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된 시각에 의한 공포의 극대화
이
시리즈는 사일런트 힐이란 외딴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에 대해 풀어나가는
호러어드벤처물이다. 마을에는 유명한 고아원이 하나 있었는데, 겉으로는 고아들을
보살핀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데려오지만 아무도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고아원이라는 명목으로 아직 철도 안든
아이들에게 왜곡된 교리를 전파한다고 하는데... 한편 사일런트 힐 시리즈만의 특징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의 극대화에 있다. 시점변화가 비교적 자유롭기는 하지만
그만큼 괴물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그러한 공포감은 더욱 배가
된다. 이번 작품은 보이지 않는 시점을 통한 공포의 전달 외에도 흐릿한 시야, 복잡한
지형구조로 쉽게 잃어버리는 방향감각 등은 사일런트 힐 시리즈에서 이어온 고도의
노하우를 통해 손색없을 정도로 잘 구현됐다. 또한 각종 이벤트 장면의 연출에 있어서도
빛의 강약, 질감의 정도, 인물과 배경 사이의 포커스 조절, 화면의 흔들림 등을 통해
최대한의 효과를 이뤄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일반 구조물에 대해서는
현실과 이면세계를 상징하는 각각의 느낌을 색깔로 표현하는데 성공했으며 몬스터
역시 공격 따로 신체 따로가 아닌 정말로 그 장소에 그 대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했다는데 시선이 집중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모든 감정변화를 소화해내는 눈동자의
변화는 압권
이제 캐릭터에 대해 살펴보자. 오프닝 동영상을 제외하고
게임속에 등장하는 모든 동영상이 3D폴리곤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이 모두 CG가
아닌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뛰어나게 표현돼 눈길을 끈다. 특히 캐릭터 묘사의
경우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얼굴 표정이나 눈(특히 눈은 게임제작자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감정묘사의 절정을 달렸다)의 움직임이 도저히 3D폴리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다는데 경이롭기까지 하다. 또한 엔딩 후에 획득하게 되는 코스츔을
입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을 때에도 이 게임은 다시 한번 게이머를 놀라게 한다. 코스츔을
착용한 채로 게임을 시작하면 걷거나 뛰는 동작은 제외하고서라도 모든 동영상에
새로운 코스츔을 착용한 채로 등장해 칭찬을 자아낸다. 이렇게 함으로 새로 게임을
즐길 때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물론, 이제까지 봐왔던 동영상이 CG가
아닌가라는 의심의 소지는 한방에 날려버리게 된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세계를 상징하는 듯한
소리를 채용
음산한 사운드. 사일런트 힐 시리즈만의 특징을 꼽자면 듣고
있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배경음악에 있다. 게이머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넣은 후 그 상황에서 벗어나게끔 생각의 폭을 제한하는 음악. 사람이 극한의
공포를 느낄 때에는 전혀 움직일 수 없거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
게임이 바로 그런 점을 잘 집어내 준다. 현실세계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이면세계에서
들려오는 출처 모를 아우성들. 마치 인간이 외면적으로 항상 평화를 추구하고, 안락함을
느끼려 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신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는 살아오면서 강요받아온
불문율들을 무참히 깨뜨려버리는 것처럼 이 두 속성을 대비되는 분위기(배경)를 통해
시각적으로 끄집어냈다.
평범한 사물도 주변환경에 따라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떤 생물이든 하나의 신경이 마비되면 그만큼 다른
신경이 예민해진다고 하는데 이 게임은 그런 점도 잘 구성해 놓아 게이머를 무참히
공포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주변의 게이머를 위협할 뭔가가 있을 때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거친 소리. 점점 가까워짐에 따라 그 소리는 기분 나쁠 정도로 크게 들려오는데...
돌연 뒤에서, 혹은 천정에서 뭔가가 나타나기만 해도 그러한 긴장감은 폭발해버린다.
게임을 무사히 클리어하기 위해서는 조용히 소리를 꺼놔야 할 정도로 사일런트 힐
3에서 사용된 음악들은 완벽할 정도로 공포라는 이미지를 잘 표현해냈다.
상황과 어우러져 긴장감을 형성하는 성우의
절연
이번엔 성우 이야기를 해보자. 게임의 주인공인 헤더와 그녀의 뒤를
쫓는 더글라스, 이번 사건의 원흉 클로디아와 진정한 사이코 빈센트. 게임은 이 넷의
대립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나가는데 각각의 역할을 맡고 있는 성우의
연기가 게임속에서 접하게 되는 분위기, 상황과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또한 캐릭터 및 게임의 전반적인 느낌이 서구적이어서 모든 대사에 영어를 사용한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것 외에도 주인공을 맡고 있는 헤더의 연기가 절정을
이루는데 아버지와 통화했을 때의 기쁨이나 아픔의 표현,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이 마치 그 일이 정말로 벌어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성우의
감정묘사는 절정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전작과 맞물리는 매끄러운 스토리
10년
전에 사일런트 힐이란 마을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집단 살인사건. 어린 나이로 영원히
떠나보내야 했던 딸과 똑같이 생긴 소녀를 만나게 된 해리는 사일런트 힐이란 마을의
이상한 기운에 휩쓸리고 만다. 마을에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단서들은 해리에게
정말로 딸이 되살아났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는데... 점점 파헤칠수록
무엇이 이 마을을 이렇게 끔찍한 상황으로 이끌었는지 알게 된 해리는 문제의 원흉을
찾아 분노의 칼을 꽂고 마을을 떠난다. 물론 딸과 똑같이 생긴 소녀를 데리고...
