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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zip] 게임사 상대 소송에서 유저 승소가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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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3월 5일 공개된 큐브 잠재능력 확률 및 로직 공지 (사진출처: 메이플스토리 공식 홈페이지)

지난 1월 19일, 수원지방법원에서 눈길을 끄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일명 '메이플스토리 보보보 사건'이라 부르는 게임사와 유저 간 소송인데요, 법원은 넥슨 측이 유저에게 큐브 비용 일부를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넥슨이 상고함에 따라 해당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는데요, 최종 판결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2심에서라도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것 자체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사실 MMORPG를 비롯한 온라인게임에서 게임 서비스 중 발생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금전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에서 유저가 승소한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인 부분만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입니다. 게임사는 유저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유저가 게임사의 잘못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온라인게임에서 구매하는 재화가 게임사 약관을 통해서 규제되는데 이 약관은 게임사에 유리하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이용과 관련해 발생한 문제는 그 금액이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 소송까지 가는 경우 자체가 적습니다.

그렇다면 게임사 상대 소송에서 유저 승소 건은 아예 없는 걸까요? 관련 판례를 살펴보고, 유저 권익 보호를 위해 앞으로 어떠한 점이 더 필요한지를 짚어보려 합니다.

1. 이용제한조치, 즉 '계정정지'와 관련한 소송

먼저, 계정정지를 당한 유저가 게임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가 있습니다. 각 게임사는 보통 약관에 따라 유저가 정책에 위반되는 행위(현금거래 등)을 하면 계정정지 등 각종 제재를 취할 수 있습니다.

계정정지 관련 소송에서 작년 5월 13일에 수원고등법원에서 선고된 2021나18036 판결을 보겠습니다. 넥슨이 서비스하는 어둠의 전설 관련 사건입니다. 지난 2020년 9월경, 어둠의 전설에서는 저가의 아이템과 고가의 아이템을 가방에서 합치면 가격이 낮은 아이템이 높은 아이템으로 변하는 '번들 버그'가 발생했습니다. 원고인 A씨는 이 버그를 4회 이용해 고가의 아이템 M을 9,907개 획득했죠.

넥슨은 A씨 행위가 이용악관 중 '버그를 악용해 게임 내 밸런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에 해당한다며 A씨 계정을 30년 정지했습니다. 이에 A씨는 넥슨을 상대로 계정정지를 해제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넥슨 계정이용정지 기준 (자료출처: 넥슨 공식 홈페이지)

이 소송에서는 유저가 승소했습니다. 1심에서는 "원고는 버그를 이용해 아이템을 획득한 후 이틀 정도 보유하고 있었을 뿐, 게임을 진행했다거나 다른 아이디로 이동시킨 것으로 보이지 않고 아이템 M의 효과와 가격을 고려한다면 원고 행위가 버그를 악용해 게임 밸런스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A씨 계정에 대한 30년 정지를 해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 버그 악용여부에 관한 법원 판단이 담긴 판결문 (자료출처 :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결문)

1심 판결에 대해 넥슨은 항소했으나, 항소심에서도 법원은 유저 손을 들어줬습니다. 2심에서는 A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은 아이템을 30년 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실상 게임에서 퇴출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새 계정을 만들어 접속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기존 레벨과 경험치에 도달하기까지 새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되기 때문에 넥슨은 '이용제한' 기준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죠.

개인적으로, 위 판결문의 문구만 보더라도 원고와 원고 대리인의 절실함과 노력이 잘 전달되는 느낌인데요. 재판부도 이러한 원고 사정을 헤아려 위와 같이 넥슨이 약관을 더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2. 게임 내 오류를 신속하게 조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소송

