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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의 슈퍼 마리오 킬러 캐릭터, '소닉' 탄생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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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을 진행한 오시마 나오토 (중앙 좌), 야스하라 히로카즈 (중앙 우)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오늘날 ‘소닉’은 누구나 알 만한 유명 캐릭터가 됐지만, 사실 곰곰이 뜯어보면 이해 못할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고슴도치인데 빠르고, 파란색이고, 자연보호의 수호자라니 말이다. ‘소닉’은 그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점이 베일에 싸인 불가사의한 캐릭터다.

그런데 올해 GDC에 ‘소닉’의 비밀을 풀어줄 독특한 강연이 하나 등장했다. ‘소닉’을 기획한 오시마 나오토와 야스하라 히로카즈가 ‘고전게임 포스트모템: 소닉 더 헤지혹’을 준비한 것이다. 게다가 이 강연에서는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드러났으니, 사실 ‘소닉’은 세가가 닌텐도 대표 캐릭터 ‘마리오’를 눌러버리기 위해 만든 ‘킬러’ 캐릭터라는 것이다.


▲ '고전게임 포스트모템: 소닉 더 헤지혹' 강연 목차 (사진: 게임메카 촬영)

오시마가 전한 바에 따르면, 사실 세가는 8비트 게임을 만들던 시절부터 캐릭터 사업에 욕심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세가가 만든 캐릭터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세가 캐릭터 자체의 한계도 있었지만, 당시 캐릭터 시장의 패권을 장악한 막강한 존재가 버티고 있던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바로 닌텐도의 ‘마리오’였다.

오시마는 이 시기부터 세가가 ‘마리오’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갈았다 회고했다. 그러던 중 시간은 흘러 16비트 게임의 시대가 도래했고, 세가는 이를 반격의 기회로 보았다. 게임업계에 큰 변동이 생긴 틈을 타 ‘마리오’를 끌어내릴 결전병기를 만들자는 계획이었다.


▲ 16비트 시대를 맞아 '마리오'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제작된 '소닉' (사진: 게임메카 촬영)

하지만 당시 처음부터 푸른 고슴도치를 만들자는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초기에 세가가 세운 전제는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16비트 게임의 장점인 빠르고 역동적인 속도감을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여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세가와 동일시될 수 있는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중 후자는 다소 모호했으므로, 초기에 집중한 것은 속도감 느껴지는 캐릭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에 오시마는 빠르게 회전하며 튀어나가 적을 들이받는 캐릭터를 구상했다. 그리고 이 속성에 맞는 몇 가지 모티프를 찾았는데, 고슴도치, 아르마딜로, 호저, 개, 수염 난 노인 등이 있었다. 이 중 마지막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기는 하지만, 털투성이 노인이 몸을 말고 회전하며 구르는 것이 원안이었다고 한다.


▲ '소닉'이 수염 난 구르는 노인이 될 수도 있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어쨌거나 이 캐릭터는 세가가 캐릭터 사업 활로를 뚫기 위해 준비한 비밀무기였다. 아무렇게나 만든다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에 오시마는 미국 출장을 갔을 때 뉴욕 센트럴 파크로 가 직접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애초에 ‘소닉’은 일본 내수용이 아닌 북미 시장까지 노린 캐릭터였고, 북미 소비자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결과 1위가 고슴도치, 2위가 털보 아저씨, 3위가 개였던 것이다. 그렇게 ‘소닉’은 고슴도치가 됐다.

캐릭터 디자인에도 사연이 있다. 당시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했던 오시마는 좋은 캐릭터는 쉽게 따라 그릴 수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었다. 특히 아이들이 쉽게 그릴 수 있어야 널리 재생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러한 철학은 실제로 미키 마우스 등 당대 유명 캐릭터들에도 적용된 특징이었다. 오시마는 ‘소닉’도 동그라미와 세모만으로 그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기획했다.


▲ 대중화를 노리고 치밀하게 기획된 '소닉' 외모 (사진: 게임메카 촬영)

또한 ‘소닉’은 세가의 정수를 반영한 캐릭터여야 했다. ‘소닉’은 세가 캐릭터 사업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혼심을 다해 만들었다. 오시마에 따르면 당시 세가는 ‘소닉’을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기업 자체와 동일시될 수 있는 상징이 되기를 바랐다. 소닉이 푸른 고슴도치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세가 로고가 푸른색이므로, 캐릭터도 세가를 연상시키도록 푸른색이 됐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사항이 중요하게 탐구됐다. ‘쿨’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토의도 있었다. ‘마리오’에게 없는 ‘쿨’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소닉’이 정말 멋진 캐릭터로 느껴지기 위해서는 외양뿐만 아니라 성격도 매우 중요했다. 타인의 명령이나 감정 없는 이성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되고, 자기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해내며, 자기 자신이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싸울 줄 알아야 했다. 세가는 이러한 속성이 캐릭터의 깊이를 만들어준다고 보았다.


