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는 어마어마한 IP 파워에도 불구하고, 유독 게임에서는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화에 맞춰 나온 게임들은 어느 정도 흥행하긴 했지만, 이후 나온 게임들은 큰 화제를 모으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팬들이 원하는 마법 세계에서의 생활 경험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설을 보며 상상했던, 영화를 보며 눈에 박혔던 그 호그와트와 마법사 마을의 모습을 게임에서 표현하려면 어마어마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될 것이기에, 대다수 게임사들은 이에 도전하지 못한 채 해리포터 시리즈의 단편적인 모습들만 게임에 담아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이 모든 바람을 한데 담아 게임에 담아낸 호그와트 레거시가 출시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험해 본 해리포터 레거시는 완성도 높은 오픈월드를 기반으로 우리가 원했던 마법세계를 90%에 가깝게 잘 구현해냈다. 물론 10%의 아쉬움도 있지만, 0%에서 90%까지 올라온 것만 해도 대만족 아닌가. 오늘 우리는 19세기 말 활동하신 위대한 어둠의 마법사 '탐 리둘' 씨의 여정을 따라가며, 호그와트 레거시의 세계를 탐험해 보려 한다.
배울 것도 볼 것도 많은 매력적인 세계, 매 순간이 즐겁다
탐 리둘 씨의 말처럼, 게임의 주 목적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출내기 입학생이 호그와트와 마법사 사회에 적응하고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해리포터 원작 1권 초~중반부는 해리가 다양한 마법과 마법 물품, 호그와트 성의 구석구석을 보며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고, 이는 고학년이 되기 전인 4권까지도 쭉 이어진다. 봐도 봐도 신기한 게 계속 나오고, 새로운 마법과 마법약, 저주 등이 끊임없이 나온다. 나름 사기캐인 해리 포터도 여기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 3~4년이 걸렸는데, 지금 막 학교에 들어온 중도입학생인 플레이어가 단기간에 모든 마법과 아이템 등을 활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게임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이러한 적응기를 그린다. 특정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만나고, 과제를 수행하고, 교수와 소통하고, 추가 과제를 받고, 보상으로 아이템이나 공간, 마법 등을 하나하나 얻는다. 이런 과정이 짜임새 있는 퀘스트 형태로 이어지는데, 그 중간중간에 배운 마법이나 아이템 등을 마음껏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진다. 그렇게 특정 마법이나 아이템, 공간 활용에 익숙해질 무렵엔 새로운 배울 거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그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이전에 배웠던 지식들을 활용하는 식이다.
놀라웠던 것은, 자유도 높고 드넓은 데다 플레이어를 이곳 저곳으로 뛰어다니게 하는 오픈월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퀘스트 배치가 매우 친절하고 단계적으로 잘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딜 가든 그 과정 자체가 즐겁다. 메인 퀘스트를 기반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면 신통방통하게도 그에 걸맞는 퀘스트와 숨은 요소들이 근처에 쏙쏙 숨어있고, 눈앞에는 계속해서 새롭고 재미있는 마법사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호그와트 복도를 돌아다니며 볼 수 있는 움직이는 초상화와 갑옷들, 간혹 튀어나오는 유령, 호수 위를 날다 보면 간혹 보이는 크라켄 촉수, 금지된 숲을 배회하는 거미나 켄타우로스 같은 마법 생물들, 역류하는 변기, 날아다니며 일하는 도구들, 복도를 닦는 집요정, 신기한 식물들이 있는 온실, 운영은 되고 있지 않지만 눈에 확 띄는 퀴디치 경기장, 신기하고 즐거운 마을 호그스미드, 각종 유적과 동굴, 그리고 호그와트 성 곳곳에 숨어 있는 비밀의 방까지... 예를 더 들고 싶지만 여기서 그치도록 하자. 아무튼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다양한 볼거리는 오픈월드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부 지루함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씻어내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야말로 해리포터 IP의 진정한 힘이라 생각한다. 다른 게임이라면, 그 과정이 이렇게까지 재미있고 흥미롭진 않았을 것이다. 오픈월드 게임으로 유명한 GTA, 레드 데드 리뎀션, 젤다 야숨, 사이버펑크 2077 등도 이렇게까지 세계 탐험을 흥미롭게 만들지는 못했다. 설령 해리포터 시리즈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더라도, 마법사 세계의 신기한 모습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알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재미를 가져다 준다.
완성도 높은 전투와 흥미로운 퍼즐, 조금 어려울 수도?
게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많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퍼즐과 전투다. 세부적으로 보면 잠입이나 주변 환경 이용, 보물찾기, 길찾기, 미니게임 등도 결국엔 퍼즐과 전투로 압축된다. 대부분의 퀘스트는 이러한 퍼즐과 전투를 통해 완결되고, 게임적인 재미를 완성한다.
