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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울 칼리버 6 공식 트레일러 (영상출처: 반다이남코 공식 유튜브 채널)
‘소울 칼리버’가 6년이라는 세월의 공백을 뚫고 ‘소울 칼리버 6’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과거 ‘소울 칼리버’라는 게임을 조금이라도 해본 게이머라면 아마 가장 신경쓰인 부분은 향상된 그래픽도, 새롭게 추가된 전투 시스템이 아니라 엄청나게 회춘해 앳된 얼굴이 된 ‘소피티아’와 ‘샹화’ 같은 고참 캐릭터였다.
23년에 걸친 전통 있는 프랜차이즈답게 ‘소울 칼리버’는 시리즈를 거듭하며 캐릭터도 점점 나이를 먹고, 조금씩 퇴장해왔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시리즈 초기에 등장한 캐릭터들이 다시 등장했을 뿐 아니라 처음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소울 칼리버 6’은 지난 20여 년 동안 쌓아온 스토리를 되돌리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하는 ‘리부트’를 감행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전작에서 고인이 됐던 ‘소피티아’도 리부트 덕에 돌아왔다 (사진출처: 반다이남코 공식 블로그)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의아한 부분이 생긴다. 리부트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는 강수다. 지금까지 프랜차이즈가 쌓아온 역사 중 상당부분을 포기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울 칼리버’처럼 오래되고 전통 있는 프랜차이즈가 굳이 ‘리부트’를 택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소울 칼리버’ 시리즈는 리부트를 택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세계관과 스토리가 부실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과연 ‘소울 칼리버’는 왜, 그리고 어떤 이유로 리부트를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일까? 이번 주에는 시리즈 최초 리부트작 ‘소울 칼리버 6’ 출시를 맞아, ‘소울 칼리버’ 시리즈 스토리의 흥망성쇠를 간단히 짚어보고자 한다.
시리즈 첫 작품 ‘소울 엣지’, 대전 게임에 ‘역사’와 ‘멀티 엔딩’을 접목하다
▲ ‘소울 칼리버’ 시리즈의 시작점 ‘소울 엣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소울 칼리버’ 시리즈의 시작은 1995년. 아케이드 사양으로 기획됐던 대전 게임 ‘소울 엣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게임은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나 남코의 또 다른 작품 ‘철권’과 차별화되기 위해 독특한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처음 발매 당시 ‘소울 엣지’는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열악한 3D 그래픽, 잦은 버그, 열악한 캐릭터 밸런스,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8방향 이동 시스템 등, 여러 면에서 완성도 낮은 상태로 출시된 탓이었다.
그러나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소울 엣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그 힘은 바로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에 있었다. 대전 게임 치고는 특이하게도 ‘소울 엣지’는 실제 16세기 역사를 바탕으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각국 유수의 전사들이 겨룬다는, 일종의 ‘사실적 크로스오버’를 내세웠다. 여기에 스토리 속에서 각 캐릭터가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관되거나 직접 엮이게 되는 등 나름의 스토리텔링 요소를 갖춘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 ‘소울 엣지’에는 나름 다양한 시대적, 문화적 배경의 캐릭터가 등장했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게임의 스토리는 마검 ‘소울 엣지’와 ‘소울 칼리버’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 ‘소울 엣지’는 본디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무기였지만,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주인을 거치며 피를 묻힌 끝에 잔악한 자의식을 지니게 됐다. 그 자체로 요괴가 된 검은 어느 왕의 아들을 홀린 끝에 내전을 일으키나, 마침내 왕에 의해 패배하여 사라지고 만다. 이후 복수심에 찬 왕은 ‘소울 엣지’를 파괴할 또 다른 마검 ‘소울 칼리버’를 만들었으며, 이후 두 검은 계속 주인을 바꾸며 싸움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역사 속에서 두 검이 싸움을 계속하던 16세기 말, 이번에 ‘소울 엣지’는 에스파냐의 악명높은 해적 ‘세르반테스’ 손에 들어간다. 스스로 모습을 바꿀 수 있던 ‘소울 엣지’는 두 자루의 장검으로 나뉜 상태였는데, 이를 쥔 ‘세르반테스’는 이성을 잃고 광기에 젖어 선원들을 도륙 낸 후 그 자신도 저주를 받아서 살아있는 시체가 되고 말았다. 게임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울 엣지’ 행방의 소문을 들은 전사들이 ‘세르반테스’를 찾아 에스파냐로 떠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 마검 ‘소울 엣지’를 지닌 저주받은 해적 ‘세르반테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소울 엣지’는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소울 엣지’를 쫓는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내세워 이목을 끌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언월도를 휘두르는 조선 미소녀 ‘성미나’는 임진왜란에서 조국 조선을 구할 힘을 지닌 마검을 찾아 모험을 떠났으며, 신탁을 받은 그리스의 성스러운 전사 ‘소피티아’는 마검을 찾아 파괴해 세상에 질서를 되찾길 원한다. 그런가 하면 산적 ‘지그프리트’는 본의 아니게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죄책감에 미친 나머지 가상의 인물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망상에 빠지고, 그에게 복수할 힘을 얻기 위해 마검을 찾았다.
