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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먹고 마시고, 방사능 만능주의 세상 '폴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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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아웃'을 상징하는 아이템, 방사능 음료 '누카 콜라' 홍보물 (사진출처: 스팀)

'폴아웃'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무시무시한 방사능 오염이다. 애초에 게임 제목부터 '낙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워낙 유명하고 오래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대표격 시리즈이니 말이다. '폴아웃'이 기본적으로 핵전쟁과 방사능 오염의 위험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는 것 정도는 아마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폴아웃' 세계관에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다. 사실 이 게임은 다른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와 달리, 방사능 오염이 조금 황당하게 묘사되는 면이 있다. '폴아웃' 세계관의 방사능 문제는 핵전쟁으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다. 물론 핵전쟁 후 낙진으로 오염된 것도 있지만, 실은 전쟁 훨씬 전부터 방사능을 온갖 곳에 써대고 있었다는 설정이다. 사용방법만 해도 조미료, 자동차 연료 등 다양하며, 아예 방사능 놀이동산까지 존재할 정도다. 이러한 방사능 애호는 전쟁 후에도 계속되서 인간을 방사능에 적응하게 강제 진화시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거나, 방사능을 신의 축복으로 숭배하는 신앙이 생기기도 한다.

과장 조금 보태 이야기하자면, '폴아웃'은 방사능 애호가가 꽤나 많은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대체 이 세계관은 설정이 어떻길래 인체에 유해한 방사능을 이렇게나 애호하는 걸까? 가장 유명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게임 '폴아웃', 그 기괴한 방사능 사랑을 알아보자.

21세기 초 화석연료가 바닥난 세상, 원자력에 집착하다


▲ '폴아웃 택틱스'에 나온 전쟁 전 프리미엄 오일 가격은 1갤런에 930만원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폴아웃' 세계에서 방사능이 이처럼 인기 절정이었던 사연은 이렇다. 사실 '폴아웃' 세계관은 2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실제 역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이 세계는 화석연료가 급속도로 고갈돼 기술발전이 실제 역사와 다르게 흘러갔고, 삶의 많은 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아토믹펑크'가 됐다.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원자핵 융합 및 분열 기술을 쓰다 보니, 자연 방사능도 사람들의 일상에 녹아 든 것이다.

'폴아웃' 세계관의 바탕을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다. 21세기 초반 세계는 화석연료 고갈로 위기에 처했다. 이미 2040년대부터 많은 중소국가가 파산해 다른 나라에 병합되거나 와해됐고, 강대국은 얼마 남지 않은 자원을 서로 독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유럽은 2052년 석유를 빼앗기 위해 단합하여 중동을 침략했다. 중동 또한 이에 맞서기 위해 여러 국가가 연합해 8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으며, 그 결과 유럽과 중동은 전쟁이 끝난 후 모두 약소국들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원고갈로 빚어진 위기 속에, 세계 최강대국이던 미국은 석유를 대체할 차세대 에너지를 황급히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내린 답은 원자력이었다. 아직 원자력을 안정된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상황이 촉박했기에 불안정한 기술이나마 원자력을 동력원으로 삼는 기술을 개발하도록 국가 차원에서 나선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금방 성과를 거두어 미국은 2050년대에 이미 괄목할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 '폴아웃 4' 메인 퀘스트 중 등장한 미국 핵융합 에너지 기업 '매스 퓨전'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미국 원자력 기술은 군대와 민간 양쪽에서 사용됐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원자력 기술 도입 과정에서 대중이 방사능까지 일상에 포용했다는 것이다. '위험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 조심해 사용하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맛있다는 이유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넣은 콜라를 마시는 수준이다. 군사나 산업 방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의식주에까지 방사능을 도입한 것은 정말 정신 나갔다고 밖에 볼 수 없지만, 어쨌거나 '폴아웃' 세계의 핵전쟁 이전 미국인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다.

다만, 이 시기 만들어진 기술 중 안정화된 것은 몹시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된 상태에서 증명된 이론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개발된 기술이 아니라, 전세계가 자원고갈과 전쟁으로 혼란한 시대에 급히 고안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폴아웃'에 등장하는 기술들은 옛날 사람들이 상상한 미래 상상도처럼 조금 황당한 면이 있다. 에너지 무기 등 실제보다 뛰어난 기술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트랜지스터나 고속 인터넷 통신망 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폴아웃'의 상징적 아이템 '핍보이'가 개인용 고성능 디지털 단말기임에도 불구하고 진공관으로 작동하는 이유 또한 트랜지스터가 없기 때문이다.