퍼즐 부분의 경우 일반적인 오픈월드나 어드벤처 장르를 즐겨 한 게이머라면 난이도는 적당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문제를 풀고, 오브젝트를 이동시키고, 상황에 맞게 마법을 써 가며 잠긴 문과 막힌 곳 등을 뚫으며 진행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보면 굉장히 흔하고 단순한 퍼즐 요소가 게임 곳곳에 숨어 있는데, 그 빈도가 굉장히 잦다. 퍼즐을 질색한다면 사실 추천하기 어려운 게임일 수도 있겠다.
참고로 기자는 굳이 나눈다면 퍼즐을 싫어하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갓 오브 워 라그나로크나 툼 레이더 리부트 시리즈를 할 때도 퍼즐 구간에서는 급격히 지루해지고 흥미를 잃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그와트 레거시의 퍼즐은 크게 짜증내지 않고 풀어나갔다. 이유는 단 하나, 퍼즐이 아니라 원작 소설이나 영화 속 마법 장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각종 마법적 장애물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풀어나가며 목적을 달성하지 않는가. 호그와트 레거시의 퍼즐 역시 다양한 마법을 활용해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무너진 다리를 복구시킨다던지, 마법 유적에 불을 붙여 문을 열고, 발판을 공중에 띄워 밟고 넘어가고, 마법의 아치 문을 통과해 가며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등이다. 퍼즐이라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부분을 마법적 경험과 묶어 거부감을 희석시킨 점은 호그와트 레거시의 놀라운 점 중 하나다.
전투는 매우 완성도가 높다. 사실 이제껏 나온 모든 해리포터 게임들에서 전투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그와트 레거시의 전투는 엄청난 수준의 박력과 액션성, 타격/피격감, 전략성, 반사 속도를 요구한다. 기본 공격부터가 팍팍 박히는 느낌을 주고, 적의 공격을 타이밍에 맞춰 배리어로 막거나 구르기로 피한 후 반격을 가하는 장면에선 카운터를 꽂는 기분이 확실히 든다.
주문 사용 이펙트는 놀라울 정도며, 주문과 일반 공격을 섞어 가며 콤보를 넣거나, 필살기 격인 고대 마법으로 적을 순살시키는 쾌감, 적의 속성이나 배리어에 맞춰 공격 방법을 변화시켜야 하는 전략적 선택 역시 매우 완성도가 높다. 난이도를 높이면 일부 전투는 거의 소울라이크 게임을 방불케 할 정도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마법 전투가 이 정도까지 스릴 넘치는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살짝 들 정도였다.
위에서 예로 든 퍼즐과 전투는 게임의 핵심 요소답게 매우 잘 만들어져 있다. 오픈월드나 어드벤처, 액션 게임을 충분히 경험해 본 게이머라면 충분히 감탄하며 플레이 할 만 하다. 다만, 해리포터 팬인 비게이머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난이도를 쉽게 맞추더라도 전투는 어렵고, 퍼즐 역시 리벨리오 마법을 통해 아무리 힌트를 찾더라도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게임의 구조를 모르는 사람에겐 저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질 만한 공략법도 많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난이도 있는 조작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감하지만, 적어도 이 게임의 난이도는 조금 더 낮게 조절되어야 하지 않냐는 의문이 살짝 남는다.
넓고 꽉 찬 오픈월드, 상호작용은 아쉬워
호그와트 레거시의 오픈월드는 상당히 넓다. 게임 제목부터가 '호그와트'이기에 기껏해야 호그와트 성하고 그 주변 정도만 구현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훨씬 방대한 지역이 담겨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에도 많이 나온 호그스미드 마을이나 금지된 숲은 물론, 그 옆의 산맥이나 계곡, 시골 마을과 유적까지 생각보다 넓은 맵 크기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맵은 일일히 뛰어다니며 곳곳에 숨겨진 마법적 비밀을 찾을 수도 있지만, 빗자루나 비행 동물을 타고 활강하거나 플루 가루를 타고 순간이동 하는 식으로 손쉽게 돌아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기존 오픈월드 게임들에서 나온 시스템들을 자신들에 잘 맞게 활용했고, 그 와중에도 불편함이나 대충 만들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다만 단점도 있다. 앞서 게임 속에서는 굉장히 다양한 할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 조금 더 보충설명을 하자면, '할 것' 목록엔 퀘스트와 탐색거리는 포함되지만 일상 생활이나 평범한 학교 생활 등은 들어 있지 않다.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잠자리에 든다던가, 연회장에서 식사를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다양한 책을 읽고,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구해주고, 유령이나 초상화들과 이야기하는 과정 말이다.
게임 내에서 이러한 일상적 행위는 아예 없거나, 아주 간단히 맛만 보여주고 지나가버린다. 호그와트나 마법사 마을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NPC는 주인공을 본체만체 무시하며, 말도 걸 수 없다. NPC를 상대로 공격도 못 하고, 바로 옆에 위력적인 마법을 쓰더라도 쳐다도 보지 않는다. 친구와의 우정 역시 극히 일부 NPC와 퀘스트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수업도 초중기 퀘스트 몇 차례에서 맛만 보여줄 뿐이다. 24시간 뽈뽈대며 돌아다니는 주인공에겐 기숙사 침대는 왜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활용도가 없으며, 도서관은 그저 퀘스트 장소일 뿐이다. 다양한 마법적 소품과 사물이 많지만, 마법이 통하는 사물은 극히 한정돼 있다.
