. 


▲ 경기에 집중하고 있는 최연성

사실 선수 입장에서는 단체전보다는 내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개인리그가 우선순위에 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최연성은 개인전과 단체전에 동일하게 무게를 뒀다. 프로리그가 목요일에 있고, 개인리그가 금요일에 있다면 앞에 있는 것부터 준비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현역 시절에도 팀에서 ‘프로리그도 같이 해라’와 같은 소리는 들은 적이 없었다.

최연성이 본인의 스타일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빌드’다. 엄청난 생산력으로 ‘괴물테란’이란 별명을 얻은 최연성이 진짜 강점은 빌드다. 최연성은 매번 실전에서 예전에 한 빌드를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마치 찍어내는 듯한 괴물 같은 물량 뒤에는 자원 효율을 극대화한 치밀한 빌드가 있었다. 적의 맹공을 최소한의 투자로 막아 필요한 자원을 얻은 뒤, 탱크 위주로 맵을 장악하고 끊임없이 영역을 넓히며 중후반을 책임질 대규모 병력을 확보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빌드를 정교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판에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최연성의 또 다른 강점은 바로 ‘심리전의 대가’라는 것이다. 소위 ‘광속GG’라 불릴 정도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경기를 빠르게 포기한 것 역시 다음에 이 선수와 붙었을 때 심리적으로 지지 않기 위함이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곰의 탈을 쓴 여우 같은 플레이가 최연성의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최연성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스스로가 ‘연습량으로는 꿀려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정도다. 최연성의 소속팀인 SKT T1은 한 때 과도한 연습량으로 ‘닭장’이라는 오명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최연성은 ‘닭장’이라는 오명은 본인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고 열심히 임하지 않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최연성은 16시간 하면 주연이, 12시간 하면 조연이 되는 현실에서 프로라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리 탑 클래스에 있는 선수라도 ‘절대 연습량’을 채우지 않으면 결국은 떨어진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선수가 롱런하지 못하는 이유 역시 평소 연습량을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현재 최연성은 4~5년 간 꾸준한 연습량을 유지해왔으며, 감독을 맡고 있는 SKT T1은 이러한 연습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관중 없는 경기는 의미 없다, 도발에 숨은 진짜 의미

최연성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미디어를 잘 이용할 줄 알았다. 기자들이 ‘너무 수위가 높은 것 아니냐’고 만류할 정도로 그는 ‘도발’에 능했다. 최연성은 인터뷰를 할 때 멘트를 한 줄로 압축해달라고 기자들에게 부탁했다. 그래야 추측과 오해가 번지며 경기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경기에 대한 높은 관심은 결국 많은 관중으로 되돌아왔다. 즉, 경기 전 상대에게 심리에서 지지 않겠다는 것과 프로로서 본인의 경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그의 밑바탕에 있었다.

그가 관중에 집중한 이유는 끊임 없이 대결 요소를 넣어 사람들로부터 보는 재미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는가’를 가리는 경진대회가 아니라 ‘직접 가서 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에서 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최연성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관중은 e스포츠를 움직이는 중요 원동력 중 하나다

직설적인 발언으로 당장은 욕을 먹어도 결국 그 팬은 내 경기를 보러 온다는 것이 최연성의 생각이다.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경기를 보게 만들겠다는 최연성의 생각은 실제로 관중을 끌어들이는데 유효하게 작용했다. 이러한 최연성의 생각은 선수를 넘어 코치 시절에도 이어졌다. SKT T1의 대표 라이벌팀 KT 롤스터 강도경 감독과의 일명 미니홈피 도발은, 다소 분위기가 침체되었던 프로리그에 불씨를 붙이는데 성공했다. 특히, 강도경 감독과는 일방적인 도발이 아닌 서로 주고 받는 설전으로 이어졌다. 손바닥이 척 맞아떨어진 것이다.

특히 선수들을 이끄는 코치가 된 이후에는 소속 프로게이머들에게 도발을 주문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이나 코칭스태프 때도 항상 안타깝게 다가왔던 것 중 하나가 소위 ‘영웅만 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서로 맞붙는 두 선수가 ‘상대 선수의 실력이 월등하다’거나 ‘앞으로 열심히 하겠으니 지켜봐 달라’와 같은 판에 박힌 말만 늘어놓는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SKT T1 대표 프로토스였던 김택용에게 송병구와의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 것 역시 주목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최연성은 “택용이가 예전에 프로리그에서 100승을 달성했을 때, 팬이 5명도 채 오지 않았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물어보니 이슈를 만들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하더라”라고 언급했다.

