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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메카] 소환하는 병사가 가족이라니, 나의 1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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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죠.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인연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굳이 철학적으로 들어가지 않고, 내 주변 관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관계!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부터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연인까지, 인지의 범위 내에서 또는 밖에서 하루에도 수 많은 관계들을 맺게 되죠. 그런데 이런 관계가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이 생판 남이 되거나, 자상했던 엄마 아빠가 나를 증오하게 된다면!!! 그것도 하루 아침에 갑자기... 이런 관계의 단절을 판타지를 통해 심도 있게 풀어낸 미소녀게임이 '나의 1인 전쟁'(僕の一人戦争)입니다.


▲ '나의 1인 전쟁' 오프닝 트레일러 (영상출처: 아카베소프트2 공식 유튜브)

지금의 아카베소프트2를 만든 일등공신 ‘루스보이’

‘나의 1인 전쟁’을 만든 ‘아카베소프트2’는 일전에 ‘G선상의 마왕’을 소개하면서 설명한 미소녀게임 개발사입니다. 본래 아카베소프트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2차 창작물 동인 팀이었지만, 나중에 정식 개발사로 발돋움하면서 본래 이름 뒤에 2를 붙여 아카베소프트2로 회사명을 정했죠.

보통 미소녀게임 팬들이 아카베소프트2를 논할 때, 크게 두 가지를 꼽는데요. 하나는 많은 수의 개발 팀을 두고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만든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개발사 명성을 크게 끌어올린 시나리오 작가 ‘루스보이’표 스토리입니다. 
 
두 부분 모두 할 이야기는 많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나의 1인 전쟁’에서 시나리오 작가를 맡은 루스보이에 주목하겠습니다. 루스보이는 아카베소프트2 간판 원화가 ‘알파’와 함께 ‘차륜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로 개발사의 전성기를 연 일등공신인데요. 그가 참여한 작품 대부분 주인공과 히로인의 순애 구도를 유지하는 한편, 강한 메시지를 전달해 많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 루스보이와 알파가 작업한 '차륜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그리고 'G선상의 마왕' 모두 무거운 주제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실제로 그가 선보인 작품은 미소녀게임이지만, 무거운 내용을 다루는 편입니다. 가령, 처음으로 선보인 ‘차륜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에서는 악의와 본능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그 다음 작품인 ‘G선상의 마왕’에서는 가족 간의 사랑, 그리고 구속을 주제로 삼았죠. 이런 인간 관계를 심도 있게 풀어낸 이야기는 사실 미소녀게임에 걸림돌이 될 법도 하지만, 오히려 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여 크나큰 호평을 받았죠.

이런 루스보이가 아카베소프트2 10주년 기념작 ‘나의 1인 전쟁’에 참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시 한번 미소녀게임 팬들은 그가 어떤 스토리를 선보일지 많은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나온 작품 역시 이런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 10주년 기념으로 루스보이와 알파가 작업한 '나의 1인 전쟁'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사진출처: 게임 공식 웹사이트)

목숨과 인연, 어느 쪽이 더 중한가... ‘나의 1인 전쟁’

‘나의 1인 전쟁’은 과거 루스보이가 선보인 작품들처럼, 인간 관계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를 별다른 굴곡이 없는 삶을 살던 주인공 ‘사토미 렌지’를 통해 풀어냅니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주인공이지만, 우연한 계기로 ‘모임’이라는 데스게임에 참가하게 되면서 자신이 여태까지 쌓아온 인간 관계가 걸린 싸움에 휘말리게 됩니다.


▲ 모두가 함께한 즐거운 한때...(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주인공은 이들을 아군 삼아 힘겨운 싸움에 뛰어들게 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주인공이 말려든 ‘모임’은 시간이 멈춰버린 세계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게임으로, 정해진 코스트 내에서 병사를 소환해 정체불명의 적을 물리치는 게 목표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주인공이 소환하는 병사가 바로 여태까지 살아나면서 인연을 맺은 가족, 친구, 지인이라는 것입니다.

병사로 소환된 이들은 전투 능력이 없는 주인공을 대신해 적과의 싸움에 뛰어들게 됩니다. 이때, 이들은 특별한 힘을 부여 받게 되는데, 얼마나 사이가 가깝느냐에 따라 그 위력이 달라지죠. 즉, 주인공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코스트도 저렴하고 능력도 강력하지만, 반대로 주인공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코스트도 비싸고 능력도 약하다는 소리죠.


▲ 인연이 강할수록, 위력도 강해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이쯤 되면 친한 사람을 소환해 단숨에 적을 쓰러뜨리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사실 이 ‘모임’에는 한 가지 더 잔혹한 룰이 있습니다. 바로 전투 중 쓰러진 병사는 현실로 돌아오면 마음이 망가져 참가자를 증오하게 된다는 것이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자신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모습에, 주인공은 ‘모임’이 진행될수록 큰 상처를 받습니다.

