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잔잔한 이야기 한 편 만으로 게이머들을 매료시킨 게임이 있다. RPG 메이커로 만들어졌음에도 스토리라는 게임성을 극대화 해 명작의 반열에 오른 ‘투 더 문’이 그 주인공이다. 2011년 발매된 ‘투 더 문’에서 펼쳐진 지그문트 사의 이야기는 2017년 ‘파인딩 파라다이스’를 통해 이어나갔고, 마침내 2021년 ‘임포스터 팩토리’로 그 지평을 확장했다.
다만 신작 ‘임포스터 팩토리’는 이전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가지고 있다. 스팀에 등록된 인기 태그를 확인해보자면 전작에서 부각된 유머나 어드벤처와 달리 공포와 심리적 공포가 추가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런 태그는 티저에 등장했던 지구를 감싸는 거대한 촉수와 더해져 더욱 지그문트 사가의 스토리를 예상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모든 게임의 플레이를 끝내면, 제작자 칸 가오가 말하고픈 바는 오직 단 하나라는 것이 더욱 뚜렷해진다. 행복과 실재함은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게임메카는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프리버드 게임즈 창립자이자 작가, 작곡가를 맡고 있는 칸 가오(Kan Reives Gao)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해당 인터뷰는 게임의 중요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Q.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프리버드 게임즈의 작가이자 작곡가인 칸 가오입니다. 10여 년 전 침실에서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의사소통에 서툴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저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Q. 지그문트라는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좋든 나쁘든 말이죠.
Q. 지그문트 사는 좋은 회사인가요? 아니면 나쁜 회사인가요?
이상적인 세계라면, 사람들은 합리적이면서 좋은 일을 하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안 그럴 것 같네요. 오히려, 나는 그들이 결과적으로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들의 실제 행동들은 나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사에 대한 견해에 대해서는 아래 영상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확인해 주세요.
Q. ‘투 더 문’, ‘파인딩 파라다이스’, 그리고 ‘임포스터 팩토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임에 캐릭터들이 하늘을 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게임 내에서 '하늘'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하늘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하늘이란 문맥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모든 인류 역사에서 하늘이란 도달할 수 없는 것, 미지의 것, 그리고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대변했던 단어이기도 하죠.
Q. 닐 와츠가 페이의 도움을 받게 된 경위는 어떻게 되나요?
오리지널 페이는 콜린이 사망했을 때 사라졌습니다. 임포스터 팩토리에서 나온 페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파인딩 파라다이스의 ‘페이’가 아니라 닐이 복제한 복제품입니다. 이걸 알아두는 것이 중요해요.
Q. 린리와 퀸시, 페이의 마지막 건배는 어떤 의미였나요?
그것은 그저 완벽한 삶을 산 그들을 배웅하기 위한 축배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장면은 줄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좀 더 감성적인 측면에서 만들어졌어요. 저는 원래 임포스터 팩토리를 훨씬 더 무미건조하고 SF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시리즈 맥락에 인간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저를 설득하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저녁 식탁에서 이야기를 다시 썼습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이야기 마지막 장면을 쓸 때 축하 건배와 함께 유리잔을 부딪쳤고 저는 그 모습을 해당 장면에 담았죠.
Q. 지그문트 사가는 죽음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죽음이나 기억 같은 것의 의미를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굳이 몇 년씩이나 걸려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았겠죠(하하). 저는 이 시리즈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메시지가 아니라 단순한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죽음과 기억이라는 렌즈를 통해 본 느낌들요.
Q. 전작에 비해 '임포스터 팩토리'라는 제목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대체 어떤 의미인가요? 지그문트 사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헤인즈 재단을 말하는 건가요?
임포스터 팩토리(Importer Factory)란 사용자들의 의식을 처리하고, 그 정체성의 많은 버전과 분기를 만들어내는 기계를 가리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본과 흡사하지만 정확한 원본은 아닌 무수한 린리와 퀸시를 만들어냈다는 말이죠.
Q. 닐과 에바는 실제로 결혼할까요?
이제는 무엇이 '실제 삶'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에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마, 그건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겠죠.
Q. 닐도 린리와 같은 희귀병을 앓고 있는데, 그의 대한 치료법이 있을까요?
그것은 확률의 문제입니다. 어떤 세계에서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아닐 거예요.
Q. 파인딩 파라다이스에서 페이는 어렸을 때 누구나 꿈꾸는 상상 속 친구입니다. 당신도 어렸을 때 페이 같은 친구가 있었나요?
네. 제가 지난 10년 동안 게임을 개발해 온 이유도 그를 모두에게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Q. 파인딩 파라다이스에서, 저는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습니다. 마지막에 닐과 에바가 콜린의 요청을 들어준 걸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한 걸까요?
그들은 결과적으로 콜린의 요청을 이행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함으로써가 아닌, 그들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말이죠. 파인딩 파라다이스의 메인 테마는 '행복이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행복을 적게 느낍니다. 우리 삶에 지워지는 부담 때문이죠. 어쩌면 뭔가를 할 수 있음에도 실제로 그것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아마 인간의 삶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인 '중년의 위기'도 그런 이유에서 초래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 나이쯤엔 마지막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을 것도 같지만, 어쩔 수 없는 후회와 현실적인 불완전함을 동시에 갖고 있거든요. 그러나 60세 이후부터는 일반적으로 행복감이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큰 변화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의식을 지나쳐 우리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탓도 있습니다. 그때야말로 인간은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고, 상대적 안정감을 통해 행복을 느끼죠.
하지만, 게임 속 지그문트 사의 존재와 인식은 이러한 균형을 깨뜨립니다. 지그문트 사의 기술을 통해, 삶의 끝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 역시 아직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가능성이 주어진 것에 불과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불행을 만들고, 특히 파인딩 파라다이스의 콜린처럼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일수록 영향을 짙게 받습니다.
따라서 콜린을 행복하게 만들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그문트 사의 기술을 이용해서 지그문트 사의 기술에 대한 지식을 지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네. 닐과 에바는 이를 위해 뭔가 하긴 했어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무언가를 없애는 작업 말이죠.
Q. 투 더 문에서 닐과 에바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죠. 다만 현실의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상세계에서 최후를 맞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임포스터 팩토리의 핵심 테마 중 일부는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설정됐습니다. 요점은 내 주변을 둘러싼 세상이 근본적으로 현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세계는 기본 현실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죠.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인가를 의미합니다. 플레이어가 각 시리즈를 즐겼다면, 그것은 '이 시리즈의 세계는 우리의 현실이 아니지만, 그것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나름대로 진짜였다'라는 개념의 증거입니다.
사실 언젠가 주변의 세계가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도, 인지하는 관점에서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이 세상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뭔가를 얻었겠죠. '더 확실한 현실'이라는 것은 없을 겁니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단어예요.
Q. 투 더 문과 파인딩 파라다이스, 임포스터 팩토리는 플레이어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혹시 플레이하는 동안 유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될 부분이라면 역시 지그문트 사가의 다른 작품들입니다. 각 게임은 조금씩 다른 것을 추구하는데요, 사흘 간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날에 터지는 불꽃놀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첫 날에 불꽃놀이를 본 후, 다음 날 불꽃놀이에 어제의 불꽃놀이가 일어난 곳만 쳐다본다면 그 불꽃놀이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실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 둘러본다면, 아마도 매번 새롭고 즐거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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