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삼국지는 아무리 시리즈를 거듭해도 새로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니 어릴 적부터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랄까?
전략시뮬레이션 삼국지는 중국소설 ‘삼국지연의’를 소재로 10여 년을 장수한 스테디셀러
게임이다. 이 게임은 시리즈의 명성뿐만 아닌 유저들의 추억을 함께 머금고 있어,
게임 이상의 ‘문화’라고 감히 표현하고 싶다. 게임역사에 있어 원로 축에 속하는
삼국지가 아직도 그 왕성한 기력을 뽐내며,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것도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파격적인 변신과 함께….
▲ 삼국지는 단순한 게임이 아닌 유저들의 추억을 아우르는 당당한?'문화 컨텐츠'다 |
관운장,
2D에서 3D로 회춘하시다!!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60부터라고.
게임도 마찬가지다. 시리즈를 두 자리 수나 유지해 온 것은 그만큼 다른 신작게임에서
범접하지 못할 ‘연륜’이 있다는 것이다. 삼국지 역시 ‘11’이라는 두 자릿수로
진입하면서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유저들을 놀라게 한다. 삼국지 11의 가장 큰
변화는 2D에서 3D로 완전 탈바꿈한 것.
▲ 산수화를 보는 듯한 미려한 화면은 게임의 가장 큰 볼거리. 3D로의 변화는 삼국지의 그래픽을 '게임'이 아닌 '작품'의 반열에 올렸다 |
3D로 전환되면서 당연히 2D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지형의 고저차가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광활한 중국대륙을 다양한 시점에서 경영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매력. 하나의 맵에서 모든 명령이 이루어지며, 맵의 크기 또한 어마어마하게 크다.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그래픽은 3D 기술력을 만나 5월의 봄꽃처럼 ‘만개’한 느낌이다.
마치 신선이 살고 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는 동양적인 색채를 극대화 시켜준다. 3D로의 ‘회춘’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온 삼국지 만의 장인정신이었기에 가능하리라.
▲ 삼국지 최고의 장수 관공. 패기 넘치는 젊었을 때의 모습(좌)와 연륜이 베어있는 노년기 모습(우) |
캐릭터의 변화도 반갑다. 물론 대부분의 장수들은 전작과 큰 변화가 없지만 몇몇 장수들은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교체됐다. 특히 조운은 전작까지만 해도 다소 유약한 미소년의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이번엔 강렬한 이미지로 탈바꿈했다.
외모만 봐도 ‘아두를 품고 장판파를 종횡무진한 맹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캐릭터 일러스트가 나이에 따라 바뀐다는 점. 삼고초려 때만해도 백년서생인 제갈공명이 ‘오장원 시나리오’에는 촉나라의 명운을 어깨에 짊어진 중년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무장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삼국지 11에는 무장들의 사소한 일러스트까지 세심히 배려한 흔적이 보인다.
세세한
내정보다 큰 그림의 전략을 보라!
전작에 비해 인터페이스가
편해졌다. 그동안 삼국지의 높인 진입장벽이었던 번거로운 ‘내정’을 간소화 시켰다.
삼국지 11에서는 전투는 물론 내정까지 자동선택이 가능하다. 전작에서는 내정 수행
시 일일이 유저가 마우스를 클릭 해 수행무장을 지정해 주었던 것에 반해 11편에서는
적합한 장수들이 자동으로 선택된다. 때문에 유저는 최종승인만 결정해 주면
된다. 따라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내정과 전투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유저들은 내정에
관한 세세한 잡일보다 좀더 큰 그림의 전략을 구상할 수 있다.
▲ 손을 번거롭게 하는 세세한 내정들은 버튼 자동화 했다. 유저들은 큰 그림의 전략을 구상하면 된다 |
여성이
대우받는 ‘삼국지’
한국에서 여성 국무총리가 선출되는 마당에
삼국지 11에서도 ‘여권’이 대폭 신장됐다. 전작까지만 해도 여성캐릭터는 그저
보조출연자 혹은 결혼상대자 수준. 여성이 삼국지 전면에 나서는 것은 유저가 스스로
만든 신무장이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벤트에나 간혹 얼굴을 내미는 수준.
