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정남]은 매주 이색적인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맞는 게임을 골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90년대 한국은 그야말로 중국 못지 않은 '해적판 짝퉁게임'의 온상이었다. 정식 라이선스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채 원작을 기묘하게 베껴 만든 작품이 버젓이 문방구나 동네 게임매장에서 팔렸던 것이다. 게임 저작권 개념은 옅고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았으며, 제대로 된 게임은 더더욱 구하기 힘든 시절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물론, 지금 와서 다시 보면 그런 이미테이션 게임들은 하나같이 흑역사 취급이다.
그런 각종 짝퉁게임들 사이에서도 각종 게임을 마구잡이로 믹스해 더욱 눈에 띄는 작품들이 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 마리오 대신 피카츄가 뛰어 다니질 않나, '스트리트파이터' 류와 '아랑전설'의 테리 보가드가 맞붙는 드림매치를 휴대용 기기에서 구현하는 전설과 같은 게임들 말이다. 심지어 개중에는 너무 잘 만들어져서 정식 작품으로 인정받는 경우도 있다. 이번 순정남 주제는 끔찍한 짜깁기로 탄생한 혼종 게임 TOP 5다.
TOP 5. 열과 성을 다해 만든 짝퉁 게임, '소마리'
짝퉁게임의 전성기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성공에서 비롯됐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공전절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마리오를 여기저기 끼워넣은 게임이 우후죽순 튀어 나왔던 것이다. 피카츄가 버섯을 먹으면 라이츄로 진화하는 '피카츄 마리오'부터 시작해서 '스트리트 파이터'에 '마리오'를 끼워넣은 '마리오 스트리트 파이터 3 터보'가 그 예이다. 그렇게 등장한 수많은 마리오 짝퉁게임 중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아직까지 회자되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소닉과 마리오의 콜라보레이션을 일찌감치 구현한 '소마리' 되시겠다.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소닉 1'의 첫 번째 맵인 '그린 힐'을 패미컴 그래픽으로 수정한 맵이 나온다. 맵에 서있는 것은 소닉이 아닌 마리오이며 소닉의 간판 액션인 롤링 대쉬도 쓸 수 있다. 친숙한 BGM이 매우 안 좋은 음질로 흘러 나오는 것은 덤이다. 기본적인 조작감이 매우 나쁘고 게임 자체의 버그도 적지 않아 플레이 할 맛은 안 나지만 나름대로 소닉의 속도감을 패미컴으로 녹여내는데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다른 여러 짝퉁게임에 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만든 티는 확실히 나는 녀석이다.
TOP 4. 패미컴판 스매시브라더스? '월드 히어로즈 2 해적판'
마리오와 소닉의 만남도 벅차기 짝이 없는데, 여기에 '류'와 '춘리'. 심지어는 '파이널 파이트'시리즈 '마이크 해거', '드래곤볼' 손오공까지 등장한다면 어떻겠는가? 지금은 여러 콜라보레이션 게임들이 어느정도 그 꿈을 대신 이뤄주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월드 히어로즈 2 해적판'은 그 야무진 꿈을 가열차게 현실로 옮긴 작품이다. 물론 해적판답게 불법으로 말이다.
본작에 등장하는 작품은 이것저것 다 포함해서 7개이며 캐릭터 수만 12명에 달한다. 위에서 언급한 캐릭터 외에도 '닌자 거북이 '레오나르도'와 '아랑전설'의 '앤디'와 '마이' 등 그야말로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했다. 이 드림매치급 라인업 덕에 많은 어린 게이머들을 여러명 낚기도 했다. 의외로 캐릭터 재현률이 상당해서, 마리오가 근육질의 거한으로 등장해 파동권을 쓰는 것만 빼면, 모든 캐릭터가 실제 게임에서 등장하는 기술을 사용한다.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의 원조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덕분에 요새는 유사 무겐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TOP 3. 테켄이 아니라 테이큰이라고! '철권 vs 버추어파이터'
한참 3D 그래픽 게임이 출시되던 그 시절 격투게임계에 양대 산맥으로 군림한 두 3D 게임이 있었으니 바로 '철권'과 '버추어 파이터'다. 당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두 게임 중에 어떤 작품이 더 재밌는지, 혹은 어떤 게임의 캐릭터가 더 강한지에 대한 논의가 주요 싸움거리 중 하나였는데, 그런 논쟁을 종결시킨 작품이 하나 있다. '철권 VS 버추어 파이터'란 거짓말 같은 이름의 해당 제품은 일단은 세가에서 정식으로 발매한 게임이긴 하다. 철권이 'Tekken'이 아니라 'Taken'이란 점에서 알 수 있듯 정식 라이선스를 획득한 작품은 아니지만.