여기에 스토리가 실제 16세기 역사와 맞닿았다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캐릭터들이 마검을 찾아 떠나는 이유는 대부분 일본 전국시대나 이탈리아 대전 등 실제 역사 속 전쟁과 관계됐는데, 특히 국내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나라를 지킬 ‘구국의 검’을 찾기 위해 보낸 캐릭터 ‘황성경’ 스토리가 각광 받았다. 사실 역사 고증은 열악한 수준이었지만, 역사를 스토리텔링에 접목한 것만으로도 많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 이순신 장군이 보낸 요원이라는 설정으로 인기가 좋았던 캐릭터 ‘황성경’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아케이드에서 독특한 캐릭터와 스토리가 예상보다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점을 파악한 남코는 대대적 개선을 통해 가정용 버전을 출시했다. 홈 버전은 그래픽과 밸런스 개선은 물론이고, 캐릭터 추가와 싱글 모드를 추가해 콘텐츠를 대폭 확장했는데, 이러한 변화로 ‘소울 엣지’는 발매 초기의 부진을 딛고 메타크리틱 기준 89점이라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가정용 버전에 추가된 한 가지 독특한 점이 더 있었으니, 바로 멀티 엔딩 요소였다. 스토리가 크게 중시되지 않는 대전 게임임에도 ‘소울 엣지’는 특정 이벤트 분기에 커맨드를 넣을 시 엔딩이 달라지는 시스템을 채택했다. 덕분에 플레이어는 싱글 캠페인을 조금 더 흥미진진한 맥락 속에서 즐길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서 반복 플레이 해야 할 동기를 얻기도 했다. 이는 당시 대전 게임들 사이에서는 확실히 흔치 않은 특징이었다.
▲ 당시 대전 게임에서는 흔치 않았던 선택지에 따른 멀티 엔딩 요소 (사진출처: vgmuseum)
이렇듯 ‘소울 엣지’는 실제 역사 속 전쟁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캐릭터, 그리고 이들이 마검 ‘소울 엣지’를 차지하기 위해 겨룬다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덕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인기를 확인한 남코는 ‘소울 엣지’를 시리즈로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소울 칼리버’였다.
캐릭터 늘리고 자극적 요소 더했지만… 스토리는 늘 똑같았던 ‘소울 칼리버’
▲ 드림캐스트 버전 ‘소울 칼리버’의 커버 아트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소울 칼리버’ IP는 ‘소울 엣지’의 후속작인 1998년 작품 ‘소울 칼리버’에 이르러 제대로 정착했다. 작품 이름이 ‘소울 엣지 2’가 아닌 ‘소울 칼리버’가 된 데는 황당한 사연이 있는데, 이는 상표권에 관한 불미스러운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작은 게임 개발업체 ‘엣지 게임스’는 특이하게도 사명인 ‘엣지’에 대한 특허 신청을 했었는데, 이 신청이 받아들여진 덕에 ‘엣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게임에 권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에 ‘소울 엣지’도 발목을 잡힌 것이었다.
이 문제로 남코는 ‘소울 엣지’를 북미와 유럽에 출시할 때 ‘소울 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내야 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었다. 이렇게 한 번 데인 남코는 다음 작품은 아예 전세계 공통으로 ‘엣지’라는 이름을 쓰지 않기로 했고, 마침 게임 세계관 속에서 ‘소울 엣지’와 대척을 이루는 또 하나의 마검 ‘소울 칼리버’의 이름을 택했던 것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이름이 바뀌었을 뿐 게임 자체는 ‘소울 엣지’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내용이었다.
