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윈터 나이츠’, ‘엘더스크롤’ 등과 같은 소위 정통 판타지 RPG라 불리는 명작 게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북미 지역 개발사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때문인지 퀘스트 중심으로 전개되는 RPG라고 하면 자연스레 미국과 같은 북미 쪽 지역을 연상하곤 한다.
하지만 지난 10월 30일 북미에 출시된 RPG ‘더 윗쳐(The Witcher)’는 미국도 캐나다도 아닌 국내 게이머에게는 다소 생소한 폴란드의 개발사 CD 프로젝트 레드(CD Projekt Red)에서 개발된 게임이다. 올 하반기 국내서 발매될 예정인 ‘더 윗쳐’는 전문 작가가 스토리를 담당하는 등 앞서 언급한 명작 RPG들 못지 않은 게임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과연 게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 더 위쳐 트레일러 |
선택에 의해 좌우되는 게이머의 운명
먼저 게임에 대해 살펴보기 앞서 ‘더 윗쳐’의 세계관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윗쳐는 사람들에게 의뢰를 받아 몬스터를 처단하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종의 해결사와 같은 직업이다. 게이머는 윗쳐가 되어 기묘하거나 일상적인 일들을 수행하게 된다. 이러한 세계관은 폴란더의 저명한 작가 ‘Andrzej Sapkowski’의 소설 ‘더 라스트 위시(The Last Wish)’에서 따온 것이다. 이 소설은 출시 당시 폴란드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는데, 게임 ‘더 윗쳐’는 소설의 특징적인 부분을 원작에 충실하게 구현했다.
안드레이 사프코스키와
The Witcher `위처`의 원작자 안드레이 사프코스키(Andrzej
Sapkowski)는 폴란드의 공상과학 소설 시상식인 Zajdel Award에서 2003년까지
5번이나 수상을 한 작가이다. 작가의 첫번째 단편 소설인 The Witcher는
2001년 TV시리즈와 영화로도 제작되었지만 흥행에서 큰 참패를 기록
했다. 하지만 The Witcher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3권의 단편과 5권의 장편소설이 출간 됐다. 게임 The Witcher는 소설로 소개 된 스토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
▲ 들어는 봤나? 폴란드 RPG |
‘더 윗쳐’에서 게이머는 제랄트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제랄트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윗쳐로서 활동하는 캐릭터로 설정돼 있다. 게이머는 제랄트로 마을 주민들이 부탁하는 다양한 의뢰를 들어주게 된다.
중요한 점은 마을 주민들이 부탁하는 것이 모두 옳은 일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게이머는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게이머는 다양한 종류의 NPC들을 만나게 된다. 독과 부두 종교를 믿는 마녀나 인간이 아닌 종족을 끔찍하게 증오해 드워프, 엘프를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NPC, 어린아이를 유괴하는 상인 등 나쁜 짓을 일삼는 NPC들과도 조우하게 된다. 즉 게이머는 ‘더 윗쳐’에서 선을 추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단순히 문제 해결사의 입장으로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되고, 자신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 해 나가며 선과 악을 선택해 게임을 진행하게 된다.
물론 게임 초반에는 메인 시나리오로서 자신의 동료를 죽인 적들을 쫓는 임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를 계속 진행할지 안 할지는 전적으로 게이머의 손에 달려있다.
NPC들의 의뢰를 수행하다 보면 간혹 게이머 자신도 모르게 악을 돕는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경비병은 구울(언데드 몬스터)을 처치해 달라고 게이머에게 부탁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경비병은 강간범이었고, 게이머가 처치한 구울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였던 사실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게이머는 영문도 모른 채 강간범의 의뢰를 도와준 입장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일들은 게임을 진행하며 계속해서 발생하게 되고, 이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게임 후반 게이머의 성향이 결정된다.
