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앙의 펀몬기행기 전편 보기]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1부, 의심쟁이 애어른 등장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2부, 강화하다 노숙자 신세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3부, 여신 따위 필요없어
쾌창한 어느 날, ‘펀치몬스터’ 에 접속한 많은 유저들은 풍차의 탑 앞에 서서 울분을 터뜨리고 있는 크앙을 볼 수 있었다.
“으아니 챠! 왜 안들어가지는거야!”
“진정해요, 던전 포인트가 다 됐잖아요.”
“너 입 닥쳐! 너 나 지금 동정해? 하 젠장 되는일이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너도 할 말 있어? 얘기하지 마이마! 입좀 다물어! 제발!”
보아하니 던전 포인트가 다 되어서 던전에 입장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몇몇 유저들이 친절하게 설명해주려 했지만 크앙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뭐 때문에 이러는! 아무도 날 이해 모테! 난 한번만이라도 햄보카고 싶은데! 왜 나 크앙은 행복할 수가 없어!”
“아니, 던전 포인트는…”
“이 말도 안되는 포인트는 누가 만든거야! 나, 저렇게 들어가야 하는거야, 저렇게.. 저렇게!”
“저 사람 어떻게 좀 해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아~ 제발 좀 포인트좀 올려줘어! 미치겠네! 다들 나랑 상관 없다 이거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마! 개 같은 경우!”
대체 크앙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열하고 있는 것일까?
▲ 왜 나 크앙은 행보칼수가 엄써!
크앙, 싸이클론 하버 최강 던전에 도전하다!
며칠 전, 바람의 협곡에서 죽기살기로 돌아온 크앙은 열심히 돈을 모아가며 사냥에만 집중했다. 쇠똥구리 쇠똥 굴리듯 차곡차곡 아이템을 모아 팔며 사냥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싸이클론 하버 지역의 가장 깊은 곳, 템페스트의 소굴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곳이 창세기전 외전 2인가?”
올드 PC게이머 중에서도 유머 센스가 극에 달한 자만이 간신히 구사할 수 있다는 초절정 하이개그를 앞세우며 크앙은 템페스트 던전 앞 빛의 대신관에게 다가갔다. 크앙의 유머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대신관의 얼굴빛은 꽤나 어두웠다. 이런 상황에서는 웃음이 답이지!
“저.. 여기가 무릎이 닿기도 전에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물대포정령 템페스트를 물리치고 소용돌이해안에 평화를 가져올 용사가 그대인가?”
▲ 템페스트? 창세기 외전 2? 크하하하
▲ 거 참 얼굴 굳어있는것좀 봐, 좀 웃으면서 삽시다!
굳은 표정의 대신관에게 크앙의 어정쩡한 유머따윈 통하지 않았다. 개그 받아주는 스킬따윈 버린 지 오래인 것 같은 대신관은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내기 시작했다. 대화의 구조는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걸 배우지 못한 듯 하다. 모름지기 서론이란 시덥잖은 유머로 시작…
“템페스트를 처치하고 소용돌이해안을 악으로부터 구해주게.”
할 말도 다 안했는데 크앙은 템페스트의 본거지로 소환되었다. 템페스트의 본거지는 소용돌이 해안 지역의 마지막 인스턴스 던전이자 이제까지의 소규모 인던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클리어 시 좋은 아이템(예를 들면 탈 것인 ‘빠른 물정령’ 등)을 얻을 수 있고, 많은 경험치와 몬이 보상으로 따라오기 때문에 상당한 인기 지역이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문구가 보였다.
<권장인원: 3인 이상의 파티>
젠장, 뭔가 무진장 불길해 보이는 문구다. 살아오면서 이런 구리구리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데.. 하지만 크앙의 레벨은 무려 25레벨! 템페스트 인던의 레벨 제한은 22레벨이니 그보다 무려 3레벨이나 높다. 3레벨 차이면 사냥터 배경이 바뀌는 차이다. 마침 인간이 최고로 잔인해질 수 있다는 밤 8시, 템페스트의 던전 따윈 즈려밟아주겠다!
▲ 뭔가 무진장 불길해 보이는 3인 이상의 권장파티, 뭐 별 거 없겠지?
▲ 춘리 팔찌 뺏어 차고 나타난 거대 물정령, 템페스트
크앙은 약간의 불안감을 떨쳐버린 채 템페스트 기지에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물정령 한 놈이 각종 포즈를 취하며 말을 건다. 아마도 저 놈이 그랄군의 싸이클론 하버 지역 지점장(?)인 템페스트 같다.
“크하하~ 오늘도 완벽하군! 이런 나에게 도전하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누구냐!”
“나다!”
“뭐? 푸하핫! 가소로운 녀석, 너 혼자 이 곳까지 올 수 있을 것 같으냐!”
