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둠'이 지난 13일, 국내 정식 발매됐다
1993년 발매된 이드 소프트웨어의 ‘둠’은 FPS 역사에 그야말로 한 획을 그은 명작 중 하나다. 당시 게임은 ‘울펜슈타인 3D’와 함께 FPS 플레이의 기본 틀을 정립했을 뿐만 아니라, 혁신적인 3D 그래픽으로 모두의 눈을 사로잡고, 네트워크 대전까지 지원해 ‘멀티플레이’의 대중화까지 이끌었다. 실제로 ‘데스매치’처럼 게이머들이 흔히 사용한 FPS 용어들도 초기 ‘둠’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룩한 업적만으로도 상당히 뛰어난 게임이지만, 사실 ‘둠’의 본질은 강렬한 플레이에 있었다. 우주 해병 ‘둠가이’가 되어, 종횡무진 맵을 누비며 악마를 커다란 총으로 날려버릴 때의 쾌감은 현세대 FPS와 비교하더라도 남다르다. 특히 총이 없다면 전기톱, 전기톱도 없다면 맨손으로 악마를 분해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은 장면 중 하나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지난 13일(금) 국내 정식 발매된 최신작 ‘둠(2016)’이 이렇게나 큰 기대를 모으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다. 강렬한 플레이와 배경음악 등 원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계승하면서, 여기에 생동감 넘치는 그래픽으로 무장한 이번 작품은 시리즈의 팬들이 오랜 시간 기다려온 ‘둠’의 완성형으로 보일 정도였다.
▲ '둠' 공식 론치 트레일러 (영상출처: 공식 유튜브 채널)
(주의) 영상에는 폭력적인 장면이 포함돼 있으니 청소년은 시청을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추억 싣고 다시 시동 거는 지옥행 폭주열차
과거 ‘둠’ 시리즈는 2편까지 원작의 강렬한 분위기를 고수하다가, 3편에서 갑작스레 장르를 공포게임으로 선회한 적이 있다. 당시 게임 자체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원작 팬에게는 느릿한 움직임과 어둠에서 갑자기 덮쳐오는 악마들은 ‘둠’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 ‘둠’은 다시금 원작 느낌 그대로 돌아왔다. 주인공도 옛날처럼 ‘악마는 모조리 쓸어버린다’는 철학을 가진 ‘둠가이’이며, 화성 연구시설에 나타난 악마들을 상대한다는 점까지 똑같다. 여기에 속도감 있는 하이퍼 FPS 특유의 플레이, 맵 곳곳에 떨어져 있는 총알과 아머, 돌아다니며 숨겨진 지역을 찾는 ‘비밀 파트’와 몰려오는 적을 쓰러뜨리는 ‘전투 파트’의 구분, 복층 구조의 아레나 맵 등 주요 요소들 모두 충실히 담아냈다.
▲ 다시 보니, 정말 반가운 '둠 마린'의 투구...
▲ 특유의 속도감 있는 전투는 어디 가지 않았다
스토리만 보더라도 이런 초기작의 하드코어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화성에 있는 한 연구시설에서 깨어난 주인공 ‘둠가이’는 악마들이 창궐한 모습을 보고, 자신의 아머와 커다란 총을 챙긴다. 그 과정에서 ‘새뮤얼 헤이든’이라는 조력자가 모니터를 통해 무언가 이야기하려 하지만, ‘둠가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를 부숴버린다. 간단한 연출 하나로, 이번 작품 역시 번잡한 말이 필요 없는 ‘둠’이라는걸 단적으로 보여준다.
▲ 조력자의 조언은 귓등으로 듣는 상남자!
