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는 국내에서 게임법에 맞지 않게 운영되는 게임을 단속하고, 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지난 1월에 불법 판정을 받은 게임 내 이벤트가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현재도 별도 수정 없이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벤트가 불법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이에 대한 후속조치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게임은 CCR이 서비스 중인 PC온라인게임 ‘RF온라인’이다. RF온라인은 지난 1월 20일에 미션을 수행해 쌓은 배틀코인에 따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를 보상으로 제공하는 배틀코인 서버를 열었다. 이에 대해 게임위는 플레이 결과에 따라 현물 경품을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지난 1월 24일에 CCR 측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원칙대로라면 게임위 결정 이후에 바로 시정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 그런데 배틀코인 서버는 지난 3월에 두 번째 시즌이 시작됐고, 현재도 아무 변동사항 없이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게임위와 CCR 양측에 사실을 확인해본 결과 배틀코인 서버 운영 방식을 변경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CCR 측은 “게임위로부터 시정명령 통보를 받고 게임위가 제시한 가이드를 토대로 내용을 수정해서 게임위에 제출했으나, 이후 게임위에서 좀 더 내용수정이 필요하다는 답변을 받았다”라고 답변했다.
CCR 측은 현재도 게임위가 제시한 가이드에 맞춰서 배틀코인 서버 운영을 수정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나, 1차 수정안이 반려되며 최종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유저들에게 공지하지 못 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암호화폐는 여러 시즌을 진행한 후 최종적인 결과를 집계해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현재 시점에서는 아직 유저들에게 암호화폐를 지급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상황에 대한 게임위 답변 역시 일치한다. 게임위는 “1월 24일에 시정요청을 실시한 후 사업자 의견청취 및 이벤트 내용 변경 등 후속조치를 진행했다. 이후 변경된 이벤트 내용이 4월 26일에 내용수정신고가 됐고, 신고내용을 검토한 결과 5월 12일에 반려했다”라며 “이벤트 진행을 중단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며,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수사의뢰 및 행정처분의뢰가 진행된다”라고 설명했다.
늦어지는 행정절차는 게이머에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불법 결정 후에도 사업자 소명, 수정내용 검토 등 행정절차 과정에서 긴 기간이 소요되면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는 시점도 밀리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RF온라인 배틀서버 운영의 경우 업데이트, 이벤트 등으로 게임 내용이 연령등급 변경을 요할 정도로 수정된 경우 이를 게임위에 신고하는 ‘내용수정신고’에 해당한다.
내용수정신고는 적용한 후 24시간 안에 신고해야 되는데, CCR은 배틀서버 오픈 당시 이에 대한 내용수정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후 배틀코인 서버는 1월 20일에 불법 오픈했고, 게임위는 그로부터 약 4일이 흐른 1월 24일 CCR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후 게임위는 CCR 측의 의견을 청취하는 과정을 거쳤고, CCR 측에서는 이벤트를 어떻게 변경할지를 전달했다. 이렇게 1차적으로 변경한 이벤트 내용은 게임위의 최초 통보 후 3개월이 흐른 4월 26일이 되어서야 내용수정신고가 됐다.
규정대로라면 게임위는 게임사가 내용수정신고를 한 후 7일 이내에 ‘등급유지’ 혹은 ‘등급 재분류’ 통보를 내려야 한다. 그런데 게임위가 4월 26일에 받은 내용수정신고에 대해 ‘반려’ 결정을 내린 시점은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만 따져도 11일 뒤인 5월 12일이다. 원칙적으로는 7일 안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맞지만 제출한 신고서나 관련 자료가 미비할 경우 게임사에 보완을 요청할 수 있고, 게임사는 7일 안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 자료 보완 등을 토대로 처리 기간이 더 늘어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성급한 행정절차로 게임사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한 법 위반에 대해 게임사에 충분히 소명할 기회를 주는 것도 맞다. 다만 처리 기간이 과하게 길어질 경우 게임위, 게임사, 게이머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임위 입장에서는 늦장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고, 게임사는 이벤트나 업데이트 등을 모호한 상태로 진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게이머는 최종 결정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며 종국에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받게 될 우려가 있다.
RF온라인의 경우 5월 12일 내용수정신고 반려 후 CCR 측에서 게임위 의견을 받아서 수정을 고려하고 있지만, 아직 이와 관련된 공지는 나간 적이 없다. 그렇다면 CCR 측에서 게임법을 준수하기 위해 암호화폐나 그에 준하는 보상을 지급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할 경우 이를 목표로 플레이 한 유저들은 법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게임위는 “게임사 운영정책 및 이용약관에 따라 적절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답했다. 사실상 이용자에 대한 보상은 게임사 결정에 달린 것으로, 경우에 따라 유저들은 사실상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다른 예시로 게임법 위반에 대한 행정처리가 길어지는 동안 불법 이벤트로 유저를 모은 후 상품을 주고 종료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게임위는 “위원회에서 직접 이벤트를 확인해 증거를 확보했을 경우 행정청과 수사기관에 조치의뢰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 수사기관 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부분으로 판단된다. 처벌에 대해서도 사법기관 또는 행정청 판단에 따라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답변했다.
게임위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는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하고, 게임위가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는 중에 이벤트가 종료되면 사실상 수정할 대상이 없어진다. 보통 온라인 혹은 모바일게임에서는 이벤트 시작부터 종료까지 빠르면 2주, 길어도 한 달 정도면 끝나는 경우가 많다. 즉, 길어지는 행정절차를 악용하면 게임 결과에 따라 현물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더라도 끝날 때까지 수정 명령이나 법적 처벌이 없는 '치고 빠지기'가 가능한 사각지대가 있는 셈이다.
자율심의 사후관리에도 사각지대가 있다
이 문제는 구글, 애플 등이 연령등급을 분류해서 게임을 서비스하는 자율심의에서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게임위에서 등급 재분류를 확정한 후에도 마켓에서 문제의 게임이 내려가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린다. 이를 막기 위해 지난 5월 24일에 게임위가 등급취소, 재분류 결정을 내린 게임을 즉각 마켓에서 내리게 하는 게임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게임위는 “사후관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불법사항을 즉각 조치하는 것에는 시간적, 인력적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법기관 또는 행정청의 수사 및 조사 과정으로 즉시 제거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라며 “다만 다양한 조사활동을 통해 이러한 편법적인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니터링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사후관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관계법령 정비와 제도 등도 검토 및 보완하여 최대한 빠르게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전했다.
법적인 절차를 거치느라 행정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비단 게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게임의 경우 국내에서는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실시간으로 서비스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현황에도 불법적인 부분을 처리하는 과정은 긴 기간이 소요되기에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불법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게임의 특성을 고려한 사후관리 방법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영업이 사실상 방치되며, 그 피해는 오로지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에게 돌아간다. 게임위도 1차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법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한 정부 및 국회 차원의 실질적인 대안 논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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