“내 레벨업을 위해 태어난 놈 주제에 말이 많구나. 곧 가서 때려잡아 줄 테니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1, 2부나 읽으면서 기다려라!”
▲ 크앙의 펀몬기행기, 좋아요
크앙은 템페스트에게 읽을 만한 좋은 글을 추천해 준 후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템페스트 지하기지는 꽤나 넓어서 ‘지하기지 입구’ 를 거쳐 ‘지하기지 내부’ 두 곳을 통과하고 ‘간부들의 대기소’ 세 곳을 지나야 비로소 템페스트 본부에 도착할 수 있다.
일단은 ‘지하기지 입구’ 에 포진하고 있는 적을 먼저 쳐부숴야겠다고 목표를 정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저 멀리에 폭풍해일 지옥얼음법사 몇 마리가 보였다. 여태까지 꽤 많은 몬스터들을 만나 봤는데 싸이클론 하버의 몬스터들은 이름에 폭풍을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왠지 콩요리도 좋아할 것 같다.
“고작 얼음법사? 좋아 몸 좀 풀어볼까?”
크앙은 재빨리 일반 공격과 블리딩, 스매시로 이어지는 폭풍 같은 연계기를 발동시켰다. 그런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이 녀석, 일반 몬스터 주제에 슈퍼아머를 사용하며 크앙의 공격을 견디고 그 틈을 타서 얼음 마법을 발동시키는 것이 아닌가! 뭐, 여기까진 이해를 한다. 슈퍼아머 사용하는 몬스터 한 두번 본게 아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웬만한 몬스터들은 그대로 KO될 대미지를 자랑하는 초절정 연계기를 맞고도 HP가 1/10밖에 줄지 않은 것이다.
“아니, 뭐 이런 황당한 놈이 다 있어!? 이거 레벨 26짜리 몬스터 맞아?”
“크웨엑”
“좋아, 네 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한 번 시험해보자! 간다!”
▲ 여태까지 겪었던 인던 중 가장 길고 복잡한 템페스트 기지
▲ 분명 많이 때렸는데 체력이 1/10도 안 줄었다!
▲ 슈퍼아머 발동 중에 재빨리 뒤로 돌아가는 센스
▲ 머, 멋진 공격이다!
대쉬 스킬로 얼음법사의 마법을 피하고, 한 번에 두 방 때리는 1+1 버서크 스킬까지 동원해 가며 열심히 공격하자 얼음법사는 결국 한 줌의 뼈다귀로 변했다. 체력이 좀 높고 슈퍼아머를 계속 발동한다 뿐이지 공격력이나 패턴 등은 일반 몬스터와 같았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놈이 3마리 이상 몰려오면 이긴다고 장담하지 못할 것 같았다. 크앙의 공격은 ‘소울 슬래쉬’ 를 제외하면 2~3마리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이 한계이기 때문이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제발 중공군처럼 물량으로 덤벼들지만 마라…”
다행스럽게도 적들은 그 수가 비교적 적었고, 크앙의 걱정처럼 한 번에 덤벼들지도 않았다. 욕심을 내지 않고 부처님의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전진하며 한 두 마리씩 끄집어내면서 적을 상대하니 얼음법사는 물론, 그 뒤쪽에 있는 폭풍해일 창전사까지도 비교적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특히 창전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부터는 그 지역의 보스 몬스터만 물리치면 다른 몬스터들은 자동으로 드러눕기 때문에 나름 쉽게 느껴졌다.
▲ 그 이후로는 시간 문제! 한두놈씩만 끌어내서 싸운다!
기세 등등한 상태로, 크앙은 ‘간부들의 대기소’ 로 들어섰다. 첫 번째 간부 대기소에는 타코야키 가게 간판에서 막 빠져나온 듯 한 비주얼의 문어가 서 있었다.
“간부라고 해 봐야 어차피 내 앞에선..”
“...아야, 꽤 아픈데?”
“...으아아아아아아~ 어라? 죽었잖아!?”
바바리안의 피를 이어받은 문어 간부들의 휠 윈드 공격은 전 방위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대쉬 스킬로 피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문어대장 크라켄의 휠 윈드는 수백 단위의 체력을 한 번에 깎아내는 무시무시한 대미지를 자랑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크앙은 어느 새 유령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패턴 파악을 제대로 못 한 탓이다. 설마 몇 대 맞았다고 그렇게 휠 윈드를 돌려댈 줄 알았나?
마침 부활용 응급팩도 다 떨어진 데다 부활한다고 해도 저 무시무시한 문어대가리들을 혼자 이길 수는 없어 보였다. 결국 크앙은 눈물을 삼키고 싸이클론 하버의 부활 장소로 이동했다. 이제 겨우 25레벨을 달성한 소울브레이커 크앙에게 싸이클론 하버의 최강 던전 솔로 플레이는 무리인 것 같았다. 결국 크앙의 템페스트 첫 도전기는 템페스트 얼굴에 칼침 한 방 못 먹여주고 i겨나는 꿈도 희망도 아무것도 없는 신세로 끝나버렸다.
