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어느 날 오후, 류서스 기자는 식곤증으로 슬라임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큰 머리에 힘겹게 낑겨 있는 헤드폰은 아무 소리도 없이 바깥의 잡음을 차단하는 역할만을 충실히 수행했고, 눈꺼풀은 이미 감긴 지 오래. 온 세상 근심걱정 다 털어버린 표정으로 그렇게 류서스 기자는 편히 자고 있었다. 아니, 자려고 했다.
툭툭
‘??’
“류서스 기자, 편집장님이 불러요”
“…? 뭐라고요?”
▲ 일 안하고 빈둥대던 걸 걸렸나?
이럴수가, 게으름 피우던 게 걸린 건가? 류서스 기자는 벌벌 떨며 편집장님 앞으로 향했다. 혼날까? 맞을까? 설마 고문을?
“요즘 펀몬기행기도 끝나고, 일이 줄어드니까 심심하지?”
“아뇨, 전혀 심심하지 않아요.”
“아냐 심심할거야. 기행기 하나 더 쓰련?”
“굳이 그렇게 챙겨주시지 않아도 일은 많…”
“어느 게임 할래? MMO? FPS?”
“…”
새로운 일거리의 스멜이 곤파스처럼 밀려왔다. 두려움과 절망에 눈물까지 흘렸다. 이런 것은 처음.. 아니, 두 번째였다.
▲ 일..일이..생겼다... (오해하지 마시길, 기쁨의 눈물입니다^^)
“...기왕 쓰는거 횡스크롤 액션 RPG로 해 주세요.”
“그래? 그렇다면 이 게임이 있지.”
순간, 머리 위에 이런 메시지가 떴다.
<새로운 퀘스트를 받았습니다. 드래고니카 기행기 (1/3) 진행중. 퀘스트 보상? 그런거 없음>
과연 류서스 기자는 죽지 않고 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까?
크양, 드래고니카에 첫 발을 내딛다.
횡스크롤 RPG ‘드래고니카’ 를 시작하기 전, 류서스 기자는 상당히 많은 생각을 했다. 그 동안 전사 클래스의 장점은 쉬운 컨트롤과 강한 공격력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해 보면 전사 클래스도 쉽진 않았고 원거리에서 마음 놓고 공격하는 마법사나 궁수가 더 센 공격력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사들이 열심히 포션 먹으면서 싸우고 있으면 얍실하게 뒤에서 슥슥 주워먹는 원거리 공격 클래스들. 그런 광경을 보며 솔직히 좀 부러웠다. 아니, 많이 부러웠다.
▲ 그러고 보면 고전 게임에서도 원거리 무기가 최고였지
“솔직히 전사라고 단순히 붙어서 공격만 하는게 아니니까 말이지.. 궁수나 마법사가 더 쉬울지도 몰라. 어쩌지? 그냥 끌리는 대로 골라?”
‘드래고니카’ 에는 4종류의 클래스가 있다. 전사, 마법사, 궁수, 도적. 이 중에서 전사와 도적은 근접 공격을 주로 하며, 마법사와 궁수는 원거리 공격에 특화되어 있다.
원거리 공격 클래스인 궁수의 경우 연타를 입력해서 적을 말려 죽이는 스타일의 공격을 펼친다고 한다. 한편 마법사는 다양한 범위 공격과 회복 스킬 등을 적절히 조합하여 강력한 공격을 펼칠 수 있다. 둘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격력 높은 직업이 좋은데.. 마법사를 할까?
그러나 막상 게임에 접속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어째 캐릭터들이 죄다 비리비리하게 생긴 것이다. 전사 캐릭터는 무슨 가난한 용병처럼 생겼고, 마법사 캐릭터는 비리비리한 꼴뚜기처럼 생긴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궁수나 도적은 거의 산적 급이다.
▲ '드래고니카' 의 남자 캐릭터들, 뭔가 탁 하고 와닿는 애가 없다!