이런 원작의 분위기에 차세대 그래픽이 더해지면서, 그 몰입감은 차원이 달라졌다. 실제로 ‘이드 테크 6 엔진’의 힘으로 화성과 지옥을 오가는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화성의 붉은 하늘과 악마의 흔적이 가득한 연구 시설은 경탄을 자아내고, 반복되는 복층 구조라도 각각 고유한 환경으로 꾸며져 질리지 않고 매번 신선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현실적인 느낌이 가미된 ‘카고 데몬’이나 ‘임프’ 등 원작의 악마들을 옛날 모습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차세대 그래픽이 보여주는 현실감 외에도, 스테이지마다 들려오는 배경음악도 한 몫 톡톡히 해낸다. 이번 작품에서 베데스다는 배경음악에도 많은 신경을 썼는데, 단순히 스테이지 내내 똑같은 노래를 틀어주기보다는 비트의 강약을 조절해 전투의 강렬한 느낌을 십분 표현해냈다. 한 예로,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는 음악이 잠잠하다가 악마들과의 전투가 고조될수록 노래가 점차 강렬해진다. 이런 부분은 실제 전투에 흥을 더해, 마치 플레이어가 진짜 ‘둠가이’된듯한 착각을 줄 정도다.
▲ 악마들로 가득찬 화성의 모습, 정말 리얼하다
▲ 배경음악이 흥겹지 않았다면, 분위기 하나는 '데드스페이스'급이다
엄폐? 엄폐는 겁쟁이들만 한다고!
처음 시작하고 5분 동안, ‘둠’은 분위기만으로도 플레이어를 상당히 흥겹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게이머들이 앞으로 겪을 ‘짜릿함’의 서막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전투 파트는 다른 FPS에서는 상상도 못 할 ‘둠’만의 쾌감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번 ‘둠’은 대부분 복층 구조의 아레나 맵에서 전투를 펼치게 된다. 대부분 입장이나 특정한 스위치를 작동하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악마가 포탈을 타고 등장하기 시작하며, 플레이어는 해당 지역에 있는 모든 악마를 쓰러뜨려야만 다음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사실 이런 싱글플레이 진행은 타 FPS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아무래도 돌파하려면 오랜 시간 걸리기 때문에 조금은 답답한 편에 속한다.
▲ 괴상한 포탈이 눈 앞에 있다면, 싸움을 대비하자!
▲ 구조만 살짝 다를 뿐, 아레나 형태의 맵은 반복된다
그러나 ‘둠’은 이런 전투가 계속해서 반복됨에도 불구하고, 질리지 않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과연 그 이유는 뭘까? 우선 기본적인 시스템을 살펴보자. 고전 FPS를 계승하는 게임답게, 기본적인 플레이 감각부터 타 FPS와는 다르다. 캐릭터 이동속도가 월등히 빠르고, 높은 곳도 단숨에 올라갈 수 있는 더블 점프, 별도의 재장전이 필요 없는 총기 등을 선보인다. 덕분에 적을 쉽게 따돌릴 수도 있고,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재장전 부담 없이 총을 난사하며 적을 쓸어버리는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 빠른 속도가 최적의 공격과 방어 수단이 된 셈이다.
실제 전투에 돌입하면, 악마들은 플레이어를 향해 끊임없이 쇄도한다. 걔 중에는 원거리에서 불덩이를 쏘는 ‘임프’도 있고, 때로는 ‘헬 나이트’처럼 뛰어난 체력을 앞세워 돌진하는 악마도 있다. 특히 공격 자체가 강력하므로, 타 FPS처럼 가만히 서 있다가는 순식간에 게임오버 화면을 보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어에게 ‘엄폐’라는 선택지는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유일하게 허락된 행동은 ‘달리면서 쏜다’뿐이다.
▲ 몬스터가 사방에서 오기 때문에, 뛰는 것이야말로 살 길이다
이런 빠른 속도감의 플레이에 새롭게 생긴 ‘글로리 킬’은 크나큰 시너지를 낸다. ‘글로리 킬’은 적에게 일정 대미지를 축적하면 발동하는 마무리 기술의 일종으로, 근접공격을 시도하면 적을 잔혹하게 처치한다. 한 예로, 악마의 팔을 꺾어버리거나, 이빨을 뽑아 눈을 찌르는 등 화끈한 연출을 볼 수 있다. 특히 ‘글로리 킬’로 적을 잔혹하게 마무리했을 때는 들려오는 배경음악의 속도까지 올라가 그 쾌감이 배가 된다. 그 기분은 FPS 전장에서 홀로 무적에 가까운 광전사가 된 느낌과도 같다.
