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만큼이나
매력적인 게임소재, 일본의 전국시대
동양인의 고전 삼국지.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있고 원작 자체가 난세의 인간관계를 소재로 하고 있는만큼
게임으로 만들기에도 적합해 다양한 기종으로 다양한 형식의 삼국지 관련 게임이
등장했다.
삼국지 관련 게임으로 가장 유명한 제작사는 일본의 코에이다. 대표적인 전략시뮬레이션 삼국지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에는 진 삼국무쌍 시리즈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사실 코에이에는 삼국지 시리즈와 더불어 대표적인 전략 시뮬레이션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일본의 전국시대(15세기 말~17세기 초)를 소재로 한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가 그것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역시 삼국지와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국가별 대립과 등장인물들의 드라마틱힌 삶이 게임으로 만들기에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는 뛰어난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삼국지 시리즈와 달리 일본을 제외한 동양권의 다른 나라에서는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국시대의 유명무장 중 한 명인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린다는 구실로 조선을 침공,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대사에서 일본이 조선을 비롯해 중국, 동남아시아 각국에 벌인 만행들로 인해 일본의 피비린내나는 전국시대를 다룬 게임은 다른 나라들에서 푸대접을 받아왔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지 시리즈는 워낙 유저층이 두터워 오래 전부터 한글화되어 출시되었지만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는 유저층이 얼마 되지 않아 한글화되어 출시된 작품이 ‘노부나가의 야망: 천상기’, ‘노부나가의 야망: 장성록’ 두 작품밖에 없다.
사실 게임을 통해 삼국지를 접한 사람은 얼마 없다. 대부분 소설이나 만화를 통해 먼저 삼국지를 접하고, 그 이후에 게임을 시작한다. 그런데 일본 전국시대를 나룬 ‘대망’ 같은 소설은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저연령층 독자들이 읽기에는 지루하고 어려운 부분도 많아 원작의 경험자를 통한 게임으로의 저변 확대가 무리인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전국시대를 다룬 좋은 게임들이 나와도 우리나라 게이머들에게는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PS2용 진 삼국무쌍 시리즈의 컨셉을 도입해 일본 전국시대를 무대로 한 액션 게임 「전국무쌍」의 개발이 공개되고 국내에도 정식으로 발매된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 전국시대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그 스토리와 배경에 대해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진 삼국무쌍 시리즈를 재미있게 즐긴 게이머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전국무쌍에 대해 많은 기대를 안고 있다.
이에 게임메카에서는 전국무쌍이란 게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의 전국시대가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전국무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대상으로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원작에서는 어떤 캐릭터였는지에 대해 소개하는 페이지를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일본의 전국시대 이해를 위한 내용을 읽어보면서 전국무쌍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보자.
▲ PC용으로 국내에 정식발매된 '노부나가의 야망 장성록'. 게임성 자체는 높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
▲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인기 시리즈 '태합입지전'. 이 시리즈는 국내에 정식으로 발매된 적이 없다 |
전국시대(戰國時代)란
무엇인가?
전국시대란 글자 그대로 일본 전토에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오닌의 난(1467∼1477)을 시작으로 오오사카의
진(1615)에 이르기까지 싸움이 계속되던 시기를 말하는데 이 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
타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 모리 모토나리, 다테 마사무네, 호죠 우지야스 등의
영웅들과 개성 강한 무장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 시대는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한다’로 간단히 표현된다. 천하를 차지한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농민 출신이고 미노를 통일해 천하에 이름을 떨친 사이토 도산 역시 저잣거리의 기름장수에 불과했다.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 부모, 형제, 가신, 아내마저 때로는 적으로 돌아섰다. 또한 가신을 포함한 무장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아름답고 기발한 무기, 방어구에 집착을 보였다. 이 시대에 일본에 전래된 철포는 전법뿐만 아니라 갑옷, 성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사 교과서 등에 나와 있는 전국시대의 정의는 오닌의 난(1467)을 시작으로 오다 노부나가에 의한 아시카가 요시아키 추방(1573)까지로 되어있지만 통상 오닌의 난부터 오오사카의 진(1615)까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 전국시대가 한창이던 1560년의 일본 전국상황. 수많은 다이묘들이 각자의 영지를 확보한 채 호시탐탐 천하통일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와 오닌의 난의 발생배경
중세 일본은 그 동안
직접 통치를 해왔던 천왕과 귀족들이 상징정인 의미로 전락하고 무사들이 막부를
열어 그 집행을 대행하는 이른바 막부정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오닌의 난은 카마쿠라
막부에 이어 일본의 두 번째 막부로 등장한 아시카가 가문의 멸망 원인을 제공한
중요한 사건임과 동시에 전국시대를 초래한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아시카가 막부를 확립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의 뒤를 이어 4대 쇼군으로 요시모치, 5대 쇼군으로 요시하카가 등극하면서 정치는 막부와 유력 다이묘 간에 균형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된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5대 쇼군 요시하카가 급서하면서 문제가 불거진다.