▲ 훗날 ‘에지 게임스’는 EA에 ‘미러스 엣지’로 시비 걸다 특허권을 빼앗긴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기본적으로 ‘소울 칼리버’ 스토리는 ‘소울 엣지’와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다. ‘세르반테스’가 지닌 두 자루의 ‘소울 엣지’ 중 하나는 ‘소피이아’에 의해 파괴됐으나, 남은 한 자루가 ‘지그프리트’의 손에 넘어가 그를 새로운 숙주로 삼았다. 결국 ‘지그프리트’는 반인반마 기사 ‘나이트메어’가 돼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며 유럽을 가로지르기 시작했고, 이에 다시 한 번 마검을 막기 위해, 혹은 마검을 빼앗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인 전사들이 그를 추적한다는 내용이었다.
‘소울 칼리버’에서 달라진 점은 우선 캐릭터가 대폭 추가됐다는 것이다. 남코는 전작 ‘소울 엣지’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독특한 캐릭터들이었다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소울 칼리버’에는 보다 특이하고 매혹적인 스타일의 캐릭터가 대거 추가됐다. 오늘날에도 ‘소울 칼리버’ 시리즈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뛰어난 캐릭터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데, 그들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샹화’나 ‘아이비’ 같은 캐릭터도 이 작품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 시리즈 대표 캐릭터 ‘아이비’도 ‘소울 칼리버’에서 처음 등장했다 (사진출처: 스팀)
스토리상 변화로는 다소 변태적이고 어두운 요소들이 대거 추가된 점을 들 수 있었다. 물론 전작 ‘소울 엣지’에도 아버지를 살해한 ‘지그프리트’의 정신분열적 망상 등 기괴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는 ‘소울 칼리버’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었다. 이번 작품부터는 겁탈, 강제 신체 개조 등 한층 자극적인 이야기가 서서히 언급된 것이다. 스토리가 주는 아닌 대전 게임임에도 이러한 색채는 캐릭터 디자인에 반영되어 어둡고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렇듯 어둡고 자극적인 분위기가 가장 깊게 반영된 신규 캐릭터는 단연 ‘아이비’였다. 외모부터 도미나트릭스를 연상시키는 ‘아이비’는 전작의 요괴 해적 ‘세르반테스’가 겁탈했던 여성 중 하나가 낳은 자식으로, 복수를 위해 ‘소울 엣지’를 쫓는 안티 히어로 캐릭터였다. 그 외에도 사교도에게 강제로 파충류 괴물로 신체 개조를 당한 전사 ‘리자드맨’, 아무 것도 모른 채 자기 언니를 죽인 ‘킬릭’을 사랑하게 되는 ‘샹화’ 등 자극적인 스토리가 대거 추가된 점은 특기할 만한 변화였다.
▲ 감금과 신체 개조를 당해 괴물이 됐다는 설정의 ‘리자드맨’ (사진출처: 소울 칼리버 위키)
다만 다양한 신규 캐릭터와 자극적인 소재에도 불구하고 기본 스토리가 전작에서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소울 엣지’에 빙의된 악당 ‘세르반테스’를 이어 ‘지그프리트’가 새로운 숙주 ‘나이트메어’가 돼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 스토리 구조는 전작 그대로였다. 각자의 사정으로 ‘소울 엣지’를 손에 넣거나 파괴하고자 하는 전사들이 마검 숙주를 뒤쫓는 구도 자체는 바뀌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이 줄거리는 2002년에 발매된 ‘소울 칼리버 2’에서 다시 반복됐다. 전작 ‘소울 칼리버’는 ‘소울 칼리버’를 지닌 여인 ‘샹화’에게 패배한 ‘나이트메어’가 인간성을 되찾고 ‘지그프리트’로 돌아오는 것으로 끝났다. 그런데 ‘소울 칼리버 2’는 사실 알고 보니 ‘지그프리트’에 내린 ‘소울 엣지’의 저주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그 탓에 다시 한 번 ‘나이트메어’로 변해 무차별 살육을 일삼기 시작했다는 스토리를 내세운 것이다.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전작의 반복이나 다름 없었다.