▲ 내려찍기 공격은 피하기 쉽지만
▲ 저 휠윈드 공격은 참 피하기가 거시기하다
▲ 결국 다이~
크앙, 풍차의 탑에서 인해전술의 무서움을 경험하다
템페스트의 본거지에서 유령이 되어 싸이클론 하버로 귀환된 크앙은 허무한 마음에 잠시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릴없이 놀고 있었다. 강화는 더 이상 손대면 안 될 것 같고(게임을 접을 정도의 위기를 느꼈다), 제작이나 채집은 골치가 아프고, 다른거 뭐 없나 하고 돌아다니던 중 전체 채팅창에 문득 ‘풍차의 탑’ 어쩌고 하는 문구들이 보였다.
“풍차의 탑?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풍차의 피라미드? 지금 내 레벨 정도면 가뿐할…까?”
▲ 이것이 바로 풍차의 탑!
풍차는 가장
기초적인 풍력발전기구로 물을 퍼내고 곡식을 찧는 용도...
그렇다, 사실 크앙은 13레벨 워리어 시절에 호기심으로 풍차의 탑에 도전해 본 적이 있었다. 풍차의 탑은 마을 북쪽에 있는 인스턴스 던전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보다 강한 몬스터들이 나온다. 템페스트의 본거지만큼 몬스터들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한 두 마리가 아닌 떼거지로 몰려나온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에 밀려 후퇴하던 국군의 심정을 1% 정도 체험할 수 있을 정도였다. 13레벨의 크앙 앞에 15레벨 몬스터인 흰쥐돌이 수십 마리가 돌격해오던 장면은 정말 악몽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크앙은 그 때와는 천지차이! 레벨은 두 배 가까이 상승했고, 다수의 적을 한 번에 공격할 수 있는 소울 크래셔도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면 풍차의 탑을 가뿐하게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이 곳에 왔는데.. 이건 또 뭐야…”
“다시 말해 줄까? 권장 인원은 3인 파티지만 혼자서도 입장은 가능하다.”
“아니, 그놈의 3인 파티라는게 마음에 걸려서… 방금 크게 한 번 데였거든…”
“싫으면 도전하지 않아도 좋다.”
“이사람아 내가 싫다는 게 아니고..”
▲ 풍차의 탑에 다시 왔다!
▲ 왠지 네가 나보다 더 셀 것 같은데, 그냥 직접 들어가서 처리하면 안돼?
▲ 이 놈의 3인이상 권장문구! 지긋지긋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크앙은 풍차의 방에 들어가 있었다. 역시 그 동안의 노력이 성과가 있었던 것일까, 이전에 그렇게 애를 먹였던 흰쥐돌이나 물정령, 소라게, 옥토족들의 물량 러쉬는 크앙의 무시무시한 연계기에 속수무책으로 녹아버렸다. 3개 층을 클리어하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5층에 도달했고, 크앙은 그 동안 소모되었던 체력과 마나 게이지를 채우기 위해 포션을 마셨다. 아니, 마시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중대한 사실 하나가 생각났다.
바로, 풍차의 탑에서는 포션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포션 고자라니!”
▲ 쥐돌이들은 이제 완전 밥이다
▲ 수많은 물정령 떼거지들도 한 두 방이면 오케이!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 반입 포션은 사용할 수 없으며, 오직 풍차의 탑 매장 내부에서 배급한 포션만이 사용가능한 영화관 같은 시스템인 것이다. 물론 몰래 숨겨 들어가더라도 외부 포션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방어가 취약한 소울브레이커 클래스 특성 상 Hp 포션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이 풍차의 탑은 세 층을 클리어해야 겨우 포션 다섯 개(후반으로 가면 겨우 두 개)를 보급해준다. 게다가 이 포션들은 인던을 나갈 때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모아 놓을 수도 없다. 한 마디로 후반부로 갈수록 포션 부족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 이건 대체 풍차의 탑을 구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 아래쪽 단축키 5, 6번에 저장되어 있는
'풍차의 탑' 전용 포션
탑 안에서는 1~4번에 저장된 일반 포션을 사용할 수 없다!
포션 고자다!
하지만 크앙이 누구인가! 불굴의 의지와 굳센 담력이 샘솟는 우리의 크앙은 용케도 포션을 적게 사용해가며 마의 13층까지 올라왔다. 13층은 휴식 플로어로, 포션을 보급받고 장비를 수리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크앙은 13층을 지키고 있는 용기병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기, 이 위층 말인데요… 어렵나요?”
“권장 레벨 말인가? 21레벨에서 22레벨이라네.”
“오오! 전 25레벨이에요.”
“누가 물어 봤나?”
