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맛 4가지

세계 최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Game Deverloper Conference) 2019'가 역대 최고 참관객을 달성하며 막을 내렸다. 1988년, 게임 개발자 크리스 크로포드의 집 거실에서 27명의 컴퓨터 게임 프로그래머들끼리 시작했던 회의가 30년 만에 전 세계 개발자들과 유저들을 아우르는 대형 게임쇼로 발전한 셈이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기자가 직접 경험해 본 GDC는 다른 개발자 컨퍼런스와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여타 게임쇼 못지 않은 밝은 분위기, 청중들과 강연자의 자유로운 소통은 확실히 새롭게 다가왔다. 국내도 '넥슨 개발자 컨퍼런스(NDC)'나 '한국 국제 게임 컨퍼런스(KGC)'처럼 비슷한 행사가 있지만, NDC는 아직까지 넥슨 사내 행사 성격이 강하고, KGC는 규모가 많이 줄어든 상태라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 세계적 규모의 게임 컨퍼런스가 국내에서도 열리기를 바라면서 GDC에서 맛 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을 몇 가지를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이 GDC를 일종의 학술대회로 인식한다. 각국의 개발자들이 모여서 자신의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심심한 강연회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달라서, 비단 개발자들 말고도 게임에 관심이 있는 유저들도 강연을 듣기 위해 많이 찾아오는데다가, 행사 전반적인 분위기도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벌이는 일종의 축제같이 진행된다.

특히, GDC 주요 행사 중 하나인 'GDC 엑스포'는 E3나 게임스컴 못지 않은 들뜬 느낌으로 진행된다. 각종 신작게임들을 즐겨볼 수도 있고, 게임사별로 차려진 부스에 들어가 각종 신기술을 구경할 수도 있다. 비단 엑스포가 아니더라도 강연장 근처나 중간중간에 GDC에서 발표된 게임이나 각종 인디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마련돼 있어 그야말로 마음껏 편하게 게임을 즐기면 된다. 어떤 사람은 당일 날 듣고 싶은 강연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회장에서 게임만 즐기다가 간 경우도 있었다.

이 분위기는 강연이나 시상식 때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강연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친숙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강연이 진행된다. 특히, 인기 개발자가 강연을 하는 날에는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하는 인파와 열기를 자랑한다. 강연 자체는 나름대로 정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지만, 강연자가 가볍게 던지는 농담이나 재치 있는 아이디어라도 소개되면 금세 강연장은 환호로 물든다. 작년 한 해 인터넷 개인 방송계를 뜨겁게 달군 '게팅 오버 잇'의 강연자 베넷 포디나, '데빌 메이 크라이 5' 강연자 이츠노 히데아키의 경우 강연이 끝나고 따로 사인회를 진행했을 정도로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이 축제같은 분위기 덕분일지 몰라도 GDC는 그야말로 소통의 장이다. 회장에서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 중 하나가 강연이 끝나고 난 뒤 강연자와 청중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질의 응답을 나누는 것이다. 시간이 모자라서 질문 기회를 못 받은 사람들이 따로 강연자와 함께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강연에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개별적으로 궁금했던 부분들도 있으며, 서비스 중인 작품에 대한 것도 서슴없이 물어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근처 땅바닥에 주저 앉아 토론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아예 회장에 마련된 카페테리아에서 맥주를 마시며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토론이 주로 이어지는 '서밋'세션은 아예 강연자에 청중까지 섞여서 2차 토론을 갖는 경우도 있다. 

