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언컨대, 'DayZ' 는 21세기 온라인게임 장르 중 가장 하드코어한 RPG입니다
[크앙의 DayZ 기행기]
“크큭. 닝겐노 게임와 무엇인가 부족데스네”
크앙은 최근 들어 게임 불감증에 걸렸다. 높은 그래픽 덕에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한다는 게임, 타격감이 뛰어나서 한 대 칠 때마다 몸이 들썩거린다는 게임, 손맛이 찰져서 키보드 수십 대는 부숴 먹는다는 게임… 다 해봤지만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유는 스릴의 부재였다. 자동사냥, 쉬운 레벨업, 편리한 부활, 상호 협의 하에 이루어지는 안전한 PvP… 이런 시스템의 보호 속에서 자라난 온실 속 난초 게이머들이 과연 사회에 나가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주식 폭락에 평생 모은 재산이 날아가고 사업 실패로 부자집 도련님들이 길거리에 내앉는 현실. 이런 비정한 콘크리트의 정글에서, 나약한 리스폰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크앙은 한탄했다. 게임의 난이도 하락은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 사회적 문제였던 것이다.
순간, 무심히 스팀 클라이언트를 뒤적거리던 크앙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DayZ’, ‘데이즈’ 라고 읽는 사람도 있고 ‘데이-지’ 라고 읽는 사람도 있는 MORPG. 사실 그 동안 몇 번 사진을 통해 본 적은 있었는데, 딱히 관심은 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게임 소개 문구를 읽은 순간. 크앙은 ‘쎳업 앤 테이크 마이 머니!’ 를 외치며 게임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문구는 다음과 같다.
▶ ‘ARMA 2’ 의 MOD였는데 본편보다 인기가 많아 따로 나옴
▶ 세계가 멸망하고 좀비가 나오는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함
▶ PvP가 자유로우며, 죽으면 강제 캐삭(캐릭터 삭제)
이 중 특히 3번 항목, ‘죽으면 강제 캐삭’ 부분. 어떻게든 게이머를 쉽게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유저 보호 시스템을 풀가동시키는 최근의 게임과 역행하는 시스템. 그러나 이런 게임을 기다려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정말이지 완벽하게 멋지다.
▲ 정말 완벽하게 멋져
▲ 현재는 알파 버전 테스트 단계로, 유료로 참여가 가능하다
참고로 ‘DayZ’ 는 밸브의 ‘스팀’ 을 통해 유료로 다운받아 즐길 수 있으며, 현재는 알파 테스트 단계이므로 랙이나 버그가 잦고 콘텐츠 등이 미완성 단계다. 그러나 ‘죽으면 강제 캐삭’ 이라는 문구에 혹한 이에게 알파 테스트라는 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크앙은 돌이킬 수 없는 세기말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첫 번째 인생 – 피가 멈추지 않아!
게임에 접속하자 캐릭터 생성 메뉴가 표시되었다. 아직 알파 버전이라 흑인, 히스패닉, 황인, 백인의 남/녀 캐릭터만을 고를 수 있었다. 일단 크앙은 자신과 가장 비슷해 보이는 황인종 남자를 선택했다. 왠지 얼굴 생김새가 미국 드라마 ‘로스트’ 에 나오는 ‘꽈찌쭈(다니엘 대 킴)’ 와 비슷해 보여 더욱 마음에 들었다. 꽈찌쭈가 되어 게임에 접속한 크앙. ‘DayZ’ 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어. 사람도, 마을도, 좀비도, 개념도, 나의 앞길도…”
그렇다. 게임 시작 지점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시야 가득 바다와 해변, 숲 정도만 보일 뿐이고, 그 흔한 NPC나 튜토리얼, 도움말 따윈 전혀 없었다. 심지어 화면에는 UI마저 표시되지 않아, 공허한 배경을 더욱 쓸쓸해 보이게 만들었다. 아무리 봐도 세기말 분위기라기 보다는 그냥 인적 없는 바닷가에 홀로 떨어뜨려 놓은 느낌이었다.
▲ 캐릭터를 생성하고 게임에 접속하자
▲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광활한 해변가에 내던져졌다
▲ 그나마 가지고 있는 것은 옷을 제외하면 손전등과 건전지 한 개...
▲ 그리고 맨주먹이 전부다
그러나 좀비는 이런 적막한 분위기를 깨면서 확 뛰쳐나오는 법. 크앙은 주변을 조용히 살피며 서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3분쯤 걸어가자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는 길이 나왔고, 좀 더 걸음을 옮기자 민가가 몇 채 나왔다. 딱 봐도 유리창이 깨져 있고 잡초가 무성한 것이 빈 집인 것 같았다. 뭐니뭐니 해도 RPG의 기본은 빈 집(사람이 있더라도!)을 뒤져 아이템을 찾는 것 아니겠는가.