그나마 명함을 내미는 여성캐릭터는 ‘축융’이나 ‘초선’정도. 이번 작품에서는 삼국지에서 활약한 여성캐릭터가 게임전면에 배치됐다. 이들은 단순한 얼굴마담에서 탈피해 주요 인재로써 내정을 수행하거나 전투에 나서는 등 남자들이 하는 일을 척척 해낸다. 오나라의 절세가인 ‘대교’와 ‘소교’는 물론 여걸 '손상향'? 등 다양한 여성인물들을 게임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
▲ 강동의 절대미인 대교와 소교. 비록 능력치는 낮으나 남성무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활약한다. 더 이상 얼굴마담이 아니다 |
복잡한 내정, 버튼 하나로
끝!
내정은 전작에 비해 대폭 축소된 모습이다. 삼국지10의
경우 성의 내정수치가 상승될수록 ‘소→중→대→특대’로 업그레이드된다. 즉, 성이
번성할수록 복잡한 내정메뉴가 추가된다. 11편의 경우 해당 내정치를 올려주는 건물만
세우면 된다.
▲ 삼국지의 특징이나 결점이 '내정 노가다'가 축소된 만큼 더욱 스피디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
건물을 지어놓으면 일정범위 안에서 내정을 알아서 수행해 준다. 물론 내정의 간소화는 정통파 삼국지 유저라면 다소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에이식 역사 시뮬레이션에서 내정은 전쟁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정도 일종의 ‘노가다’라고 생각하는 유저의 경우 내정이 축소된 만큼 더욱 스피디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삼국지
11의 '백미', 일기토와 설전
전작에서 호평을 받은 문신들
간의 ‘설전’이 이번에도 등장한다. 그 비중 역시 상당히 커졌다. 삼국지 11은 그야말로
설전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인재등용 시 웬만큼 능력 있는 장수는
설전을 해서 이겨야 등용할 수 있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의 정성으로 영입했듯
좋은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군주 또한 설전에 능해야 한다. 그런데 설전의 방식이 전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 3D 그래픽의 역동적이고 화려한 비주얼이 제공되는 점도 큰
변화지만, 그에 못지않게 설전의 공식도 ‘환골탈태’했다.
▲ 이제는 인재를 등용할때도 치열한 설전을 펼쳐야 한다. 삼국지 11의 설전은 그래픽만 향상되었을 뿐아니라 시스템 적으로도 진일보한 느낌이다 |
설전은 ‘설전카드’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작에서는 설전카드 숫자의 크고 작음에 따라 승패가 판정 났다. 따라서 치열한 심리전보다는 단순히 찍어서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일쑤였다. 이를 보완해 삼국지 11에서는 카드의 활성화와 비활성화 개념을 첨가해 자신이 제시한 카드가 ‘소’일지라도 비활성화 되어 있는 상대편 카드의 ‘대’를 이길 수 있다. 더욱이 공격에 성공한 캐릭터는 다음에 제시할 카드를 먼저 공개해야 하는 패널티가 주어지기 때문에 수세에 몰려도 얼마든지 역전할 수 있다. 이러한 상관관계를 통해 더욱 치밀한 심리전을 펼칠 수 있다.
▲ 일기토 하나만으로도 삼국지 11을 구입할 이유는 충분하다. 일기당천 영웅들이 화려한 비무를?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
일기토는 삼국지 11이 일궈낸 가장 큰 수확이다. 하프타임으로
진행되는 일기토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일기토가 시작되면 공격을 할
것인지 방어를 할 것인지 아니면 기력을 모을 것인지 등의 행동방식을
선택한다. 결정버튼을 누르면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일기토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
물론 정세 변화에 따라 그때그때 장수의 공격방향을 설정해 줄 수 있다. 게임은 삼국지
무장들이 위용을 떨치는 모습을 다양한 카메라 워크로 담아냈다.