▲ '폴아웃 4' 공식 홍보영상에 등장한 '핍보이' (사진출처: 베데스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그러나 안타깝게도 '폴아웃' 원자력 기술은 결코 안정화된 수준에 도달하지도, 화석연료를 대체하지도 못했다. 2066년 중국이 천연자원이 아직 풍부하게 남아있던 알래스카를 침략했고, 미국이 반격에 나서며 거대한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1년 동안 지속된 이 전쟁으로 미국과 중국은 2077년 수백 발의 전략 핵무기 사용으로 이어지며 전세계 인류 문명을 파괴시켰다. 이로 인해 아직 완숙한 상태에 이르지 못했던 원자력 기술 또한 발전이 중단되고 만 것이다.

이처럼 '폴아웃'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실제 역사와 크게 달라진, 반쪽짜리 '아토믹펑크'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이 세계관은 실제로 있을 법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한 황당함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방사능 콜라 한 잔 하실래요?" 일상에서 즐기는 방사능
 
▲ 체렌코프 현상으로 위험해 보이는 빛을 발하는 '누카 콜라 퀀텀'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폴아웃' 세계관의 미국은 핵전쟁이 발발하기 전 화석연료 대신 불안정한 원자력 기술을 사회 전반에서 폭넓게 사용했으며, 방사능을 일상에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사능 라이프가 게임 속에서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을까?

'폴아웃'에서 전쟁 전 미국이 얼마나 방사능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누카 콜라'다. '누카 콜라'는 '폴아웃'의 상징과 같은 아이템으로, 모든 시리즈에서 빠짐없이 나온 음료다. 설정상 이 음료는 처음 개발됐을 때만 해도 보통의 탄산음료였다. 그러나 이후 방사성 동위원소를 일정비율 함유시키면 특이하고 중독적인 맛이 난다는 것이 발견되고, 음료에 조미료로 방사능을 포함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로는 '뢴트겐 럼'이나 '럼 앤 누카' 등 방사능 주류도 인기를 끌었다.

'누카 콜라'는 방사능 함유 이후 미국의 가장 인기 있는 음료가 된다. '누카 콜라' 제조사는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규모를 키우며 다른 음료 제조사를 하나씩 흡수합병하고, 2060년대에는 방사능 음료 전성시대를 구가한다. 심지어 2050년에는 '누카 콜라'를 테마로 한 놀이공원 '누카 월드'를 개장하여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이 놀이동산은 방사능을 띈 음료를 사방에 분무기로 뿌리는가 하면, 아예 방사능 함량이 높은 음료 '누카 콜라 퀀텀'의 강이 흐른다.


▲ '폴아웃 2'에 등장한 '하이웨이맨'은 마이크로 핵분열 전지를 모야 끼워야 움직인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전쟁 전 방사능은 기호식품은 물론 실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됐다. 핵전쟁 일부 차량은 석유연료 대신 작은 핵분열 전지를 사용했다. '폴아웃 2'에 등장한 '하이웨이맨'도 이러한 원자력 차량 중 하나인데, 이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차량용 핵분열 연료 전지를 사용해야 한다. 또 '폴아웃 4'에 등장한 '웨이크마스터 알람 시계', 보드게임 '블라스트 래디우스' 등도 분해 해보면 방사선을 방출하는 핵융합 물질이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군용으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기본적인 에너지 무기에 사용되는 탄약만 해도 초소형 핵융합 전지다. 여기에 파워 아머나 경비용 로봇 등에 사용되는 동력원도 핵융합 코어로, 실제로 이것을 빼서 폭발시키면 핵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상술한 '누카 콜라 퀀텀'을 무기화시킨 '누카 퀀텀 수류탄' 등 개인용 핵무기도 존재한다. 음료수로 무기를 만드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폴아웃 4' DLC '누카 월드' 내용에 따르면 '프로젝트 코발트'라는 정부 제휴 프로젝트로 방사능 음료의 무기화가 추진된 바 있다.


▲ 왜 굳이 콜라로 방사능 무기를 만드는지는 묻지 말자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이처럼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어있다 보니 전쟁 이전 미국인들은 대부분 항-방사능 약품을 달고 살아야 했다. '폴아웃'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방사능 오염 치료제인 '라드어웨이'와 방사능 저항 약품 '라드-X'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에서 이 두 약품은 여기저기에서 수십 개씩 쉽게 구할 수 있는데, 그만큼 사회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됐던 셈이다. 이는 전쟁 전에도 미국인들의 방사능 오염이 일상적이었음을 반증해주는 부분이다.