이래서야 마음을 정하긴 커녕…
“음? 여자 캐릭터도 있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 캐릭터들을 살짝 구경해봤다. 남자 캐릭터보다 훨씬 나았다. 남자 캐릭터가 그냥 커피라면 여자 캐릭터는 티..
“여캐를 고르라는 운영진의 계시인가.”
그렇게 여자 캐릭터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마법사가 가장 예뻤다. 전사나 궁수, 도적보다도 훨씬 예뻤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여자 마법사 캐릭터가 생성되어 싱긋싱긋 웃고 있었다.
▲ 여자 캐릭들을 보고 나니 그제서야 뭔가 와닿았다
▲ 너로 정했다, 크양!
“여자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것은 흑심이 있어서가 아냐! 외동딸을 돌본다는 마음으로 소중히 키우는 거야!”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들렸나? 어쨌든 캐릭터는 정했다. 동화 속에서 막 걸어나온 듯 한 꼬마 마법사다. 가만히 놔 두면 어른으로 변신을 한다던가 하진 않겠지?
좋아, 크앙의 여자 버전! 크양 출격이다!
▲ 그리하여 '드래고니카' 세계에 크양이라는 재앙 덩어리가 떨어지게 되었다
크양, 선택받은 예언의 용사? 안믿어요
마법사가 된 크양은 모험의 무대가 될 바람의 대륙에 도착했다. 모험을 시작한 것은 좋은데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을도 보이지 않고 사람도 하나 없는 걸 보니 왠지 쓸쓸했다. 이럴 땐 인간의 최대 무기, 지능을 사용해서 갈 길을 유추해야 한다.
“음.. 주변을 보니까 숲은 그다지 울창하지 않고, 길은 그 흔한 잡초 하나 없이 잘 손질되어 있네? 이것은 사람 손이 자주 닿는다는 증거! 그렇다면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겠..”
▲ 역시 머리를 써야 야생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니까?
그 순간 뭔가 퍼런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잉?"
“여기 있었군, 크양!”
“적이냐!”
퍼버벙. 크양이 할 수 있는 기본마법인 파이어볼 연타가 퍼부어졌다. 용케도 잘 피하는 파란 덩어리. 만만치 않은 적인데?
▲ 잉? 뭔가가...
▲ 이 퍼런 덩어리는 뭐야!?
“으악! 적 아냐! 적 아냐!”
“그럼 뭔데?”
“난 용왕님의 직속비서! 그 이름도 찬란한 포로링이라고 한다. 에헴.”
“용왕?”
“드래곤 로드 님도 모르는거냐? 하긴, 시골 촌동네에서 온 네가 알 리가 없지. 내가 모시고 있는 드래곤 로드 데커드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시골 촌동네에서 왔는지 어떻게 알아! 혹시 스토커?”
“그래, 내가 바로 스토커… 가 아니고! 말을 끝까지 들어!”
▲ 뭔가 말을 하니 일단 들어볼까?
뭔가 엄청나게 수상쩍긴 하지만 일단 지능은 있는 것 같다. 마침 아는 사람도 없었는데 저 놈에게서 정보나 얻어볼까 하고 들어본 얘기는 실로 가관이었다. 나는 드래곤 로드(일명 용짱)가 예언한 용자이며, 용짱에게 거역하는 흑룡왕 엘가가 부활했으니 얼른 힘을 키우고 엘가를 봉인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포로링인가 퍼러렁인가 하는 놈은 나를 키워내서 용짱의 오른팔로 거듭나고 싶다는 속셈까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이쯤 되면 황당할 뿐이다.
솔직히 용짱이니 엘가니 그 누구도 크양에게 해를 끼친 적도, 도움을 준 적도 없다. 오히려 용짱인가 뭔가 하는 절대군주 한 명이 통치하는 사회보다는 그에 반대하는 세력 한 개 정도는 있어줘야 세계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히틀러의 예를 봐도 한 명에게 권력이 쏠리는 것은 때때로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한 마디로 내가 용짱을 도와 엘가를 물리칠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 용...짱...? 그게 보스 이름인가?
