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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전 연대기(상), 처음 공개되는 `창세기전` 개발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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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연대기(하), 템페스트에서 창세기전3 파트2 까지
최근 20년간 국내 게임업계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다양하게 변화해왔다. 90년대 초반에는 대부분의 게임 콘텐츠를 수입에 의존했으나,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PC 패키지 게임 시장이 조금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후반에는 와레즈의 난립, IMF 경제 위기로 인해 PC게임 업계는 급속한 하향세를 겪었다.
짧다면 짧은 국내 PC패키지 게임 전성기에 유독 돋보였던 게임을 뽑으라면 많은 유저가 ‘창세기전’ 을 뽑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이미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이스’, ‘영웅전설’ 등 수많은 명작 RPG가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북미와 유럽에서도 ‘울티마’, ‘M&M’, ‘발더스 게이트’ 등 수많은 국가대표급(?) 게임들이 존재했다. 그 와중에서 국산 게임의 자존심을 세워준 RPG가 바로 ‘창세기전’ 이다.
‘창세기전’ 은 국내 PC게임 개발이 막 걸음마를 시작하던 90년대 중반 혜성처럼 데뷔해 총 5개의 후속작(창세기전 2, 외전 1, 2, 창세기전 3 파트 1, 2)을 모두 흥행시키며 소프트맥스를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게임개발사 중 하나로 발돋움시켰다. 이후 ‘창세기전’ 은 국내 PC패키지 시장의 몰락과 함께 시리즈를 완결지었으나, 최근 ‘창세기전 4’ 를 발표하며 다시금 시동을 걸고 있다. 국산 PC게임의 선두주자였던 ‘창세기전’ 시리즈의 역사, 그리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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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시리즈의 부활을 알린 `창세기전4` 오프닝 영상
창세기전 1~2
1995년 12월,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10장이라는 대용량(당시로써는)의 국산 RPG게임 ‘창세기전 1’ 이 출시되었다. 당시 막 걸음마를 내딛던 국내 게임개발사들은 기술과 자본력의 한계로 인해 소위 ‘대작’ 이라 불리우는 게임을 거의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었고, RPG게임 역시 ‘영웅전설’, ‘이스’,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등의 일본 게임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 출시된 국내 최초의 SRPG ‘창세기전 1’ 은 다양한 부분에서 한국 게임업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 당시는 PC게임 유통 시장이 그리 크지 않았던 데다, ‘창세기전 1’ 은 초기에 CD-ROM이 아닌 플로피 디스크로 출시되었기 때문에 보급률은 이후 시리즈와 비교했을 때 썩 높지만은 않았다.(언제까지나 비교적인 수치이며, 당시로써는 만족할 만한 판매고를 올려 이후 CD-ROM으로도 출시되었다) 여기에 자체적인 오류가 높은 플로피 디스켓의 특성 상 10장의 디스크 중 1장이라도 에러가 날 경우 전체 게임이 설치되지 않는 예상치 못한 문제까지 겹쳤다. 이러한 이유로 ‘창세기전 1’ 을 직접 플레이 해 본 유저는 생각 외로 많지 않다.
그러나 ‘창세기전 1’ 은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며 유저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퍼져나갔고, 이에 소프트맥스는 1년 후인 1996년 완성도를 더욱 높인 ‘창세기전 2’ 를 출시한다. ‘창세기전 2’ 는 애초부터 CD-ROM으로 출시되었기에 안정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창세기전 1’ 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고 있어 전작을 해 보지 않은 유저도 모든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전작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는 ‘창세기전 2’ 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소프트맥스를 국내 최고의 게임 개발사 중 하나로 우뚝 서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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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도 수출된 '창세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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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1' 캐릭터 소개 영상
이후 ‘창세기전 3 파트 2’ 로 가면서 더욱 뚜렷해지긴 하지만, '창세기전 2' 는 처음부터 ‘과거=미래’ 라는 루프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창세기전' 시리즈를 초창기부터 개발해 왔으며 현재 '창세기전 4' 의 개발을 총괄하고 있는 소프트맥스 최연규 이사는 "어린 시절 SF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었다. 당시 어떤 소설에서 지구를 공격한 외계인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는데 그곳이 사실은 과거의 지구였고 외계인에 의한 공격인 줄 알았던 것이 자신들의 공격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이 이야기를 매우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창세기전1을 기획할 당시 그런 세계관을 가지는 게임이 있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해서 뫼비우스 세계관을 구상하게 되었다." 고 밝혔다. 최초의 국산 시뮬레이션 RPG게임 ‘창세기전’ 은 그렇게 탄생했다.