게임 메뉴 '핍보이'에서 방사능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설정상 정말 존재하는 기능이다. '핍보이'는 본래 개인용 디지털 단말기로, 착용자의 건강상태 검사기능이 탑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 건강 검사기능에 일상에서 쌓인 방사능 오염을 직접 확인하고 제때 약품을 쓸 수 있도록 방사능 오염 수치를 진단해주는 것이다. 편의를 위한 메타게임적 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세계관에도 반영된 설정인 셈이다.

이렇듯 전쟁 전 미국인들은 원자력과 방사능에 거부감이 적었던 것은 물론, 간식과 놀이문화에 받아들일 정도로 방사능 애호가였다. 물론 방사능이 인간에게 위험하다는 점은 당시에도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 위험성을 충분히 통제하며 일상에 유용하게 쓸 수 있으리라고 보았다. 이처럼 방사능은 핵전쟁 전 '폴아웃' 세계관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물론 이러한 물건들은 전쟁 후에도 세상 곳곳에 남았고, 게임 중 플레이어가 발굴해 유용하게 사용하게 된다. 비록, 약간의 방사능 오염은 감수해야겠지만 말이다.

핵전쟁으로 파괴된 세상, 방사능 오염에 적응하는 사람들

게임은 2077년 발발한 핵전쟁이 지구를 불길과 방사능으로 휩쓴 이후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지구상 도시 대부분은 핵무기로 파괴됐고,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어진 낙진과 피폭으로 오염돼 죽어갔다. 오직 지하 대피소 '볼트'로 피신한 사람과, 핵전쟁 이후의 방사능 오염과 혼란 속에서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했던 극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상 생존자 중 일부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끔찍한 돌연변이를 겪어야 했다.

'폴아웃'은 이처럼 핵무기로 파괴되고 방사능에 찌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시대가 이렇다 보니 이 세계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방사능에 대한 자기 생각이 있다. 일부는 방사능에 찌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방사능에 오염된 돌연변이가 되는가 하면, 다른 일부는 적극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된 모든 것을 파괴하고자 하기도 한다. 역대 '폴아웃' 시리즈는 대부분 이처럼 방사능에 오염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주제로 다루었다.


▲ 몸은 녹고 정신도 맛이 갔지만, 여전히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는 의사 '마스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우선, '폴아웃'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은 방사능에 찌든 세계에 인류를 적응시키기 위해 '강제 진화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악당, '마스터'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본래 '마스터'는 '볼트'에서 태어나 자란 의사였다. 그러나 모종의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추방된 그는 황무지를 떠돌던 중, 사고로 전쟁 전 군사기지에서 연구 중이던 '강제 진화 바이러스' 탱크에 빠진다. 이 사건으로 그는 신체 대부분이 녹아버리지만, 대신 높은 지능과 초능력을 지닌 괴물이 된다.

그런데 괴물이 된 후로도 인류의 미래를 위하는 의사정신은 어디 안 간 모양인지, '마스터'는 몹시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강제 진화 바이러스'에 적당히 노출된 인간은 '마스터'처럼 되는 대신, 강한 힘과 방사능 내성을 지닌 육신의 '슈퍼 뮤턴트'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스터'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강제로 전인류를 '슈퍼 뮤턴트'로 만들고, 모두가 이 척박한 오염된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사명감을 품는다. 이후 '마스터'는 정말로 인간을 대량으로 납치해서 '슈퍼 뮤턴트' 군단을 조직한다. 물론 이러한 음모는 결과적으로 플레이어인 주인공에 의해 좌절되지만, 그가 남긴 '슈퍼 뮤턴트' 군단은 계속 잔존해 후속작에도 자주 등장하게 된다.


▲ 원자핵님의 뜻을 이해하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칠드런 오브 아톰'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마스터'가 '강제 진화 바이러스를 통한 인류의 진화'라는 과학적인 목표를 지향했던 반면, 조금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방사능을 받아들인 이들도 있다. 바로 '칠드런 오브 아톰'이다. '폴아웃 3'에 처음 등장한 '칠드런 오브 아톰'은 원자력을 신으로 숭배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원자핵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신성한 존재며, 방사선은 원자핵이 인간에게 내리는 축복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칠드런 오브 아톰' 신자들은 방사능 오염물질을 늘 가까이 두고 산다. 이처럼 '칠드런 오브 아톰'은 방사능 오염으로 시들어가면서도 이를 축복 받는 상태로 여기는 등, 조금 황당하고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는 조직이다.