사실, 호그와트 레거시 출시를 기다리며 기자는 '인적 드문 곳에서 학생들을 몰래 죽이고 다니는 어둠의 마법사!'나 '호그와트를 멸망시키겠다!' 같은 상상을 했다. GTA나 젤다 야숨, 스카이림 같이 자유도가 높고 프리 시나리오에 가까운 게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는 ‘오픈월드’라는 것이 특정 장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예로 든 몇 가지 대작들로 인해 일종의 장르적 편견이 생겨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그와트 레거시는 위쳐 3나 스파이더맨 등과 더 가까운 액션 RPG로 봐야 한다. 어디까지나 공격 가능한 '적'은 정해져 있고, 지켜야 할 '사회적 룰' 안에서만 움직인다. 그리고 메인 퀘스트 수행의 중요성이 다른 오픈월드 게임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 보니 너무 막 나가는 행동은 시스템적으로 막혀 있으며, 완성도 높은 메인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대신 스토리적 자유도가 조금은 낮은 편이다.
이는 좋거나 나쁘다고 단언할 수 없는 문제다. 모든 오픈월드 게임이 행동의 자유도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실제로 미성년자인 호그와트 학생들을 향해 용서받지 못 할 저주를 쓰는 장면은 호그와트 레거시가 풀어가고자 하는 스토리적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다만, 주변과의 상호작용이 부족한 점과 소소하지만 좀 더 해보고 싶은 마법사 사회에서의 일상 생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것은 분명한 약점이다.
스토리는 매력적이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겠지만, 원작 주인공 해리 포터처럼 호그와트 레거시의 주인공 역시 무언가 선택받은 존재다. 기왕 들어온 마법 학교에서, 나 자신이 특별하다는 점을 싫어할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우수함이 너무 지나친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해리 포터도 못 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했건만, 5학년 도중 입학한 주제에 몇 달만에 모든 수업을 다 따라잡은 것도 모자라 그 이상의 성취를 올리는 초천재 주인공의 행보를 보면 정이 들진 않는다. 비록 원작자 조앤 롤링이 최근 여러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스토리 전개적 부분에서는 확실히 원작 소설의 매력을 따라오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분량의 경우 조금의 아쉬움이 남지만, 아주 적진 않다. 플레이타임 DB 수집 사이트를 보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메인 퀘스트 위주로 빠르게 돌리더라도 15시간 정도는 들며, 게임 속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발견하고 옆길로 새 가며 즐기면 70시간 정도 나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로 마법 세계를 좀 더 즐겨 가며 비효율적인 플레이를 한다면 더 즐길 수 있다. GTA나 젤다 야숨처럼 두고두고 즐길 만한 세계까진 아니더라도, 최근 나오는 AAA급 게임들과 비교하면 결코 짧진 않다.
다만, 다회차 플레이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한 약점이다. 이 게임은 초반 기숙사 선택부터 어떤 친구와 친하게 지낼 것인지, 대화에서 어떤 대사를 할 것인지 등 다양한 선택지를 준다. 그러나 스토리는 뭘 고르든 일자 진행형이며, 분기도 없다시피 하다. 엔딩 부분에서 약간의 분기가 있지만, 후반부 저장 지점만 잘 잡으면 모든 엔딩을 한 번에 볼 수도 있다. 플레이 도중에 쌓는 스택이 메인 스토리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우정 관련 서브 스토리 일부에만 영향을 준다는 점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제껏 이런 게임은 없었다. 반박하면 크루시오
아무래도 리뷰이다 보니 이런저런 아쉬운 부분들을 얘기하긴 했지만, 호그와트 레거시는 아주 잘 만든 게임이다. 아직 2월밖에 안 되긴 했지만, 2023년 GOTY 후보에 올릴 자격은 충분해 보일 정도(수상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지만)다. 아쉽다고 한 점들도 게임사에 한 획을 그은 역대급 대작들과 비교했을 때 아쉬워 보일 뿐, AAA급 게임으로서 자격은 충분하다.
무엇보다, 호그와트를 중심으로 한 마법 세계를 이렇게까지 잘 그려낸 작품은 없었다. 21세기 최고 히트작에 속하는 원작 소설도, 다니엘 래드플리프와 엠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등이 열연하며 전세계적인 대흥행을 기록한 영화도, 외전격 영화와 각종 게임들도 따라오지 못 하는 호그와트 레거시만의 독보적인 성과다. 이처럼 멋진 마법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호그와트 레거시에 감사와 찬사를 동시에 보낸다. 반박하면 크루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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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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