▲ 이렇게 몸이 푸른색으로 빛난다면...!
▲ 애정이 듬뿍 담긴 '사랑의 매'를 시전할 시간이다
크고 다양한 대화수단, 골라 쓰는 재미도 확실
FPS을 논할 때, 무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얼마나 많은 무기가 준비됐는지도 중요하겠지만, 그 타격감이 어떤가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둠’에서는 원작의 대표 무기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그대로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 무기만 빼놓고 논할 수 없게끔 고유한 매력을 채워 넣었다.
‘둠’ 싱글플레이에서는 기본 총기 8종, 수류탄 3종, 그리고 ‘전기톱’과 ‘BFG-9000’과 같은 특수 무기 2종을 포함해 총 13종의 무기를 만나볼 수 있다. 대부분의 총기들은 그야말로 ‘둠가이’를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무지막지한 외형을 자랑하며, 그 성능도 그야말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 '체인 건'...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 들고만 있어도 학살이 예상되는 커다란 '전기톱'
무기들의 위력은 다른 FPS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원작에서도 높은 공격력을 자랑했던 ‘슈퍼 샷건’은 이번 작품에서 그야말로 일격필살을 자랑하며, 단순한 근거리 무기에서 특수 무기로 승격된 ‘전기톱’은 연료만 충분하다면 크기와 상관없이 적을 반으로 쪼개어버린다. 특히나 후반에 얻는 무기일수록 그 위력도 강력해, 악마들이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다.
하나같이 ‘오버파워’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강력한 위력이지만, 무기마다 느껴지는 타격감은 확실히 다르다. 응축된 플라스마 구체를 빠르게 발사하는 ‘플라즈마 건’은 반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데 반해, ‘체인 건’처럼 난사하기 시작하면 손끝이 저릿해지는 무기도 있었다. 이렇게 무기마다 특징이 명확하다보니, 취향에 맞춰 골라 쓰는 재미도 상당하다.
▲ 특유의 '뿅뿅' 소리가 인상적인 '플라즈마 건'
▲ 눈물이 흐를 지경이군... 'BFG-9000'
만약 이럼에도 무기 수가 적게 느껴진다면, 그런 사람들을 위한 ‘무기 모드’와 ‘강화’ 요소도 존재한다. 먼저 탐색 중 드론으로부터 구매할 수 있는 ‘무기 모드’는 주력 총기의 느낌을 확 바꿔준다. ‘헤비 어썰트 라이플’ 측면에 미니 미사일을 달아주거나, ‘컴뱃 샷건’에 3연속 사격 기능을 더할 수도 있다. 특히 주력 총기마다 ‘무기 모드’가 2개씩 존재해, 나중에 더 고급 무기가 나오더라도 초기에 나온 무기가 버려지는 일을 방지한다.
이 외에도, 전투 진행 중 얻은 ‘무기 업그레이드 포인트’로는 주력 무기들을 강화할 수도 있다. 강화할 수 있는 능력치 중에는 재장전 모션을 더욱 빠르게 해주거나, 연사 속도를 늘릴 수도 있다. 특히 제공되는 기능을 모두 강화하면 특정 도전과제를 통해 추가 기능까지 더해진다. 이처럼 이런 방법을 통해 ‘둠’에서는 지옥을 헤쳐나가기 위한 최적의 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 맵에서 발견되는 '드론'으로 '무기 모드'를 더하자
▲ 보다 빠르고, 보다 강력하게!