▲ 예언이라니.. 뭔가 수상쩍다
▲ 갑자기 위기감 조성?
▲ 끝까지 들어보니 '기운이 맑으시네요, 잠시 얘기좀 할 수 있을까요?' 패턴이다.
“난 그냥..”
“자! 자! 질문은 안 받겠어! 당분간 내 말만 들어! 알겠지?”
“….”
역시 악당은 이 쪽 같다. 자신의 말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것에서부터, 당분간 내 곁에서 이것저것 설명해주겠다는 것은 다단계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에서 새로 들어온 회원을 세뇌시킬 때 쓰는 방법이다. 훗, 누굴 속이려고! 오히려 내가 널 이용해주지!
▲ 여기서 속아 넘어가면 그대로 피라미드의 밑바닥이 되는 거다!
“좋아, 잘 부탁해!”
“그래! 그래야 이 포로링 님이 지목한 용자답지!”
“응? 네가 지목했다고?”
“아, 아니.. 어쨌든 가까운 마을로 가자! (후후, 넌 내 출세를 위한 디딤돌일 뿐!)”
“그래, 어서 가자. (단물만 쏙쏙 빨아 먹고 버려주지)”
이렇게 두 명의 기묘한 오월동주 여행이 시작되었다.
▲ 결국엔 널 위한 거잖아!
▲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명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 마법사의 힘! 힘! 힘!
크양, 마법사의 힘 발동! 퍼퍼펑!
크양은 포로링인가 퍼러렁인가 하는 사기꾼과 함께 마을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저 멀리서 어떤 소녀(라고는 하지만 크양하고 나이 차도 얼마 안 나 보인다)가 울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뭐지?
“윽..흑흑흑… 도… 도와주세요! 늑대가.. 늑대가..”
“너, 혹시 양치기 소녀?”
“무슨 말을 하는거야 크양! 소녀를 도와야지! 드래곤원정대에 지원하는 용자인 너에게 할 일이 생겼다! 어서 가자고!”
“드래곤원정대? 그게 다단계 네트워크 마케팅 본사냐?”
“아까부터 무슨 소리야! 저, 저기 늑대가!”
▲ 양치기 소녀는 아니겠지?
▲ 네가 웬 참견이야!
▲ 삐쩍 마른 늑대 상대로 할버드를 들고 대치하는 세 명의 병사
진짜다. 호랑이만한 늑대 한 마리가 병사 세 명하고 대치하고 있었다. 얼핏 보면 사자로 착각할 정도로 갈기가 풍성했지만 어째 빼빼 마른 게 상당히 굶주려 보였다. 덩치만 컸지 불쌍해 보이는 늑대 한 마리를 상대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할버드를 든 세 명의 병사. 이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얼마든지 해결 될 것 같다. 그 순간! 늑대가 재빨리 잽을 날렸다. 저 발톱에 긁히면 최소한 중상일텐데! 끔찍한 광경을 상상하며 크양은 눈을 감았다.
철썩~
역시! 철썩~ 이라는 끔찍한 파육음이 들려왔… 엥? 철썩? 놀랍게도 늑대는 자신을 흉기로 위협하는 병사들을 공격하는 와중에도 발톱을 숨기고 발바닥만으로 따귀를 날린 것이다. 뭐 저런 생명존중 늑대가 다 있어!
“뭐하고 있어! 도와줘야지! 다가가서 ‘X’ 버튼을 눌러!”
‘그.. 그래! 어서 가서 저 착한 늑대를 치료해 줘야 해!’
▲ 늑대가 발톱 놔두고 따귀를 날린다는 걸 보고 뭔가 느끼는 건 없냐? 응?
▲ 자, 회복마법의 빛이야!
크양은 'X'
버튼을 눌렀다
크양은 재빨리 다가가서 악에 받친 병사들로부터 늑대를 막아서고 회복 마법을 시전했다. 포로링의 말대로 늑대 앞에 서서 ‘X’ 버튼을 누르자 지팡이에서 성스러운 빛이 나와 늑대에게 날아가더니 그대로 펑… 펑!?