다음으로 게임 내 스킬 등의 성능이 실제와 차이가 있거나, 게임 시스템 일부가 작동되지 않는 문제를 신속하게 확인 및 수정하지 않은 게임사의 책임을 인정한 사건이 있습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올해 2월 28일 선고된 2018가단234942 판결입니다. 야구게임 컴투스 프로야구 for 매니저(컴프매) 유저들이 서비스사인 컴투스와 개발사인 에이스프로젝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죠.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요약하면 크게 네 가지입니다. 유료 아이템으로 선수 카드를 구매할 때 특정 포지션이 등장하지 않는 점, 게임사의 불공정한 운영, 게임 내 시스템(스킬)과 관련한 잘못된 설명, 게임사에서 안내한 선수단 성능 관련 보너스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중 재판부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 번째 주장과 네 번째 주장은 인정했죠. 먼저 스킬과 관련된 잘못된 설명입니다. 재판부는 "피고(게임사)들은 원고(유저)들을 비롯한 이용자들의 아이템 구매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스킬 간 우열관계에 관하여 잘못된 정보를 2017년 10월 31일 수치화 정보 발표 전까지 제공해왔다. 유저들의 게임 이용 특성이나 아이템 구매 경향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들의 잘못으로 원고들은 실제로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스킬(Q 등)을 가지고 있는데도 이보다 열등한 스킬(P 등)을 우월하다고 오인하여 이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보아야 한다"라며 게임사 측 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 원고들의 손해 및 그 액수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이 담긴 판결문 (자료출처 : 서울남부지방법원 판결문)

이어서 선수단 성능 관련 보너스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피고(게임사)들은 이 사건 게임과 관련한 오류가 발생한 경우 이를 신속하게 처리하여야 하고, 만일 처리가 지연되거나 장기간 걸리면 그 이유와 처리일정을 적절한 방법으로 공지해 이용자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판결문에는 앞서 이야기한 오류 확인 및 수정에 최대 10일이 걸린다는 감정 결과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고는 21일 만에야 이를 완료했고, 지연 사유와 처리일정을 공식카페 등을 통해 공지하지도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로 인해 원고들이 레코드보너스를 기대하고 특정 조합 구성을 위해 아이템 구입비용을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판단했고, 피고들은 채무불이행 책임에 기해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게임사 측 책임이 있으나, 원고들이 입은 손해액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이유로 항목별로 100만 원의 손해액만을 인정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재판부 판단을 해석해보면 원고들이 손해를 구체적으로 입증했다면 이보다 높은 금액이 인정될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지 못했고, 원칙적으로는 원고 청구를 기각해야 하지만 그러면 원고에게 매우 불합리한 결과가 됩니다. 그래서 원고들의 손해액을 100만 원씩만 인정하도록 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 사건 또한, 재판부에서 복잡한 게임 내 스킬의 상관관계 및 스킬 성능에 따른 유저 선호도 등을 잘 파악하고, 무엇보다 게임을 서비스하는 게임사가 '게임 시스템 상 발생한 오류에 대해 의무적으로 대응하여야 하는 시간'에 대해 판시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생각합니다.

3. '보보보 사건'에서 살펴봐야 할 두 가지 쟁점

마지막으로, 확률형 아이템에서 아이템이 나오는 확률을 잘못 고지한 것과 관련된 소송으로, 기사 서두에 소개한 일명 ‘보보보 사건’으로 불리는 수원지방법원에서 2023년 1월 19일 선고된 2021나71106 판결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근래 워낙 이슈가 된 사건이라 사건 발단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계실텐데요. 간단히 살펴보면 메이플스토리에서 장비 아이템에 잠재능력을 최대 3개까지 붙일 수 있는 확률형 아이템 ‘큐브’에서 선호도가 높은 보스 공격시 N% 대미지 증가 옵션이 3번 중복(일명 보보보)으로 등장할 확률은 0%이었다는 점이 뒤늦게 밝혀졌고, 이에 원고가 넥슨에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매매대금 상당액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인 수원지방법원 제4-3 민사부에서는 "이 사건은 게임 이용자들로 하여금 옵션조합의 생성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관념을 갖도록 하고, 나아가 확률형 아이템 거래에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폐단인 일부 이용자들의 사행심리 내지 매몰비용에 대한 집착 등을 유도·자극·방치한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기망행위(사람에게 착오를 일으키는 행위)로 평가된다"라며 원고 청구 중 일부를 인정했습니다.

▲ 게임사의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인정한 판결문(자료출처 : 수원지방법원 판결문)

지금까지 살펴본 국내 판례 중 게임사 행위를 '적극적인 기망행위'로 평가한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재판부에서 게임사 측 실책을 통렬히 지적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법원에 게임 관련 판례가 많이 축적됐고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계속 떠올랐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이 사건은 넥슨 측에서 상고를 제기해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데요. 대법원 판단과 관련해 앞서 이야기한 게임사 기망행위 외에도 중요한 쟁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먼저 이 사건은 원고가 ‘매매대금 반환’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원고가 넥슨으로부터 문제의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한 계약을 취소하고, 아이템 구매액 반환을 청구한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만 살펴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메이플스토리처럼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에서 유료 아이템 대부분은 현금으로 직접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현금으로 구매한 유료 재화인 넥슨캐시를 이용해 산다는 점입니다. 즉 단순히 원고가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한 계약을 취소하면, 게임사로부터 현금이 아닌 넥슨캐시를 돌려받아야 하는 셈입니다. 엄격하게 따지자면 말이죠.

