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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행] 소설과 다른 길, 영화 기반의 반지의 제왕 '미들 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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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시되기 무섭게 '갓겜' 반열에 오른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워' (사진출처: 모노리스 공식 홈페이지)

최근 발매되자마자 '올해의 GOTY감'이라며 화제의 중심에 선 게임이 하나 있다. 워너 브라더스 작품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워'다. 게임성, 서사성, 유명 IP까지 삼박자를 모두 갖춘 이 게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흥행 중이다.

그런데, 사실 이처럼 흠 잡을 데 없어 보이는 '섀도우 오브 워'도 한 가지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 문제는 바로 세계관이다. 얼핏 보기에는 '반지의 제왕' 세계관으로 만든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니라는 것이다. '반지의 제왕' 팬들은 이 게임이 원작과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원작 훼손까지 범했고 주장한다. 심지어 해외의 일부 골수 팬들은 '섀도우 오브 워'를 '설정 파괴자', '원작의 적' 등으로 부르며 오픈 크리틱에 리뷰 테러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히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워'는 분명 '반지의 제왕' 세계관으로 만든 게임이다. 원작 영화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에서 낸 만큼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부 팬들이 '섀도우 오브 워'가 '반지의 제왕' 세계관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과 영화로 갈라진 판권, 세계관에 혼선 생겼다


▲ '반지의 제왕' 상품화 라이선스는 쓰인 곳이 많은 만큼 문제도 많았다 (사진출처: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

'섀도우 오브 워'를 둘러싼 세계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꼬인 '반지의 제왕' 라이선스에 대해 조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반지의 제왕'을 놓고 벌어지는 첨예한 라이선스 분쟁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 상품화 권리는 꽤 이른 시기에 판매됐다. 톨킨은 생전인 1968년에 자신의 작품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영화화, 연극화, 상품화 할 권리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라는 영상 제작사에 당시 돈 10만 파운드에 매각했다. 단 이 때 거래된 것은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대한 라이선스뿐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정식 출판된 시리즈는 이 두 작품이 전부였고, 톨킨 본인도 1973년 사망할 때까지 다른 작품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톨킨이 써둔 세계관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는 출판하지 않았을 뿐 앞선 두 작품과 설정을 공유하는 상당한 양의 원고를 써둔 상태였다. 그가 사망한 이후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은 남아있던 아버지의 원고를 집대성해 '실마릴리온'이라는 서적을 발간했는데, 이 서적이야말로 톨킨 세계관의 정수라 할 만했다. '실마릴리온'은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세계인 '아르다'가 창조된 과정, 신들의 전쟁, 영웅들의 계보 등을 상세히 담고 있었다.

이후로도 크리스토퍼는 아버지 원고를 바탕으로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중간계 역사서', '후린의 아이들' 등 다양한 설정서와 소설을 내놓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호빗'과 '반지의 제왕'만 출판되어 있던 톨킨 저작물은 차츰 '레전더리움'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크리스토퍼는 '레전더리움'에 속한 모든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법인을 설립했으니, 바로 그 유명한 톨킨 재단이었다.


▲ 톨킨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는 '실마릴리온' (사진출처: Tolkien Library)

그 사이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는 '호빗' 및 '반지의 제왕'에 대한 라이선스를 또 다른 영화사 사울 잰츠 컴퍼니에 판매했다. 잰츠 컴퍼니는 라이선스를 관리하기 위해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라는 계열사를 설립했고, 이를 통해 영화, 연극, 보드게임, PC게임 등 다양한 사업에 관여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톨킨 재단과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는 서로 크게 충돌할 일이 없었다. 톨킨 재단은 주로 출판업계에 머물러 있었고,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계 대기업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2001년 영화 '반지의 제왕' 삼부작을 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생긴 수익과 명성을 놓고 톨킨 재단과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 사이에 라이선스 분쟁이 폭발한 것이다.