“깨개갱!”
“헐?”
이럴수가! 포로링이 알려 준 ‘X’ 버튼은 회복 주문이 아니라 공격 버튼이었다! 크양의 공격에 불쌍한 늑대는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결국 크양은 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동료 늑대들에게 적으로 인식되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 한 늑대는 눈물, 콧물, 침까지 쏟으며 광분하고 있었다.
▲ 응? 40? 회복치인가?
▲ 어라? 어라라?
▲ 크허헝 내 동료를 죽이다니!
“우이씨.. 늑대 놈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네! ‘A’ 버튼으로 스킬을 써서 해치워!”
포로링 이 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차례차례 전투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포로링 놈의 말처럼 ‘A’ 버튼을 누르자 '포인트 버스터' 스킬이 발동되며 크양의 앞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니 주변에 있던 늑대들 모두가 하늘로 솟구쳤다. 클레이모어라도 터진 것 같았다. 폭발에 휘말린 불쌍한 늑대들은 차례차례 죽어갔다. 순간 크양의 마음 속의 무엇인가가 검은 싹을 틔웠다.
늑대들을 처리하고 나니 아까 따귀를 얻어맞은 병사가 보답이라며 무언가를 주었다. 늑대들을 학살한 보답은 사과 3개와 생수 3병, 조그마한 선물상자 하나였다.
“부담없는 물건들이니 사양하지 마세요.”
“정말 부담없네요.”
“네?”
“아녜요, 마을은 어느 방향이죠?”
“저 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입구에 서서 'Z' 키를 누르면 마을에 들어가실 수 있어요. 마을로 가시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분명 또 있을겁니다.”
▲ 결국 날 향해 덤벼드는 늑대들도 처치
▲ 보상이라도 받아야지~ 뭘 줄까나?
▲ 부담 없는 물건들이라...
▲ 정말로.. 부담 없네?
쳇
크양은 마을로 향했다. 가엾은 늑대들이 죽은 것은 아쉽지만 잠깐 느껴 본 마법사의 힘은 꽤나 놀라웠다. 안전하게 원거리에서 마법을 날려 적을 상대하고, 강력한 범위 마법으로 다수의 적을 해치우는 강력한 마법 능력! 이것이 바로 크양이 그렇게도 원하던 능력이었다! 저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응? 왜 웃어?”
크양은 포로링의 참견 따위 무시하고 마을로 향했다. 크양을 기다리고 있는 불쌍한 몬스터들을 향해. 마법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 오늘도 하루하루 똥이나 만들고 있는 하찮은 사냥감들을 향해. 그러나 크양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포로링의 미소까지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당연히 크양이 포탈로 사라진 후 포로링이 내뱉은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역시 인간은 재밌어.”
▲ 역시 인간은 재밌어! 크하하하하
크양, 마법사도 첫 걸음부터
드디어 첫 번째 마을인 종소리 마을에 들어선 크양은 할 일을 찾아 마을을 돌아다녔다. 슥 하고 돌아보자 일부 NPC의 머리 위에 노란색 느낌표가 보였다. 아마도 내게 볼 일이 있는 NPC들인 것 같다.
“크양 잠깐! 저 느낌표 보이지? 저 느낌표들은..”
“나한테 부탁이 있거나 뭔가 할 말이 있을 때 나타나는 신호겠지?”
“잘 아네, 예전에 전설의 학자 호그니님께서 이런 일들을 통칭해 퀘스트라 부르자고 하셔서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퀘스트라 부르고 있어. 하하하하핫~”
“지금 그걸 개그라고 하는 거야?”
▲ 그걸 지금 개그라고 하는 거냐?
▲ 아무튼 이게 바로 퀘스트 표시!
크양의 머릿속은 온통 위력적인 마법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서 평소라면 같이 맞장구 쳐 주며 잉여롭게 놀 만한 농담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을에 널려 있던 퀘스트들을 모으던 중, 한 노인이 눈에 띄었다. 그 노인의 머리 위에도 노란색 느낌표가 있었다. 뭔가 퀘스트를 주려고 하나?