▲ 전작에서 타락했던 ‘지그프리트’가 또 타락해서 또 막아야 한다는 내용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남코는 이처럼 스토리가 반복되는 문제를 새로운 캐릭터 추가로 해소하고자 했다. 하지만 과도한 캐릭터 추가는 또다른 문제를 낳았다. 점점 캐릭터들 사이 연관성이 줄어든 것이다. ‘소울 엣지’를 비롯한 초반 작품에서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서로간에 어떻게든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들 간의 드라마를 감상하는 것이 스토리 모드의 주된 재미였다. 그런데 ‘소울 칼리버 2’부터는 차츰‘네크리드’처럼 다른 캐릭터와 공통의 이야기가 거의 없는 캐릭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스토리를 깊게 개발하는 대신 수를 불리는 데 힘쓰다 보니 점점 스토리상으로 도태되는 캐릭터들도 나왔다. 예를 들어 ‘소울 칼리버 2’부터 등장한 ‘탈림’은 ‘소울 엣지’를 정화하기 위해 모험에 나선 어린 사제인데, 첫 등장 이후 전 시리즈 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상으로는 늘 ‘전작에서 정화에 실패해서 다시 정화에 나선다’는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매번 똑같은 스토리가 반복되자, 게이머 입장에서는 캐릭터에 대한 흥미가 점점 식을 수밖에 없었다.
▲ ‘탈림’은 출석 비율만 놓고 보면 개근상감이지만, 스토리상 비중은 공기에 가깝다 (사진출처: 스팀)
결국 ‘소울 칼리버 2’ 이후부터 ‘소울 칼리버’ 시리즈는 캐릭터 밸런스 조절 실패와 더불어 허술한 캐릭터 설정 및 스토리로 차츰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이에 남코는 나름대로 세계관을 개정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지만, 그 결과는 ‘소울 칼리버’ IP의 쇠락을 더욱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방향성 못 잡고 표류한 ‘스토리 모드’, 파탄으로 치닫다
▲ 새로운 스토리를 시도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던 ‘소울 칼리버 3’ (사진출처: 아마존)
2005년 발매된 ‘소울 칼리버 3’은 사실 싱글 플레이 볼륨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특징적 콘텐츠는 ‘로스트 크로니클’ 모드로, 여기서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 메인 스토리와 무관하게 커스터마이즈와 수집 요소를 반복적으로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스토리 모드에서 시도한 차별화 요소들이 썩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는 곧 이어지는 시리즈에서 스토리가 꼬이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소울 칼리버 3’은 시리즈 최초로 ‘소울 엣지’가 아닌 새로운 흑막이 등장한 작품이었다. 여기서는 고대 ‘소울 칼리버’를 수호하던 일족의 최후 생존자이자 불멸자인 ‘자사라멜’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미 그는 ‘소울 칼리버’를 수호하고 ‘소울 엣지’를 파괴해야 한다는 사명을 잊은 지 오래인 데다, 영원히 계속되는 고독한 삶에 지친 나머지 죽음을 갈구하게 됐다. 이에 그가 자신을 죽일 힘을 얻기 위해 두 마검을 모두 손에 넣고자 한다는 것이 ‘소울 칼리버 3’의 줄거리였다.
▲ ‘소울 칼리버 3’ 주인공인, 죽고 싶은 불멸의 인물 ‘자사라멜’ (사진출처: 소울 칼리버 위키)
‘자사라멜’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썩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이 이야기에 깊게 개입된 캐릭터가 ‘소울 엣지’ 숙주 ‘나이트메어’와 그 하수인 ‘티라’ 정도였고, 다른 대부분의 캐릭터는 맥락상 ‘자사라멜’의 음모와 거의 무관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소울 칼리버 3’는 여러 새로운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존 캐릭터와 스토리 핵심 소재가 맞지 않아 싱글 모드 내용이 다소 어색했다는 반응을 얻었다.
그 때문일까? 2008년 출시된 ‘소울 칼리버 4’는 아예 싱글 모드 비중을 크게 줄였다. 그래도 전작 ‘소울 칼리버 3’까지는 시리즈 전통에 따라 분기점에서의 이벤트를 통해 멀티 엔딩을 지원하는 등 싱글 모드의 구색을 맞추고 있었으나, 이 작품부터는 싱글 모드 스테이지도 기존의 절반인 다섯 개로 축소시키고 스토리를 담은 동영상 분량도 절반 미만으로 낮춘 것이다. 게다가 그나마 있는 싱글 모드 스토리도 사실상 외전에 가까운 개그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2012년 ‘소울 칼리버 5’에서 더욱 심화됐다. 발표 초기 ‘소울 칼리버 5’는 새로운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계관에 큰 변동이 있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정작 발매 후 드러난 실상은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존 캐릭터를 정리해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소울 엣지’부터 꾸준히 등장한 캐릭터 ‘소피티아’는 ‘소울 칼리버 5’ 시점에는 별다른 복선도 없이 갑자기 고인이 됐다는 설정으로 처리돼, 많은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남코는 기존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개발하는 데 곤란을 겪은 끝에 아예 이들을 묻어버리고, 이 문제를 신규 캐릭터들의 새로운 이야기로 해소하고자 했다. 갑자기 사망 처리를 시킨 ‘소피티아’ 외에도 ‘소울 엣지’부터 고정 출연해온 전통의 캐릭터 ‘타키’는 갑자기 행방불명 처리됐으며, ‘샹화’도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결혼으로 급하게 빠지고, 국내 팬들이 기대하던 조선인 캐릭터들도 등장하지 않았다.