크앙은 보물상자를 열면 돈이 나오고, 무기가 나오고, 물약이 나오는 RPG의 로망을 꿈꾸며 집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찬장 안을 뒤지고, 책장과 식탁 위를 살펴보고, 계단을 올라가 화장실 구석구석을 탐색하고, 침대와 소파까지 확인한 결과 크앙은 마침내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집은 정말로 빈 집이라는 것. 무기는 커녕 쌀 한 톨도 없다.
“왜! 왜 아무것도 없는거야! 난 왜 햄보칼 수가 없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리질러 봤자 메아리만 울려퍼질 뿐. 실망한 크앙은 터덜터덜 집을 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목이 마른 느낌이 들었다. 키보드 이곳 저곳을 누르다 우연히 발견한 상태창을 열어보니 목이 마른 상태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 그렇게 걸었으니 목이 안 마르고 버틸 수 있겠어? 최소한 물 한 잔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 빈 집을 찾았는데...
▲ 안에는 정말 완벽하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물을 찾아 폐허가 된 집들을 돌아다니던 중. 저 멀리 길가에 뭔가가 보였다. ‘DayZ’ 세계에 들어와 처음 보는 물체. 왠지 맛난 음식이거나 생존에 필요한 장비, 혹은 무기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크앙은 재빨리 그 곳으로 다가갔다.
“헉! 이게 뭐야?”
크앙이 발견한 것은 길가에 누워 있는 시체였다. 왠지 브라질 축구대표팀에 몇 명씩은 있을 법한 흑인 남성이 속옷만 입은 채 죽은 채로 널부러져 있는 기괴한 모습. 주변에 살인마, 혹은 좀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좀비가 옷을 벗겨가진 않을 테니 살인마일 공산이 크다.
참고로 ‘DayZ’ 는 사용자 간의 PvP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며, ‘죽는 놈이 멍청한 놈’ 이라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다. 크앙은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일단 그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지고 있는 거라곤 고작 손전등과 건전지 뿐이었기 때문이다. 좀비라도 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크앙은 얼른 자리를 피했다.
▲ 길 끝에 뭔가 보인다
▲ 헉, 이게 뭐야!
시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 농가에 들어가 2층을 뒤지고 있던 와중, 창 밖에서 뭔가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살짝 밖을 내다보니 누군가가 옆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크앙은 그 즉시 뛰쳐나갔다. 30분 만에 발견한 사람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뒤도 생각 안하고 달려나간 것.
사실 이러한 행동은 ‘DayZ’ 에서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우연히 만난 사람이 날 해칠 경우, 죽음과 동시에 그대로 캐릭터가 삭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앙은 백치미를 풀풀 풍기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갑게 맨손으로 달려갔다.
“…”
“…”
젠장. 이 게임은 아직(혹은 앞으로도) 채팅을 지원하지 않는 것 같다. 엔터 키를 눌러도 아무 것도 뜨지 않아 도무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 다행히 그 사람도 배낭이나 모자 하나 없는 것을 보니 게임을 막 시작한 생초보 상태인 것 같았고, 크앙 역시 티셔츠에 청바지 하나 달랑 입은 추레한 모습이었기에 둘은 금새 안심할 수 있었다.
▲ 창 밖에 뭔가 아른거려서 자세히 보니...
▲ 게임 시작 후 30여분 만에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 대화 기능이 없어 서먹서먹...
“아참, 이 사람에게 아까 그 시체를 보여줘야겠어”
크앙은 새로 사귄 친구(?)를 데리고 아까 그 시체 앞으로 향했다. 뭔가 아는 것이 있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시체를 보여주자 순간 그의 몸이 움찔거렸다. 시체 앞에서 부들부들 떨던 그는 크앙이 잠시 시체의 튼실한 가랑이를 감상하고 있는 찰나, 반대 방향을 향해 전속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긴, 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시체를 보여주며 요상한 곳을 바라보고 있으니, 도망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전속력으로 지평선을 향해 뛰어가는 그를 본 크앙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이 상황에 대한 납득. 그리고 ‘아, 이 게임 달리기 기능이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동료가 될 뻔한 사람을 떠나보낸 것은 아쉽지만, 지금 중요한 건 한 병의 물이다. 지금까지 10여 채의 빈 집을 뒤져 봤지만, 마실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는 열리지 않고, 그렇다고 바닷물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 어쩔 수 없이 다른 집을 뒤지기 위해 길을 따라 여행길에 올랐다.