물론 내용물은 정식 발매가 무색할 정도로 형편없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에 출시된 해적판 '철권'과 '버추어 파이터' 소스를 마구잡이로 갖다 붙여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냐고 물으면 일단 3D 격투게임 드림매치라는 명색이 무색하게도 2D 그래픽으로 제작됐으며, 캐릭터 스프라이트가 전혀 통일이 안돼 있다. 심지어는 두 게임과 전혀 관련 없는 '파이팅 바이퍼즈'의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지금 보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발매 승인이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다. 그야말로 저작권에 무지했던 과거였으니까 나올 수 있었던 게임인 셈.
TOP 2. 전술인형들이 갑자기 좀비 디펜스를 벌인다면? 'Zgirls'
옛날 작품 중에서만 이런 짜깁기 게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최근 게임들에도 있다. '라스트 엠파이어 워 Z'라는 좀비 게임의 캐릭터를 여학생으로 바꾼 'Zgirls'가 그 대표작이다. 기본 게임성부터 원작을 묘하게 바꾼 짝퉁게임인데, 나오는 캐릭터들 조차 '소녀전선'이나 '붕괴 3rd'의 주요 이미지를 무단으로 가져와 사용하면서 제대로 된 짜깁기 게임으로 거듭났다.
물론 처음부터 다른 게임의 캐릭터를 무단 도용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나름의 양심이었던 건지 일부분만 가져오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각종 SD 유닛의 모습이 '소녀전선'의 캐릭터를 색깔만 바꾼 수준으로 변모하더니 나중에는 게임을 가리지 않고 온갖 게임의 미소녀를 그대로 가져다가 광고에 넣어버리기도 했다. 배경음악도 '소녀전선'과 같으니 말 다했다. 이 같은 무차별한 짜깁기가 문제가 되자 제작자는 "'소녀전선'은 좋은 게임입니다"라며 변론 아닌 변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3편까지 출시해 서비스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
TOP 1. 국산 짜깁기 게임의 본좌 '슈퍼백구 어드벤처'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국내에 성행하던 짝퉁 PC게임 대다수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면 우선 어줍잖은 3D 그래픽이 구현된 작품이면서 제목이 누가 봐도 패러디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해리 포터' 시리즈를 따라한 '핸리포트마법사'나 '포켓몬스터' 짝퉁인 '파워몬스터' 등이 그 예다. 그 중에서도 '하얀마음 백구'와 '디지몬 어드벤처'를 기세 좋게 섞은 게임 '슈퍼백구 어드벤처'는 그야말로 혼종 그 자체다. 보고 있으면 낯이 절로 뜨거워질 정도.
일단, '디지몬 어드벤처'의 주인공인 신태일이 아구몬 대신 슈퍼백구를 데리고 다니는데, 이 슈퍼백구는 알고 보면 로봇이다. 마법사에게서 힘을 받았다는 설정이지만 그냥 로봇으로 개조된 셈. 게임 내용물도 처참해서 배경은 그래픽이나 일러스트가 아닌 어디서 찍었는지 모를 자연 풍광이 bmp 파일로 박혀있으며, 등장하는 몬스터 조차 디지몬과 포켓몬의 융합체가 연상될 만큼 기괴하게 생겼다. 제일 무서운 것은 이 작품이 3편까지 나온 것도 모자라서 합본팩까지 출시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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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에서 모바일게임과 e스포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밤새도록 게임만 하는 동생에게 잔소리하던 제가 정신 차려보니 게임기자가 돼 있습니다. 한없이 유쾌한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담백하고 깊이 있는 기사를 남기고 싶습니다.bigpie1919@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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