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외국선수 간판타이틀 표지 |
해마다 전 세계의 축구게임팬들을 열광하게도, 한편으로는 짜증나게도 하는 피파 시리즈는 코나미의 위닝 시리즈과 함께 세계 축구게임을 양분하고 있는 자칭 타칭 세계 최고의 축구게임이다.
피파 시리즈의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FIFA 94~FIFA 97까지의 피파가 완전한 런 앤 건(Run & Gun: 무작정 달리다 슛을 하는) 스타일의 촌스러운 아케이드 개념의 축구게임이었다면 그 뒤를 이은 FIFA 98~FIFA 2001이 축구인지 서커스인지 헷갈리는 수퍼 개인기의 대 페스티벌이었다고 할 수 있다.
▶ 어김없이 발매된 피파 2005 |
하지만 피파 2002부터 시작해서 피파 2005까지 이어지는 최근작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경기 내적으로는 물리엔진을 향상시켜 보다 자연스러운 모션을 발전시켜가며 패스와 미드필더를 강조하고 있고, 경기 외적으로는 개인의 커리어와 경영시뮬레이션 개념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피파 2005는 우리가 원하는 정도까지의 축구게임에 근접한 것일까?
공격의 물꼬를 튼 퍼스트 터치와 쓰로우
인 시스템
이번에 추가된 피파 2005 게임 시스템의 핵심은 퍼스트
터치(First Touch)와 자유로운 쓰로우 인이다. 퍼스트 터치란 패스를 받는 선수가
첫 번째 볼 터치에서 다음 동작을 미리 예비하는 동작을 말하는데 공격 방향으로
공을 흘릴 수도, 90° 방향으로 꺾을 수도 있으며 수비수를 제치는 드리블 동작으로
연결할 수도 있다. 수비하는 쪽에서는 공격수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수비의 허를 찌른 돌파나 패스를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퍼스트 터치를 단 한번도 쓰지 않고도 월드클래스의 난이도를 진행하거나 멀티플레이에서 승리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퍼스트 터치를 이용하지 않으면 피파 2005를 할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제 공격수의 볼 컨트롤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어도 아깝지 않다. 피파 2004에서 내세웠던 오프 더 볼 컨트롤 시스템보다 훨씬 실제 경기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기능이다.
쓰로우 인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사실 특정한 선수에게만 제한적인 방법으로 쓰로우 인을 해야 하는 피파 2004의 쓰로우 인 시스템은 비난받아 마땅했다. 피파 2005의 쓰로우 인은 선수를 바꿔가며 직접 선수에게 보낼 수도 있고 빈 공간으로 침투시켜 빠른 공격이 가능하도록 개선되었다. 특히 상대편 진영 깊숙한 곳에서 쓰로우 인 찬스를 얻으면 강력한 크로스 찬스가 쉽게 난다.
수비 시스템은 공격 시스템에 비해 그다지 크게 바뀐 점이 없다. 공격진영이 퍼스트 터치와 향상된 쓰루패스, 쓰로우 인 시스템으로 인해 강력해져 상대적으로 수비가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강력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쓸 수 있는데다 협력 수비와 바꿔 막기를 적절히 응용하면 어이없게 실점을 하는 일은 드물다. ?
피파 2004에서 삭제되었던 선수 만들기 모드가 새로 추가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한 해는 넣었다가 한 해는 뺐다가…. EA, 몇 년째 뭐하는 짓이냐). 특히 새로운 선수는 외모나 복장뿐만 아니라 능력치까지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어 패치형식으로 받아보기 힘든 사용자들에게는 원하는 팀에게 원하는 선수를 공급할 수 있어 편리한 시스템이다.
사실적인 모션은 피파 시리즈 중 최고
선수들의
모션은 지금까지의 피파 중에서 최고라 할만 한다. 예전에는 공격과 수비, 미드필더를
가릴 것 없이 부자연스러운(골문 앞에서 살짝 인사이드로 밀어 넣은 슛이 시속 100마일로
날아가는 등) 모션이 많았는데, 피파 2005에선 이런 부자연스러운 모션이 상당부분
개선된 것이 특징이다.
볼 드리블, 상대 선수와의 몸싸움과 충돌시의 모션, 헤딩슛과 바이시클 킥, 태클, 헤딩, 개인기의 모션 등은 향상된 물리엔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특히 상대선수와 몸싸움 이후 볼의 소유권이 애매해지는 루스볼 상황일 때 우리 측 선수들을 일정기간 전혀 컨트롤 할 수 없었던 버그가 있던 피파 2004의 스톨(Stall) 현상이 이번 버전에는 말끔하게 수정되었다.
쓰루패스 시스템도 피파 2004에 비해서 한 단계 더 발전했다. 빈 공간을 찾는 선수가 코너플래그 쪽으로 돌진할지 골문 쪽으로 돌진할지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고 로빙 쓰루 패스가 가능해져 수비수가 가장 막기 곤란하다는 수비수의 뒷통수 쪽으로 킬 패스를 찔러주는 것도 가능해졌다. 피파 2005의 대부분의 득점은 이런 쓰루 패스로 인해 가능해진다. 피파 2004에 비해서 몇 배는 더 강력해진 쓰루 패스 시스템이다.
존 모슨(John Motson)과 앨리 맥코이스트(Ally McCoist) 같은 유명한 TV 축구해설가의 해설도 경기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주기에는 그만이다. 한글화가 안 된 마당이라 과거 전용준, 강신우 콤비의 삽질 만땅 해설이 그립기도 하지만 골문 앞에서의 혼전시 약간의 싱크로 오차가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해설도 아주 훌륭하다. 한글 해설을 듣고 싶다면 PS2 버전을 플레이하는 수밖에 없다(올해는 중계와 해설이 김동연, 박문성 씨로 바뀌었다).