몇 분이나 뛰었을까? 목마름이 더욱 심해져 슬슬 위험 수준에 다다를 무렵, 저 멀리서 인간의 실루엣이 보였다. 날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설마 아까 그 사람인가? 아니면 또 다른 유저? 아마 초보자를 도와주지 못 해 안달이 나 있는 착한 사람일거야. 날 도와주려고 입에 게거품까지 물고 저렇게 맹렬히 뛰어오는 것을 보니… 잉? 게거품?
“곩곩곩곩!”
“아, 좀비다… 좀비!!!??”
▲ 뭔가 움찔대는 것 같더니...
▲ 크아앙!
착한 유저는 개뿔!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던 비주얼의 정체는 바로 좀비였다. ‘DayZ’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는 좀비. 그것도 날 향해 무한 애정을 표시하며 저 멀리서부터 달려온 무시무시한 좀비. 피부는 거무죽죽하고 옷은 후줄근한 게, 왠지 노숙자 삘이 난다. 가만… 노숙자?
“이거… 이길 수도 있겠는데? 어디~”
퍽
“곩곩곩곩…”
오? 무심코 내질러 본 주먹이 의외로 효과가 있다. 가만히 보니 좀비가 되기 이전에도 할아버지였을 것 같다. 잘 하면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크앙은 좀비를 마구 때렸다. 수십 번 주먹을 내지르자 좀비가 쓰러졌다. 그 사이 좀비에게 몇번 할퀴어서 피가 조금 나긴 하지만, 뭐 이 정도야 그리 아프진 않으니까 괜찮겠…
<피가 옷을 적십니다>
<피가 계속 납니다>
<피난다고 임마>
▲ 만만해 보이는 좀비의 모습에 주먹을 휘둘러 보았다
▲ 어떻게든 쓰러뜨렸지만, 좀비의 공격에 적중당하고 말았다
맙소사. 살짝 긁힌 상처인 줄 알았는데 피가 멈추지 않는다. 원래 게임에서는 이럴 경우 HP만 살짝 깎이고 마는 거 아니야? 이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약을 발라야 하나? 아니면 붕대? 예비군인가 민방위인가에서 가르쳐 줬는데, 어떻게 하더라 이거? 그렇지. 먼저 출혈점으로부터 심장 쪽을 붕대로 동여 매고……
“부… 붕대가 없어”
그렇다. 게임 시작 후 30분 가량 빈 집을 뒤졌으나 크앙이 주운 것은 고작 소화기 하나와 책 한 권 정도. 소화기는 몽둥이 용도로나 사용할 수 있었으며, 책은… 어디다 써? 어떻게든 붕대나 약, 혹은 음식을 구해야겠다. 그러나 가도가도 아이템은 나오지 않았고, 표지판에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만 쓰여 있다. 일단 표지판에 표시된 길을 향해 걸어 봤지만… 점점 눈앞이 흐릿해졌다.
▲ 피가 흘러 옷을 적시는 것이 느껴진다
▲ 가진 게 없으니 일단 지혈제를 찾아 움직이자...
▲ 근데 이 게임... 언제부터 이렇게 채도가 낮았지?
“어…? 이 게임 흑백 게임이었던가? 왜 이렇게 어둡지? 설마 해가 진 건…”
그러나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해를 쳐다봐도 더 이상 눈이 부시지 않았다. 사물의 윤곽이 흐릿해지고, 색감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서도 가슴에서 나오는 피는 계속 옷을 적시고 땅으로 흐른다.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you dead>
▲ 상처에도 불구하고 지혈 없이 움직이던 꽈찌쭈는 결국...
▲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그렇게 40여분에 걸친 꽈찌쭈의 짧은 인생은 끝이 났다. 사인은 출혈 과다. 무기도 없이 좀비와 싸우고, 피가 흐르는 상처를 방치해 둔 것이 치명적이었다.
두 번째 인생 – 계단은 필요없다, 점프!
뭣도 모르고 ‘DayZ’ 세계에 뛰어들었던 크앙은 총 한 자루, 물 한 통 손에 넣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분신이었던 꽈찌쭈 캐릭터는 죽어 사라졌으며, 소화기 등의 아이템이나 경험치(있는지도 모르곘지만)도 모두 날아갔다. 말 그대로 완전한 죽음이었다.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캐릭터를 생성해야만 한다.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게임의 맛도 못 봤는데! 남자가 ‘DayZ’ 를 시작했으면 샷건 한 방은 쏴 보고 죽어야지. 결국 크앙은 두 번째 캐릭터를 생성했다. 이번엔 좀 더 생존 지식이 뛰어나 보이는 백인 남성 캐릭를 골랐다. 마치 ‘인간 대 자연’ 에 등장하는 만능 서바이버 ‘베어 그릴스’ 를 닮은 듯 했다.
