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라인게임즈 첫 콘솔 게임 베리드 스타즈가 출시됐다. 게임을 이끈 ‘수일배’ 진승호 디렉터는 게임업계 대표 이야기꾼이다. 검은방, 회색도시 시리즈를 통해 여러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군상극에 추리 요소를 결합해 놀랄 정도의 이야기 전달력을 보여준 바 있다. 12년 간 국내 모바일게임에서는 보기 드문 텍스트 어드벤처 하나를 깊게 파왔고, 검은방은 지금도 국산 모바일게임 중 이 장르에서 괄목할 흥행을 거둔 시리즈로 평가된다. 게임적으로도, 개발자로서도 특이한 이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게임을 비롯해 모든 분야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가장 큰 자산은 본인의 경험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이번 신작 '베리드 스타즈'에는 진승호 디렉터가 전작 회색도시를 만들며 얻은 본인의 경험이 담겨 있다. 회색도시 개발팀 해체 후 SNS에서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도는 것을 보고 베리드 스타즈에 대한 초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여기에 모바일게임만 만들다 콘솔로 전향한 이유도 회색도시를 만들며 느꼈던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함이다.
베리드 스타즈에서 SNS를 사용하는 이유는?
베리드 스타즈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땅에 매몰된 스타’, 또 하나는 ‘발굴되지 않은 스타’다. 베리드 스타즈는 미래의 스타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경합 중인 출연진이 주인공이다. 오디션 무대가 붕괴되며 그 안에 매몰되어 버린 출연진의 생존기를 주로 다룬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 이름이 ‘스타를 발굴한다’는 뜻의 베리드 스타즈이고, 게임을 관통하는 주제도 붕괴된 무대 아래 매몰된 차기 아이돌의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다.
땅에 매몰된 스타들이 외부와 연결된 유일한 창구가 SNS다. SNS는 게임을 풀어나가는 중요한 도구다. 게임 속에는 ‘페이터(페이스북+트위터)’라는 가상의 SNS가 있는데, 타임라인을 올려보면서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풀어가는 데 필요한 키워드를 모아야 한다. 특히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차기 아이돌을 목표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이기에 일반인보다 대중매체에 많이 노출되는 사람들이다.
게임에서 SNS를 사용하는 데에는 진승호 디렉터의 경험이 배어 있다. 진 디렉터는 “지난번 작품(회색도시 2)을 만든 이후에 회사에서 나가게 된 것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 트위터를 열심히 할 때였는데, 소식이 알려지며 트위터 타임라인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올라왔다. SNS에서 나 자신이 화제로 오른 것이 충격이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었다. 그런데 3~4일 정도 타임라인을 읽다 보니 이야기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물론 당시 상황을 그대로 살린 것은 아니다. 시작할 때 아이디어였고, 이를 발전시켜 게임으로 완성했다”라고 말했다.
콘솔로 만들자고 결심하니 BM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회색도시에서 얻은 경험은 출시 플랫폼을 고르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베리드 스타즈는 국내에서 마이너로 손꼽히는 텍스트 어드벤처에, 플랫폼도 PC나 모바일이 아니라 콘솔이다. PS4, 닌텐도 스위치와 함께 2019년 출하가 종료된 PS비타로도 나온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모바일 RPG 중심인 국내 시장을 생각하면 비주류 중 비주류다.