-이윤열과 박성준, 대표적인 라이벌


▲ 최연성의 대표 라이벌, '천재테란' 이윤열(좌)와 '투신' 박성준(우)

최연성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라이벌은 ‘천재테란’ 이윤열과 ‘투신’ 박성준이다. 우선 이윤열은 최연성이 현역 시절 줄곧 ‘본인의 라이벌’로 꼽은 인물이다. 최연성과 이윤열은 2003 KTF 프로리그에서 처음 만났으며, 첫 승리는 최연성의 차지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본선에 오른 TG삼보 MSL에서 최연성은 이윤열에게 패해 패자조로 내려갔다. 패자조에서 절치부심해 다시 패자조 결승에 오른 최연성은 이윤열을 3:1로 꺾으며 바로 복수에 성공했다. 

최연성과 이윤열의 또 다른 별명인 ‘머슴’과 ‘머신’의 앞 글자를 딴 ‘머머전’은 ‘임진록’과 같이 e스포츠의 대표 라이벌전으로 손꼽힌다. 특히 서로의 장기인 힘 대 힘으로 부딪치는 화끈한 대전이 ‘머머전’의 매력이었다. 비록 상대전적은 39:13으로 압도했으나, 최연성에게 이윤열은 언제나 따라잡고 싶은 라이벌이었다.

이윤열에 대해 최연성은 “계속 라이벌로 의식했던 선수다. 예전에 게임아이 길드에서 이윤열은 길드를 대표하는 테란으로 손꼽혔다. 팀 대항전을 하더라도 테란 선수가 필요하면 윤열이부터 찾는 식이다. 그렇게 이름값을 높인 윤열이가 길드를 나가 프로게이머가 되서 랭킹 1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를 넘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테란 라이벌이 이윤열이라면 저그 라이벌은 박성준이다. 박성준은 당시 저그전 19연승, 승률 90%에 달하던 최연성을 잡고, 그의 스타리그 결승 진출을 좌절시켰다. 이후 최연성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5 결승전에서 3:0, 곧이어 열린 WCG 2006 그랜드 파이널에서 2:0으로 박성준을 꺾으며 복수에 성공한다. 

‘투신’이라는 별명답게 초반부터 매섭게 몰아치는 공격형 저그였던 박성준과 탄탄한 수비력을 기반으로 한 물량으로 승부하는 최연성의 스타일은 ‘창과 방패의 대결’을 연상시키며 흥미로운 경기 양상을 자아냈다. 최연성 역시 가장 각별했던 선수로 박성준을 꼽았다. 박성준에 대해 최연성은 “제2의 임진록 수준으로 정말 치열했던 대결구도 중 하나였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본인의 천적으로 불렸던 마재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사실 현역 시절 최연성과 마재윤은 꽤 친했다. 침체기에 접어든 마재윤에게 종족을 바꿔서 새로운 감각을 찾아보라 권한 사람도 최연성이었다. 나는 안 돼도 왠지 마재윤이라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연성은 마재윤을 유일무이하게 본인을 압도한 선수라 말했다. 최연성은 “마재윤에게는 심리와 빌드, 운영, 컨트롤 등 모든 면에서 완패했다. 승부조작에 휘말린 점은 유감스럽지만 지금까지도 내가 완전히 졌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마재윤이다”라고 말했다. 

-킹에서 킹 메이커로, 지도자로서의 삶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최연성은 선수로서 최고의 시기를 보냈다. 프로리그 강자 이미지를 유지하며 MSL 3회 연속 우승과 스타리그 2회 우승, WCG 우승 등 개인 커리어도 착실히 쌓아나가고 있었다. 2006년에 열린 제 1회 대한민국 e스포츠대상에서는 ‘최우수 선수’, ‘최우수 게임단’, ‘최우수 테란’, ‘최우수 물량’, ‘최다승’ 등 5개 부문을 석권하며 명실상부한 ‘올해의 선수’로 기록됐다. 