여기까지가 사일런트 힐 1의 스토리. 사일런트 힐 3는 해리와 함께 떠난 소녀가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에 스토리적인 연계가 매끄럽게 이어진다. 처음부터 압박해 들어오는
“소녀는 대체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게임을 진행함에 따라 점점 구체화되어가고
결국에는 1편에 등장했던 인물이었다는 결론이 나면서 모든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해진다.
게임 속 반전은 다소 미미
이렇게
뿌연 안개속에서 어느쪽으로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사건의 단서들은 게이머에게 해결의 열쇠를 쥐어주는 것 뿐 아니라 진정한
재미, 게임속으로의 완벽한 몰입을 가져다 준다. 혹시라도 1편을 즐기지 못한 게이머들을
배려하기라도 하듯 해리가 했던 사건들을 다른 인물의 시각으로 해석해주는 것은
만에 하나라도 제작자들이 전편을 고려한 나머지 놓칠 수 있는 스토리의 맥을 지켜주었다는
점에 칭찬할 만 하다. 하지만 사일런트 힐 3는 엔딩을 예측할 수 있다는 단점도 지니고
있다. 뻔한 스토리야 아니지만 게임속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한 시점에서는 게임이
어떠어떠한 형식으로 결론을 맺겠다는 것이 어렴풋이 짐작되는 것이다(물론 전편을
즐겨본 이들에게만 한정되지만). 공포를 소재로 한 게임답게 기존 팬들을 위해서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데, 어쨌든 그 점만
제외하고라면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액션보다는 수수께끼가 더 어려운 작품
공포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게임속에서는 잘 죽지 않는다. 물론 난이도를 상급으로 지정했을
경우에야 조금 더 어려워질 수 있지만 노멀 플레이를 했을 경우, 몬스터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경우는 보스전과 같은 경우로 극히 제한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게임이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일런트 힐 시리즈를 떠올리면 극악의 퍼즐과 수수께끼가
생각날 정도로 게임 속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는 추상적일 뿐 아니라 게이머의 기본
지식수준을 의심케 할 정도로 난해하다. 단서를 통해 비밀번호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이고,
획득한 물건들을 조합해 적절한 장소에 사용해야 하는 것도 게이머가 논리적인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는데... 그렇지만 사일런트 힐 3의 난이도가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월등히 높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름에 걸맞는 수준을 지니고 있다는 정도. 게임
속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는 자신이 선택한 난이도에 따라 쉽고, 어렵게 바뀔 수 있어
엔딩만을 보기 위해서라면 비교적 쉽게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 ?
미세한 움직임의 표현으로 대상의 어색함을
제거
캐릭터 움직임은 비교적 부드러운 편이다. 가만히 서 있을 경우 고정
자세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미묘하게 신체 어딘가를 움직여 가상속의 인물이 지니는
이질감을 없애준다. 걸어갈 때에는 조심스러운 느낌을, 뛰어갈 때에는 급박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오래 뛰다가 갑자기 멈췄을 경우에는 숨고르기를 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쓴 점이 눈에 띤다. 전진과 후진, 좌우 회전의 방향시스템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이 어색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세세한 움직임의 표현으로 가능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무기의 사용에 있어서도 각각의 무기에 맞는 동작이 설정돼
있어 보다 사실성을 가져다준다. 칼의 사용에 있어서는 좀 더 빠른 손놀림을, 쇠파이프나
나무망치 등의 사용에서는 뭔가를 깨부수는 쾌감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권총이나
엽총, 기관단총 역시 각각 다른 형태의 동작이 수반되기에 사용에 어색함이 없다.
공포, 수수께끼, 스토리의 절묘한 조화
게임의
컨셉인 공포를 잘 전달해주는 만큼 게임에의 몰입은 거의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공포라는 소재 자체가 누구에게라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일반성을
지니고 있으며 거기에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수수께끼 역시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고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쉽게 풀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항상 손에 잡힐 듯한 여운을 남겨줘 게이머의 도전의욕을 고취시킨다.
이것에 스토리적인 완성도가 첨가돼, 1편을 즐겨봤던 이들에게는 특히나 각각의 등장인물들간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며 게임을 진행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게임을 오래 즐기면 엽기를 즐기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게임의 분위기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을 늦췄다가
조여주는 배경음악은 항상 게이머가 뭔가를 쫓도록 이끌어준다(라디오 소리가 들리면
몬스터부터 때려잡는다). 굳이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그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이머는 본능적으로 게임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좀 엽기적일 수도 있는데,
몬스터도 어느정도 잡은 후에는 좀 더 강도 높은 방법으로 잡고 싶다는 충동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제작사측에서도 쇠파이프류의 무기를 다수 포함시킨 것일 테지만...
좀 과장이 심하다면 라디오 소리가 들릴 때 게이머는 공포에 떤다기보다 한손에 쇠파이프를
든 채로 “어서 몹 잡으러 가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상대가
쓰러졌다 하더라도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니 쓰러진 몬스터를 향해 과감히 구둣발을
날려 짓이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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