▲ '소닉'이 파란색인 이유는 세가 로고가 파란색이기 때문이라고 (사진: 게임메카 촬영)

동물친구들을 구하는 ‘소닉’의 행보도 이러한 캐릭터의 깊이를 위해 만들어진 설정이다. 1990년대 초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였다. 이에 ‘소닉’도 무분별한 개발과 과학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싸이코 과학자 ‘닥터 에그맨’에 맞서 자연을 지키는 투사가 된 것이다. 여기서 ‘닥터 에그맨’은 초기 캐릭터 모티프 중 하나였던 털보 노인을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세가는 ‘소닉’의 속도와 자유를 상징할 여러 부수적인 요소를 제작했다. 그 중 하나가 유명한 ‘소닉’ 문장이다. 야스하라가 비행기 노즈아트에서 착안한 이 디자인은 ‘소닉’을 비행기가 지닌 이미지와 엮어주었고, 자연 비행이 갖는 자유로운 이미지와 연결되게 해주었다. 실제 게임이 시작될 때 비행기가 등장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 당대 분위기에 따라 자연보호 철학이 반영된 '소닉' (사진: 게임메카 촬영)

비행기와 ‘소닉’을 연결시키기 위한 시도는 다방면으로 진행됐다. 그 중 독특한 한 가지가 ‘소닉’ 가상역사다. 내용인즉 누구도 도달해본 적 없는 속도를 추구하는 비행기 조종사가 있었는데, 그는 늘 머리가 일어서 있어 ‘헤지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에 조종사는 자기 비행기 노즈아트로 ‘소닉’을 새겼는데, 훗날 그와 결혼한 동화작가 아내가 ‘소닉 더 헤지혹’ 이야기를 썼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허구지만, 어쨌거나 ‘소닉’ 이미지를 만드는 데는 크게 일조했다.

게임 자체도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8비트에서는 보여줄 수 없던 속도를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마리오’보다 빠르게 진행되는 게임을 목표로 삼았다. 이에 야스하라가 제작한 ‘소닉’ 스테이지는 모두 놀이동산처럼 역동적으로 달릴 수 있게 고안됐다. 완벽한 클리어 보다는 속도감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던 셈이다.


▲ '소닉'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가짜 사연까지 만들었다 (사진: 게임메카 촬영)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소닉’은 1991년 북미 크리스마스 세일 시즌에 ‘슈퍼 마리오 월드’와 정면으로 맞붙게 됐다. 당시 ‘슈퍼 마리오 월드’를 포함한 SNES 번들은 199달러에 판매됐고, ‘소닉’ 동봉의 제네시스 번들은 149달러에 판매됐다. ‘소닉’ 번들 가격이 더 싸기는 했지만, 제네시스는 SNES에 비해 노후한 콘솔이었으므로 우위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소닉’의 승리였다. 당시 북미 16비트 콘솔 시장 점유율은 세가가 57.8%로, 39.7%였던 닌텐도를 크게 앞질렀다. 당시 비즈니스 신문들은 세가의 승리 이유 중 하나로 ‘소닉’을 꼽았다. 닌텐도를 이기겠다는 집념으로 만든 ‘소닉’이 성과를 거둔 셈이었다.


▲ 1991년 북미 크리스마스 세일 시즌에 '마리오'를 누른 '소닉' (사진: 게임메카)

오시마와 야스하라는 '소닉 탄생과 성공은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설명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팀을 이루어 작업하라는 것, 그리고 ‘이길 수 없어 보이는 상대라도 대적할 방법은 늘 있다’는 것이다. 세가가 만든 비밀병기 ‘소닉’이 결국 ‘마리오’를 꺾은 '킹슬레이어'가 됐던 것처럼 말이다.


▲ 이길 수 없어 보이는 '마리오' 같은 상대라도 대적할 방법은 있다는 교훈을 준 '소닉' (사진: 게임메카 촬영) 


▲ '소닉' 레벨 디자이너 야스하라가 즉석으로 그린 캐릭터들 (사진: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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