▲ 또 한 번의 시작
▲ '베어 그릴스' 로 환생한 크앙. 당연하겠지만 첫 번째 캐릭터 '꽈찌쭈' 의 아이템은 계승되지 않는다
베어 그릴스로 환생한 크앙은 전생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 하에 전력으로 빈 집을 뒤졌다. 물론 좀비와 만날 경우 36계 줄행랑을 친다는 대전제를 깔고 움직였고, 덕분에 죽지 않고, 약 30분 넘는 시간 동안 살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결과 크앙은 집의 대문이 열려 있는 집은 이미 누군가가 털고 지나갔을 확률이 높으며, 문이 닫혀 있는 집에는 유용한 아이템이 놓여 있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탐색을 시작한 지 40여 분 만에 크앙은 여벌의 옷과 헬멧, 가방, 소화기 등을 획득했으며, 캔 주스도 하나 찾아 마셨다. 참고로 아이템을 찾은 집에서 나올 때는 다른 유저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꼭 문을 닫고 나왔다. 나름 친절한 남자니까.
이번에 환생한 베어 그릴스는 꽈찌쭈와는 달랐다. 그는 절대 오기를 부리지 않았다. 좀비를 발견하면 빙 돌아 피해 갔으며, 저 멀리에 좀비 비스무리한 것만 보여도 일단 몸을 숨겼다. 그는 철저한 서바이버였다. 다만, 뜨거운 햇살 아래 바삐 움직이면서도 고작 조그마한 캔 주스 하나밖에 못 마셨기에 심하게 목이 마른 상태였다. 거기에 슬슬 배도 고파왔다.
▲ 두 번 죽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시작한 두 번째 인생
▲ 가려는 길을 꼼꼼히 체크해 좀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근의 집을 모두 뒤진 크앙은 해안선을 끼고 달려 보기로 결정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아이템이 풍부한 대도시가 나올 것이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도시는 해안가에 위치하고 있으며, ‘DayZ’ 의 전신이 된 ‘ARMA 2’ 라는 게임은 현실 반영을 기가 막히게 한 작품이다. 바다를 오른 편에 둔 채, 크앙은 달리기 시작했다. 진정한 로드 버라이어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뛴 지 15분 후…
“헉헉…… 어디까지 가야 마을이 나오는 거야……?”
그렇다. 앞서 설명했듯 ‘ARMA 2’ 는 실제 동유럽 지역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기로 유명한 게임이었다. 때문에 맵의 사실도는 물론, 규모마저 현실을 십분 반영했다. 한마디로 더럽게 넓다 이 말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게임에는 다양한 탈 것도 존재한다던데, 크앙이 가진 것은 오직 두 다리 뿐. 달린다! 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그러나 땡볕에서 계속 뛰다 보니 백만불짜리 다리는 미국 달러가 아니라 짐바브웨 달러로 계산해야 할 만큼 그 효율성이 낮아졌다. 더 뛰다간 이대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 순간 눈 앞에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사실 처음엔 신기루인 줄 알았다. 눈앞도 살짝 흐릿해진데다가, 그래픽 로드 랙으로 인해 갑자기 마을이 ‘뿅’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 계속해서 뛰다 보니
▲ 마을이 뿅
▲ 씐난다!
크앙은 오랜만에 만난 마을을 보고 감회에 젖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냉정함을 잃진 않았다. 조용해 보이는 마을 속에 좀비가 숨어 있을 확률이 없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단 탐색부터 시작해야 했다. 몇 집을 뒤지면서 마을을 훑어보고 있는데, 역시나. 뭔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자세히 보니 동작이 빠릿빠릿한 것이 좀비는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다가가자 그 인영 역시 크앙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조금 멈칫하더니, 이내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훗, 본좌의 딥 다크한 마력을 눈치챈 것인가. 현명하군. 하지만 놓칠 내가 아니지!”
도망치는 사람이 있으면 따라가 잡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 크앙은 음흉한 미소와 함께 도망자의 뒤를 쫓았다. 쫒는 이유도 없이 말이다. 1~2분간의 추격전이 계속되었지만, 달리는 속도가 같은 상황에서는 앞에서 도망가는 사람이 불리할 수 밖에 없다. 둘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혀졌고, 이윽고 그는 한 건물 앞에 서서 도주를 포기했다. 대신, 어깨에 메고 있던 삽을 손에 쥐었다.