‘창세기전 1~2’ 는 게임 외적으로도 상당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던 만화가 김진(대표작: 바람의 나라, 숲의 이름, 꿈속의 기사 등...) 씨가 일러스트를 담당한 덕분이다. 선이 가는 순정만화 풍으로 묘사된 흑태자, G.S, 이올린, 라시드, 칼스 등은 그 모습만으로도 많은 게이머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후 전개되는 시리즈에 비해 일러스트의 수가 꽤나 적다는 점인데, 이는 당시 게임 구동 환경 상의 용량 문제로 인해서이다. 일러스트가 많더라도 정작 게임에 모두 집어넣기가 힘들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정말 꼭 필요한 그림만 그려서 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창세기전 1~2' 의 캐릭터들은 일러스트 한 장 없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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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등을 그린 만화가 김진 씨가 일러스트에 참여하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최 이사는 당시 김진 씨와의 작업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 당시 한국 순정만화는 세계적으로도 경쟁력 있는 최고의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진 선생님은 평소 존경하는 만화가였고, 그 작품세계 역시 매우 좋아했기에 어렵사리 부탁을 드렸는데 흔쾌히 제작에 참여해주셔서 매우 기뻤었다. 김진 선생님이 계셨었기에, 지금의 창세기전이 있을 수 있다고 지금도 종종 생각을 하곤 한다. 더 많은 이미지를 넣고 싶어도 어려웠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요즘처럼 게임 용량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볼 때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매번 게임을 개발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컴퓨터 게임의 환경은 정말 해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하는 것 같다." 고 회상했다.
창세기전은 많은 RPG에서 채택하던 파티 플레이(주인공 일행) 위주의 진행 방식이 아닌, 세력과 세력 간의 대규모/국지전을 때로는 실버애로우 측에서, 때로는 다크아머 측에서 묘사하는 방식의 전개를 택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전쟁의 상황에 따라 아군이었던 캐릭터가 적군이 되기도, 큰 적을 맞이하면서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창세기전 1~2의 스토리는 거의 대서사시 수준이다. 실제로 ‘마왕전기’ 등의 판타지 소설을 쓴이도경 씨가 '창세기전 1~2' 의 스토리를 정리해 비공식적으로 집필한 ‘창세기전’ 소설판을 보면 책 2~3권 분량이 가볍게 나올 정도다. 이를 최대한 줄여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안타리아라고 불리우는 세상에는 주신 12명과 암흑신 13명이 있었는데, 암흑신을 섬기는 게이시르 제국군(다크아머)가 주신을 섬기는 팬드래건 연합군(실버애로우)를 거의 멸망시키게 된다. 그 와중 게이시르군을 이끌던 흑태자는 자신의 친우이자 제국의 재상인 베라딘에게 배신당해 비행정에서 추락, 기억을 잃게 된다. 이후 그는 G.S라는 이름으로 팬드래건 왕국의 생존자인 이올린 공주와 행동을 함께 하고, 실버애로우의 부흥을 위해 함께 일하며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이후 G.S는 흑태자로서의 기억을 되찾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에 괴로워할 사이도 없이, 자신의 친우였던 베라딘이 사실은 13 암흑신의 한 명인 음모의 베라모드였고, 세계를 멸망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베라모드는 주신들을 설득해 자신들이 원래 있던 세계인 아르케로 돌아가 안타리아를 멸망시키려 하고, 흑태자는 필사적으로 이를 저지한다. 결국 신들을 무찌르고 안타리아에 평화를 가져온 흑태자. 그러나 기진맥진해서 폭풍도에 불시착한 그를 기다린 것은 흑태자에게 왕국과 부모형제를 잃은, 그러나 누구보다 그를 사랑했던 이올린이었다. 결국 이올린은 개인적인 감정과 왕녀로써의 입장 사이에서 갈등한 끝에 흑태자를 칼로 찌르고, 창세전쟁이라 이름 붙여진 이 전쟁은 종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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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올린과 라시드 등이 등장하는 '영광의 홀 탈취' 장면 플레이 영상
이밖의
다른 '창세기전1' 플레이 영상은 소프트맥스 공식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ser/SoftmaxNews)
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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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시리즈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창세기전 2' 엔딩
이 엔딩씬은 ‘창세기전’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부분 중 하나다. 개인적인 감정과 공적인 입장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올린의 모습, 세계를 구한 불세출의 영웅임에도 연인에 의한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흑태자. 그 비극적인 결말에 게이머들은 너나없이 눈물을 흘렸다.