물어보진 않았지만 조금 들떠서 말한 것 뿐인데 너무 매정하다. 아무튼 25레벨의 크앙은 21~22 권장레벨을 표방하는 풍차의 탑 14~16층을 클리어하기 위해 위로 향했다. 역시나 수많은 해골들이 크앙을 향해 돌진했지만 나름대로 수월하게 14층과 15층을 통과했다.
▲ 드디어 13층에 올랐다
▲ 내 레벨이 25니까 이건 쉽겠네?
이제 남은 것은 16층이다.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면 HP가 5%밖에 남지 않았는데 보스방인 16층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과 방금 전 포션이 바닥났다는 것 뿐. 이 정도는 너무나도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일 뿐이다.
사실… 매우 중대한 위기다. 물론, 몬스터의 레벨이 전체적으로 낮고 대부분 슈퍼 아머도 사용하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워낙 수가 많다보니 한 놈을 잡다 보면 어느 새 저 뒤쪽에서 날아온 공격에 한 두방씩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스치듯 쌓인 대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포션을 먹다 보니 이 상황까지 오게 되었고, 이대로는 덤벼봐야…
“꽥”
역시 HP 5%로는 무리였나.. 보스 몬스터 옆에서 어슬렁대던 아이스 해골을 치고 있는데 보스 몬스터인 거대 헬레인저가 화살을 한 대 쏘았고, 공격 딜레이 탓에 그 한 방을 피하지 못 한 크앙은 결국 불귀의 객이 되어버렸다. 아이템 사용 제한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풍차의 탑답게 부활용 응급팩의 사용 횟수도 1회로 제한되어 있었고, 여기서 포기하기엔 너무나도 아까웠던 크앙은 부활을 결심한다.
▲ 덤벼라 몬스터들아
▲ 미안, 그 말 취소... 꽥!
“좋아, 저 보스몹은 최대한 피해다니며 부하들을 먼저 잡자!”
그러나 부하들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크앙은 정말 열심히 대쉬 스킬을 써 가며 피해 다녔지만 몇 대 스치듯 맞다 보니 어느 새 체력의 1/3이 줄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까와 같은 상황만이 반복될 뿐이다. 그러던 와중, 크앙의 눈에 띈 것은 꽉 채워져 반짝거리는 여신의 능력 게이지였다!
“그래! 여신의 의지! 빛의 갑옷을 입는거야!”
크앙은 마치 부모님이 방에 들어오시려고 할 때 빛의 속도로 모니터를 끄는 중학생을 방불케 하는 빠르기로 여신의 의지 스킬을 발동시켰다. 곧 팬던트에서 나온 성스러운 빛이 크앙의 몸을 휘감았고, 빛이 갑옷으로 화하는 순간 크앙은 여신의 사자가 되었다. 크앙의 검이 번쩍이자 아이스 해골들은 나가떨어졌고, 거대 헬레인저는.. 그대로 발을 뻗었다!?
“어라?”
여신의 의지를 발동한 크앙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체력의 한계는 존재했고, 거대 헬레인저에게 몇 대 얻어맞자 그대로 여신의 갑옷이 깨지며 유령이 되어버렸다. 여신의 힘까지 사용했는데 졌다. 그것도 21~22레벨 권장지역에서..
▲ 자, 여신의 힘이다! 각오해라 이놈들아
▲ 쉬쉬쉬쉬쉭
▲ 꽥
“크아앙! 뭐가 21~22레벨 권장지역이야! 속았어! 이 나쁜놈들! 우아아아앙!”
이미 유령이 된 크앙의 울부짖음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고, 크앙은 방금 전 들렀던 부활의 성소로 또 다시 소환되었다. 대체 이 놈의 인던들은 권장 레벨의 기준이 뭐야?
크앙, 파티 사냥의 시너지 효과를 몸소 체험!
템페스트 본거지와 풍차의 탑에서 폭풍같은 사망을 경험한 후, 크앙은 곰곰히 패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히 마지막의 21~22레벨 권장 층에서 사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권장 레벨에 비해 던전 난이도가 너무 높은 것이다.
크앙은 본인의 전투 실력에서부터 착용 장비 레벨, 심지어는 소울브레이커 직업의 강함 정도까지 의심해 보았지만 딱히 ‘이거다!’ 싶은 점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파티’ 의 유무였다.
▲ 지긋지긋한 3인 권장파티의 악몽!
으아아아악!
사실 크앙은 파티 플레이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단, 파티 플레이를 하기 위해서는 파티를 구하는 매우 불편하고 성가신 과정을 거쳐야 하고, 파티 중에는 화장실을 갔다 온다던지, 아이템을 보충하고 오는 등 다른 행동을 하기가 껄끄럽다. 게다가 ‘펀치몬스터’ 특성 상 일반 사냥터에서는 파티 사냥의 이점이 별로 없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서 몰이사냥을 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여태까지 파티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템페스트와 풍차의 탑에서의 처절한 패배는 크앙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파티를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혼자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 파티를 구해보자! 근데 어떻게 구하지? 파티 따위 한 번도 해 본적 없는데 파티를 만드는 것도 좀 그렇고..”