퍼억
“헉, 뭐야!”
방심하고 있던 사이 당한 선공. 그는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삽으로 베어 그릴스의 어깨를 후려쳤다. 이런 ㅈㄹ(욕이 아닙니다. 관련기사 참조)같은! 크앙은 뒤로 재빨리 물러서며 어깨에 메고 있던 소화기를 손에 쥐고 그의 머리통에 움푹 파인 홈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이 놈은 비를 맞으면 갓파(일본 요괴)처럼 머리에 물이 고일 것이다.
▲ 일단 무기로 쓸 소화기는 하나 챙겼고...
▲ 뭔가 움직이는 물체 포착
▲ 이봐 대화 좀....
▲ 갑자기 덤벼든 삽 괴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렇게 삽갓파를 해치운 크앙. 그런데, 삽으로 얻어맞은 어깨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왠지 꽈찌쭈의 사인이 생각났다. 출혈과다. 그 순간, 머릿속에 ‘맥가이버’ 의 BGM이 흐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언제나 이렇게 말하셨지… 주변의 사물을 적절히 이용하면 뭐든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이야!”
크앙은 아까 혹시나 해서 주워 두었던 헌 티셔츠를 꺼내 세로로 찢기 시작했다. 북북! 북북! 그러자 티셔츠로 만든 간이 붕대가 만들어졌다. 그 붕대로 상처를 동여매니 새어나오던 피가 멈췄고, 곧 있으니 훌륭하게 지혈이 되었다. 역시 티셔츠는 좋은 단백질원… 아니, 붕대원료다!
▲ 삽에 맞은 자리에서 피가 계속 나온다
▲ 티셔츠를 찢어 만든 붕대로
▲ 열심히 붕대를 감아 지혈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맥가이버라도 여전히 물은 구할 수가 없었다. 정말 베어 그릴스였다면 바닷물을 증류해 생수를 만들 텐데. 아쉽게도 ‘DayZ’ 는 세기말 게임이지 본격 조난 서바이벌 게임이 아니었기에 그런 기능은 없었다. 목마름이 점점 심해져 머리가 핑핑 돌고 하늘이 노래지려는 찰나, 저 멀리서 무엇인가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광경, 왠지 익숙하다. 안력을 집중시켜 자세히 보니… 역시나 좀비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대충 봐도 세 마리다.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도… 도망가야 해”
그러나 이미 지친 대로 지친 상황. 맹렬하게 쫒아오는 좀비로부터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 지 자신이 없었다.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 시멘트 공장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보였다. 건물 외벽에 철골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있는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 같다. 설마 좀비놈들이 사다리를 타는 고급 행동을 할 수는 없겠지… 하는 생각에 크앙은 시설물을 향해 달렸다.
철컹철컹(이 소리는 아청법 위반으로 은팔찌 차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다리 오르는 소리입니다)
▲ 목이 말라서 서서히 현기증이 나는 상황인데
▲ 맙소사! 좀비가 덮쳐 온다
▲ 도... 도망가자. 왼쪽에 공장이 있으니 그 곳으로...
‘DayZ’ 의 베어 그릴스, 크앙의 판단은 옳았다. 좀비는 사다리를 올라오지 못하고 밑에서 어슬렁거리다 버그처럼 사라졌고, 크앙은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다른 좀비가 쫒아오진 않을까, 혹은 구조물 위에 유용한 아이템이 떨어져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구조물 위를 한참 살펴본 크앙은 이내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목표는 해안선 끝에 있을 대도시!
“자 이제 내려가야지~”
풀쩍~
<you dead>
▲ 역시 좀비는 사다리를 올라오지 못하는군
▲ 좋아 좀비를 따돌렸으니 내려가 볼까? 폴짝
▲ 사망
어……어?? 어어어어??? 갑자기 화면이 컴컴해지더니 사망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좀비를 쫓아내고 안심한 크앙 군. 그러나 사망에 이르고 마는데! 5미터 높이의 철골 구조물에서 안전 장비도 없이 뛰어내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섣부른 점프는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뭐야 이게… 이승탈출 넘버원이야?”
사다리 앞에서 내려가는 법을 몰라 그대로 뛰어내렸는데, 낙하 대미지로 죽은 것이다. 그렇게, 나름 배낭에 헬멧에 소화기까지 들고 있던 베어 그릴스는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 이것은 분명 삽갓파의 저주다.
▲ 나름 용맹한 소화기 전사였으나...
▲ 발을 잘못 디뎌 사망했습니다
크앙의 ‘DayZ’ 기행기는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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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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