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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zip] 실물 보드게임 규칙도 개성 있다면 저작권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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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사 간 저작권 관련 법정분쟁이 부쩍 늘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최근 들어 국내 게임업계에서 저작권 관련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4월에는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와 엑스엘게임즈를 상대로 ‘아키에이지 워’와 관련하여 저작권 침해 및 부정경쟁행위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고, 지난 7월에는 넥슨에서 ‘다크 앤 다커’의 개발사 아이언메이스를 상대로 낸 영업비밀 및 저작권 침해금지 등 가처분 신청의 마지막 심문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넥슨에서 출시한 ‘데이브 더 다이브’가 인기를 끌자 이와 유사한 짝퉁 게임들이 구글플레이 등 앱마켓에 우후죽순처럼 등록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죠.

이러한 저작권 침해 문제는 깊게 파고들면 상당히 복잡한 주제이지만, 이번에는 게임 관련 저작권 침해 문제와 관련하여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판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게임을 완전히 복제한 ‘불법 복제’, 두 번째는 위에서 예시로 든 것처럼 특정 아이디어나 기타 구성요소를 베껴서 제작한 ‘표절’로 나누어 각각의 경우 어떤 과정을 거쳐 판결이 내려지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1. 게임을 완전히 복제한 ‘불법 복제’의 경우

먼저, 게임을 완전히 복제한 불법 복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게임사가 타 회사의 게임을 불법으로 완전히 베껴서 출시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주로 P2P나 웹하드 사이트 등에 게임을 복제하여 업로드하는 방식, 개인 홈페이지 등에 게임을 복제하여 게시하는 방식, 복제한 게임을 토대로 사설 서버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방식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현행 저작권 법 제136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누구든지 게임 관련 사업자가 제공 또는 승인하지 아니한 게임을 제작, 배급, 제공 또는 알선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됩니다. 즉, 위에서 언급한 복제 행위는 모두 위 저작권법 조항에 위반되는 행위로,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민사적으로도 게임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하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을 살펴보며, 불법 복제에 대해 법원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P2P 혹은 웹하드에 게임을 복제하여 업로드한 경우 : 수원지방법원 2018고단2700 판결

첫 번째로 살펴볼 사건은, 웹하드를 이용하는 피고인이 본인이 웹하드 등에서 다운받은 게임을 권한 없이 그대로 웹하드에 다시 업로드한 사건입니다. 특히 이 피고인은 해당 웹하드 정책에 따라 본인이 올린 게임을 다른 사람이 다운받을 때마다 적립되는 포인트를 환전해 경제적인 이득을 보기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피고인은 게임 총 209개를 웹하드에 무단으로 업로드했고, 적립된 포인트 620만 9,995점을 환전해 338만 6,190원을 취득했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에 징역 6개월에, 피고인이 진지하게 반성을 하고 있고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습니다.

▲ 웹하드에 무단으로 게임을 배포한 사건 판결 (자료출처 : 수원지방법원 판결문)

웹하드 사이트에는 누구라도 쉽게 가입이 가능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만큼 게임 뿐 아니라,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등 다양한 저작물이 무단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이 행위들 모두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며, 비슷한 판례 경향을 살펴보면 가벼운 벌금형이 아니라 징역형이 많이 선고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법원이 이러한 유형의 저작권 침해 범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② 개인 홈페이지에 게임을 복제하여 게시한 경우 : 대전지방법원 2015고단2706 판결

다음으로, 살펴볼 사건은 본인 홈페이지 홍보 등을 위해 게임을 무단으로 제공한 경우입니다. 쉽게 말하면, 특정한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서 간단한 플래시게임이나 고전게임 등을 별도 설치 없이 바로 인터넷 창에서 플레이하거나 다운받을 수 있도록 게시한 것이죠.

위 사건에서 피고인 A는 텐가이를 비롯해 총 40여 개 게임을 무단으로 다운받아 본인이 운영하는 모바일 앱 공유사이트에 올렸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에게 일부 피해자와 합의했고, 일부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선처를 구하고 있는 점, 피고인이 다른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해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 홈페이지에서 무단으로 게임을 배포 및 게시한 사건 판결 (자료출처 : 대전지방법원 판결문)

③ 불법 사설 서버를 개설해 운영한 경우 : 대전지방법원 2015고단2706 판결

한편, MMORPG와 같은 온라인게임은 웹하드에 업로드하거나 개인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저작권이 침해될 수 있습니다. 바로 개인이 권한 없이 사설 서버를 개설해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이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은 물론 , 해당 게임사 업무를 방해한 것으로 간주되어 업무방해죄까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본인의 집 컴퓨터를 이용해 특정 온라인게임 사설 서버를 약 6개월 간 운영하며, 운영자 권한으로 아이템을 생성해 사설 서버 이용자들에게 후원금을 받고 건네는 방식으로 총 2,181만 원을 챙겼습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죠.