2008년 톨킨 재단은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와 워너 브라더스가 자신들에게 정당한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지 않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문제의 요지는 이러했다. 과거 톨킨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와 계약할 때 수익의 7.5%를 로열티로 받기로 했다. 이후 사울 잰츠 컴퍼니는 이 권리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로부터 사들이며 로열티 책임도 함께 지게 됐는데, 실제로는 영화로 번 수익 중 단 한 푼도 톨킨 재단에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크리스토퍼는 소송 중 르몽드 인터뷰를 통해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을 취소해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 중인 영화 '호빗'의 제작을 중단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 소송은 2009년 양자 합의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끝났다. 다만 이후 크리스토퍼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전한 바에 따르면, 톨킨 재단은 7,500만 파운드(한화 1,122억 8,475만 원)에 달하는 금액을 지급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 문제의 발단이 된 '반지의 제왕' 온라인 슬롯머신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그리고 2012년 톨킨 재단은 또 한 번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와 워너 브라더스에 소송을 걸었다. 이번에는 온라인 카지노와 비디오 게임에 '호빗'과 '반지의 제왕' 캐릭터를 무단으로 등장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톨킨 재단 주장 요지는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가 지닌 권리는 피규어, 문구류, 의류 등 유형(tangible)의 상품을 제작하는 데 한정됐는데, 함부로 디지털 상품 및 서비스 상품에 대해서까지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톨킨 재단은 원작자가 계약을 맺었던 당시에는 게임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므로, 해당 계약에 게임화 권리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가 무단으로 '반지의 제왕' 캐릭터를 도박에 등장시켜 원작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며 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와 워너 브라더스는 맞고소로 응했고, 결국 2017년이 되고야 간신히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톨킨 재단과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 사이에 골이 깊어짐에 따라 디지털 파생 상품 제작 또한 난황을 겪게 됐다. 실제로 2012년 샌디에고 코믹콘에 참가한 피터 잭슨 감독은 '실마릴리온' 영화화 가능성을 물은 팬에게 '톨킨 재단이 싫어해서 아마 힘들 듯하다'고 대답했다. 이미 계약된 '호빗'과 '반지의 제왕'도 문제가 되는 마당에 어떻게 '실마릴리온' 계약을 새로 따내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같은 해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르몽드 인터뷰에서 영화가 원작을 처참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일까?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로부터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게임화할 권리를 받은 워너 브라더스는 아예 '레전더리움'과 독립된 세계관의 게임을 내놓기 시작했다. '실마릴리온'을 무시한 채, 영화 '호빗'과 '반지의 제왕'만을 원작으로 하는 자체 세계관을 구축한 것이다.

독자노선 걷는 워너 브라더스, 그 본격적인 시작 '미들 어스' 시리즈


▲ 워너 브라더스 첫 독자 행보는 '반지의 제왕: 북부전쟁'으로 시작됐다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워너 브라더스는 2009년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로부터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게임화 권리를 획득했다. 독특한 점은 이후 이들이 영화에 언급된 인명과 지명만 사용해 '레전더리움'과 무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너 브라더스 독자적인 행보는 2011년 출시된 '반지의 제왕: 북부전쟁'으로 시작됐다. 영화를 바탕으로 한 이 게임은 아라고른의 지시를 받은 순찰자가 사우론의 군대 중 하나를 게릴라전으로 저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원작 요소를 바탕으로 원작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다만 '반지의 제왕: 북부전쟁'은 단순한 줄거리와 단조로운 전투 시스템 탓에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다. 또한 이 때까지만 해도 '레전더리움'과 완전히 대치되는 요소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반면 2014년 발매된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보다 본격적으로 '실마릴리온'과 대치된 내용을 다루었다. '레전더리움'과 상충되는 부분은 없었던 '반지의 제왕: 북부전쟁'과는 달리, 아예 '실마릴리온'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이야기를 전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 '레전더리움' 세계관과 본격적으로 결별하기 시작한 첫 작품,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모노리스 공식 홈페이지)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반지의 제왕'에도 잠시 언급된 요정 군주 켈레브림보르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엘프는 본디 인간의 도래와 함께 쇠퇴하여 중간계를 떠나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일부 엘프는 운명을 거부하고 중간계에 남고자 했으며, 켈레브림보르도 그러한 이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켈레브림보르 왕국 에레기온에 안나타르라는 신비한 이가 나타난다. 신들의 사자를 자처한 안나타르는 엘프 종족의 쇠퇴를 막아줄 방법을 말해주겠다며 켈레브림보르 환심을 샀다. 켈레브림보르는 뛰어난 장인이었는데, 안나타르는 그 재주와 자기 기술을 조합하면 요정의 쇠퇴를 막을 마법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설득에 넘어간 그는 안나타르가 전수해준 비법에 따라 반지를 제작했으니, 이것이 후일 나즈굴을 탄생시킨 '힘의 반지'였다.


▲ 훈남 모습으로 나타나 켈레브림보르를 홀린 사우론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내 영상 갈무리)

그런데 사실 안나타르 정체는 사악한 고대의 존재 사우론이었다. 그는 몰래 반지에 자신의 힘을 불어넣었고, 이후 모든 반지를 조종할 절대반지를 만들었다. 그의 목적은 절대반지를 통해 엘프 군주들을 타락시키고 조종해 자신의 수하로 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엘프들은 절대반지에 지배되기 전에 힘의 반지를 빼 타락을 피할 수 있었다. 이후 정체를 들킨 사우론은 힘의 반지를 회수해 드워프와 인간에게 주기 위해 켈레브림보르 왕국을 침공했다.

