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PS4/Xbox One으로 발매된 '철권 7'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철권’ 시리즈는 고민이 많다.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전격투게임으로 손꼽힘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가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기반이 되는 아케이드 게임 사업이 하향세를 그리고 있고,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높아지는 진입장벽, 감소하는 신입 유저, 복잡하게 꼬여 가는 스토리라인과 시스템,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감각의 신작 격투게임들,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야 하는 1인자로서의 자존심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지난 1일 콘솔, 2일 PC로 출시된 ‘철권 7’ 가정용 버전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해 명쾌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해답을 내놨다. 이전부터 콘솔 버전의 초월이식으로 유명했던 ‘철권’ 시리즈였지만, 이번엔 시리즈의 영속성을 위한 다양한 시도와 고민을 한 흔적이 느껴졌다. 라이트 유저의 대량 유입을 위해 시리즈 최초로 PC 버전 발매를 진행했고, 영화를 연상시키는 시네마틱 스토리 모드를 구현했다. 대전격투게임에서는 금기로 여겨졌던 VR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첫 작품으로부터 23년. 아직도 쉬지 않고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철권 7’ PS4 버전을 직접 플레이해봤다.
시리즈 최초로 시도된 내러티브 스토리 모드
가정용 ‘철권 7’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스토리 모드를 혁신에 가까울 정도로 개선했다는 것이다. 기존 ‘철권’ 시리즈의 스토리 모드는 캐릭터 선택-이미지와 텍스트로 이루어진 배경스토리 감상-중간 보스와의 대화-엔딩 영상(1~2분 내외)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는 비단 ‘철권’만이 아니라 ‘스트리트 파이터 2’ 시절부터 이어져 온 대전격투게임의 전통적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아케이드 시절에만 해도 게임 플레이를 최대한 해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던 좋은 방식이었으나, 유저 입장에선 명쾌한 스토리를 알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에 ‘철권’ 시리즈는 수많은 캐릭터의 개별 스토리 중 어떤 것이 후속작에 적용되는 공식 설정이고 어떤 것이 웃고 넘길 IF 스토리인지 알기 어렵다. 결국 스토리 진행을 명쾌하게 알기 위해서는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간혹 ‘철권 5’ 카자마 진 엔딩처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엔딩이 진 엔딩으로 채택되는 경우도 있어, 수 년간 신작을 기다려 온 팬들에게 허무함을 안긴 사례도 있다.
그러나 ‘철권 7’은 다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명확히 보여주는 ‘메인 스토리’ 모드가 따로 마련된 것이다. 이 모드에서는 ‘철권 7’ 전체를 꿰뚫는 헤이하치와 카즈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전편에서 아자젤과 싸운 후 정신을 잃고 사라진 진을 대신해 미시마 재벌 총수의 자리에 오른 헤이하치와 그에 대항해 G사를 이끄는 카즈야, 미시마 재벌에 대항하는 조직 바이올렛을 운영하는 리 차오랑과 라스, 알리사, 헤이하치의 아내 카즈미의 부탁을 받고 헤이하치와 카즈야를 죽이려 드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용병 고우키 등이 주된 등장 인물이다.
▲ 생각보다 메인 스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고우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그 외에 니나, 클라우디오 등의 주변 인물이 부가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는 전지적 시점으로 다양한 캐릭터의 관점에서 스토리를 전개해나가게 되며,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미시마 가문에 얽힌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분량 역시 평범하게 플레이하면 2~3시간 분량으로 결코 적지 않다.
이는 최근 몇 년 새 ‘모탈 컴뱃’과 ‘인저스티스’ 시리즈가 유행시킨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23주년을 맞이한 ‘철권’이 이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스토리의 완성도를 높였다는 점은 칭찬할 만하다.
▲ 한 편의 CG 영화를 연상시키는 연출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엔딩이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다만,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일본 영화 특유의 신파극이나 과장된 요소가 느껴질 때가 있다. 격투 중간에 난데없이 서정적인 BGM이 깔리며 슬로우 모션이 진행된다던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바주카 미사일을 발차기로 쏜 사람에게 튕겨내는 장면 등은 무심코 실소를 자아낸다. 이 같은 점은 3D 영화로 나온 ‘철권: 블러드 벤젠스’에서도 지적된 부분인데, 그간 메인 스토리만큼은 담백하게 풀어나가던 ‘철권’의 컨셉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한편, 메인 스토리 모드에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캐릭터 에피소드’ 모드를 통해 따로 다룬다. 전작들의 스토리 모드와 비슷하게 캐릭터별 도입부와 엔딩이 제공되는데, 예전처럼 8~9라운드씩 싸울 필요 없이 전투 1회만으로 캐릭터 엔딩을 볼 수 있기에 몰입도는 높아진 편이다. 메인 스토리와 거리를 둔 28명 캐릭터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내에 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한 장점이다. 다만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곁다리로 바뀐 몇몇 캐릭터에 대한 푸대접은 여전하다. 이는 장수 대전격투게임이 안고 가야 할 숙명일지도 모른다.