결국 크앙은 사람들의 파티에 슬쩍 묻어가기로 결정했다. 약 30초 정도 전체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곧바로 입질이 왔다.
“템페 파티 선착순 2명 구합니다! 2-2로 오세요!”
“오! 저요! 저요저요!”
여기서 2-2란 2채널 2번 방을 말하는 것이다. 크앙은 빛의 속도로 2-2의 템페스트 본부 앞으로 달려갔고, 그 곳에서 쉽사리 파티에 가입할(묻어갈) 수 있었다. 파티 정원은 4명으로, 얼마 안 가 새로운 멤버가 합류하여 4인 파티가 구성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템페스트나 풍차의 탑은 인기 인던이기 때문에 파티를 구하기도 그만큼 쉬운 곳이었다.
▲ 파티를 기다리는 사람들
▲ 파티를 맺자, 파티, 파티를 맺자!
“자, 그럼 어디 파티 사냥이 얼마나 효과적일지 확인해볼까?”
이 말을 한 지 불과 4분 후, 크앙은 무너지는 템페스트를 보며 허탈함을 느꼈다. 물론 템페스트는 역시 강했다. 각종 얼음 마법과 워터 캐논을 써 가며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30초도 못 버티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참고로, 중간에 쥐들이 우글대는 곳에도 잠깐 들렀다 왔는데도 딱 4분만에 중간 보스들에서부터 템페스트까지 모두 처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상 외의 놀라운 시너지 효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혼자서 플레이할 때는 몬스터를 조금씩 끌고 가서 몬스터의 슈퍼아머 공격을 피하고, 남는 시간에 틈틈이 공격을 해야 했다. 그러나 파티를 이루면 한 명에게 공격이 쏠린 틈을 타 나머지 파티원들은 논스톱으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직업별로 가지고 있는 각종 버프 효과까지 겹쳐지니 4명이 모여 4배가 아닌 8배, 16배의 파워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 서로 다른 직업간에 걸어주는 버프 효과 중첩!
▲ 템페스트... 너 약한 놈이구나
▲ 필요없는 지팡이!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훈훈한 인사와 함께 짧았던 파티 사냥이 끝났다. 크앙은 별 필요도 없는 지팡이를 보상으로 받은 후 인던 밖 하수도로 되돌아왔다. 템페스트도 처치했겠다, 이제 슬슬 풍차의 탑에나 다시 가 볼까 하고 생각하던 중, 갑자기 세상이 깜깜해지며 배경이 바뀌었다.
“엥? 이 곳은? 아까 그 템페스트 소굴?”
“자, 2차도 힘내서 돌죠!”
“2..2차요?”
그렇다, 대부분의 파티원들은 이 템페스트 소굴에서 그야말로 뽕을 뽑고 가겠다는 생각으로 모였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크게 도움도 되지 않았던 크앙이 ‘전 목적 달성했니까 갈게요 ㅂㅂ’ 하고 나가면 자연스럽게 파티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결국 흐름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크앙은 생리현상까지 참아가며 파티 멤버들이 자진 해체할 때까지 템페스트 기지를 5번 씩이나 다녀왔다. 이 사람들.. 무서워..
▲ 살짝 눈을 감았다 뜨니 어느 새 여기
▲ 깨고
▲ 깨고 또 깼다. 그래도 좀 쓸만한 아이템이 나와줘서 다행
크앙, 풍차의 탑 앞에서 오열하다
템페스트를 정ㅋ벅ㅋ했으니, 이번엔 풍차의 탑을 정ㅋ벅ㅋ할 차례다! 크앙은 당당한 발걸음으로 풍차의 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템페스트를 돌며 레벨 업도 했겠다, 방금 전 체험한 파티 플레이 정도면 풍차의 탑 정도는 거저먹기일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딱히 파티를 구할 필요도 없이 1채널 풍차의 탑 앞에는 수 많은 유저들이 파티를 구하고 있었고, 크앙은 손 쉽게 그 중 하나의 파티에 끼어 풍차의 탑을 정복할 수 있었다.
▲ 1채널 앞 풍차의 탑에 가니 자동으로 파티가 맺어졌다
▲ 파티 사냥의 위엄
▲ 비교샷으로 혼자 도전했을때의 악몽, 피하고 싶어도 다 안 피해진다
▲ 결국 풍차의 탑도 정ㅋ벅ㅋ
풍차의 탑을 클리어하고 나니 그제서야 보상 아이템인 ‘브론즈 코인’ 과 ‘실버 코인’ 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퀘스트를 하다 보면 가끔 코인을 주던데,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아, 그 코인요? 풍차의 탑 관리인이나 마을 코인 관리 NPC에게 가면 좋은 아이템을 살 수 있어요.”
