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를 구독하고 계신 모든 분,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제가 요즘 그렇고 그런(?) 미소녀 게임을 열심히 개발하느라 좀 바빴습니다. (이참에 홍보하자면 ‘아이돌 파라다이스’라고 말이죠..자, 바로가기 눌러 보실까요)
바쁜 일정 탓에 부득불 졸필을 이어나가지 못한 변명을 하자면, 개발 일정으로 곤죽이 되어버린 제 뇌가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미소녀 이야기를 다뤄내길 자꾸 거부하는 게 아닙니까!! 담당 기자님의 채근은 갈수록 심해지고, 진퇴양난에 빠져 새벽에 카페인을 흡입하던 중 끝내 이런 악수(惡手)를 빼들고 말았으니…….그것은 바로 마카로니 웨스턴.
여러 말 할 것 없이 본론으로 냅다 들어가 버리도록 하겠습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이란 무엇인가
서부개척시대를 다룬 영화를 우리는 서부극이라고 부릅니다. 시대적 배경 때문에 미국의 영화 장르라고 볼 수 있지만, 딱히 미국에서 제작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던 B급 서부극을 ‘마카로니 웨스턴’이라고 지칭하는데, 미국 서부극보다 더 피가 튀고 살이 튀는 속칭 ‘쌈마이(3류)’ 연출이 특징이었죠. 대표작으로는 ‘석양의 무법자’, ‘황야의 무법자’ 또는 ‘석양의 건맨’이 있습니다.
정의를 관철하는 것보다 쌈마이한 무법자 쪽을 더 부각시킨 장르였는데요. 정신이 나간 연출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세기의 스타로 만든 작품군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마카로니 웨스턴을 언급하게 된 이유는 이번에 리뷰할 미소녀게임 탓입니다. 알 분은 이미 짐작하셨을 그 이름은 빠람빠빠, 두구두구둥, 개봉박두!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의 미소녀게임 ‘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이하 속 살육의 쟝고)입니다.
▲ 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
그리고 다시 없을 최고의 마카로니 웨스턴, 미소녀게임 ‘속 살육의 쟝고’
‘속 살육의 쟝고’는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이하 마마마)’로 이미 대중적으로도 유명한 니트로플러스 작이며, 우로부치 겐 시나리오, 니시 원화를 맡은 2007년 발매 타이틀입니다. 당시 4월 1일 만우절에 걸맞은 기획과 홍보 마케팅으로 나타나 그저 만우절 장난 중 하나으로만 여겨지던 타이틀이었는데요. 차마 예의상으로라도 미소녀라고 부를 수 없는 그림을 홍보 이미지를 보면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죠. 그런데 설마 이게 진짜로 발매될 줄이야.
참고로 여기서 나오는 ‘쟝고’는 아무리 봐도 마카로니 웨스턴의 효시를 연 작품인 영화 ‘장고(Django)’에서 따온 것이며, 주인공 이름인 프랑코 일 네로(Franco il Ner, 흑의 프랑코) 역시 영화 ‘장고’에 등장하는 프랑코 네로를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또, ‘속’을 붙여 놓으니 영화 ‘속 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의 오마주도 있지 않나 싶고요.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 ‘이름없는 사나이’를 딴 ‘이름 없는 여자’가 ‘속 살육의 쟝고’에 등장합니다. 어이쿠. 많기도 해라.
‘속 살육의 쟝고’는 유명 각본가인 우로부치 겐이 ‘사야의 노래’ 이후 오랜만에 시나리오를 집필한 게임입니다. 본인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상당한 슬럼프로 고생했던 모양입니다. 슬럼프를 극복할 요량이었는지 본인으로서도 좀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비슷한 시절 집필한 ‘Fate/Zero’와 같이 우로부치 자신에게 치유가 되는 작품이었다고 할까요.
‘속 살육의 쟝고’로 재기에 성공한(?) 우로부치는 이후 ‘마마마’라는 애니메이션을 담당하게 되면서 동심 파괴자로 등극했습니다. 최근에는 ‘취성의 가르간티아’를 집필하기도 했는데요. 잠깐, 이거 생각해 보니 지금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속 살육의 쟝고’는 우로부치 겐의 마지막 미소녀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아무튼, 이 게임은 패키지 포장을 벗기는 순간부터 실험적이다 못해 시쳇말로 “약을 빨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무려 초회판에 들어가 있는 한정 특전으로 무려 싱글 액션 피스톨 장난감을 줄 정도니까요. 나사로 고정된 손잡이 커버를 뜯어내고 그 안에 건전지를 삽입할 수 있는데, 건전지를 삽입하고 나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총구에서 불이 번쩍 나고, 소리가 “빵야빵야” 나는 그런 물건이었죠.