더군다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점차 ‘모임’을 반복할수록 난이도는 높아지고, 쓰러지는 병사가 늘어나면서 실질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쓸만한 병사 수는 점차 줄어들기만 하죠. 결국 살아남으려면 쌓아온 인연을 희생해야만 하는 현실에, 주인공의 고뇌와 절망만 커져만 갑니다.


▲ 오랜 인연의 인물이라도...(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모임'에서의 죽음으로 인해 관계가 파탄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깊이 있는 ‘루스보이’표 스토리, 나오는 캐릭터까지 닮아있다

이처럼 ‘나의 1인 전쟁’은 반복되는 ‘모임’으로 인해 인간 관계를 잃어가는 주인공의 극심한 갈등과 고뇌를 다룹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아픔이었던 관계의 단절이 회를 거듭하면서 그 누구보다 사랑하던 연인 ‘이누즈카 루미’까지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발전하는 과정,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처절한 몸부림.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스토리는 이 작품 최대 매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인공의 행보는 과거 ‘차륜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에서 ‘모리타 켄이치’가 인간의 악의와 본능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G선상의 마왕’에서 ‘우사미 하루’가 마왕에 의해 해체되려는 가족을 끝까지 지키려는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죠. 이런 진퇴양난의 고난에서 기어코 극복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야말로 ‘루스보이’표 스토리의 핵심 특징이라 할 수 있죠.


▲ 주인공의 처절한 몸부림은 보는 이도 안타깝게 만들 정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스토리 외에도, 캐릭터에도 유사점이 있습니다. ‘나의 1인 전쟁’에서 주인공에게는 특이한 조력자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주인공처럼 과거 ‘모임’에 휘말렸다가 살아남은 마을의 권력자 ‘나가토 다이치’라는 할아버지입니다. 이미 과거 주인공의 고난을 경험한 인물답게, 그는 게임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 주인공에게 다양한 조언을 주죠.

다만, 그 조언이 대부분 주인공이 꺼려하는 비정한 선택이라는 게 유일한 흠이죠. 먼저 ‘모임’의 처참함을 겪은 경험자의 냉철한 조언이겠지만, 현실적이면서도 차가운 논리는 결과적으로 주인공을 더욱 괴롭게 만듭니다.


▲ 앞선 자의 비정한 논리에, 주인공의 괴로움은 더욱 깊어만 간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사실 이런 류의 캐릭터가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요. 과거 ‘차륜의 나라, 해바라기의 소녀’에서는 주인공의 시험관으로 나오는 ‘호우즈키 마사오미’가, ‘G선상의 마왕’에서는 주인공에게 뒤틀린 가치관을 심어준 양아버지 ‘아자이 곤조’가 그 역할을 맡죠. 단적으로 보기에는 악한 인물이라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이들이 펼치는 냉철한 논리는 주인공의 처지를 플레이어가 더욱 공감하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로 작용하죠.

어떤 의미로, 이런 부분들이 더해졌기에 ‘나의 1인 전쟁’에서도 과거 루스보이가 선보인 명작 스토리에 버금가는 흡입력을 경험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이런 부분들이 곧 게임의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끔 만든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무거운 주제, 그래도 미소녀게임의 본질도 살아있다

지금까지 ‘나의 1인 전쟁’이라는 작품의 주요 특징을 소개해봤는데요. 아마 이렇게만 들어서는 ‘내용도 무겁고, 핵심 인물마저 할아버지라니... 이게 미소녀게임이야?’라는 독자 분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본에도 충실한 미소녀게임이 맞습니다. 비록 ‘모임’의 존재감으로 인해 다른 작품처럼 다양한 서브 히로인과의 연애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진 히로인 ‘루미’만큼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죠. 실제로, 주인공이 하는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그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 다른 서브 히로인 비중이 떨어질지 몰라도...(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 진 히로인과의 이야기는 확실한 분량을 자랑한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덕분에 ‘나의 1인 전쟁’은 인간 관계라는 메인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미소녀게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소년과 소녀의 연애도 확실히 살린 작품이라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루스보이 작품에서 전작 이상으로 이러한 연애 파트가 강화됐다고 볼 수 있죠.

여전히 평가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래도 아카베소프트2 10주년을 기념해 루스보이와 알파가 선보인 ‘나의 1인 전쟁’의 시나리오만큼은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앞으로 이런 두 콤비의 합작을 다시 보기 힘들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루스보이가 아카베소프트2 흑역사로 꼽히는 ‘총기사’ 사건의 책임자로 지목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카베소프트2가 개발한 미소녀게임 ‘총기사’는 9만원 높은 가격임에도 겨우 35개 일러스트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스토리로 크게 혹평을 받았는데요. 당시 내부에서 책임자인 루스보이가 미완성 게임이라는 걸 알면서도 출시했다고 폭로했죠. 실제로 폭로 이후로 루스보이는 트위터 계정을 잠그고 잠적하여 의혹만 더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루스보이 잠적으로, 그만의 심도 있는 스토리를 다시 만나기 어려워졌습니다. 미소녀게임 팬 입장에서는 '나의 1인 전쟁' 뒤를 이을 후속작을 다시 접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쉽게만 느껴집니다.


▲ 매력적인 스토리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사진출처: 게임메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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