“오, 어서오게. 나는 마법사 파블로라고 하네.”
“파블로요? 혹시 스탠퍼드 출신? 아, 농담이에요.”
크양은 왠지 이 노인에게는 밉보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역시나 노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 파블로? 혹시 최종학력이..?
“자네도 마법사가 되고 싶은가 보군?”
“네, 위력적인 마법을 배우고 싶어요.”
“그래. 내가 지금 수제자를 찾고 있으니 마법사가 되고 싶다면 내 시험을 한 번 통과해보지 않겠나?”
“시험이요? 뭔데요?”
“일단 자네의 용맹을 시험해보도록 하지. 용자의 길에 있는 ‘초목이’ 를 물리치고 오게나.”
"싫은데요?"
"싫다고?"
“아, 아차! 버릇 때문에.. 네, 네네! 물리치고 올게요!”
▲ 당연히 아니... 아니, 네! 하겠습니다!
▲ 평소에 이런 식으로 거절해대던 버릇이
무심결에 나왔다
저 할아버지는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크양은 우렁차게 대답한 후 초목이라는 놈들을 잡으러 나갔다. 마을 밖으로 나가니 나무토막에 손과 발이 붙은 채 돌아다니고 있는 하등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아까 늑대를 잡던 대로 일반공격과 스킬을 적절히 사용해 초목이들을 해치워 주었다. 덩달아 옆에 있던 5레벨짜리 뿔양도 잡아버렸다.
역시 마법의 힘은 놀라웠다. 레벨 1의 크양이 레벨 5의 뿔양(왠지 친척 같다) 두 마리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뿔양을 향해 공격을 난사해 주다가 한 곳에 모일 때를 틈타 스킬로 날려버리고, 떨어진 적을 향해 달려가 지팡이로 푹푹푹 찔러주자 얼마 안 되어 뿔양들은 눈물을 흘리며 나뒹굴었다. 뭐든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고 처음 늑대를 공격할 때와는 달리 이제 별 느낌도 들지 않았다.
▲ 이놈들이 초목이들, 뇌도 없고 척추도 없는 외골격 하등생물이다
▲ 일반 공격, 1명씩 공격할 수 있으며 콤보 수를 올리기에 좋다
▲ 다수의 적을 공중으로 띄우자
▲ 떨어진 적은 사정 없이 지팡이로 찍어주자!
▲ 마법사의 위엄!
“우와, 이놈들이 약한 거야 내가 강한 거야?”
5레벨 뿔양 두 마리를 잡고 나니 어느 새 레벨 업을 했다. 레벨 업과 함께 주어진 스킬 포인트로 크양은 다양한 마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킬인 적을 공중에 띄우는 ‘포인트 버스터’ 와 연계시켜 공중에 뜬 적을 최대 3번까지 추가로 공격할 수 있는 ‘공중 콤보’, 점프한 상태에서 바닥을 향해 운석 공격을 하는 ‘운석 낙하’, 머리를 대포로 변경하여 서 있는 다수의 적에게 위력적인 일격을 가하는 ‘포트리스’ 등을 사용하니 더욱 위력적인 콤보가 가능해졌다.
'포인트 버스터' 와 '공중 콤보' 의 경우 초반부터 배울 수 있는데다 다수의 적을 위력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원거리 공격 몬스터를 포함해 적의 수가 많은 경우에는 '포인트 버스터' 와 '공중 콤보' 에 이은 '운석 낙하' 연계기로 반격할 틈을 주지 않은 채 단체 대미지를 주고, 어느 정도 처리되었다 싶으면 일반 공격을 연사하여 마나를 아끼고 콤보 수를 늘리는 방식의 공격을 펼쳤다.
▲ 공중에 뜬 상대를 향해 펼치는 라이트닝 공중 콤보!