후계자 정해지지 않은 쇼군의 자리를 두고 관료들은 요시미츠의 자식 중 한 명을 제비뽑기로 뽑아 쇼군을 결정하려 한 것이다. 요시노리가 ‘제기뽑기 쇼군’으로 야유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쨌거나 쇼군으로 취임한 요시노리는 독재적인 경향이 짙어 쇼군의 권력 강화를 목표로 막부에 따르지 않는 다이묘들을 모두 힘으로 제압하려 들었다. 이로 인해 요시미츠 때부터 대립관계에 있었던 카마쿠라 부와의 관계도 결렬되고, 1438년 요시노리는 카마쿠라로 토벌군을 보내 카마쿠라 공방의 아시카가 모치우지를 멸망시켜 버린다.
계속된 요시노리의 전제정치로 인해 재정은 계속해서 국고를 축냈고 덕정령(德政令. 매각지 회수나 채권, 채무의 파기를 정한 법령으로 흉작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사람에게 조세를 면제하는 선정의 하나)을 반포해 민심의 회복을 노렸으나 이마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또한 각 다이묘들은 언제 자신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한다.
수도인 쿄토 주위의 경비와 수호를 돌아가며 맏던 네 가문(아카마츠, 잇시키, 야마나, 쿄코쿠) 중 신변의 위협을 느낀 아카마츠 가문에서 요시노리를 저택으로 초대해 암살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카마츠 가문은 막부의 명령을 받은 야마나 가문에 의해 토벌당하고 아카마츠의 영지는 몰수되어 야마나 가문에게 더해진다.
▲ 카마쿠라 막부 창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하지만 쇼군이 된 형 요시토모에 의해 '팽'당한다 |
▲ 지금의 카마쿠라 모습. 옛 영화는 간데 없이 한적하고 고즈넉한 모습이다 |
오닌의
난 발발
8대 쇼군 요시마사는 오랫동안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자를
낳지 못했다. 이에 후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시마사는 이미 출가한 동생 요시미를
환속시켜 차기 장군으로 내정했다. 하지만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요시마사의
정실인 토미코가 아들을 출산한다. 후일 9대 쇼군이 된 아시카가 요시히사였다.
이렇게 되자 막부 내에서는 요시히사를 차기 쇼군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생기고 차기 쇼군을 약속받았던 요시미는 자리와 더불어 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이에 박차를 가하듯이 막부를 보좌하는 관령(管領) 가문 중 두 곳인 하타케야마, 시바 가문에서 가독(家督. 가문의 수장 자리) 상속과 관련해 내분이 일어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다. 유일하게 세력을 보존하고 있던 호소가와 가문이 관령가 중에 태두로 떠오르고 아카마츠 가문의 토벌을 통해 급격히 세력이 성장한 야마나 가문 역시 호소카와 가문에 필적하는 세력으로 성장한다.
요시미를 차기 장군으로 삼으면서 요시마사가 보좌역으로 붙여주었던 호소가와 가문. 토미코는 자신의 아들 요시히사를 쇼군으로 추대하기 위해 호소가와 가문을 견제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 야마나 가문을 끌어들인다. 호소가와 가문과 야마나 가문은 하타케야마 가문의 가독 쟁탈전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지원함으로써 갈등이 표현화된다. 때를 같이 해 요시미와 요시히사의 가독 쟁탈전에서는 요시히사가 요시미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 갈등이 표현화되고 호소가와 가문은 요시미를 지지하고 야마나 가문은 요시히사를 지지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그리고 1467년 1월 18일. 하타케야마의 가독 쟁탈전에서 시작된 양 가문의 갈등은 쿄토에서 폭발, 오닌의 난이 발발한다. 전국의 다이묘들은 서군(야마나 가문 지지)과 동군(호소가와 가문 지지)으로 나뉘고 서군 20개국 11만명과 동군 24개국 16만명은 쿄토에서 시가전을 벌려 쿄토는 잿더미로 변했고,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동안 지방으로까지 싸움이 번졌다. 주전장이 된 쿄토는 쑥대밭이 되고 수많은 신사와 불각, 명승고적들이 불길에 사라졌다. 그리고 1477년, 양군의 수장인 호소가와 카츠모토와 야마나 소젠이 차례로 병사하면서 전쟁은 점차 소강 상태를 보인다. 서군에 있던 요시히사 모자가 동군에 붙자 동군에 있던 요시미는 불편해서 서군으로 옮기는 등 전쟁의 목적 자체가 애매해지면서 양군의 화의를 맺고 11년에 걸친 오닌의 난은 끝난다.
전쟁은 끝났지만 막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쇼군은 쿄토 일대인 야마시로 지역만을 차지한 군소 다이묘로 전락했다. 막부권력의 해체로 인해 전란으로 피폐해진 다이묘들도 격변을 겪었다. 쿄토의 조정에 출사한 슈고(守護)를 대신해 영지를 다스리던 슈고다이(守護代)가 주군을 배신하고 다이묘로 등극하는 등 실력만이 통하는 비정한 세계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이 전국시대의 개막이다.
▲ 무로마치 시대의 생활모습을 그린 그림 |
▲ 무로마치 시대에 사용되었던 동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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