▲ 넥슨 게임 유료 아이템은 현금으로 충전한 넥슨캐시로 구매한다 (자료출처: 넥슨 공식 홈페이지)

위와 같은 쟁점이 2심 소송 중 충분히 주장됐고, 법원에서 이 사정을 고려해 '넥슨은 원고에게 현금을 지급하라'라고 판결했다면 큰 문제는 아닙니다. 반면 그렇지 않다면 이 부분으로 인해 대법원에서 판단이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소송기록을 확인해봐야 알 수 있겠으나, ‘넥슨은 원고에게 넥슨캐시를 지급하라’라는 판단 혹은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현금 지급을 구하는 원고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매매대금 반환 소송 특성상 구매자인 원고는 계약이 취소되면 넥슨에 구매한 아이템을 돌려줘야 합니다. 넥슨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원고가 구매한 아이템 중 취소된 매매계약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서 반환하지 않으면 매매대금을 반환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데, 이를 법률용어로는 '동시이행의 항변'이라고 합니다.

물론, 넥슨과 같은 대형 게임사가 개인인 원고를 상대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할 여지는 많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넥슨이 위와 같이 주장한다면 원고는 구매한 아이템 중 취소한 계약에 해당하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 넥슨에 반환할 것인지, 반환이 불가능하다면 재판부에서는 그 가액산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추가적인 분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문제점 때문에 보통 게임 아이템 환불 사건에서는 매매대금 반환 청구보다 게임사에 손해배상을 요구하거나 부당이득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원고가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직접 1심을 진행했기에 통상과 달리 매매대금 반환으로 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덕분에 일반적인 게임 소송과 다른 법원 판단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는 사건입니다.

4. 디지털콘텐츠계약법 도입을 기다리며

이번에 소개해드린 사건들은 모두 2022년 이후 선고된 최신 판례입니다. 최신 판례를 알려드리는 것이 독자 분들에게 더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는 유저가 게임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판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즉, 최신 판례를 보면 대한민국 법원에서 게임 관련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고 게임 유저 권리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는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실제로 이번에 유저가 일부 승소한 확률형 아이템 확률 오류, 버그 방치 등에 대해 기존에는 유저 패소가 많았고, 미성년자 결제나 해킹 피해로 인한 환불소송 역시 그 사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추가적으로, 현재 법무부에서는 민법에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을 도입하려 합니다. 디지털콘텐츠에는 게임도 포함되는데요, 관련 개정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 디지털콘텐츠계약법을 도입하는 민법 개정안 입법예고 (자료출처: 법무부 공식 홈페이지)

우선 게임 제공자는 이용자에게 합리적으로 기대되는 기능과 품질을 갖춘 제품을 제공하고, 계약기간 동안 이를 유지하기 위한 업데이트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이어서 디지털콘텐츠계약에 적용될 하자담보책임을 규정하며, 여기에는 하자시정청구권, 대금감액청구권, 계약해제·해지청구권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 존속기간을 지금 민법에서 규정하는 1년보다 더 긴 2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디지털 제품은 유저를 더 두텁게 보호할 필요성이 있고, 해외 입법 등을 고려 해 기간을 더 길게 잡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디지털콘텐츠 특징을 고려해 제공자가 콘텐츠나 서비스 내용을 합리적인 범위에서 변경하여 제공할 수 있는 '변경권'을 신설합니다. 다만 계약 시 변경 가능성을 유보(일정한 권리나 의무 따위를 뒷날로 미루어 두거나 보존하는 일)하고, 변경할 때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며, 변경 전 상당 기간 내에 유저에게 그 이유와 내용을 통지해야 합니다. 만약 제공자가 변경권을 사용해 이익이 침해됐다면, 이용자는 해지권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민법 개정안에는 게임 유저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관련 법률이 잘 정비되어 게임 유저 권리를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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