특히 진승호 디렉터는 줄곧 모바일게임을 만들어온 사람이기에 어쩌다 콘솔이라는 새로운 기기를 택했는가가 의문으로 떠오른다. 진 디렉터는 “첫 이유는 김민규 대표(라인게임즈 대표)가 콘솔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제작진의 절박함에 있다. 전작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에는 우리 자리가 없겠구나’라는 절박함을 느꼈다”라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회색도시를 만드는 과정이 이 시장에 저희가 앉을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데, 앉을 자리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게 가장 큰 이유다. 베리드 스타즈라는 이름이 없었을 시절에 기획을 보면 이야기나 시스템 같은 부분도 있지만, BM에 대한 것도 엄청 많았다. 에피소드 형태로 팔고, 끊어서도 팔아보는 등인데, 콘솔로 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온 순간, 이 고민이 싹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BM에 대한 고민은 없어졌지만 콘솔게임 개발에 처음으로 도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작보다 개발 기간이 길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게임 개발은 물론 패키지를 제작하고, 유통망을 통해 판매하는 과정에서도 시행착오가 많았다. 진승호 디렉터는 “패키지나 한정판을 만든 게 굉장히 특이했던 경험이다. 이를 밟으면서 느낀 것이 게임을 패키지로 낼 생각이라면 예상보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특히 스위치로 패키지를 낸다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시행착오는 많았지만 이번에 콘솔 개발 경험을 얻은 만큼 차기작도 콘솔로 만드는 것을 고려 중이다. 진승호 디렉터는 “힘들게 경험을 쌓은 만큼 다음도 콘솔로 진행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다음 작품을 콘솔로 한다면 PS5와 같은 차세대 콘솔을 목표로 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다만 차세대 콘솔을 목표로 하면 스위치와 사양 차이가 클 것 같아서, 지금과 같은 멀티플랫폼이 가능할지 고민이다”라고 설명했다.
글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베리드 스타즈의 핵심은 대화다. 전작 검은방, 회색도시의 경우 방탈출이 메인이고, 대화는 부차적이었다. 반면 베리드 스타즈는 방탈출이 아니고, 다른 캐릭터와 대화를 이어가며 스토리를 전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어떠한 화제로 이야기하냐에 따라 인물 관계가 달라지고, 이 부분이 결말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붕괴된 무대에 매몰됐다는 극한 상황에서 ‘오디션 출연자’라는 가면을 벗어 던진 각 캐릭터의 진짜 모습도 나온다.
진승호 디렉터는 “서바이벌 오디션이라는 소재 자체가 경쟁을 전제로 하며, 무대가 무너진 상황에서 구조를 기다린다는 예상치 못한 전개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인간상을 볼 수 있다. 밝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미지가 달라지거나, 트롤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의외로 멀쩡한 사람이라는 식이다. 처음에는 대중에 공개된 이미지로 시작되고, 게임을 진행하며 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비밀이 드러나며 이미지가 달라지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게임 진행에 대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기에 텍스트 분량도 어마어마하다. 진승호 디렉터는 “정확하게 계산해보지는 않았다. 다만 키워드 하나로 생존자 모두와 이야기를 하고, 인물에 따라 같은 키워드라도 다른 이야기를 해야 읽어나가는 맛이 있기에 변주를 주는 데 애를 썼다”라며 “키워드는 100개 이상, 수백 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뒤로 갈수록 대화하는 상황이 많이 줄기는 한다”라고 전했다.
진승호 디렉터의 고민은 글을 읽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텍스트 어드벤쳐다 보니 글이 많은데, 이렇게 많은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는가가 고민이다. 특히 타임라인의 경우 몇 화면을 넘기며 읽어야 하는데 읽기 싫다는 사람을 읽게 만드는 게 쉽지가 않다”라며 “그래도 가독성을 최대한 높이고, 중언부언하는 텍스트를 빼서 쾌적하게 읽어나갈 수 있게 했다”라고 전했다.
4개 국어 자막, 일본어 음성 등 해외 진출 준비도 병행했던 배경도 국내에서 콘솔 텍스트 어드벤처는 시장이 굉장히 협소하기 때문이다. 진승호 디렉터는 “여러 언어를 같이 탑재한 것은 한국만 해서는 어렵지 않냐는 문제의식이 가장 컸다”라며 “아울러 지난 프로젝트의 경우 해외에 발매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부족한 상태로 나간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외국어 텍스트와 음성도 넣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베리드 스타즈는 지난 7월 30일 출시됐다. 게임이 발표된 지 3년 만의 일이다. 진승호 디렉터는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길고 어렵게 말을 준비해서 던지는 과정이었기에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까지 오며 많은 분이 관심을 보여주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저 이하 모든 개발자와 출시까지 준비해준 모든 분이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든 베리드 스타즈가 플레이하는 모든 분들에게 재미있는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잘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미개척지라 할 수 있는 콘솔 텍스트 어드벤처라는 길을 가는 베리드 스타즈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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