▲ 변두리 캐릭터들의 에피소드는 따로 짧막하게 다뤄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콘솔 유저 역차별? 온라인 멀티플레이
‘철권 7’의 콘솔 버전 온라인 멀티플레이를 즐기기 앞서, 콘솔 유저들은 다소 억울한 느낌이다. 일단 콘솔 버전 멀티플레이를 위해서는 PS Plus나 Xbox LIVE 가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기존에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던 게이머가 아니라면 멀티플레이에 돈이 추가로 들어간다.
사실 위에서 말한 부분은 전작 ‘철권 6’과 ‘철권 태그 토너먼트’까지는 어차피 내야 하는 요금이라 생각해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철권 7’은 무료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PC 플랫폼으로도 출시됐다. PC는 무료, 콘솔은 유료라니. 이는 비단 ‘철권’만이 아닌 모든 PC-콘솔 멀티 플랫폼 게임이 가지는 딜레마지만, 콘솔 유저들이 받는 역차별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콘솔만의 이점이 있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콘솔 버전은 로딩 속도를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PC에 뒤쳐진다.
다만 다행스러운 점은 PC와 콘솔 간 간극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콘솔 버전 온라인 대전 모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로딩 속도는 PC보다는 조금 길지만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느낌이다. 실제 플레이 결과 캐릭터를 선택하고, 상대를 찾고, 대전 의사를 확인한 후 로딩 및 배틀까지 30~40초 정도가 걸렸지만, 체감 속도는 그 이하였다.
비교적 짧게 느껴지는 체감속도에는 로딩을 한번에 쭉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부분 분산시켜 오래 기다린다는 느낌을 희석시킨 것이 주효하게 작용한 듯 하다. 다만 회선 동기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딩이 1분 가량 지속되는 경우도 있었으며, Xbox One의 경우 PS4보다 로딩이 좀 더 길다고 하니 로딩 속도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긴 어려울 것 같다.
▲ 로딩 화면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글로벌 유저 대전 시 간혹 발생하는 랙은 숙명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시도는 좋았으나 시도에 그친 VR 모드
PS4 버전 ‘철권7’은 PS VR을 통한 VR 모드를 지원한다. ‘철권’의 대전격투 게임 사상 최초 VR 지원 소식은 출시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았다. 과연 VR과 대전격투 게임의 궁합은 어떨까?
먼저, VR 모드는 일반 플레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VR 모드를 즐기려면 메인 메뉴에 별도로 마련된 VR 메뉴에 들어가야 한다. VR 메뉴는 감상과 연습 두 개 모드를 지원한다. 감상은 이전 시리즈에서도 있던 캐릭터 감상 기능을 그대로 VR로 옮겨 놓았다. 물론 평면 화면과 VR 화면은 입체감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카메라 이동이나 각도 조절에도 한계가 있고, 캐릭터가 취하는 모션도 한정적이다. 호평 받았던 그래픽도 PS VR의 낮은 해상도와 어우러지니 빛이 바랜다. 하라다 PD의 최신작 ‘서머 레슨’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다만, VR과 별도로 커스터마이징 기능 자체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커스터마이징 아이템은 각 캐릭터 별로 100가지가 넘으며, 이들의 조합으로 만들 수 있는 캐릭터는 무궁무진하다. 과거 이벤트로 등장해 호평을 받은 비키니 등의 아이템도 건재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꾸미는 재미만큼은 역대급이다.
▲ 단순한 피규어 보기에 그치는 VR 감상 기능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VR 연습 모드는 말 그대로 캐릭터를 선택한 후 격투를 벌이는 것이다. 모드 자체는 상대 캐릭터 움직임 설정 정도가 가능한 자유 대전. 즉, 프랙티스 모드에 불과하다. 다만 VR 특유의 입체감이 느껴지고, 일반 버전보다 시야가 넓어진다는 점이 유일한 차이다. 여기에 VR 모드에서는 카메라 방향을 45~60도 정도 기울일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좌우가 바뀌는 상황에서 카메라가 휙휙 돌아가 엄청난 멀미를 유발한다. VR과 전통 방식의 대전격투게임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결국 ‘철권 7’ PS4 버전의 VR 모드는 호기심에 한 번 해볼만한 일회용 시도에 그쳤다. 일반 대전모드에서도 VR 출력이 가능했다면 심심풀이 삼아 평소에도 몇 번씩 시도해 볼 텐데, 적용 범위가 너무 좁고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마 ‘철권 7’의 사례를 통해 당분간은 대전격투게임의 VR 지원이라는 얘기는 쏙 들어갈 듯 싶다.
▲ 신선하긴 하지만 활용도는 없는 VR 대전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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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취재팀장을 맡고 있습니다jong31@gameme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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