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5월 ‘풍림화산’의 강호에 입문하여 무림고수를 꿈꾸었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동물과 도적떼 들만 상대해야 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강호를 떠났다. 절치부심 산 속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리질 않기를 기원하기를 7개월. 어느덧 ‘풍림화산’이 클로즈베타테스트를 마치고 오픈베타로 찾아와 필자를 다시 피 바람이 몰아치는 강호로 몰아넣고 있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빠르고 숲처럼 고요하게 말이다.
그때는 클로즈베타테스트 기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고수들이 강호에 나타나지 않아 몸을 사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말인데다 많은 무사들이 휴식 기를 갖는 시기 인만큼 어떤 은둔 고수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나 자신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보호 본능을 자극할 수 있는 예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다 위장일 뿐 사실 필자의 캐릭터는 독황의 경지에 오른 인물로, 갈퀴처럼 생긴 ‘조’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낸 후 독을 집어넣어 고통 속에 죽게 만드는 악랄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아 둬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태산성에 돌아와서 감회에 젖어 있을 틈도 없이 한 통의 전서구가 도착했다. ‘나정문에게 가보거라’ 예나 지금이나 밑도 끝도 없이 간단한 것은 변함이 없군. 그러고 보니 전서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전서구가 가리키는 인물을 찾아가기로 했다.
▲ 전서구는 게임 중간중간 등장하며 진행 방향을 제시해 준다
전서구에 적힌 나정문이라는 인물을 찾아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M키를 눌러 지도를 열어 확대를 하면 주위에 있는 인물들의 위치가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또한 주변의 강호에 있는 도적떼들과 맹수들의 위치까지 표시 되어 있어서 강호에 입문하는 초보 무사들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또한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인물들과의 대화 시 카메라 전환은 돋보이기는 했지만 해당 인물과 자주 대화를 해야 할 경우에는 매번 화면이 전환되어 약간 거추장스러운 느낌을 줄 때가 많았다.
▲ 1차 클베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일부 퀘스트에는 컷 신이 도입되어 그 퀘스트가 주요 스토리라인과 연관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기도 했다. 마치 애니메이션과 같은 연출로 단순히 글자로만 전달되는 퀘스트와는 달리 시각적인 만족도와 퀘스트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드디어 동물과 도적떼를 잡으며 시간을 때우던 모습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 구보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 본인은 편집되었다
하지만 필자의 바램과는 달리 이후의 진행은 7개월 전과 비교해서 거의 달라진 게 없었다. 주변의 동물과 도적떼들을 잡으며 등급 올리기를 반복하게 되었다. 태산성의 인물들은 성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주변의 동물들에게 이리도 원한이 많은지 상당히 많은 동물들을 죽여야 했다.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풍림화산’의 협행 보상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서 협행을 수행하지 않고는 레벨 업에 큰 지장이 있을 정도여서 거의 필수적으로 해야만 했다.
참고로 10레벨 대에서 협행을 하지 않고 일반 몹을 잡을 경우 보통 2~300마리 이상의 몹을 처치해야 레벨 업이 가능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협행의 밸런스가 은근히 잘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5레벨대의 협행을 다 수행하면 절묘하게 6레벨이 되고 6레벨의 협행을 모두 수행 하면 7레벨이 착착 맞아 떨어졌다. 이로 인해 1차 클베에 비해 지루함은 상당 부분 감소되었지만 콘텐츠의 소모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현재 풍림화산 퀘스트의 대부분인 단순 사냥 퀘스트의 보충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올 것이고, 그 경우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갈릴 듯 하다.
▲ 자연 치유를 하는 것은 실제 본인의 인내력 향상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좁은 강호에 널린 몹들
‘풍림화산’의 필드는 넓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몹들의 배치가 상당히 오밀조밀 붙어있는 듯하다. 많은 유저들을 감안한 일시적인 조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리스폰 타임도 상당히 빠르다. 덕분에 20마리를 잡는 협행의 경우 3분이면 충분한 정도이다.