애매한 멀티플레이... 차라리 ‘스냅맵’을 기대한다
싱글플레이는 그야말로 적을 쓸어버리는 재미를 알차게 담아내고 있다. 마치 광전사가 된 것 마냥, 적을 효율적으로 분쇄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식이다. 사실 이런 재미가 멀티플레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길 바랬지만, 직접 해보니 그 온도 차이는 냉탕과 온탕을 오갈 정도다.
‘둠’의 멀티플레이는 싱글플레이에서 보여준 차별화된 모습과 다르게, 지나치게 평범하다. 게임 모드도 목표 킬 수를 두고 싸우는 ‘팀 데스매치’, 점령전 방식의 ‘워패스’와 ‘도미네이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팀이 이기는 ‘클랜 아레나’와 적을 처치해 포인트를 모으는 ‘소울 하베스트’, 상대팀을 모두 얼리면 승리하는 ‘프리즈 태그’ 등이 있다. 실질적으로 대부분의 모드는 과거 ‘퀘이크 2’나 ‘콜 오브 듀티’에서 보던 멀티플레이 모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 계획 변경... '엄폐'가 필요하다
▲ 무시무시한 '악마' 변신... 그래도 그게 끝이다
모드가 비슷해도 플레이라도 즐거우면 되는데,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멀티플레이에서는 싱글플레이보다 이동속도도 감소하고, 호쾌했던 무기 대미지도 크게 경감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능력치를 올려주는 ‘파워 업’이나 악마로 변신시켜주는 ‘데몬 룬’ 등 전략적인 요소도 어느 정도 더했지만, 이런 부분만으로는 멀티플레이의 재미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멀티플레이보다는 오히려 나만의 맵을 만들어보는 ‘스냅맵’ 개념이 훨씬 즐겁게 느껴진다. 완벽한 맵 에디터로써의 기능은 부족하지만, 마치 스팀에서 선보인 ‘개리 모드’처럼 ‘스냅맵’은 간단한 조작으로도 플레이어 스스로 맵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다. 가령, 폭발물로 가득찬 방에서 악마를 쓰러뜨리는 미션을 구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직접 수많은 악마들을 뚫고 목표지점까지 가는 맵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개발자들이 만들어낸 음악 연주 맵이나, 과거 ‘둠’ 초기작의 느낌을 재구성하는 등 다채로운 예시 맵도 존재해, 친구들과 놀기에는 기본 멀티플레이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다. 이런 ‘스냅맵’ 콘텐츠가 차후 더 많은 콘텐츠를 선보이면, 오히려 이쪽이 훨씬 알찬 재미를 선사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개발자들이 만든 특이한 맵을 '스냅맵'에서 만나볼 수 있다
▲ 맵 만들기, '스냅맵'만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다
싱글플레이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하다
‘둠’을 평가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의 비중이다. 일반적으로 싱글플레이는 1회 플레이하면 대부분 끝이지만, 멀티플레이는 지속적으로 플레이하는 콘텐츠기 때문이다. 특히나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던 싱글플레이와는 다르게, 멀티플레이는 ‘굳이 이런 전투를 ‘둠’으로 즐겨야 하나?’ 싶을 정도였기 때문에 과연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할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 잔인한 장면이 많지만, 그래도 적을 쓰러뜨리는 쾌감은 일품!
▲ '사이버데몬'의 강력함까지 예전 그대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작품은 싱글플레이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다. 현실감 넘치는 그래픽으로 원작의 느낌을 반영했을 뿐인데도, 그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명작’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특히 반복적인 전투 구조임에도,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가는 쾌감은 타 게임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던 것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직접 맵을 만들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스냅맵’도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후일 능력자들이 붙어서 만들어낼 맵들을 생각하면, 결코 그 미래가 어둡다고 하기에도 그렇다. 이런 점을 미루어보아, 이번 ‘둠’은 결코 돈이 아깝지 않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 진정한 남자라면 오라... 지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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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 이찬중 기자입니다. 자유도 높은 게임을 사랑하고, 언제나 남들과는 다른 길을 추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coooladsl@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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