▲ 최대 6명의 무장들이 일기토에 개입할 수 있다. 여포와 유비 삼형제가 자웅을 겨루었던 유명한 호로관 전투도?더이상 소설만의 장면은 아니다 |
박진감 넘치는 일기토에 양념이 되는 요소가 바로 난입시스템. 처음 1 대 1로 일기토가 시작되었더라도 다른 아군 장수나 적장이 난입할 수 있다. 2 : 1로 일기토가 진행 될 수도 있고 많게는 일기토에 6인의 장수가 경합을 펼치는 그야말로 난전이 펼쳐진다. 삼국지 원작에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여포와 자웅을 겨루었던 그 유명한 ‘호로관 대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전략을 얻고 전술을 버리다
모든 내정과 전쟁이 전체 맵에서 한번에 이루어진다. 여러 나라가 동시다발적으로
전투를 펼치기 때문에 ‘관도대전’이나 ‘적벽대전’ 같은 큰 규모의 전투도 가능하다.
특히 주변국가들이 연합해 강한상대를 동시에?몰아붙이는 연합전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성전이나 야전맵에서 구현되던 아기자기한 전술적인
묘미는 사라졌다. 이것이 삼국지 11의 딜레마다.
▲ 따로 제공되는 전투화면에서 다양한 전술을 펼칠 수 있는 삼국지10(좌)과는 달리 삼국지 11(우)는 하나의 맵에서 모든 전투가 벌어진다. 전략적인 스케일이 큰 반면 전술적인 아기자기함은 퇴색됐다 |
병과가 다양해 진 것도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창병, 기병을 비롯해 공성병까지 추가됐으며 각 병과마다 업그레이드 가능하다. 이에 따라 게이머가 키울 수 있는 부대의 종류 또한 무궁무진하다. 전쟁에서 문신의 역할이 강화된 점도 빠질 수 없는 장점. 계략 성공률이 눈에 띄게 증가한 관계로 장비같이 무력만 세고 지모가 낮은 장수들은 전쟁에서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계략의 지속시간 또한 대폭 상승해 잘못하면 대군을 이끌고도 공격 한번 못해보고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전쟁에 나설 때는 무력이 강한 장수 못지않게 현명한
문신도 필요하다. 이는 문, 무간의 밸런스를 조절하는데 큰 역할을 해준다.
▲ 중국의 지붕 만리장성은 삼국지11 그래픽의 진수를 보여준다 |
아기자기한 ‘전술적 재미’를 포기한 대신 규모가 큰 ‘전략적 스케일’을 택한 점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유닛이 한 화면에서 전쟁을 벌인다는 사실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턴제라는 시스템적 한계로 인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실시간 전략게임보다 다소 긴박감이 떨어진다. 턴제의 요건 상 박진감은 기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유닛만 늘어나고 맵만 커졌을 뿐이지 실제 전투에서는 전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외모에 신경을 쓰다보니
내실이 부실하다
외모에 너무 신경을 썼기 때문일까? 전체적으로 내실이 부실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D에서 3D로의 혁신적인 변화, 다양해진 캐릭터 일러스트, 여성 캐릭터의 전면배치, 일기토와 설전의 화려함 등 눈에 보이는 즐거움은 기대이상이다. 하지만 삼국지의 본래 매력인 세밀한 내정의 즐거움이나 전술의 아기자기함은 기대이하다. 게임의 엔딩을 보면 다시 한번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바라건대 삼국지 12에서는 화려한 장신구 몇 개쯤 떼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내실을 튼튼히 다졌으면 한다. 그것이 10여 년 동안 삼국지라는 게임을 사랑해 온 유저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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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까지 조자룡 이미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 더 이상 꽃미남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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