‘창세기전 2’ 는 일반적인 필드 전투에서부터 설원, 용암, 바다, 심지어 우주까지 엄청나게 커다란 스케일을 자랑한다. 이는 시리즈 사상 최고임은 물론, 이후 타이틀에서 전개될 수많은 이야기의 복선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당시 제작 여건 상 아쉬웠던 요소도 적지 않다. 이에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2’ 에서 지적받은 요소와 그래픽, 영상 등을 추가해 콘솔 플랫폼으로 이식하려고 시도했다. 플레이스테이션 1 버전으로 개발이 완료되었던 ‘창세기전 2’ 콘솔판은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퍼블리셔가 도산한데다 PS2의 출시가 임박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끝내 출시되지 못했다. 일본 성우에 의한 풀 보이스, 30종 이상의 이벤트 동영상 등 전체적인 리메이크를 통해 콘솔로 진출하려던 '창세기전 2' 의 야심찬 도약은 이렇게 불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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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2' 의 이펙트는 전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라고 일컬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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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리아를 넘어 우주까지 무대로 삼는 거대한 스케일
최연규 이사가 회상하는 '창세기전 1~2' 당시의 개발팀 상황 ‘창세기전 1’ 이 출시된 지 햇수로 벌써 18년이다. 지금의 소프트맥스를 있게 해 준 원동력인 셈인데, 당시에는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처럼 게임 개발을 시작했었기에 ‘창세기전’ 시리즈가 이렇게까지 거대해지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 만들면서 큰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재미라는 측면에서 유저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창세기전 1’ 출시 당시의 소프트맥스 개발팀은 고작 5명 정도였다. 내가 혼자 기획을 맡았고, 그래픽 2명, 프로그래밍 2명 정도였다. 인원이 적다 보니 프로그래머 분과 같이 스토리도 짜고, 기획 담당인 내가 맵도 구성하는 등 공동작업의 형태가 강했다. 지금 개발 중인 ‘창세기전 4’ 의 경우 스탭이 60여 명 정도 되며, 올 연말까지 80명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그 외에 외주 인력까지 포함하면 실제 인원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을 보면 감흥이 남다르다. 요즘 10대들은 다들 농담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창세기전 1’ 개발 당시에는 정말로 돈이 없어서 컵라면만 먹으며 게임을 개발했다. 사무실에 컵라면을 박스째로 사다 놓고 계란 하나씩 풀어서 먹곤 했던 기억((그러다 한솥도시락이 나와서 개발자들 생활이 급개선되었다)이 난다. 그래도 ‘창세기전 1’ 개발 당시에는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회사에 입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월급을 받을 수 있었는데, 당시 금액으로 약 30만원 정도였던 터라 월급을 털어도 당시 막 발매된 콘솔게임기 세가 새턴을 살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투덜거렸던 기억이 난다.(웃음) 사족이지만 소프트맥스에 입사하기 전에는 현 IMC의 김학규 대표이사의 자택 지하실에서 기거하며 게임을 개발했었는데, 당시 그곳은 속칭 ‘학규굴’이라 불리며 아마추어 개발자들의 산실로 활용되다가 김학규 대표이사의 군 입대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당시 '학규굴' 에서 게임을 개발하던 사람들은 지금 현재 게임업계 중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실, ‘창세기전 2’ 는 ‘스타워즈’ 와 ‘로미오와 줄리엣’ 을 주된 모티브로 해서 당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서브컬쳐(비주류 문화, 나한테는 SF나 무협,애니메이션 등)의 오마쥬가 많이 들어있다. ‘창세기전’ 의 도입부 설정을 보면 제국에게 i기는 왕녀가 등장하고, 그를 도와주는 의문의 사나이(G.S)가 나온다. 여기에 상대 편 대장은 검은 색의 갑주(흑태자)를 걸치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서는 일부러 ‘스타워즈’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또한, ‘창세기전 2’ 의 ‘회색의 레인저’ 파트 첫 장면에 나오는 레인저 캐릭터들의 이름은 ‘마크’와 ‘하밀’(루크 스카이워커 배우의 본명)이고, 여기에 G.S를 도와준 ‘아나기’ 라는 노인은 ‘아나킨 스카이워커(다스베이더의 극중 이름)’ 를 연상할 수 있게 설정했다. 