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팀 인기 차트에서 눈길을 끄는 게임이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마이너한 장르로 평가되는 비주얼 노벨임에도 쟁쟁한 게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썸썸 편의점’이다. 올해 1월 15일에 스팀을 통해 출시된 썸썸 편의점은 스팀 국내 최고 인기 제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스팀 유저 평가도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다. 유튜브에서도 개인방송 제작자가 만든 영상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비주류로 통하는 비주얼 노벨 장르로 두각을 드러낸 셈이다.
썸썸 편의점을 만든 곳은 2012년에 문을 연 국내 개발사 테일즈샵이다. ‘이야기 상점(TALES shop)’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주얼 노벨 전문 개발사이며, 전 직원이 5명 정도인 아주 작은 회사다. 소규모임에도 테일즈샵은 비주얼 노벨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대표작 ‘방구석에 인어아가씨’는 2016년에 일본에 진출한 바 있으며, 모바일을 주력으로 시작해 지금은 스팀, 스위치 등으로 플랫폼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주요 게임사가 모바일 MMORPG에 집중하는 와중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비주얼 노벨 하나에 집중해 썸썸 편의점, 기적의 분식집,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당신을 기다리는 여우 등 주목도 높은 작품을 연이어 냈다는 점에서 테일즈샵이 걸어가는 길은 상당히 특이하다. 유저 마음을 사로잡는 비약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게임메카는 썸썸 편의점을 만든 테일즈샵 이진우 PD를 만나 그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틈새 중 틈새, 비주얼 노벨 시장에 왕도는 없다
이진우 PD는 국내 비주얼 노벨 시장을 2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틈새 중에도 아주 좁은 틈새 시장이다.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뭔가가 필요하다. 테일즈샵은 그 답을 경험에서 찾았다. 테일즈샵은 2012년에 문을 열었는데 지난 8년간 출시한 게임만 38종이며, 이 중 2종만 빼고 모두 비주얼 노벨이다. 1년 평균으로 4개에서 5개에 달하는 게임을 낸 것이다.
비주얼 노벨이 갖는 강점은 게임 하나에 평균 제작 기간이 6개월 정도로 짧다. 이진우 PD 역시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는 게임을 내기 전에는 모른다. 테일즈샵은 게임을 자주 내는 편이라 관심이 높은 요소는 넣고, 관심이 낮은 요소는 빼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라며 “유저 니즈를 찾아서 이를 결과물로 완성하는 시간이 짧은 편이다”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제작진이 깨달은 부분은 유저 마음을 훔칠 수 있는 만능 소재는 없다는 것이다. 이진우 PD는 “1, 2년 차에는 ‘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라는 확신에 차서 만드는데 만든 게임이 10개에서 20개쯤 되다 보면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부에서는 잘 만들었다고 판단하는데 생각보다 안 팔리는 경우도 많았고, 기대보다 잘 팔린 게임도 있었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다 보니 이 소재는 시장에 먹히리라고 확신하지 않게 되었고, 전작에서 했던 실수를 다음 게임에서는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라고 말했다.
1월에 출시된 썸썸 편의점도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일단 편의점을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기존에 편의점을 소재로 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진우 PD는 “카페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음식점도 있는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연애하는 게임은 없어서 일상적이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 PD는 “전에 쓴 시나리오는 대부분 어둡고, 진지했으며, 소재도 SF나 오컬트, 다크 판타지 등으로 가상이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진지한 스토리를 앞세운 게임은 판매량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라며 “그래서 썸썸 편의점은 밝고, 가볍고, 현실적인 것으로 해보자고 결정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요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삶이 힘들어서 게임에서까지 힘든 내용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비현실적인 소재에서 대중적인 편의점으로 공간을 옮기고,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와 인간관계, 밝고 가벼운 스토리를 얹어 썸썸 편의점이라는 게임으로 완성됐다. 이진우 PD가 집중하는 부분은 디테일이다. 그는 “이 캐릭터가 진짜로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게임 내용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어릴 때는 무엇을 했고,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고, 음식은 무엇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책은 무엇인지를 설정한다. 이렇게 세부 설정을 하다 보면 캐릭터 성격이 잡힌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외주 업체와도 3~4년간 함께 일하며 호흡을 맞춰왔으며, 내부적으로도 제작 과정이 체계가 잡혀 있다. 소재를 결정하고, 각본이 나오면 여기에 필요한 리소스 목록을 뽑고, 필요한 일정을 정해서 ‘이 정도 기간이면 게임이 완성되겠다’는 견적이 대략 나오는 수준이다. 이 PD는 “같은 장르를 계속 하다보니 게임 만드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찾았다”라고 전했다.
비주얼 노벨과 개인방송, 궁합 잘 맞는다
테일즈샵이 모바일로만 게임을 내다가 스팀, 닌텐도 스위치 등으로 플랫폼을 넓힌 이유는 모바일에서 점점 판매량이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진우 PD는 “예전에는 굳이 여러 플랫폼에 내지 않아도 모바일만으로 충분했는데 계속 게임을 출시해보니 점점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래서 기적의 분식집을 통해 스팀에 진출해봤는데 생각보다 판매량이 잘 나와서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콘솔도 비주얼 노벨에 대한 수요가 있을지 궁금해서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탄하지 않은 길임에도 비주얼 노벨을 8년간 꾸준히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진우 PD는 “제작진 입장에서 동기부여가 된다. 글을 쓰는 저 스스로나, 그림을 그리는 AD님 입장에서 글과 그림은 다른 장르에서는 부가적인 요소로 묻혀버린다. 그러나 비주얼 노벨은 스토리와 캐릭터, 그림과 음악이 메인을 이루기 때문에 제작진이 준비한 것을 유저 분들에게 온전히 보여드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내부에서 최근 주목하는 부분은 개인방송이다. 기적의 분식집도 그렇고 썸썸 편의점 역시 개인방송을 통해 입소문을 타며 판매량이 늘었다. 이 PD는 “예전에는 방송으로 게임을 봐버리면 게임을 구매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방송 이후에 판매량이 늘어난 것을 보며 조금 놀랐다. 100만 명이 방송을 본다면 3만 명은 게임을 구매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신작 여러 종이 쏟아지는 국내 게임 시장에서 개인방송은 ‘이러한 게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창구이자, ‘재미있어 보이니 하나 사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체험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토리 게임은 개인방송과 궁합이 안 맞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꽤 도움이 됐다는 것이 이진우 PD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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