파티원의 친절한 조언(그 레벨 되도록 그것도 모르고 살았냐는 눈빛과 함께)에 크앙은 비로소 ‘코인’ 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좋은 아이템이라! 그래서 이 ‘코인’ 을 얻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풍차의 탑에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는 것이구나!
“어디 보자~ 관리인아 관리인아 뭐파~니?”
풍차의 탑 관리인은 꽤나 많은 물품을 팔고 있었다. 갑옷, 신발, 장갑 등등… 그 중 크앙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새빨간 색의 멋들어진 곡선을 자랑하는 ‘난폭한 전사의 투구’ 였다.
사실, 크앙은 현재 쓰고 다니는 헬멧에 대해 꽤나 불만이 컸다. 무슨 2차 대전 일본군 모자같이 생긴 투구와 커다란 머슴 밥그릇 같이 생긴 헬멧을 그간 방어력 때문에 억지로 쓰고 다녔었는데, ‘난폭한 전사의 투구’ 를 보니 그 동안 억눌러왔던 패션 헬멧에 대한 욕망이 생긴 것이다.
▲ 이 코인들을 풍차의 탑 관리인에게서 쓸 수 있단 말이지!
▲ 오, 이 투구 뭔가 멋있는데?
▲ 이 정도 코인이야 이과생인 나도 있지!
“그래, 바로 저거야! 어디보자.. 가격이…”
투구의 가격은 22실버 130브론즈였다. 크앙은 자신의 코인을 확인해 보았다.
“22실버 130브론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 32실버 129브론즈이니까 10실버 가량 더 많군!”
크앙은 1실버가 10브론즈 정도 될 것이라고 어림짐작했다. 이 비율은 동화와 은화의 가치를 대충 환산시켜 본 것으로, 나중에야 안 것이지만 실제 ‘펀치몬스터’ 세계에서도 10브론즈=1실버 의 비율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크앙은 기세 등등하여 ‘난폭한 전사의 투구’ 를 구매했다.
“자, 드디어 나도 멋있는 투구….. 가 없네? 어라?”
<아이템이 부족합니다>
“응? 이게 무슨 소리? 아이템이 부족? 코인도 아니고 아이템이?”
크앙은 어리둥절하여 몇 번이나 투구를 구매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코인도 줄지 않고 투구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구매시 마다 계속해서 빨간 색의 “아이템이 부족합니다” 메시지가 표시되었다. 한 마디로 이런 것이었다.
1. 코인은 돈이 아닌 아이템으로, 실제로 아이템 창에 자리를 잡고 있다.
2. 돈의 경우 거슬러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아이템의 경우 거슬러주는 것이 불가능하다.
3. 한 마디로 22실버 130브론즈의 투구를 사기 위해서는 22실버 130브론즈를 준비해야 한다. 23실버 129브론즈를 가져온다고 해서 9브론즈를 거슬러 주진 않는다.
4. 코인은 개인거래나 상점거래가 되지 않는다. 구걸이나 그런 것 없음!
지금 크앙에게 필요한 건? 바로 1브론즈였다. 1브론즈는 최하층의 약하디 약한 쥐돌이들만 물리쳐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적은 돈이다. 혼자서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저층 몬스터들이기 때문에 크앙은 재빨리 풍차의 탑에 입장했다. 아니, 하려고 다.
“던전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응?”
크앙은 다시 던전에 입장하려고 입장 버튼을 눌렀다.
“던전포인트가 부족합니다.”
“서.. 설마..”
▲ 너무나도 듣기 싫은 너의 잔소리
그렇다. 인던에 입장할 때 마다 던전포인트 어쩌고가 소모된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던전포인트란 인스턴스 던전에 입장하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로, 던전포인트가 다 떨어지면 여신의 문을 제외한 인스턴스 던전들에 입장할 수 없게 된다. 던전포인트는 매일 아침 6시에 재충전되지만, 그 방법 외에 따로 던전포인트를 채우거나 할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풍차의 탑에 들어가려면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뭐.. 뭐야 이 빌어먹을 포인트는! 설마 게임 중독 방지 시스템인가? 그.. 그럼 내 투구는?”
난감했다. 단돈 1브론즈 코인을 벌기 위해 풍차의 탑에 들어가야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다니. 게다가 브론즈 코인보다 더 상위 화폐(?)인 실버 코인이 이렇게 많은데 브론즈 코인이 1개 부족하다고 해서 물건을 안 팔다니!
그렇지만 혼자 화를 낸다고 해서 다 떨어진 던전 포인트가 채워지지는 않는 법, 크앙은 눈물을 삼키며 내일을 기약했다.