강연에만 국한되는 장면이 아니고, 엑스포나 게임 시연대 앞에서도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 GDC 가장 큰 화두였던 구글 스태디아 시연 부스 앞에서 간이 토론회를 여는 관객들을 적잖이 볼 수 있었다. '머신 러닝'이나 데이터 클라우드 센터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직원의 말을 듣고 옆에 마련된 의자에 눌러 앉아 마케팅 측면이나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해당 기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전문가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국내 최대 게임 발표회라고 볼 수 있는 NDC 강연은 프로그래밍을 주제 강연이 아무래도 제일 많다. 개발자를 비롯해 게임 개발 지망자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이를 제외하고라도 전반적으로 게임 기획과 운영 등 전문적인 이야기를 주제로 한 강연이 많다. 신작 발표나 몇몇 유명 개발자들의 개발 비화 등을 제외하면 비전문가인 유저들이 들을 만한 강연은 분명 충분치 않은 편이다.

하지만, GDC에는 전반적으로 개발자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듣기 좋은 강연과 콘텐츠가 많이 개설돼 있다. 유명 게임의 개발 비화는 물론이며, 개발자가 그저 자신의 개발 철학을 특정 게임에 빗대어 설명하는 시시콜콜한 강연도 있고, 장애인이나 아이들을 위한 게임 개발법을 쉽게 설명해주는 강연도 있다. 아예 30분 단위의 짧은 강연도 많기 때문에 강연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으며, 이마저도 지루하고 어렵다면 영화제에 참여해 영화를 봐도 되고 근처 공원에서 보드게임을 즐겨도 된다. 

전반적인 강연 내용도 유저들을 고려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구성돼 있다. 대부분 대학교 수준의 난이도이거나 필요한 경우 그보다 약간 더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정도다. AI라던가 게임 엔진 사용법과 같은 프로그래밍 관련 강연은 관련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편이지만, 프로그래밍 관련 강연도 대체로 특정 게임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 들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이를테면 올해 프로그래밍 강연 중에는 '갓 오브 워'와 '스파이더맨'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 대부분 "'갓 오브 워' 속 바람 시뮬레이션", "'스파이더맨'이 빌딩으로 콘크리트 정글 짐을 만든 방법"처럼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이 같은 기조는 GDC 방향성이 개발자나 업계 관계자 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 팬들을 관객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매년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서라도 입장권을 구매하는 유저들이 점차 많아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개발자 중심의 국내 게임 관련 컨퍼런스와는 지향점이 아예 다르다고 볼 수 있지만, 발표회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선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항이다.

 

확실히 GDC는 일반 관객들을 위한 행사에 가까웠다. 한 편으론, 베테랑 개발자들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라고 온 초보 개발자들은 소외를 느낄 수도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유저 친화적인 강연이 많았다. 하지만, 행사 이곳 저곳을 잘 둘러보면 개발자들, 그것도 초보 개발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참고할만한 콘텐츠가 다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GDC 피치다. 초보 개발자들의 PT 역량을 평가하는 GDC 피치는 순수하게 개발자들과 게임 개발 유망주들을 위한 콘텐츠다. 해당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의 게임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고, 발표 역량과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피드백까지 받을 수 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심사위원이나 청중과 이야기를 나누며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 개발자들은 비장한 각오로 참여하기도 한다.

'GDC 커리어 세미나'는 아예 개발자 지망생들을 위한 콘텐츠다. 일종의 강연 형식으로 진행되며 매 GDC 마지막을 장식하는 강연이기도 하다. 대학 교수부터 너티독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하는 개발진들이 나와서 개발자를 직업으로 갖기 위한 역량부터 포트폴리오 형성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주며, 그 밖에도 개발자로서 업계에 계속 일하기 위해 필요한 에티켓이나 팁을 전수한다. 마지막 날 오로지 이 강연을 듣기 위해 별도의 입장권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유명한 강연이다.

이 외에도 '인디게임 페스티벌'이나 'Alt, Ctrl GDC'같은 GDC 엑스포 행사는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참여의 장이다. Xbox나 PS4, 에픽게임즈나 유니티 부스에서도 신규 인디게임을 잔뜩 소개한다. 미국의 대학교에서도 따로 부스를 빌려 학생들이 만든 게임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을만큼 신입 개발진이 직접 참여할만한 콘텐츠는 오히려 어지간한 대형 게임쇼보다 많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