이는 ‘스타워즈’ 의 오마쥬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장치였다. ‘창세기전 2’ 마지막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희생으로 원수 같던 두 세력의 화해를 이끌어 내는데, 이는 ‘로미오와 줄리엣’ 과 비슷한 느낌의 엔딩이다. 뿐만 아니라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 를 연상케 하는 ‘천공의 아성’ 등 많은 부분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것을 의도적으로 표현했는데, 표절이 아니라 패러디 요소로 넣은 것이기 때문에 이름만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외에도 국내 무협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클리셰(판에 박힌듯이 자주 쓰이는 표현)를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는데, 최근 개봉하는 영화에서 고전 명화의 일부 장면을 따라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들이 의도치 않게 표절 의혹 쪽으로 흐르다 보니 나중엔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풍의 광시곡’ 이후에는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아예 역사적 사실/인물을 채용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이러한 패러디나 오마쥬를 좋아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면 PS2로 컨버전되던 ‘창세기전2’ 의 불발이다. 해당 프로젝트가 99년 정도에 진행되었는데, 기존 ‘창세기전 2’ 와는 달리 도트도 다시 짜 넣고 3D CG 무비도 추가했다. 그렇지만 여러 가지 여건 상 출시가 불발되었다. 지금도 간혹 ‘창세기전2’ 리메이크에 대한 문의가 오곤 하는데, 이를 진행하지 않는(못하는) 이유는 퀄리티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리메이크를 한다면 어정쩡하게 만들 바에야 어느 정도 이상의 하이퀄리티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창세기 외전1 서풍의 광시곡
‘창세기전 4’ 영상의 주 무대이자 튜토리얼, 메인 시대관을 담당하는 ‘서풍의 광시곡’ 은 ‘창세기전’ 시리즈의 외전격 작품으로, 국가와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커다란 ‘전쟁’ 이 아니라 역사를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소프트맥스는 ‘서풍의 광시곡’ 과 ‘템페스트’ 로 이어지는 2개의 외전을 통해 ‘창세기전 3’ 의 내용 전개를 위한 복선을 완성했으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새로운 노하우를 축적했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을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 없었다. ‘창세기전 2’ 의 뛰어난 완결성은 후속작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으로 인해 히트작인 ‘창세기전’ 을 모태로 한 후속 타이틀의 필요성이 계속해서 대두되었고, 결국 ‘창세기전 2’ 로부터 50년 후의 이야기를 다루며 ‘창세기전 2’ 의 완성도를 유지시킴과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었다.
‘서풍의 광시곡’ 은 전작에서 고수해오던 SRPG 방식이 아니라 캐릭터가 필드를 직접 이동하고 적과 마주쳐 전투를 벌이는 정통 RPG로 제작되었다. 사실 ‘서풍의 광시곡’ 을 제작할 때만 해도 소프트맥스는 ‘창세기전’ 시리즈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전작에서의 SRPG 방식을 계승하지 않았고, 게임 타이틀명에도 ‘외전’ 이라는 이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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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외전' 으로 4개국에 발매된 '서풍의 광시곡'
비록 너무 넓은 맵 크기와 지나치게 자주 일어나는 전투,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무기 내구도 시스템의 실험적 도입 등으로 게임성 면에서는 약간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퀄리티의 그래픽과 ‘창세기전’ 고유의 색을 유지/발전시켰다는 점, 개인적인 복수에서 제국의 흥망까지 아우르는 장엄한 스토리,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명장면,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강렬한 일러스트 등의 요소들은 지금도 ‘서풍의 광시곡’ 을 명작으로 추억하게끔 해 준다.