▲ 분노의 창질, iiii~
크앙은 놀랄 만한 인내심으로 하루를 참고 기다려 풍차의 탑에 들어갔고, 결국 ‘난폭한 전사의 투구’ 를 구매하기 위한 브론즈 코인을 모았다.
“이것이 바로 난폭한 전사의 투구구나! 하루동안 기다려 산 보람이 있어!”
크앙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그리고, 드디어 멋지구리 한 ‘난폭한 전사의 투구’ 를 머리에 썼다. 역시, 고생 끝에 산 ‘난폭한 전사의 투구’ 는 엄청나게 멋있….지 않았다. 그래, 별로 안 멋있었다. 심지어 얼굴에 그늘을 드리워 안 그래도 밝지 않은 피부가 더욱 어두워 보이는 효과까지 발생했다. 심지어 전체적인 패션과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이전에 쓰고 다니던 밥그릇보다야 훨씬 나았지만 전체적인 능력치를 보면 그렇게 썩 뛰어나지도 않았다.
“뭐야! 이게! 대체 이게 뭔 짓이야! 내가 이걸 사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 안멋있어
▲ 안.멋.있.어.
▲ 분노의 레벨업
게다가, 다른 코인 상인은 뭘 파는지 궁금해서 가 본 상인 메뉴에서 크앙은 환전 아이템을 발견했다. 10브론즈 코인으로 1실버를 살 수 있고, 1실버로 10브론즈 코인 주머니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크앙이 물건을 샀던 풍차의 탑 관리인은 환전을 해 주지 않았었는데, 마을에 있는 코인 상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1실버를 10브론즈로 바꿔 주는 것이었다. 괜히 하루동안 기다린 것이다. 크앙은 분노로 온 몸이 떨렸다. 두려움과 절망에 눈물까지 흘렸다. 이런 것도 처음이었다……
“아무도 날 이해 못해! 난 한 번 만이라도 행보카고 시V데! 햄복할 수가 없어! 으아아아아”
▲ 왜 하는 일마다 이따위냐고!!
크앙, 역시 난 외로운 늑대가 어울려
이번 사건을 통해 크앙은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 절실히 느꼈다. 가전 제품이나 전자 기기를 사도 설명서는 뒤로 던져둔 채 무작정 이것저것 눌러보는 타입의 크앙은 게임을 할 때도 항상 무언가를 빼먹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저번의 바람의 협곡 강제체류 사건도 생각해 보면 정보 부족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람의 협곡 아래쪽으로 쭉 가다 보면 싸이클론 하버로 가는 길이 있었다. 아는 게 없으면 몸이 고생한다는 옛 말이 틀린 게 없다.
그렇지만 게임을 하기 위해 사이트를 뒤져 가며 이리저리 공부를 하는 것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는다. 이리하여 크앙은 자신을 도와 줄 멘토들을 찾기 위해 길드에 가입하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으니 내가 길드를 만들면 되겠지?
“뭐라구요? 4명이요?”
▲ 길드를 만들라구요? 그럼 만들죠 뭐
▲ 헐, 4명 없는데. 그냥 만들어 주시면 안되나요?
▲ ......
▲ 난 혼자야! 친구가 없다고!
▲ 왕따라고 놀리지 말아요
크앙은 길드 관리관 앞에서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길드를 한 번 만들어 볼까 하고 길드 관리관을 찾아갔지만 4명이 모여야 길드를 창설할 수 있다는 소식은 크앙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 4명이나 모아 와야 한다니!
결국 방법은 하나 뿐, 현재 존재하고 있는 길드에 가입신청을 하는 것이다. 결국 크앙은 길드에 가입하기 위해 전체 채팅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레벨 30이상 길원 구해요’, ‘레인저 길드 길원 모집’, ‘소서러 오세요’ 등의 다른 세계 이야기들을 약 5분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크앙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친목길드였다. 역시 어느 세계에나 실력은 보지 않는 친목 길드는 존재하는 것 같다. 크앙은 친목길드원을 모집한다는 유저에게 귓속말을 보내보았다.
“저 길드 가입하고 싶어요.”
“네.”
“네?”
<길드가입 메시지가 왔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 솔직히 거창한 걸 바란 건 아니었다
▲ 그리고 바로 가입 완료, 파티보다 간단하다
이 무슨 간소절차란 말인가! 고작 한 마디의 가입신청 귓말로 길드가입이 허락되었고, 크앙은 결국 길드에 가입하게 되었다. 길드 가입에는 복잡한 절차도 필요 없었다. 파티 가입 때처럼 메시지 수락만 하면 오케이였다. 뭔가 이상했다. 길드장과 길드원 얼굴 한 번 못보고 이렇게 가입이 되는 것인가?
