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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들이 놓친 게임 속 '맹점', AI가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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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머들이 흔히 사용하는 ‘한 판만 해야지’는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정말 한 판만 하고 그만두겠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실상 만족스러운 한 판을 하고 말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서 만족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내가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냈을 때를 의미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록을 달성했을 때일 수도 있다. 혹은 정말 특이하게 다른 플레이어를 괴롭히는 것에서 만족을 느낄 수도 있다. 이렇게 한 판의 게임에서 유저가 만족을 느끼는 부분은 판이하다.

게이머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요소에 대한 탐구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그 동안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게임성, 그래픽, 스토리 등의 핵심 게임 요소만이 유저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넥슨 강대현 부사장은 그것에 의문을 던졌다. 강 부사장은 이전의 게임 문법만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현시대 유저들에게 색다른 만족감을 제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AI'와 '빅데이터'다. 

AI의 머신 러닝이 (사진: 게임메카 촬영)
▲ 강대현 넥슨코리아 부사장이 '넥슨이 바라보는 데이터와 AI'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동안 놓치고 있던 게임계의 맹점(Blind Spot)

게임의 진짜 즐거움은 어디서 발생할까? 넥슨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게임 만족도는 게임을 구성하는 정적 요소보다 그 날 게임 속에서 겪은 경험에 따라서 더 크게 좌지우지된다. 게임의 시나리오나 그래픽, 사운드, 디자인보다도 어떤 유저를 만나고 어떤 경기를 치르고, 어떤 사건을 겪는지가 게임의 즐거움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강 부사장은 이처럼 즐거움과 관련된 더 큰 요소들을 게임 업계가 방치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그는 이런 부분들을 게임 산업의 맹점이라고 표현했다. 전문가끼리 모여서 게임을 제작하다 보니 게임성, 그래픽, 스토리와 같은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에만 시야가 집중됐다는 것이다. 정작 즐거움을 극대화 시키는 요소는 외적인 경험의 총체인데 말이다. 강 부사장은 이런 상황이 심화될 경우 장기적으로 시장 자체가 축소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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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성에 젖어 정작 게임의 중요한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진: 게임메카 촬영)

강 부사장은 이 맹점을 해결하는 데 인공지능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거라 주장했다. AI가 지닌 데이터 분석능력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시선이 게임계의 맹점을 발견하기 좋은 도구라는 것이다. 실제로 AI는 유저나 개발자들이 사소하다고 여기는 부분에서 종종 큰 의미를 발견하기도 한다.

서버 선택을 예로 들어보자. 대다수 게임은 서버를 여러 개로 분리해 놓는다. 그러다 보면 서버 별로 특정한 규칙이 생기기도 한다. 어떤 서버에선 특정 무기나 맵으로만 플레이하기도 하고, 어떤 서버는 싸움 없이 대화만 나눠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고수들만 모이는 서버도 존재한다. 만약 초보 플레이어가 이런 특이점을 모른 채 무작위로 서버를 배치받는다면 게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다른 게임을 찾게 될 확률이 다분하다. 

여기서 AI의 머신 러닝을 사용하면 각 서버의 특성을 인공지능 스스로 파악하고, 유저의 성향에 맞는 서버를 배치해 준다. 특히 MMORPG에서 이를 활용할 경우, 던전의 적정 인구밀도를 별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유지할 수 있게 되며, 마을 내부의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할 수도 있다. 죽을 확률이 높은 유저라면 타 유저를 잘 살려주는 분위기의 서버로 배치해 게임 플레이 타임을 의도적으로 늘리는 것 또한 가능하다.

채널선택 머신러닝을 이용하면 MMORPG의 많은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채널선택 머신러닝을 이용하면 MMORPG의 많은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AI는 게임 디자인 상의 오류를 발견하는 데도 유용하다. 특히 MMORPG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정 직업 초기 이탈 증상을 예방할 수 있다. 세밀하지 못한 게임 디자인 때문에 특정 직업만 레벨 제한 없는 퀘스트를 일찍 접하게 되면서 게임의 난이도가 높다고 느끼는 경우가 MMORPG에선 종종 발생한다. 분명 불합리한 부분이지만 유저에겐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될 수 있어 수정되지 않고 방치되기 십상이다. 이럴 때 AI의 데이터 분석 능력이 빛을 발한다.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AI의 데이터 분석은 이를 사소하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전달하는 AI

유저의 실력을 상승시키는 것에도 AI가 사용될 수 있다. 유저의 실력은 꾸준히 상승하는 편이다. 굉장히 빠른 시간 동안 실력의 임계점에 오르고 슬럼프를 겪으면서 천천히 상승한다. 문제는 실력 상승이 정체되는 슬럼프 구간이다. 보통 실력이 정체되는 구간과 유저가 이탈하는 구간은 일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슬럼프 없이 실력이 계속 향상되는 유저도 분명히 있다. 보통 이런 경우는 게임을 꾸준히 연구하며 공략을 탐구하거나, 친구를 통해 게임 실력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유저의 게임 실력은 대체로 상승하지만 종종 슬럼프에 부딛힌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유저의 게임 실력은 대체로 상승하지만 종종 슬럼프에 부딛힌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그렇다면 유저 게임 실력에 대한 피드백을 게임이 직접 제공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저의 실력도 쉽게 상승하고, 그에 따라 재방문율도 높아진다. 강 부사장은 이와 같은 피드백을 AI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시간으로 유저 다수의 플레이를 관전하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제공, 유저 이탈률을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유저의 성향에 맞춘 플레이 환경을 제공할 수도 있다. 긴박감 있는 플레이를 즐기는 적극적인 유저에게는 계속해서 일정 승률을 유지할 수 있게 매칭을 조정해주고, 상대방의 플레이를 보는 것을 즐기거나 개인 방송을 시청하며 채팅을 치는 것을 좋아하는 느슨한 유저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선물하는 것이 가능하다.

AI를 활용하면 저관여 플레이어에게도 높은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 AI를 활용하면 저관여 플레이어에게도 높은 만족감을 제공할 수 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게임코어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이후로, 모든 업계 트렌드의 중심은 AI다. 게임업계도 마찬가지다. AI의 머신 러닝과 빅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앞으로의 산업을 주도할 것이다. 강 부사장은 “AI를 통해 게임코어를 재정의 해야 한다. 미래의 게임은 우리의 로망과는 다를지도 모른다. 시야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AI는 게임 업계의 시야를 넓히는 데 있어 편견 없는 정보를 제공하고, 나아가 게임계의 맹점을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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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기자 기사 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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