여기까지는 원작과 게임이 동일한 내용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사우론이 켈레브림보르를 사로잡은 후부터 게임의 줄거리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 원작의 켈레브림보르는 잔인하게 살해되고 그 시체는 장대에 꿰여 깃발 대신 사용된다. 반면 게임 속 사우론이 켈레브림보르를 죽이는 대신 절대반지를 강화하기 위한 최후공정을 맡겼고, 켈레브림보르는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르는 척 하며 반지에 몰래 자기 영혼을 불어넣었다.


▲ 자신이 진정한 반지의 제왕이라며 흥분한 켈레브림보르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내 영상 갈무리)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이로 인해 절대반지의 주인이 두 명이 됐다는 줄거리로 진행된다. 심지어 켈레브림보르 과거를 다룬 DLC '빛의 군주'에 따르면, 그는 절대반지의 힘으로 사우론에 맞서 전쟁을 벌이기까지 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결국 켈레브림보르는 사우론에 패배해 죽임을 당한다. 이후 그는 살지도 죽지도 않은 상태의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처지가 된다. 본래 엘프는 죽으면 혼이 신들의 세계로 승천하지만, 켈레브림보르는 영혼을 절대반지에 담아버린 탓에 반지에 속박되고 말았던 것이다.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영화 '호빗'의 시점에서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켈레브림보르는 사우론의 부하에게 가족이 몰살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순찰자 탈리온의 시체에 깃든다. 켈레브림보르와 탈리온은 사우론에 대한 복수심으로 의기투합하여 결국 사우론을 방해하는 데 성공한다. 결말에서 둘은 이 기세를 몰아 새로운 절대반지를 만들고, 사우론을 완전히 끝장내자는 계획을 세운다.


▲ 사우론에 대한 복수심으로 힘을 합친 탈리온과 켈레브림보르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내 영상 갈무리)

이러한 내용은 소설 '레전더리움' 어디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켈레브림보르의 운명과 절대반지 설정도 원작과 상충되는 부분이다. 톨킨 재단의 '실마릴리온'을 무시해버리고, 아예 '레전더리움'과 다른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그 외에도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워너 브라더스 산하 모노리스에서 자체 설정한 신규 괴물도 다수 등장시켰다. 예를 들어 게임 중 자주 등장하는 카라고르, 그라우그, 구울 등은 모두 원작에 나오지 않는 괴물이다. 반면 원작에 등장하는 워르그나 올리펀트 등은 제작단계에서 모두 취소됐다. 이 게임이 톨킨 재단과 소송이 한창일 때 개발됐음을 감안하면, 이러한 조치는 워너 브라더스가 의도적으로 취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 탓에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반지의 제왕' 팬들에게 비난의 표적이 됐다. '반지의 제왕' IP를 사용했으면서도 정면으로 원작을 무시했다는 이유였다. 일부 팬들은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줄거리를 원작에 대한 훼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도 이후에 발매될 후속작에 비하면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재해석이었다. 후속작 '섀도우 오브 워'에 비한다면 말이다.


▲ 원작에 없던 괴물, 그라우그와 구울 (사진출처: 모노리스 공식 홈페이지)

'섀도우 오브 워'의 새로운 스토리, '레전더리움'과 정면 충돌한다


▲ '섀도우 오브 워'에서는 아예 제2의 절대반지를 만들어버린다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워' 내 영상 갈무리)

어쨌든 게임 자체의 완성도는 흠 잡을 데 없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는 발매된 해 최다 GOTY를 수상했다. 몇 해 뒤인 2017년에는 그 명성을 이어 후속작인 '섀도우 오브 워'가 출시됐고, 이 게임은 여러 면에서 전작보다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역동적인 전투, 수집욕구를 자극하는 부하 영입 시스템, 예상치 못한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네메시스 시스템'은 물론, 원작 설정붕괴 또한 훨씬 강해진 것이다.

'섀도우 오브 워'는 전작 결말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켈레브림보르와 탈리온은 새로운 절대반지를 제작해 사우론을 파멸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뜻밖에 제 3의 존재가 난입하여 영혼인 켈레브림보르를 납치해 인질로 삼고, 새로운 절대반지를 요구한다. 그 정체는 바로 영화에도 등장했던 거대거미 쉴롭이다.