길드에 가입하고 변한 것은 딱 두 가지, 머리 위에 가끔 나타나는 길드 이름과 그 동안 비어 있던 길드 채팅창에서의 사람들의 대화였다.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었다. 레벨대가 맞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같이 사냥을 다니기도 난감했고, 길드원을 하루만에 몇 명을 받았는지 서로 그렇게 잘 아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길드 아지트도 없고 하니 소속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
▲ 길드 시스템이라 봐야 별 게 없다. 아지트도 없고..
▲ 기껏해야 파티대화 뿐..
결국 크앙은 길드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시 홀로 사냥을 나갔다. 카페에 가입해서 활동을 하고, 채팅창에 대고 잡담을 하며 친목을 다지는 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크앙의 짧은 길드생활은 끝이 났다.
크앙, 여신 따위 그냥 갇혀 있는게 편할 듯
한동안 사냥에 몰두하던 크앙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레벨 업, 탐험, 강화 등에 빠져 있다 보니 악의 힘에 물든 대마법사의 침략에 맞서 싸우다가 봉인된 여신을 구하기 위해 싸운다는 본래 목표와는 거리가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 세계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여신을 구하기 위해 출동한 용사가 나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마을이 습격당해서 피바다가 되거나 사이어인이 쳐들어와서 이 행성을 식민지화 시키는 등의 참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필드에는 각종 해적이나 몬스터들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원도 얻고 레벨 업도 하고.. 간혹 죽더라도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고.. 이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 깨달음을 얻어 기쁘네
아니지, 여긴 천국이다. 용사들은 열심히 사냥을 하고 거기서 얻은 물건을 팔아 돈을 얻고, 그 돈으로 각종 물품을 사며 마을의 경제 순환의 밑거름이 된다. 한없이 평화로운 세계였다면 이런 활발한 경제활동이 가능했을까? 기껏해야 닭똥구멍에서 달걀이나 꺼내고 양털이나 깎는 지루한 생활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풍족하게 살아가는 밝은 사회, 그것이 바로 ‘펀치 몬스터’ 의 세계였다.
▲ 이 정도면 매우 평화로운 마을이다
▲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위험한 세계라는
말이 나온다.
사진은 '레드 데드 리뎀션' 의 무법천지 세계
“그래, 여신 따위 그냥 이대로 갇혀 있는게 좋겠구나.”
“크앙 씨, 그게 무슨..? 절 안 구하겠다구요?”
어디선가 여신 비스무레한 환청 같은게 들렸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여신의 목소리군.
“여신을 구하면 여기 모인 용사들은 실업자가 되겠지, 거기다가 마을의 경기도 안좋아질거야.”
“꼭 그렇지만도 않…”
“그러니까, 이대로 사는게 좋은 것 같아. 인생을 즐기면서~”
“(이놈은 틀려먹었어..) 그럼 평생 그렇게 사세요!”
▲ 아웅~ 여기가 너무 좋아~
▲ 크앙에게 화 난 여신님
그러길래 직접
물리치라니까요!
큰 깨달음을 얻은 크앙은 여신 따위 버리고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간간히 레벨 업도 하고, 모르는 건 한 번씩 찔러도 보고, 그러다가 피 좀 보면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그런 삶. 그것이 바로 ‘펀치몬스터’ 를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다.
여신은 토라진 것 같지만 갇혀 있는 주제에 참견할 것 다 하고 힘 쓸 것 다 쓰는 사람이니 넘어가자. 크앙은 자신의 여신에게도 따뜻하지 않은 차가운 도시남자니까. 어쨌든 크앙은 인생을 즐기며 유유자적 살아갈 것이다. 안 그래도 빡빡하고 힘든 인생, ‘펀치몬스터’ 세계에서라도 편안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아오! 진짜! 내가 그렇게 살라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대피시켜준 줄 알아?”
갑자기 눈에 불을 켠 여신이 뿅 하고 나타났다! 역시 갇혀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내 맘대로 살겠다는데 무슨 상관? 그나저나, 갇혀있다는 사람이 여긴 또 어떻게 오셨대?”
“날 안구해준다며! 여기 온 건 마지막 남은 힘으로 온 거야!”
“헐,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랄도 해치우겠네?”
“어쨌든, 빨리 날 구하라고! 구하라고!!”
“이 세계에는 여신보다는 마음과 마음, 그게 제일 중요한거다. 세상에는 우리만 사는 게 아니잖아!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국가, 하나의 생물 생명체…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니까 우리만 생각 할 수 없는 것이다!”
▲ 우리만 생각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이자식이!”
“어라? 이사람이 지금 멱살 잡았어?”
“잡았다! 어쩔래!”
“아이구 뒷목이야, 여신이 사람 치네!”
“뭐, 뭐!? 내가 언제 쳤다고! 어디서 공갈이야!”
“@#$^#$”
“%$!$~%!
이렇게, 평화로운 ‘펀치몬스터’ 의 세계는 오늘도 계속 유지된다.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 크앙의 펀치몬스터 기행기 3부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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