▲ 떨어진 상대에게는 운석 낙하로 추가 대미지를 줄 수 있다
▲ 머리가 대포로 변하다니 조금 무섭지만
일단은 공격 스킬
서 있는 다수의 적에게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포트리스'
특히 원거리에서 안전하게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직업 특징 덕분에 크양 자신보다 더욱 강한 적도 쉽게 사냥할 수 있었다. 크양은 조금씩 자신이 붙어 마을 멀리까지 나가 보았다. 대점프단을 밟아가며 필드를 이동하다 보니 조그마한 가건물 앞에 유저들이 우글대며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크양은 유저들 틈으로 다가갔다.
크양, 미션 모드? 껌이지!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이 곳은 미션 모드 맵이라는 곳이야.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적이 기다리고 있으니 들어가려면 조심해야 할 거야~”
“미션 모드 맵이라.. 인스턴스 던전 같은건가?”
“그런 셈이지. 뭐, 이 포로링님과 단 둘이 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만 지금 네 실력이라면 꽤 고전할 것 같아 보이네. 웬만하면 주변에 있는 여행자들과 파티를 맺고 들어가는게 좋을 걸?”
“흥, 날 뭘로 보고!”
▲ 대점프대를 뛰어넘어 앞으로 가다 보니
▲ 조그마한 가건물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먹거리
노점인가?
▲ 알고 보니 노점이 아니라 미션 맵
▲ 파티 따위 필요없다! 나는 솔로 마법사
솔로..홀로..크리스마스에도
홀로...
크양은 자신만만하게 혼자서 걸어들어갔다.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크양은 파티 사냥이나 길드 활동 등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파티 사냥을 하겠지만 아직 미션 모드 맵이 얼마만큼이나 난이도가 높은 지 경험도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곧바로 파티 사냥을 하기는 싫었다.
실제로 미션 모드는 매우 간단했다. 수십 마리의 초록이들을 범위 공격으로 쉽게 물리치고 나니 왠지 미야모토 무사시와 슬램덩크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배가본드’ 라는 늑대 보스가 나왔다.
▲ 초목이들을 해치우고 앞으로 전진하니
▲ 왠지 모르게 일본 만화 제목을 연상시키는 보스 몬스터 등장!
“나는 이 곳을 지키고 있는 배가본드다! 이름을 밝혀라!”
“크양.”
“통행증은 갖고 있겠지?”
“그런 건 없다.”
“통행증이 없는 자는 통과할 수…”
털썩
▲ 쿨하게 배가본드를 처치!
보스 몬스터를 청룡도로 단칼에.. 아니 마법 연타로 처치하고 나니 미션 모드 클리어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배가본드’ 는 보스 몬스터 답게 포인트 버스터 스킬에 맞아도 공중에 뜨지 않아 크양을 약간 당황시켰지만, 원거리에서 안전하게 연속공격을 가하자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입장부터 보스까지 걸린 시간은 약 5분! 뜨거운 술이 미처 식지 않을 시간이었다. 꽤나 여유롭게 진행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짧은 코스였다.
“하핫, 이 정도야 껌이지! 근데 얘 안 죽었네?”
‘배가본드’ 는 실컷 얻어맞더니 가지고 있던 돈을 다 내놓고 눈물을 흘리며 싹싹 빌고 있었다. 별로 용서해주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지만 아쉽게도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이 곳에 갇혀서 몰려오는 용사들을 상대로 영원히 싸워야만 하는 불쌍한 아이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얘도 어렵게 사는구나.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 너도 힘들게 사는구나
그 순간 눈 앞에 미션 모드 클리어 보상 창이 떴다. 아이템이 슬롯머신처럼 돌아가고 있고, 스페이스 바를 누르면 랜덤으로 보상 아이템이 나오는 듯 했다. 크양은 얼른 스페이스 바를 눌렀고 뭔가 쓸만해보이는 머리띠를 얻…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여기서 나온 보상 아이템을 얻으려면 ‘가다 코인’ 이라는 동전이 있어야 한댄다. 그러나 크양은 ‘가다 코인’ 이라는 걸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 언제 얻을 수 있는 지도 몰랐다.