첫 등장부터 쉴롭은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충격을 선사한다. 원작 쉴롭은 거대하고 초자연적 힘을 지닌 괴물거미 웅골리안트의 자식이다. 웅골리안트로부터 끝없는 허기와 탐욕을 이어받은 쉴롭은 배를 채울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며, 지성이 있는 존재임에도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 흉측한 비만 거미를 미녀로 바꿔놓은 '섀도우 오브 워'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사진편집: 게임메카)

그런데 '섀도우 오브 워' 쉴롭은 지성적인 인간 여인으로 변신할 뿐 아니라, 원작에는 없던 미래를 예지하는 힘까지 지니고 있다. 또한 그는 허기와 탐욕이 아닌 세상의 운명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는 등, 굶주린 괴물보다는 신비한 예언자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실제 쉴롭은 게임 내내 예지의 힘으로 탈리온이 사우론에 맞설 수 있게 도와주며 조언자 역할을 맡는다. 재해석 수준을 넘어 아예 원작과 다른 캐릭터를 창조해낸 셈이다.

캐릭터만 재창조된 것이 아니다. 스토리도 그렇다. 예를 들어 게임 초반에 함락되는 요새 미나스 이실은 원작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장소다. 사우론의 부관인 마술사 왕이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천 년 전 이곳을 함락시켜 악의 요새 미나스 모르굴로 바꾸어놓았고, 이곳에서 곤도르 최후의 왕이 살해돼 섭정에 의한 통치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섀도우 오브 워'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 사이에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시간상으로 '반지의 제왕'으로부터 약 70년 전 벌어진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 게임은 이 시기에 미나스 이실이 함락되는 것으로 묘사해 함락 시기를 900년 가량 늦춰놓았다. 게임 설정을 따르면 곤도르의 왕이 미나스 모르굴에서 죽지도 않았으므로 곤도르는 여전히 섭정이 아닌 왕이 통치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후일 '반지의 제왕'에서 곤도르 왕족의 피를 이은 아라곤이 섭정에게 왕위를 요구하는 '왕의 귀환' 이야기 또한 성립할 수 없게 된다. 게임의 설정이 원작과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셈이다.


▲ 천 년 전에 망했어야 할 미나스 이실이 멀쩡하게 나온다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워' 내 영상 갈무리)

그 외에도 '섀도우 오브 워'는 강령술로 발록을 통제하려는 오크 주술사, 원작과 다른 나즈굴들의 정체 등 다양한 부분에서 '레전더리움'과 충돌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처럼 '섀도우 오브 워'는 '반지의 제왕'의 요소들을 대거 차용했지만, 사실은 원작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세계관


▲ 켈레브림보르가 절대반지를 하나 더 만든 것처럼, '반지의 제왕' 세계관을 하나 더 만들 생각인 걸까? (사진출처: '섀도우 오브 워' 내 영상 갈무리)

워너 브라더스 '미들 어스' 시리즈는 분명 '반지의 제왕'에서 비롯된 게임이다. 여러 인물, 지역, 사건이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것이며, 골룸 같은 일부 캐릭터는 아예 똑같은 외모와 행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미들 어스' 시리즈가 '반지의 제왕' 세계관 '레전더리움'에 속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미들 어스' 시리즈는 '반지의 제왕'을 '레전더리움'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창조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워너 브라더스가 '반지의 제왕' 프랜차이즈로 '레전더리움' 세계관과 어긋난 작품들을 계속 내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전해진 바 없다. 그러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라이선스 문제로 미루어 볼 때, 그 이유는 아마 톨킨 재단과의 분쟁에 있지 않나 추측된다. 미들 어스 엔터프라이즈와 워너 브라더스는 이미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상품화 라이선스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작품을 개발하다 보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두 작품을 넘어선 영역, 즉 레전더리움 세계관의 나머지 부분으로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톨킨 재단과 추가 계약을 맺고 싶지는 않으니, 아예 '반지의 제왕' 평행세계관을 자체적으로 만들자는 판단을 한 것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거나 '미들 어스' 시리즈는 계속 '레전더리움'과 담을 쌓고 독자노선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반지의 제왕' 세계관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개조 중인 워너 브라더스 시도는, 어딘지 절대반지를 사우론에게서 강탈해 또 다른 주인이 되고자 한 켈레브림보르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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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PC, 비디오
장르
액션 RPG
제작사
워너브라더스
게임소개
'미들 어스: 섀도우 오브 워'는 영화 '호빗'과 '반지의 제왕' 사이의 시대를 배경으로, ‘사우론’에게 복수하기 위해 죽음에서 돌아온 레인저 '탈리온'과 망령 ‘켈레브림보르’의 여정을 다룬다. 이번 신작에서는 ...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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