위에서 언급했듯 ‘서풍의 광시곡’ 은 ‘창세기전 2’ 의 결말에서 50여 년이 흐른 게이시르 제국을 배경으로 한다. 이는 향후 발매되는 ‘창세기전 외전 2 템페스트’, ‘창세기전 3 파트1’ 의 세계관적 초석을 마련하는 기틀이 된다. ‘창세기전 2’ 이후 게이시르 제국은 믿음의 기반이 되던 암흑교가 붕괴되고, 흑태자가 사망하면서 왕실의 피가 끊겨 혼란 상태에 빠진다. 이 사이에 정권을 잡은 사람이 체사레 보르자로, 그는 제국의 국교였던 암흑교를 금지시키고 새로운 주신교 신앙의 힘을 빌어 추기경의 자리에 오른다.
‘서풍의 광시곡’ 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복수극의 원조격 고전 소설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모티브로 삼았다. 주인공인 시라노 번스타인은 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가문과 권력, 사랑하는 연인 등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의 감옥인 인페르노에 갇힌다. 그곳에서 시라노는 봉인되어 있던 암흑신의 수장 데히모스를 만나고, 힘의 결정체와도 같은 암흑혈을 전수받는다. 그리고 시라노가 갇힌 지 13년이 되는 해, 창세기전4 소개 영상에서도 등장한 인페르노 탈옥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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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여유 넘치는 웃음의 미청년이었던 시라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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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배신으로 인해 복수의 화신이 된다
인페르노를 탈툴한 시라노는 폭풍도로 찾아가 흑태자의 유산인 아수라검을 손에 넣고, 복수를 위해 체사레 보르자의 폭정에 대항하는 조직 제피르팰컨에 합류한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한 과거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복수를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복수의 끝은 허망한 법. 시라노는 자신의 딸이었던 크리스티나를 구한 후 사망하고, 그의 유지와 아수라는 팬드래건의 황태자인 클라우제비츠에게 이어진다.
사실 서풍의 광시곡에는 이 외의 엔딩 2가지가 더 존재한다. 시리즈 최초로 멀티엔딩을 채택한 것인데, 분노의 광기에 사로잡힌 시라노가 모두를 죽이는 배드 엔딩에서부터 모두와 함께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는 해피 엔딩까지 다양한 뒷이야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선택의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최 이사에 따르면, 개발 마무리가 되어가던 시점에 어떤 식의 엔딩으로 끝내면 좋을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 차라리 그냥 생각하던 엔딩 방향들을 전부 만들어서 진 엔딩은 유저의 선택에 맡기게 하면 그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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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클라우제비츠가 적으로 돌아서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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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노의 의지를 이어받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제국의 내전을 종식시키기도 한다
시리즈 최초의 멀티 엔딩은 이렇게 탄생했으나, 기획 의도와는 달리 그 효과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멀티 엔딩을 만들기 위해서는 분기 별로 달라지는 스토리를 따로따로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리소스가 들어간다. 반면에 유저들은 분기 별로 세이브를 한 후 여러 번 플레이하며 모든 엔딩을 보기를 원하고, 그 후에는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진엔딩으로 생각하고 게임을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다. 소프트맥스는 ‘서풍의 광시곡’ 을 통해 유저들의 이러한 성향을 파악, 이후 ‘템페스트’ 와 ‘창세기전 3’ 등에서는 멀티 엔딩이 아닌 서브 스토리들을 곁가지로 많이 만들어 놓고, 메인 스트림은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게끔 하는 스토리텔링을 구현했다.
결과적으로 ‘서풍의 광시곡’ 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흥행에 성공한다. 사실 ‘서풍의 광시곡’ 이 출시된 1998년은 ‘스타크래프트’, ‘포가튼 사가’ 등 쟁쟁한 라이벌 게임들이 많이 나왔던 시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풍의 광시곡’ 은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다시 한 번 소프트맥스의 이름을 시장에 알렸다. 실제 국내에서만 대략 15만 장의 타이틀이 판매되었는데, 당시 기본적인 타이틀 출하 단위가 3천 장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경이적인 수치다.