문제는 선공 몹이 아닌 경우에는 별 상관없지만 선공 몹일 경우다. 필자는 용감하게 견공들이 모여있는 한 가운데 뛰어들어서 선빵을 날렸지만 끊임없이 밀려드는 견공들의 이빨 공격에 물어 뜯겨 죽고 말았다. 대충 설명하자면 세 마리의 견공이 달라 붙었을 경우 2마리를 잡을 즈음이면 다시 1마리가 달라붙고, 이것이 계속 반복되어 결국은 약물에 중독되어 죽거나 회복약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 무자비한 리스폰 타임은 과다한 약물 소비를 부른다
이쯤에서 ‘풍림화산’에서 쓰이는 회복약인 ‘금창약’에 대해 잠깐 알아 보자. 금창약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니 창, 칼 등으로 생긴 상처에 바르는 약이란다. 필자가 위와 같은 상황에서 최고 50개 정도의 금창약을 쓰고도 죽었으니 ‘풍림화산’의 금창약의 효과는 우리가 쓰는 빨간 약 보다는 훨씬 뛰어난 게 틀림없다. 여기에 대략 3초마다 금창약을 바르며 살아남는 캐릭터의 회복력은 피콜로의 회복력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모 게임에서 붕대를 감아가면서 싸우는 것만큼 눈물 겨운 장면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풍림화산’의 몹 배치 센스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우선 아래의 그림을 보자.
▲ 어떤 상황이 떠 오르는가?
보통 강호를 이동할 때는 대부분이 길을 따라 가게 된다. 그런데 가뜩이나 좁은 길 옆에 사람 냄새만 맡으면 물어뜯는 견공들을 배치해 놓아 어이없이 죽는 경우가 발생했다. 반드시 지나가야 되는 길에 선공 몹을 배치했다면 최소한 ‘개 조심’ 팻말 정도는 붙여주는 센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풍림화산'의 전투를 평가하자면 ‘급하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모르겠다. 좋게 말하면 뛰어난 타격감을 바탕으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전투가 진행된다. 몹을 하나 잡는 시간도 상당히 짧고 리스폰 타임도 짧다. 하지만 그것을 박진감 넘치는 전투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워낙 순식간에 전투가 진행되는 바람에 전투 스킬의 효용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다. 약만 충분하다면 그저 평타로 때리는 게 덜 귀찮고 잡는 속도 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이런 환경은 오토 유저 양성에 아주 좋은 환경을 제공해 준다. 예상대로 벌써부터 오토와의 전쟁이 시작 된 듯하다. 게시판이나 채팅 창에서는 오토 유저를 신고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갑자기 ‘열혈강호’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 근엄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성의 소유자는 이 분 말고도 여럿 있다
강호에 쉴 곳은 없는가
‘풍림화산’은 7레벨이면 탈것을 얻는다. 비교적 빠른 레벨에 탈 것을 얻는 기쁨도 잠시, 애마를 타고 강호를 유람할 만한 경치가 부족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널린 것은 몹 뿐. 어떤 길은 지나가다가 개에 물려 죽을 수도 있다. 말을 타고 있어도 교묘하게 나를 물어 뜯는 수완이 무림 고수의 경지에 이르렀다. 피 바람 치는 강호에서 잠시 목을 축일 만한 객잔이라도 있다면 내 당장 그리로 가리다. 그리고 현판에 내공이 넘치는 필력으로 시 한 수라도 남겨 줄 수 있소. 그러고 보니 이놈의 말은 애완용이라 성대 제거 수술이라도 했는지 타거나 달릴 때 히히힝 우는 소리를 못 들어 봤구려.
▲ 그나마 마을에서는 잠시 숨을 돌리며 개인상점이라도 구경할 수 있다
풍림화산이여 화산이 되어라!
연말연시에 방학은 분명 게임 서비스에 있어 분명 최고로 적절한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체험해본 콘텐츠는 극히 제한적이지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여럿 눈에 띈다. 다만 레벨을 올리면서도 왠지 나 자신도 여유가 없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풍림화산'에는 그런 여유가 부족한 것 같다.
게시판의 반응 중 이미 30레벨 이상이 된 유저들은 반복된 사냥, 사냥 뒤의 할 것 없는 허무함을 호소하는 글이 종종 눈에 띈다. 이것은 무림의 최고수가 되어서 느끼는 허무함과는 다르다. 적어도 무협게임에 있어 유저들이 바라는 것은 남들이 감히 접할 수 없는 강함 같은 것은 아닐까? 단순하고 소모적인 콘텐츠 만으로는 유저들을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는 것이다.
세심한 배려도 부족해 보인다. 물건을 살 때 착용 아이템과 비교 툴 팁이 뜨는 부분이나 제련이 적용 되지 않는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제련 관련 설명이 있는 것 같은 작은 부분의 처리가 미숙하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지 않는가?
여기에 운영도 게임의 중요한 요소이다. 오픈 한지 일주일도 채 안된 게임에 벌써부터 오토 유저가 등장했고, 협행이 무한 반복되는 버그가 있어 순식간에 고 레벨이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고 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닌 소문에 불과할 지라도 그 영향은 사실 이상의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 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풍림화산’이여 고요한 숲보다는 활활 불타는 불길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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