누구도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포스를 내뿜던 최연성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왔다. 데뷔 후, 항상 상위권에 머물던 최연성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부터 개인리그에서 8강 이상을 넘지 못했다. 여기에 가능한 모든 시간을 투자한 강도 높은 연습이 손목부상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원고를 위해 직접 만난 자리에서도 최연성은 연신 아픈 어깨를 주물렀다. 


▲ 은퇴 후 SKT T1의 코치로 자리한 최연성

실력하락과 부상, 이것이 최연성이 현역에서 내려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2008년 은퇴한 최연성은 SKT T1의 테란 코치로 자리했다. 당시 SKT T1은 박용운 감독을 사령부로 두고, 그 밑에 테란, 저그, 프로토스 별로 각각 전담 코치가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때 최연성이 발굴한 선수가 바로 정명훈이다. 2007년에 SKT T1에 입단한 정명훈은 프로게이머로 데뷔하기 전, 바둑에서 아마추어 1단까지 올라갔다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했다.

정명훈에 대해 최연성은 그릇이 되는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사실 프로게이머는 자기 플레이에 매우 보수적이라 모험적이거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빌드를 쓰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이 빌드를 위해 연습하다가 기본기가 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명훈은 이런 면에서 상당히 개방적이었다. 최연성 입장에서도 본인이 준비해둔 것을 곧잘 흡수해, 이를 응용하는 정명훈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빌드짜기에 일가견이 있던 최연성의 장점은 코치로 활동할 때도 발현됐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2008년에 열린 인크루트 스타리그 4강이다. 당시 저그 김준영을 상대로 맞아들인 정명훈은 대 저그전의 통상 빌드였던 바이오닉이 아닌 메카닉을 선택하며 눈길을 끌었다. 이 빌드가 최연성과 정명훈이 함께 준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빌드를 제시하며 선수들을 서포트하면서 최연성 코치는 ‘빌드 깎는 장인’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 정명훈은 최연성이 발굴한 대표적인 선수로 손꼽힌다

감독 및 코치 체계를 정비한 SKT T1은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6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2008년 2월부터 팀 체제를 정비해 기세를 끌어올린 것이 꽃을 피운 것이다. 당시 SKT T1을 책임진 도재욱, 김택용, 정명훈을 지칭하는 ‘도택명’ 트리오가 조명된 것 역시 이 시점이다. 이후에도 SKT T1은 차기 프로리그에도 결승에 오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후 최연성은 2011년에 입대했다. 당시에는 e스포츠 상무팀이었던 공군 에이스가 있음에도, 일반 현역으로 입대해 눈길을 모았다. 공군 에이스는 본인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후 최연성은 2013년 9월, 친정팀 SKT T1의 수석코치로 자리했다. 스승 임요환이 5개월 만에 사령탑에서 물러나고 팀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 된 최연성 역시 큰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최연성은 “요환이 형이 입대를 한 후 같이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사실 현역 선수로서 활동하는 것에 흥미를 잃은 이유가 거기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요환이 형과 있을 때는 연습실 분위기가 엄청 좋았다. 연습은 진지하게 하되, 서로 장난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지내던 행복한 연습실이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리고 최연성은 2013년 11월 6일 SKT T1의 ‘스타2’ 감독으로 선임됐다. 감독이 된 후 처음으로 맞이한 SK텔레콤 스타2 프로리그 2014의 미디어데이에서 최연성은 “우리의 목표는 한국 최고가 아닌 세계 최고다. 이번 시즌에도 이에 맞는 성적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 SKT T1을 이끄는 감독으로 자리한 최연성

그가 이끌고 있는 SKT T1은 ‘스타2’ 프로리그 2014 3라운드에서 5승 1패, 승률 85.7%로 정규시즌 1위에 올랐다. 그리고 SKT T1의 사령탑, 최연성 감독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감독 부임 후 첫 결승이었던 SK텔레콤 스타2 프로리그 1라운드 결승전에서 SKT T1은 KT 롤스터 주성욱의 선봉올킬에 4:0으로 무너진 아픈 기억이 있다. 이를 밑거름 삼아 최연성 감독, 그리고 SKT T1이 다시 한 번 찾아온 우승의 기회를 움켜쥘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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