이후 ‘서풍의 광시곡’ 은 일본과 중국, 대만 4개국으로 수출도 진행된다. 일본에서는 세가의 드림캐스트와 소니의 PS2로도 컨버젼 되었으며, PS2판에서는 일러스트도 전면 리뉴얼되며 또 한번의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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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팔콤사를 통해 PS2로 리뉴얼되어 출시된 '서풍의 광시곡'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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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등 글로벌 버전의 캐릭터 이미지(좌)와 PS2버전의 이미지(우)
전반적으로
남성 캐릭터는 오리지널이, 여성 캐릭터는 PS2버전이 낫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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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전 1, 2', '서풍의 광시곡' 이 출시된 국가&플랫폼 정리
최연규 이사가 회상하는 '서풍의 광시곡' 일반적으로 90년대 중부반을 격동의 시기라고들 한다. 그 당시 소프트맥스는 국내 게임개발사 중에서는 꽤나 상황이 양호했지만 많이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서풍의 광시곡’ 은 그나마 기획 의도가 ‘창세기전’ 시리즈를 하나만 더 만들자는 것에서 시작되었지만, 당시 정황상 개발을 상당히 서두른 감이 있었다. ‘템페스트’ 는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아예 제작 중에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개인적으로 ‘창세기전’ 은 2편 자체로 완결성이 있었기 때문에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창세기전 2’ 에서와 같이, ‘서풍의 광시곡’ 에도 오마쥬 요소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일단 ‘서풍의 광시곡’ 스토리의 메인 흐름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일본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신세기 에반겔리온, 탑을 노려라 등)이 제작한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는 사실 공영방송인 NHK에서 제작비를 지원받기 위해서 고전 명작인 해저 2만리를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오프닝 부분을 보면 ‘쥴 베르느의 해저 2만리로부터’ 라는 문구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이 작품을 보았을 때 소재를 단순히 그대로 가져와 쓰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재해석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인상을 받았고, 만약 내가 뭔가 창작물을 만들게 된다면 나 역시 고전 명작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롭고 현대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서풍의광시곡’ 기획 당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극을 컨셉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보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있어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또한, ‘서풍의 광시곡’ 은 아마추어 개발자 시절부터 멘토로써 도움을 많이 주신 무협작가 용대운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용대운 작가님은 PC통신 시절 국내 무협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친해진 분인데, 매일 밤 채팅방에서 만나 이야기 창작에 대한 도움을 여러 모로 많이 받았다. 이분은 그 전까지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국내의 무협소설과는 달리 미국의 하드보일드풍 등 완전히 다른 장르의 느낌이 나는 무협소설을 쓰시기도 했는데 ‘어떤 특정한 장르에서 흔히 쓰이는 클리셰가 다른 장르로 건너가면 완전히 새로운 느낌이 될 수도 있다’ 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SF 판타지인 ‘창세기전’ 시리즈에 무협적인 클리셰가 많이 사용된 것(스킬명, 한제국 등)은 이 분의 영향이 크다. 이 분의 소설 ‘탈명검’이 바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복수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것인데, ‘서풍의 광시곡’ 제작 당시에도 여러 모로 도움을 많이 주신 용작가님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몇몇 장면을 의도적으로 오마쥬하였다. 작가 본인에게도 별도로 말씀드린 바도 있고, 당시 소프트맥스 공식 게시판을 통해서도 밝힌 바가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 의 루카스 감독이 항상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비롯한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라고 하는 것이 너무 멋져 보였다. 때문에 나도 언젠가는 “용대운님을 비롯한 한국 무협소설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웃음) |
그러나 게임의 흥행과는 별개로 소프트맥스의 내부 사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불법복제도 굉장히 많았던 데다, ‘창세기전 2’ 등의 유통을 맡고 있던 하이콤의 부도로 인해 대부분의 자금과 로열티를 회수하지 못 한 것이다. 최근의 온라인게임이라면 지속적인 운영을 통해서라도 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겠지만, 출시 시기를 전후하여 대부분의 매출을 거둬야 하는 패키지게임에는 치명적인 위기였다. 결국 소프트맥스는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세기전’ 시리즈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독자적으로 제작 중이던 게임을 ‘창세기전’ 시리즈로 편입시킨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외전 2 템페스트’ 다.
창세기전 연대기 하편(2월 7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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