▲ 왜죠? 초회판 패키지에 들어가 있는 한정 특전이란 것이 왜 이런 이상한...
▲ 게다가 충격적인 인스톨 배경까지
이 원안 일러스트는 만우절 당시 선행 공개를 장식하기도 했다
살다 살다 미소녀 게임 한정 특전으로 이런 걸 받은 것은 처음이었던지라, 아직도 ‘속 살육의 쟝고’하면 이것부터 생각이 납니다. 빵야빵야!
한정판 선물에서 시작된 충격은 게임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더해집니다. 인스톨 화면부터가 옛 서부극 간판 포스터같이 충격적인 모양새인데다 오프닝, 프롤로그부터 본편까지 플레이어의 예상을 바로 꺾어 놓습니다. 여태까지의 니트로플러스 작품을 기대하셨다면 여기서 이미 모든 기대는 고이 접히고 맙니다.
지금까지 니트로플러스의 작품이 어둠의 다크한 소위 말하는 ‘중2병’같은 맛이었다면, 속 살육의 쟝고에선 그런 냄새가 별로 묻어나질 않습니다. 아, 대신 프랑코가 좀 대책이 없기는 하군요.
물론 기본 뼈대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충실히 따릅니다. 세 캐릭터가 도망가고, 쫓아가고, 분탕질하죠. 시점 및 화자도 세 캐릭터를 중심으로 계속 바뀝니다. 이 게임의 주역은 ‘세 명의 (아주 아주) 나쁜 여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자들이 나오기는 하는데 실상 극의 전개는 여자분 셋이 다 해먹습니다.
이 여자들의 실력이 얼마나 쾌감 넘치냐면, ‘기동전사 건담’의 아무로 레이가 콘스콘 대의 릭돔을 마구 때려잡은 정도로 신이 난다고 할까요. 시쳇말로 ‘순삭한다’라는 말이죠. 특히 후반부의 연타 액션으로 즐길 수 있는 대량 학살은 미소녀 게임에서는 드문 쾌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잠깐, 이거 모바일 게임에서도 써먹어 봄 직한 장치인데요?
건달물의 일종인 피카레스크(Picaresque)식으로 시나리오가 전개돼, 준법과는 담을 쌓고 범죄와 향락에 몸을 던지는 여자들의 사정 하나하나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미소녀게임이 일반적으로 추구하는 ‘모에’ 요소와는 완전히 담을 쌓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남성 플레이어가 자신을 투영할 플레이어 캐릭터도 없습니다. 타쿠로우 군이나, 류노스케 군 같은 것들 말이죠. 게다가 소위 H신도 그냥 작품의 흐름 속에서 누님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 플레이어를 불타오르게 하지는 않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
▲ 작품의 분위기는 늘 이런 식. 한마디로 열심히 미쳐 날뜁니다
▲ 이러다가도
▲ 금방 또 이상해지는
흐름이 이렇다 보니, 간단한 CG연출조차 기존 게임들과는 다릅니다. 플레이어가 화면을 바라보는 형식으로 히로인들과 ‘나’의 대화를 상정하는 게 기본이던 미소녀 게임과는 달리, 주로 화면 좌우에서 캐릭터가 나와 서로 대화하는 형태를 추구하고 있죠.
또, ‘모에’는 초저녁에 던져버리고 마카로니 웨스턴을 표방하신 작품답게 야한 CG와 건액션 CG의 비율이 대략 50:50에 달합니다. 그리고 그 둘을 빼고 나면 남는 CG가 별로 없지요. 하하하. 여기에 더해 적절한 이벤트 CG와 카메라 구도 활용, 아름다운(?) 비속어의 사용 등이 겹쳐 이 게임의 정체성에 화룡점정을 합니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좋아한 세대라면 딱 꽂힐 화끈한 내용인데, 아무래도 요즘 세대나 막상 2007년 당시의 소비층에게도 핀트가 안 맞는 면이 있었던 건 확실합니다.
반면 서부극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부분마다 이게 어디서 따온 오마주인지를 집중하며 찾는 재미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별 내용이 없는 것이 이 게임의 내용이다!