'칠드런 오브 아톰' 중에서도 가장 맛이 간 신자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짓을 벌이기도 한다. 핵폭탄이 터진 폭심지를 성지라고 부르며 아무 보호장비도 착용하지 않고 직접 '순례'하는 것이다. '폴아웃 4'에는 이처럼 폭심지를 찾은 신앙심 깊은 신자들이 등장하는데, 아예 방사능 오염지대나 정박한 핵잠수함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열성신자는 아예 자신을 방사능에 절여서 괴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렇게 괴물이 된 신자는 방사능으로 뇌가 녹아 이성이 없는 상태에도 같은 '칠드런 오브 아톰'은 알아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 내에서도 일부 사람들은 '칠드런 오브 아톰'이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정말로 방사능의 권능을 받아들여 초능력을 얻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한다.


▲ 방사능에 오염된 인간은 못 견디겠다는 집단 '엔클레이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다만, 반대로 조금의 방사능 오염도 용납하지 못하는 순수주의자도 있기는 하다. '폴아웃 2'와 '폴아웃 3' 주요 악역으로 등장하는 집단 '엔클레이브'가 그 대표다. '엔클레이브'는 핵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해상 오일리그로 피신했던 미국 정부의 후예로, 다시 한 번 북미를 장악하고 제대로 된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 목표인 조직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엔클레이브'가 나름대로 비전 있는 조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 이들도 제정신은 아니다. 이들은 국가 재건과 함께 인류의 순수성을 되찾고자 하며, 이를 위해서 조금이라도 바이러스와 방사능에 오염된 인간은 모조리 멸절시키고자 하기 때문다.

'엔클레이브'가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을 쓸어버리고자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기간 오염에 노출된 인간의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켰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임 상에서도 이들은 깨끗하고 건강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미명 하에, 핵전쟁 후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물체를 제거할 작전에 나선다. '폴아웃 2'와 '폴아웃 3'은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유전자만 남기고 나머지 인간은 멸종시키겠다는 '엔클레이브'에 맞서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방사능 오염, 어느 게임보다 여러 측면에서 다룬 '폴아웃'


▲ 물론 핵무기와 피폭의 위험성도 다루어지기는 한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물론 '폴아웃'은 기본적으로는 핵전쟁, 낙진, 피폭, 방사능 오염 등을 소재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의외로 '폴아웃'은 방사능 오염을 꼭 무섭고 부정적으로만 묘사하지는 않다. 게임 내러티브로 방사능 오염이 좋다 나쁘다 정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 여러 인물들이 방사능 오염에 대해 내리는 주관적인 판단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흥미롭게 묘사해준다. 그렇기에 '폴아웃' 스토리는 늘 생동감 넘치고 깊이가 느껴진다.

앞서 언급한 '마스터'는 전세계를 뒤덮은 방사능 오염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간주하고, 대신 인류를 수정하겠다는 계획을 품었다. 반면에 '칠드런 오브 아톰'은 원자핵을 신으로 숭배하는 등,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서운 것을 신성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또한 전쟁 이전 미국인들처럼 맛있다는 이유로 '누카 콜라'를 들이켜대는 사람도 여럿 등장하는데, 이 대책 없는 유쾌함 또한 보고 있노라면 묘한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준다.

위에서 언급한 방사능 이야기가 '폴아웃' 세계관의 전부인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많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가 방사능 오염을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만 묘사하는 것과 달리, '폴아웃'은 방사능 오염을 다양하고 기발한 여러 관점에서 흥미롭게 다루어냈다. 물론 때로는 세계를 파괴한 무시무시한 힘이지만, 어떤 때는 에너지 위기에서 인류를 구원할 힘이며, 아예 개그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이처럼 '방사능'이라는 한 가지 소재를 다방면으로 재미있게 다룬 것은 분명 '폴아웃' 세계관만이 가진 고유한 강점인 셈이다.
이새벽
게임메카 취재팀 기자 이새벽입니다. 게임 배경에 깔린 스토리와 설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습니다. 단지 잠깐 즐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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