▲ 작은 이미지와 텍스트 몇 줄로 연출을 때운 ‘소울 칼리버 5’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그렇다고 그 자리를 메운 새로운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소울 칼리버 5’는 죽은 ‘소피티아’의 딸과 아들인 ‘퓌라’와 ‘파트로클로스’가 각각 ‘소울 엣지’와 ‘소울 칼리버’에 빙의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었다. 하지만 우선 스토리 모드 분량 자체도 ‘소울 칼리버 4’보다도 짧아진 데다, 기존에 캐릭터마다 개별적으로 준비됐던 스토리는 이제 단일 스토리로 통합됐고, 그 스토리마저 ‘퓌라’와 ‘파트로클로스’를 중심으로 해 일부 캐릭터는 아예 등장이 한 번도 없기까지 했다.
결국 ‘소울 칼리버 5’는 지금까지 정체되어 있던 스토리를 깊게 개발하지도,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 붙이지도 못했다. 기존 캐릭터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고 끝났다는 아쉬움에 더해, 새로운 스토리에 대한 불만까지 고조된 셈이었다. 이렇듯 여러 문제가 겹친 탓에 ‘소울 칼리버 5’는 역대 시리즈 최악의 성적을 거뒀고, 6년 동안 후속작이 개발되지 못했다. 사실상 시리즈 동결이라는 처참한 결과에 직면하고 만 것이다.
해답은 리부트, 스토리 처음부터 다잡겠다는 ‘소울 칼리버 6’
▲ 애 셋 낳은 유부녀가 됐던 ‘샹화’도 10대 미소녀로 ‘리부트’ 했다 (사진출처: 반다이남코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렇게 모두 ‘소울 칼리버’라는 IP를 잊어가던 2017년 말, 그 해 최고 게임을 가리는 ‘게임 어워드’ 시상식에서 뜻밖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소울 칼리버 6’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눈썰미 좋은 팬들은 놀라운 점을 하나 더 찾을 수 있었으니, 공개된 영상에는 전작 ‘소울 칼리버 5’에서 퇴출된 초기작 캐릭터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그것도 시리즈가 진전되며 나이를 먹은 모습이 아닌, 처음 등장했을 때 모습 그대로 회춘해서 말이다.
발표된 내용은 이러했다. 아예 과거 ‘소울 칼리버’와 ‘소울 칼리버 2’ 시점으로 회귀해 스토리를 다시 써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리부트 선언이었다. '소울 칼리버 6' PD를 맡은 오오쿠보 모토히로는 이러한 결정에 대해, 전작들이 기대한 만큼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에 기존 팬과 신규 입문자 모두를 만족하게 할 스토리를 프랜차이즈 원점부터 다시 써야겠다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토리텔링도 보다 세밀하게 개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겠다고 덧붙였다.
▲ 과연 이번 작품에서는 ‘탈림’도 유의미한 스토리 비중이 생길까? (사진출처: 게임 내 영상 갈무리)
공개된 바에 따르면 ‘소울 칼리버 6’에서는 스토리 모드의 비중도 다시 높아진다. 오오쿠보 PD는 ‘소울 칼리버’가 스토리나 세계관을 즐기기 위해 혼자 플레이 하는 유저가 매우 많다고 언급하며, 스토리 모드만 2개를 준비하여 보다 스토리를 깊고 풍부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자신했다. 그만큼 이번 작품은 절치부심하여 스토리에 힘을 주었다는 이야기다.
다시 한 번 스토리에 힘쓰겠다는 ‘소울 칼리버 6’는 오늘 18일 콘솔 버전이 발매됐으며, 19일에 스팀 PC 버전이 출시된다. 과연 ‘소울 칼리버’는 신규 캐릭터만 믿고 스토리는 가볍게 여기던 옛 태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스토리텔링에 힘쓴 대전 게임으로 다시 태어나는 ‘소울 칼리버’, 그 부활을 한 번 기대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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