그냥 마카로니로만 끝내기엔 영 아쉬웠는지, 무대는 지구조차 아닌 가상의 행성에서 펼쳐지는데요. 왜 그런 우주 시대에 서부극 수준의 문명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조차 기가 찹니다. 뭐, 끝까지 그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결국 무대 설정 자체는 아무래도 좋았던 게 아닐까 싶어요. 정말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말입니다.
▲ 딱 봐도 이상한 외계인 악당
▲ 네잎클로버는 왜 물고 있는가
▲ 등장인물 좌로부터 ‘이름 없는 여자’, ‘리리’ ‘이라이자’
등장인물은 과감히 생략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의 관계를 파악하실 수 있게 한 번에 묶어서 보여 드립니다. 실은 이걸 봐도 뒤통수X뒤통수라는 생각밖에 안 드시겠지만, 말하자면 또 그게 내용의 전부입니다. 허구한 날 만나고 헤어지고, 손잡고 배신하고, 배신한 걸 또 배신하고.
더 많은 설명은, 쉿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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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는 사실 선택지를 어떻게 하든 크게 상관이 없는 일방통행 방식으로 진행되는데다, 어지간하면 배드엔딩으로 가지도 않습니다. 제대로만 끝나면 꽤 해피한 결말을 지켜볼 수 있지요. 우로부치가 각본가인데다 ‘Fate/Zero’와 비슷한 시절에 집필된 시나리오기는 하지만요.
미소녀는 아니지만 화끈한 육식계 미녀들이라고 할까
▲ 그렇게 서로의 미래를 함께하기로 맹세하며 해피앤딩? 믿고 말고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확실히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게임이라 그런지 ‘속 살육의 쟝고’는 개발사인 니트로플러스조차 큰 판매고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를 안겨다 줬다고 하고요. 그래도 캐릭터의 인기는 제법 괜찮았던지 피규어도 발매됐고, 품질도 좋게 나왔습니다. 특히 모 캐릭터는 가슴이 연질로 나와서 한창 화제였었다나 뭐라나.
그리고 이라이자가 그래도 좀 젊기는 합니다만, 미’소녀’ 게임이라기엔 뭔가 좀 부족합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말하면 미소녀 메카에 왜 이런 걸 올리느냐고 혼나겠지요? 하지만 게임의 패러다임은 넓으니까 이것도 ‘미’소녀 메카의 취지에 맞는 거 아니냐고 우겨 봅니다. 안 그러면 나중에도 소위 츠마계(...)는 소개도 못 해볼 거 아니에요.
▲ 매력적인 캐릭터와 매력적인 총질을!
아무튼, 그런 관계로 이 게임은 화끈하고 남자를 잡아먹는 육식계 누님들을 좋아할 분들에게 권할 만합니다. 여기에 더해 마카로니 웨스턴을 좋아할 만한 세대면 더욱 좋겠고, 총이나 건 액션을 좋아한다면 금상첨화겠죠. 어라, 왠지 권장 연령대가 좀 높아지는 것 같은 기분도 없잖아 들긴 하지만, 괜찮겠죠? 메카는 이용 연령대가 퍽 높잖아요.
‘속 살육의 쟝고’는 인제 와서 이탈리아에서 마카로니 웨스턴을 재조명한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이런 걸작이 나올까 싶은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지금 진지합니다. 궁서체입니다.
뭐, 열심히 총질하고 있는데 탄피가 튀어야 할 총들에서 탄피가 안 튄다든지, 총기 생김새가 뭔가 조금 어색해 보인다든지, 저기만 왜 3D로 덮었느냐든지 하는 불평이 없던 건 아니지만 넘기기로 하죠. 제가 생각하기에 이 게임의 최대 장점이자 단점은 특전으로 동봉된 장난감 총이니까요. 빵야빵야!
▲ 어휴, 드디어 원고 독촉에서 해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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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
2007. 07. 27
- 플랫폼
- PC
- 장르
- 비주얼노벨
- 제작사
- 니트로플러스
- 게임소개
- '속 살육의 쟝고: 지옥의 현상범'은 미국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스파게티 웨스턴'을 기반으로 개발된 게임이다. 가상의 열사 행성 '스위트워터'를 배경으로 삼은 '속 살육의 장고: 지옥의 현상범'은 50만 달러의...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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