▲ 저거! 왜 안 주는거야! 가다 코인! 그런게 어딨어!
“뭐야, 이건 보상을 가장한 자판기잖아!”
“크양 너 지금 퀘스트 완료한 거 몇 개 있지?”
“응.”
“그거 완료하고 보상 받았어?”
“아니, 마을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안 갔는데?”
“… 이동 타워 사용 안하냐?”
“이동 타워? 그게 뭔데?”
▲ 이거.. 말하는거야?
(사실 몇 번 보긴
했는데 비쌀까봐서 안 사용했음)
그렇다. 미션 맵에서 마을까지 왔다갔다 하기가 귀찮았던 크양은 한껏 받아온 퀘스트를 전부 완료할 때까지 마을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퀘스트 보상 등으로 얻을 수 있는 ‘가다 코인’ 을 얻지 못했고, 결국 미션 맵을 클리어하고도 보상을 받지 못 한 것이다.
“얼른 이동 타워에 위치 저장하고 마을로 가서 퀘스트 보상 받아!”
“아.. 알았어.”
크양은 이동 타워를 이용했다. 단돈 50쿠퍼(100쿠퍼는 1실버, 100실버는 1골드이다)를 지불하자 마을까지 단숨에 이동할 수 있었고, 미뤄 놓았던 퀘스트들을 완료하고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포로링의 말 대로 몇몇 퀘스트에서 ‘가다 코인’ 을 얻을 수 있었고, 이동 타워를 다시 사용하여 손쉽게 미션 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의외로 싸다, 마을로 가 볼까?
▲ 그렇게 귀찮았던 이동이 순식간에!
▲ 오, 가다 코인이다!
“앞으로 퀘스트 열심히 완료하고 몬스터 열심히 잡아! 몬스터 많이 잡거나 일정 레벨에 도달하면 선물 상자를 주는데 거기서도 가다 코인을 얻을 수 있거든.”
“한마디로 퀘스트 하고 사냥 하고 레벨 업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모인다 그거지?”
그랬다. 퀘스트 보상인지 몬스터를 잡아서 얻은 궤짝인지 일정 레벨마다 열리는 보물상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성장에 따라 ‘가다 코인’ 은 자연스럽게 모아졌고, 이후 진행하는 미션 맵에서는 장비와 아이템상자 등의 물품을 한껏 얻을 수 있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기뻤다.
▲ 가다 코인을 모으고 나니 이런 것들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 아이템이다! 아이템! 하악하악
서서히 ‘드래고니카’ 세계에 적응한 크양은 미션 맵의 랭커가 되기도 하고 300콤보를 채워서 ‘콤보신동 나셨네’ 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며 착실히 레벨 업을 했다. 이제는 20레벨에서 할 수 있는 2차 직업 전직이 남았다.
마법사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 보다는 적을 디버프 시키고 아군의 회복과 버프를 담당하는 ‘메이지’, 마나 실드에 의지해 일직선 상의 적들을 초토화 시키는 ‘전투마법사’ 로의 전직이 가능하다. 강력한 마법에 눈이 멀어 있는 크양은 찰나의 고민도 없이 전투마법사로의 전직을 결심했다.
▲ 콤보~신동~나셨네~
잘만 하면 나도
2만콤보를 할 수 있을지도!?
▲ 영광의 트리플 S
▲ 랭커라니! 생전 이런 것과는 인연도 없던 내가 랭커라니!
크양은 궁극의 파괴력을 자랑하는 직업, 전투마법사가 될 자격을 갖추기 위해 몬스터들을 향해 나아갔다. 이 단순한 성격에 마법사가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당분간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목표는 전투마법사!
“다 이리와! 쓸어버리겠어!”
▲ 마침 사람이 가장 잔인해질 수 있는 8시다! 몬스터들 다 나와!
다음주에는 진정한 파괴력을 손에 넣는 크양의 모험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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