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의 성숙기였던 199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잡지에 나온 광고만 봐도 설렜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게임챔프'와 'PC챔프', 'PC 파워진', '넷파워' 등으로 여러분과 함께 했던 게임메카가 당시 게임광고를 재조명하는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연재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90년대 게임 광고의 세계로, 지금 함께 떠나 보시죠
어느 새 2019년도 4분기에 접어들면서, 주요 e스포츠 리그들이 시즌 마무리를 위한 밑준비에 들어가고 일부 리그는 벌써 결승을 끝내기도 했습니다. 슬슬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선수/코치진 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리그 오브 레전드' 에서는 그리핀 김대호 감독이 롤드컵을 앞두고 계약을 해지하고 킹존의 '폰' 허원석이 은퇴를 선언했으며, '오버워치'에서는 워싱턴 저스티스가 코치진 전원과 결별하는 등 다양한 이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소식들을 접하고 있자면, 이제 e스포츠도 일반 스포츠 못지 않은 시스템과 관심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다시금 실감납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던 일입니다. 당시 국내 최초 e스포츠 리그 KPGL 1회차 대회 개최 광고만 봐도 '참가비 만 원' 등 아마추어 티가 풀풀 풍겼는데요, 잠시 e스포츠가 산업으로서 싹트기 시작한 1999년으로 가 보겠습니다.
제우미디어 PC파워진 1999년 1월호 잡지에 실린 제 1회 KPGL 정기게임대회 광고입니다. 'Korea Profrssional Gamers League' 라는 리그 풀네임과 함께 '매월 사천만원의 상금을 잡아라!!' 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네요. KPGL은 사실상 국내 최초의 e스포츠 프로리그로, 이전에 산발적으로 펼쳐지던 PC방 지역 대회들을 통합해 전국 최고의 게이머를 가리겠다는 각오로 출범했습니다. 전성기 때 그 위상은 가히 국내 최고 수준이었죠.
먼저 광고를 보겠습니다. 대회 기간과 접수 등 다양한 정보가 실려 있네요. 1회 대회 종목은 '스타크래프트' 단 하나로,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열렸습니다. 지역예선과 본선, 결선을 통해 우승자를 선발하는데, 경기 장소는 전용 경기장이나 대형 스타디움이 아닌 KPGL 회원 PC방입니다. 지금이야 e스포츠에 최적화 된 전용 PC방도 여럿 생겼지만, 이 떄만 해도 정말 조금 큰 동네 PC방에서 e스포츠 프로대회가 열렸습니다. 참가비(개인전 1만원, 단체전 2만원)와 접수처(인근 KPGL 회원 게임방)도 눈에 띄네요.
자꾸 KPGL 회원 PC방이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아래쪽에는 가맹점 모집 광고면도 배정돼 있습니다. 가입 시 매월 개최하는 프로게임 리그를 통해 매장 광고 효과가 있으며, '시기적으로 확산기에 접어든 사업 아이템' 이라며 가입을 유도합니다. e스포츠 말고도 PC방 운영에 대한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도 깨알같이 쓰여 있는데, 사실상 이게 본론인 듯 보입니다. e스포츠 가맹점이라기 보다는, PC방 사업 가맹이라는 것이 더 어울리겠네요.
참고로 위 대회 1, 2차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국내 최초 프로게이머로 코넷 CF까지 찍은 사람이 '쌈장(SSamjang)' 이기석입니다. 이기석 이후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본격화 됐으니, e스포츠 역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대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당시 경기는 투니버스에서 방영됐는데,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다음달인 2월에도 KPGL 2회차 광고가 실렸습니다. 예전 [90년대 게임광고] 코너를 통해 한 번 덤으로 소개한 바 있지만, 기왕 KPGL 얘기가 나왔으니 다시 한 번 꺼내 봤습니다. 이 광고에서는 총 상금 4,000만 원을 넘어 각 부문/순위별 상금이 나와 있는데요,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개인전 1위 상금 300만 원, 단체전 1위 상금 400만 원입니다. 이런 대회가 '매월' 열렸으니, 프로팀이나 연봉 체계가 없었음에도 충분히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었죠.
2회차 KPGL은 '피파 99'도 새로운 종목으로 선정했습니다. 개인전만 진행했는데, 재미있는 점은 '상금'이 아니라 '장학금' 이라는 단어를 쓴 것입니다. '피파 99'는 중고생만 참여 가능한 청소년 리그 형태였기 때문인데요, '스타크래프트' 인기에 밀려 오래 가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종목입니다.
3월호 잡지에 실린 3회차 광고는 '체이스컬트'라는 스폰서가 붙었습니다. 당시 PC방에서 인기를 끌던 FPS '레인보우 식스(단체전)'가 새로운 종목으로 선정됐고, '피파 99'는 자취를 감췄네요. 참고로 '레인보우 식스'는 고등학생 이상 참가 가능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장학금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스폰서인 체이스컬트에서 후원하는 의류교환권이 하위권 수상자 상품으로 걸려 있습니다.
그렇게 꾸준히 광고를 싣던 KPGL이었으나, 4월호 잡지부터는 그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대신 1위 상금 1,000만 원을 내세운 제 2회 넷크럽 게임대회가 새롭게 광고를 실었네요. 넷크럽 역시 KPGL과 마찬가지로 가맹점을 통한 e스포츠 기반 사업모델을 내세웠는데, 비슷한 시기 진행된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PKO)'에 밀려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본 대회입니다.
광고가 중단된 것은 KPGL이 당시 모종의 이유로 매월 진행하겠다던 리그를 축소, 중단하면서였습니다. KPGL은 5월 열린 제 5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된 후 2000년 들어 부활했으나 이미 신규 리그들이 연달아 생기며 과거의 위상을 되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후 임요환 등 억대 연봉 프로게이머가 등장하고, 전세계 게이머들의 시선이 한국으로 쏠리며 한국은 일약 e스포츠의 메카가 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1999년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던 당시 경기 영상을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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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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