▲ 무단으로 사설서버를 개설하여 운영한 사건 판결 (자료출처 : 인천지방법원 판결문)

이렇듯, 게임 전체를 복제하는 방식의 불법복제는 현행 저작권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 법원에서는 별도 판단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침해를 당한 게임사 측에서도 민사 재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형사 고소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형사 재판 중에 가해자와 합의할 가능성도 높고,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면 이를 통해 훨씬 수월하게 민사 재판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울러 이러한 불법복제 방식 저작권 침해는 주로 기업체가 아닌 개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작권법 침해를 저지른 피고인 중 상당수가 대학생 혹은 사회 초년생이며, 전과가 없는 초범인 경우가 많은데요, 실제 사건을 진행해보면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는지 몰랐거나 '이 정도로 처벌을 받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P2P 사이트에 자신이 다운받은 게임을 그대로 업로드하거나, 본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혹은 SNS에 하이퍼링크를 게시하는 방법 등으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 사설서버를 운영하는 행위 등은 모두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며 실형이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2. 다른 게임을 표절하여 게임을 제작한 경우

잘잘못이 뚜렷한 불법복제와 달리, 특정 게임사가 다른 업체가 만든 게임을 표절한 경우에는 문제가 훨씬 더 복잡해집니다. 저작권법 위반인지 따져보기 위해서는 '표절'이 존재하는지 여부 즉, 저작권 침해 행위가 존재하는지를 자세히 뜯어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표절 관련 저작권법 위반 재판이 장기간으로 진행되는 이유 역시, 원고와 피고가 제출한 자료를 비교해보며 저작권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처럼, 모든 게임은 앞선 게임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저작권법을 과하게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신작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집니다. 이에 기존에는 표절 시비에 대해 '게임 규칙'은 저작권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관련 판례가 쌓이며 게임 규칙과 관련한 법원 판단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2019년 대법원이 ‘팜히어로 사가 사건'에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게임 규칙은 저작권이 있는 저작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위 판결 이후 게임 규칙이나 표현 방식도 일정한 조건 하에 저작권법 보호 범위 안에 포함되었죠.

이처럼 법원이 표절 게임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쪽으로 판례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데요, 이러한 판례 경향은 국내 게임업계에서 저작권 관련 분쟁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최근 추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작년 4월에 선고된 보드게임 회사 젬블로의 대표작 ’라온‘의 저작권 침해 소송을 소개할까 합니다.

▲ 한글 자음과 모음 타일을 이용한 보드게임 라온 시리즈(사진출처 : 젬블로 공식 홈페이지)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한글 자음과 모음 파일을 조합해 단어를 만드는 ’라온‘이라는 보드게임을 본 적이 있을텐데요. 최근 라온 개발사인 젬블로는 비슷한 방식으로 한글 자음, 모음 타일을 사용하는 보드게임을 판매한 팝콘에듀에 대해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고, 작년 4월 28일 1심에서 승소했습니다.

위 소송에서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에서는 '게임 규칙은 이용자 간 승패나 목적의 성취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므로 그 자체로는 아이디어 영역에 속해 저작권법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다만, 게임 개발사가 자신의 개성과 노하우 등을 활용해 배치한 게임 구성요소들의 유기적인 조합은 창작성을 가질 수 있고, 이러한 구성요소가 실질적으로 유사하다면 저작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피고인 팝콘에듀가 저작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며 원고인 젬블로에게 3,369만 8,462원을 지급할 것을 선고했습니다.

▲ 저작권 침해를 주장한 젬블로의 라온(좌)과 피고 팝콘에듀의 게임(우) 비교 이미지 (자료출처: 한국저작권보호원)

모바일이나 온라인게임과 같은 디지털게임과 마찬가지로 보드게임도 게임 규칙 자체는 아이디어에 불과하여 저작권법 보호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디지털게임에서는 인터페이스, 캐릭터, 게임 시스템을 담은 프로그래밍 소스 등을 통해 다른 게임과 구별되는 개성이 구현될 경우 저작물로 인정되죠. 마찬가지로 보드게임에서는 타일, 모래시계 등을 포함한 컴포넌트를 통해 다른 보드게임과 구별되는 개성이 드러난다면 저작권법 보호대상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만 디지털게임은 인터페이스, 캐릭터 디자인, 프로그래밍 소스 유사성 등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만, 보드게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임 규칙이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기에 저작권법 침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이번 판결은 게임 규칙이 구현된 컴포넌트 등을 통해 저작권법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기존 게임 저작권법 관련 판례에서 한 걸음 진일보한 점이 보입니다.

점차 발전해 나가는 국내 게임관련 저작권 판례 동향

지난 20여년 간 게임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가장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 체감되는 법 분야를 고르라면, 아마 저작권법을 꼽을 것 같습니다. 필자가 학교를 다닐 무렵만 해도 문방구나 학교 근처에서 게임을 CD에 복사해 판매하는 가게도 많았고, 어지간한 게임은 정품으로 구매하는 것보다 P2P 사이트 등을 통해 다운받는 것이 훨씬 쉬운 세상이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각종 웹하드나 사설 서버 등을 통해 게임 관련 저작권 침해가 일어나고 있지만, 근래 이러한 저작권 침해는 엄격하게 처벌되고 있으며, 관련 사건 역시 점차 줄어드는 흐름입니다.

이에 더해, 디지털게임 뿐만 아니라 보드게임에서도 저작권 보호가 조금씩 확대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임 개발자의 핵심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및 환경이 잘 정비되어 앞으로도 더 재밌고 좋은 게임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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