▲ 선이냐 악이냐? 그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렸소 |
이처럼 ‘더 윗쳐’는 기존에 보아오던 RPG와 달리 게이머가 영웅의 입장으로 악을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에게 여러 선택권이 주어지고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스토리 분기가 나누어지는, 즉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게임 진행이 좌우되는 자유도 높은 판타지 RPG라 할 수 있다.
기존 RPG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전투 시스템
‘더 윗쳐’를 다른 RPG들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점이 꼽는다면 바로 전투 시스템에 있을 것이다. 게이머는 캐릭터의 파이팅 스타일을 퀵, 헤비, 그룹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각각의 전투 스타일 역시 각각 특징이 존재한다.
퀵 스타일은 게이머가 굉장히 빠른 공격을 펼칠 수 있고 헤비 스타일은 한방 한방이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그룹 스타일은 다수의 적들을 상대할 때 유용한데, 게이머의 공격 한 번으로 여러 명의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공격 스타일은 오직 게이머가 철이나 은으로 된 검만을 사용했을 때 가능하다.
▲ 마법도 사용하고 근접전에도 강하다고! |
이러한 파이팅 스타일은 게임을 플레이 하며 얻은 포인트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각각의 스타일은 총 5단계가 존재하고, 각 단계 따른 4개의 스킬이 있다.
예를 들어 헤비 스타일 1단계의 경우 게이머의 공격력을 올려주는 버프 마법과 자신의 체력이 15%이하일 때 공격력을 40% 상승시켜주는 ‘블러드 레이지’ 스킬 외 2개의 스킬이 존재한다. 또 게이머는 자신의 포인트를 사용해 자신만의 공격스타일을 탄생시킬 수 있다. 한 가지 재미난 점은 게이머가 술에 취하면 공격력이 상승되는 효과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개발사의 재치가 돋보이는 부분이었다.
▲ 인간 외의 종족도 함께 공존한다 |
하지만 이러한 스킬 시스템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바로 클래스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RPG에는 전사, 마법사는 기본이고 도적, 사제, 드루이드 등 다양한 클래스가 존재해 RPG에 익숙하지 않은 게이머도 자신의 성향에 따라 쉽게 직업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윗쳐’에서는 오직 1개의 캐릭터와 위처럼 마법과 공격을 함께하는 마검사 같은 전투 스타일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근접 공격에 특화된 전사가 된다거나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상당히 험난한 길을 가야 한다.
색깔이 뚜렷한 개성강한 RPG
‘더 윗쳐’는 정말이지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RPG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투 스타일은 물론이고 무심코 수행한 퀘스트로 선과 악이 결정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여성 NPC와 특별한 관계(마치 GTA의 핫커피 모드와 같은)를 맺을 수도 있는 자유도 까지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해 온 RPG의 틀을 깨어버렸기 때문에 신선함을 기다려온 게이머에겐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머리색깔이나 외모를 바꿀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존재하지 않아 다양한 게이머의 취향을 맞추기에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뿐만 아니라 전투 시스템의 경우 참신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타이밍에 맞춰 마우스를 클릭해 공격해야 하는 점이나, 오로지 검만을 사용해야 하는 제한적인 무기 사용 또한 까다로운 게이머의 입맛을 맞추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한글로 만나보고 싶습니다… |
올 연말 국내에도 출시될 예정인 ‘더 윗쳐’는 폴란드 개발사에서 개발됐기 때문인지 게임의 다이얼로그 등에서 약간 어색한 영어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부분은 이미 각종 저명한 해외 웹진에서도 거론된 바 있는 문제점이고, 국내에서도 영문판으로 발매된다면 스토리 중심의 게임 플레이가 매우 힘들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더 윗쳐’는 판타지 RPG도 다양한 방향으로 표현될 수 있고, 기존의 툴을 과감히 깨뜨리고도 충분히 훌륭한 RPG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게임을 계기로 더욱 개성 강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게임이 계속해서 출시돼 다시 PC 패키지 시장이 부활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빌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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