여전히 불편한 코너킥과 여전히 황당한
프리킥
피파 2004에서 도입된 오프 더 볼 컨트롤 시스템(Off the
ball system)은 이번 피파 2005에도 건재하고 잘만 쓰면 위력적인 공격 방법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PS2 버전에 한정된 이야기지 Xbox나 PC 버전의 피파 2005에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Xbox에서는 흰색 버튼(○)과 오른쪽 트리거를 오른쪽
엄지손가락으로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PC용에서 키보드로 이 기능을
컨트롤 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컨트롤의 난점으로 인해 실제로 이 기술을
제대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좌우에서 빠르게 올려주는 크로스 외에는 별로 쓸 일이
없다(물론 버그 플레이는 제외하고).
코너킥에서의 불편함도 개선되지 않았다. 아무리 ‘SET PIECE’를 건드려 봐도 피파 2005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코너킥을 날린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 ‘SET PIECE’는 경기 전에 딱 3가지 형태로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경기에서 직접 수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코너킥의 겨냥점은 늘 골에어리어 부근이고 먼 쪽으로 보낼라치면 대부분은 골키퍼에게 바로 잡히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다. 피파 2005 개발진들은 이런 코너킥 시스템이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들에게는 황당한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프리킥의 난이도 조정은 이번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필자는 프로페셔널 난이도에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얻은 프리킥의 80% 정도를 골로 연결했다. 아무리 프리킥의 달인이라는 베컴이나 베론, 카를로스가 프리킥을 찬다고 해도 페널티킥과 프리킥의 성공률이 비슷하다는 것은 엄청난 난센스다.
아직은 어정쩡한 커리어 모드
피파
2004에서 도입되었던 커리어 모드는 이번에는 감독의 지명도라는 개념이 훨씬 강화되었다.
아쉽게도 처음 감독이 되어 맡을 수 있는 팀들은 2부 리그나 3부 리그의 팀들뿐이고
빅 리그의 명문 팀은 꿈도 꿀 수 없다. 이 하위 리그에서 팀을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아야
빅 리그 진출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빅 리그에 오르기 위해서는 여러 해의 시즌을
보내야 하고 막상 빅 리그에 올라가면 지금의 수퍼스타들은 모두 은퇴해 버렸거나
아니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지단과 베컴,
오웬, 피구가 있는 지구 방위대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권을 잡고 싶다고? 꿈 깨시라.
각고의 노력 끝에 프리메라리가 1부 리그인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될 쯤에는 지금
유명선수들은 모두 은퇴해서 세계 여행이나 다니고 있을 것이다. ?
커리어 모드의 불만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챔피언쉽 매니저 시리즈와 같은 퀄리티를 기대한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비주얼 시뮬레이션 모드는 경기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기에는 너무나 정보량이 부족하다. 공수의 진행상황도 일목요연하게 알아보기 힘들고 비주얼 시뮬레이션 상태에서는 선수를 교체한다거나 포메이션을 바꾼다거나 하다못해 일시중지도 지원하지 않는다. 선수를 교체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게임을 뛰어야 한다. 이래서는 비주얼 시뮬레이션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진다. 클럽 매니저가 아닌 피파로서는 처음 시도되는 부분이고 차후 버전에서는 물론 개선되겠지만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볼 때 피파 2005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제외하고 나면 피파 시리즈의 앞으로 나갈 길을 보여 줬다고 할 만큼 잘 만들어진 게임이다. 특히 리뷰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팀에 따라 포메이션을 변경할 수 있게 했다든지 하는 자잘한 개선점들이 많은 것이 눈에 띄고 게임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서 포인트 제도를 개선한 것도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여기서부터는 사설…
한국에
사는 피파 팬들이라면 피파 2005가 출시되면서 두 가지 점에서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은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이 없다는 것이고(2004 버전의 한일전에 이어
이제는 한국전 자체가 없다) 또 하나는 한글화 부분이다. 우선 국가 대표팀이 빠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서는 뭐라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서로 돈이
안 맞아서 못했다는데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경제도 어려운데 EA라고 땅 파먹고
사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한글화 부분은 여러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번 PC 버전은 한글화는커녕 매뉴얼도 영문이다. 물량도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량만 수입해 팔 계획이라고 한다. 어린 백성이 사고자 할 바 있어도 사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보통 게이머라면 기억도 잘 안 나겠지만 EA의 ‘크리켓 2002’나 ‘럭비 2002’와 같은 대접을 피파가 받고 있는 것이다. ‘썩어도 준치’였던 피파가 이런 대접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EA의 형편이 너무 기울어서 한글화를 아예 안한 것일까? 설마~. 피파 2005 PS2 버전은 음성까지 한글화되어 출시되었다(물론 한글화가 되지 않아 좋은 점 또한 있다. 발 빠른 해외 로스터나 사설 패치를 언어 시스템 에러 없이 바로 적용할 수 있다-_-;).
피파 2005가 이런 대접을 받는 데는 ‘피파 2005 온라인’이 있다.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던 피파 PC버전의 판매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데는 ‘피파 2005 온라인(가제)’의 영향이 없을 수 없기 때문이다. 뭐 100% 자세한 내막이야 EA측에서 알려주지도 않을 것이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알아도 별다른 방법이 없겠지만 부디 피파 2005 온라인이 대박 터져서 돈 많이 벌고 그 돈으로 불쌍한 게이머들에게 적선하는 셈 치고 한글화나 국가 대표팀 라이센스나 넉넉한 물량 수급에 최선을 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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